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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속 시대 읽기/이런책 저런책

[이런책 저런책] 밥이 되고 물이 되는 또 하나의 경전, 성경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13. 11. 11. 13:33

밥이 되고 물이 되는 또 하나의 경전, 성경

글 김락희/ koocoo87@live.co.kr


 

김규항. 『예수전』돌베개(2009)김규항. 『예수전』돌베개(2009)

 

늦바람이 즐겁다.
나이 마흔까지는 1년에 책다운 책을 두 세 권 읽을까 말까 하던 내가, 동네 책모임에 나가게 되면서 한 달에 두 세 권을 읽고 있다. 새로운 책 속에서, 새로운 스승과 친구,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기쁨이 적지 않다. 그런데 이런 새로운 책과는 또 다른 기쁨을 주는 책들이 있다.


바로 고전이다.


몇 년째 매일 짬짬이 반복해서 읽고 있는, 사서(대학,논어, 맹자, 중용)와 노자이다. 이 책들을 읽는 느낌을 말로 표현한다면?


온고지신(溫故知新)-옛것은 익히면 익힐수록 새로운 보물이 자꾸 나온다.
이런 고전 중에서도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사람들에게 길이 되고 빛이 된 책들을 가리켜 “경전”이라고 부르는가보다.


한 두 해 전 우연한 기회에 하나의 경전을 접하게 되었다.
김규항 님의 『예수전』을 통해 성경을 처음 만났다. 이 책은 신약성경(마르코복음) 해설서이다. 살면서 성경을 읽을 날이 오리라 생각지 못했는데. 돌아가신 할머니 때부터 지금까지 가족이 성당엘 다니고 있고, 어려서 세례까지 받은 내게 성경은 왜 그렇게 멀게만 느껴졌을까?


사실, 다른 고전, 경전들도 성경처럼 가까이 하기 쉽지 않다. 나름대로의 이유들이 있을 것이다. 유가 경전의 경우는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든가, 도가의 경전은 비현실적인 도사들 이야기라는 등의 생각들이 그것이다.  마찬가지로 예수의 이야기, 신약성경도 내게는 전설의 고향같은 옛이야기로 느껴졌거나,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엄청난 이름에 주눅들어 가까이 가기가 쉽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던 차에 접하게 된 『예수전』은 내게 있던 이런 벽들을 허물어 주었다. 
 성경이, 그리고 예수가 우리들에게서 멀어지게 된 이유를 이 책에서는 이렇게 적고 있다.

  “(이 책에서 채택한 성서의)본문으로 “200주년 신약성서”를 선택한 가장 주요한 이유는 이 성서에서만 예수가 반말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중략)..예수를 ‘아무한테든, 대제사장에게든 로마 총독에게든 무턱대고 반말을 하는 사내’로 그리는 건, 게다가 그런 예수에게 대제사장과 로마 총독이 존댓말을 하는 것처럼 그리는 건 대단한 왜곡이 된다. 오늘 예수가 제대로 이해되지 못하는 가장 주요한 원인은 교회가 인간 예수의 삶을 교리 속에 묻어 버렸기 때문인데, 반말하는 예수는 교회의 그런 의도에 결정적으로 기여한다.“

그리고 예수에 대한 왜곡이 이루어진 중요한 이유 중 하나로 지배 계급의 의도를 꼽고 있다.


“지배 계급이 일찌감치 이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이상주의자를 자신들의 수호신으로 만들어 버린 후, 사람들은 그 예수를 각자의 세속적 욕망을 신에게 청탁하는 유능한 중개인쯤으로 알게 되었다.”
“AD325년 최초의 기독교인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는 니케아에 있는 제 별장에 세계의 주요한 주교들을 모아 놓고 회유와 협박으로 예수가 ‘하느님과 동일 본질’이라는 결정을 내리게 한다. 당시 예수의 정체성에 대한 논쟁은 자유로운 편이었는데 대체로 예수가 하느님과 같은 존재라는 의견보다는 예수가 사람보다는 높지만 하느님보다는 낮은 존재라는 견해가 우세한 편이었다. (...) 콘스탄티누스는 (...) 예수가 하느님의 지위를 얻으면 자신의 지위도 함께 격상된다는 점을 간파했다. (...) 그런 정치적 의도로 내려진 결정은 더 이상 다른 견해들을 용납하지 않았다. (...) 오늘날 대개의 사람들은 예수가 정말 어떤 생각을 했고 어떻게 활동했으며 무엇을 꿈꾸었는지 왜 죽임을 당했는지 따위는 모조리 생략한 채, 그를 단지 교리의 주인공으로만 기억한다.”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한 장면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한 장면


내 짧은 공부로 “예수가 후세 사람들의 필요에 의해서 신격화 되었다”는 주장에 확신을 가질 수는 없다. 하지만 2000여 년 전 로마의 식민지, 이스라엘. 그 중에서도 차별받던 땅 갈릴래아 지방의 젊은이,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고뇌하고 행동하고, 좋은 세상은 이런 것임을 잔치로 보여주던 사람 예수가 역사 속에 진짜로 있었던 인물임은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역사에 실재한 예수를 받아들이면서 성경은 내게 “전설의 고향”에서 “고전”으로 바뀐다. 저자의 길안내로 만나게 되는 성경 구절들은 다른 고전의 글과 마찬가지로 한 그릇의 밥이 되고, 한 잔의 물이 된다. 기억에 남는 구절 중 몇 개를 적어본다. 

 

  예수가 당시 멸시 받던 사람들인 세관원들과 죄인들과 어울려 밥을 먹으며 그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사람들에게 “의사는 건장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앓는 사람들에게 필요합니다. 나는 의인들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들을 부르러 왔습니다.”라고 했던 이야기에서는 권정생 선생님이 지존파 청년들을 가엽게 여기던 글이 생각이 났고,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서 생겼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서 생기지 않았습니다.”라는 안식일 논쟁을 읽으면서는 “예는 사치보다는 차라리 검소하여야 하고, 초상은 격식을 잘 차리는 것보다는 차라리 슬퍼하여야 한다(禮與其奢也 寧儉 喪與其易也 寧戚)”는 논어의 구절이 겹친다.
“하느님과 마몬을 함께 섬길 수는 없습니다.”라는 구절은 맹자의 “하필이면 이익을 말씀하십니까?(何必曰利)” 라는 구절이 떠올랐다.


씨앗이 제대로 된 땅에 떨어지지 않으면 열매 맺지 못하고 죽는다는 씨앗 비유는, 노자의 “도가 아니면 일찍 죽는다.(不道早已)”는 구절의 설명처럼 느껴졌다.

 

다른 고전과 마찬가지로 성경 또한 매번 읽을 때마다 새로운 보물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성경이라는 보물창고로 가는 길잡이로 이 책을 권하며, 저자 김규항님의 말로 글을 맺는다.
“예수가 말한 하느님의 나라는 우리의 말로 ‘새로운 세상’이며 복음을 선포하는 일은 우리의 말로 ‘세상을 변혁하는 운동’이며 기도는 우리의 말로 ‘신념을 다지고 성찰하는 시간’이기도 하다”(36쪽)

 

“예수를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가, 인간으로서 존경하는가는 전적으로 개인이 선택할 문제다. 그러나 어떤 선택을 하든, 예수는 우리가 삶의 기쁨과 의미를 회복하도록 돕는다. 그래서 예수는 우리에게 복음, 즉 기쁜 소식이다.”(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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