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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쓰는 민주주의
지학순을 만나러 원주에 가다 글 한종수/ wiking@hanmail.net 3월 12일은 지학순 원주교구 초대 주교가 세상을 떠난 지 20년이 되는 날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를 1970년대 민주화운동의 선봉이자 정신적 지주로 기억하고, 어떤 이는 1985년 이산가족 상봉에서 누이를 만난 모습으로 기억하기도 한다. 하지만 지학순 주교는 이런 평면적인 인상으로 기억될 인물이 아니다. 지학순 주교는 1921년 평안남도 중화군 중화면 청학리(현 황해북도 중화군 중화읍)에서 태어나 1934년 1월 25일에 중화천주교회에서 메리놀선교회 소속 요셉 클먼 신부에게 영세를 받고, 소신학교인 서울 동성고등학교를 다녔다. 1948년 3월 함경남도에 있는 덕원신학교를 다니다가, 1950년 1월 17일 남북 분단 후 친구인..
1987년 명동 일대 글 한종수 wiking@hanmail.net [국민운동본부의 항쟁 종료선언 이후 명동성당으로 모여들고 있는 수많은 시민과 학생들] 한양이 조선의 수도로 결정되고 북악산 아래에 경복궁과 창덕궁이 건축되고, 출사한 선비들이 두 궁전 사이에 집을 짓고 살면서 지금의 북촌이 형성되었다. 대신 벼슬이 없거나 출사를 준비하고 있는 선비들은 남산 아래쪽에 모여 살았다. 이들을 남산 딸깍발이라고 불렀다. 물론 북촌이라고 전부 벼슬아치들이 산 것도 아니고 남촌이라고 전부 재야인사들만 산 것은 아니었지만 기본적인 구도는 그러했다. 이런 구도는 일제 강점기가 시작되면서 변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일본이라도 북촌과 종로를 완전히 장악하기는 어려웠기에 남산 아래쪽을 집중적으로 개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정치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