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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쓰는 민주주의
명동성당에 가려진 성당과 교회 -성공회 대성당과 향린교회 글 한종수/ wiking@hanmail.net 성공회 대성당 커다란 십자가를 눕혀놓은 형상의 성공회 대성당은 6‧10민주항쟁의 진원지였다. 하지만 이 성당이 어떻게 건설되었는지 아는 이는 많지 않다. 민주화의 성지인 명동성당은 순수한 고딕 양식으로 지어졌고 서울 시내를 내려다보는 위치에 지어졌다. 성공회 성당은 마치 덕수궁의 일부인 것처럼 눈에 뜨이지는 않지만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 자세히 보면 이 성당은 기본적으로 비잔틴-로마네스크 양식임에도 한국적 요소가 많이 가미되어 있는데 다 이유가 있다. 성공회는 1890년 9월, 조선에 진출했지만 그들은 처음부터 서울에 성당을 짓지 않고 강화나 음성 같은 농촌에 한옥 성당을 지으면서 선교를 시작했다. ..
1987년 명동 일대 글 한종수 wiking@hanmail.net [국민운동본부의 항쟁 종료선언 이후 명동성당으로 모여들고 있는 수많은 시민과 학생들] 한양이 조선의 수도로 결정되고 북악산 아래에 경복궁과 창덕궁이 건축되고, 출사한 선비들이 두 궁전 사이에 집을 짓고 살면서 지금의 북촌이 형성되었다. 대신 벼슬이 없거나 출사를 준비하고 있는 선비들은 남산 아래쪽에 모여 살았다. 이들을 남산 딸깍발이라고 불렀다. 물론 북촌이라고 전부 벼슬아치들이 산 것도 아니고 남촌이라고 전부 재야인사들만 산 것은 아니었지만 기본적인 구도는 그러했다. 이런 구도는 일제 강점기가 시작되면서 변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일본이라도 북촌과 종로를 완전히 장악하기는 어려웠기에 남산 아래쪽을 집중적으로 개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정치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