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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이야기/풀뿌리 운동 현장을 가다

아이들에게 위로가 되는 공부방 아이들이 웃음터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09. 1. 21. 17:05
 

“무슨 시간이 제일 재미있니?”
“노는 시간이요.”
사내 녀석이 짓궂게 답한다.
“어떤 시간이 제일 즐거워?”
“수화요.”
“수학?”
“아뇨, 수화요.”

아이들과의 대화에서 중요한 건 어른의 잣대로 판단하는
짐작이 아니라 그 아이의 진심을 듣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새삼 느꼈다.
오늘은 수화 가르치시는 선생님이 두 달 후에나 다시 수업을 한다고 하니
아이들 얼굴에 서운한 기색이 역력하다.
수화 시간이 끝났음에도 선생님에게 자꾸 묻고 또 묻는다.

“선생님, 그럼 두 달 후에 보는 거예요?”
“응…….”
자원교사 선생님도 서운한지 아이들에게 눈웃음만 줄 뿐이다.


저소득층 가정에서의 여성과 아이


“동두천이라는 지역이 다른 지역하고는 좀 다른 특성이 있죠. 우선 잘 아시듯이 ‘미군기지’라는 이미지부터 다른 도시에 비해 경제적 소득 수준이 높은 것도 아니죠. 주변에 대규모 공단이나 기업체가 없으니 안정적인 수입원이 없어요. 그러다보니 지역 경제 자립도가 다른 지역에 비해 좀 낮은 편이에요.”
지난 2000년 성폭력상담소 활동을 하던 선배로부터 자원 활동가 권유를 받고 동두천에 ‘여성상담센터’를 운영해온 한완수 소장(46세)은 이런 고민 끝에 저소득층 아이들을 보살펴 줄 ‘아이들 웃음터’라는 공부방을 만들게 되었다.
“가정폭력 등 가정 내 문제는 결국 아이들에게 상처가 될 수밖에 없어요. 올 3월에 공부방 문을 열었으니 5개월 정도 됐어요. 현재 약 스무 명 되는 아이들이 다니고 있는데 학교 끝나고 공부방에 오는 횟수가 자꾸 느는 걸 보니 공부방에 조금씩 흥미를 갖기 시작한 것 같아요.”
인터뷰 도중 누군가 기증한 컴퓨터가 도착했다는 말에 뛰어놀던 아이들이 선생님을 따라 컴퓨터를 나르기 시작했다. 공부방이 3층, 아이들이 들 수 있는 건 키보드 정도. 그래도 아이들은 자기들이 사용할 것이라 그런지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이 무색할 정도로 1층에서 3층까지 숨가쁘게 오르내렸다.
학교 수업이 끝나 집에 가도 여느 가정의 아이들처럼 돌봐줄 안정적인 보호자가 없는 아이들이 이곳을 찾는다. 아이들은 편모, 편부 혹은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부모와 살지 못하고 조부모와 사는 경우도 있다.
 


아이들을 정서적으로 이해하기

 

“공부방을 열고 아이들을 모집하는 일도 실은 조심스러웠어요. 오히려 공부방에 다니는 것 자체가 아이들에게 상처가 되지 않을까 해서요. 그런데 다행히 기초수급 대상자를 돌봐주는 복지 관련 담당자가 중간에서 잘 소개해줘서 아직까지 그런 일은 없지만, 어찌 보면 이 지역이 빈부격차가 나질 않으니 그리 삐뚤어진 눈으로 보지 않을지도 모르죠.”
‘아이들 웃음터’ 공부방은 온전히 회원들의 후원으로 운영하고 있다. 시에서 식대를 보조해주지만 그건 그야말로 보조일 뿐이다. 자원봉사 교사들과 문구용품, 아이들 간식거리, 교재 등은 후원회원들의 쌈짓돈으로 해결하고 있다.
“수업은 수학이나 영어, 한문, 독서논술 등 일반 공부방에서 하고 있는 것들은 다 하고 있지만 우선 저희 공부방은 그런 정규과목에 치중하기 보다는 아이들의 인성에 중심을 두고 있어요. 가정 문제로 온 아이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상처를 입은 아이들이 많아요. 그런 아이들에게 영어나 수학을 가르치는 게 얼마나 도움이 되겠어요. 그래서 저희는 개별상담을 통한 미술치료나 심리치료, 한 달에 한번 선생님과 목욕탕 가기 등 정서적인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어요.”
10여 년 동안 교회에서 선교원장으로 봉사를 하다 이곳 공부방 교사로 활동하는 박신우 실장(50세)은 얼마 되지 않은 이 곳 아이들의 분위기를 말해주었다. 그러면서 그는 가정 내 다양한 문제가 여성의 문제이자 곧 아이들의 문제라는 말을 하며 가끔은 뻔히 보이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까울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라며 조심스레 말을 아꼈다. 박신우 실장이 말을 다 하지 않아도 그의 속내를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아이들의 심리 상태를 살피면서 아이들의 보호자하고도 매월 1회 상담을 할 계획을 하고 있다. 그래야 상처가 있는 어른도 아이에 대해 이해할 수 있고 나아질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보호자하고의 면담도 쉽지가 않은 모양이다. 생계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보호자에게 시간을 내서 면담요청을 하는 것도 부담이지만 아이가 무슨 문제 때문에 상처를 받고 지금 심리상태가 어떤지에 대해서도 관심을 둘 형편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쉽지 않죠. 개별상담을 통한 치유프로그램으로 아이의 문제가 해결되진 않죠. 단순히 아이에게서만 끝나고 해결된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가정에서 받은 상처는 가정에서 치유하는게 옳은 방법이지만 가정이 원상복귀 되는 일 또한 쉬운 문제는 아니구요.”
쉽지 않다는 말을 두 번이나 되풀이한 박신우 실장의 말은 가정 내 문제 해결이 녹록치 않다는 걸 의미한다.

 



여성상담센터를 운영하면서 가정 내 문제를 고민한 끝에 아이들을 위한 공부방을 만들게 되었다는 한완수 소장(오른쪽)과 교사 박신우 실장(왼쪽)


빈부 문제는 사회적 책임

 

“경제적 빈곤으로 가족의 형태가 바뀌고 또 가족이 해체되기까지 하고 가정 폭력 문제 등으로 확산되기도 해요. 가장 중요한 건 사회의 양극화, 경제적 양극화가 원하던 원치 않던 아이들에게 치유하지 못할 상처를 만들고 있다는 거죠. 갈수록 빈부의 대물림이 심각해지잖아요. 이건 개인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사회와 정부가 나서줘야 하는 거예요.”
한완수 소장은 빈부의 대물림이 될 수밖에 없는 가정에서의 아이들 모습이 곧 앞으로 우리 사회의 확대된 모습이 될지도 모른다는 말을 했다. 어른들의 문제가 아무 해결 능력이 없는 아이들한테로 가는 것은 결국 사회적 책임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얼마 전 서울대학교 신입생들의 부모 직업을 조사한 결과 의사나 변호사 등 전문직인 경우가 50%를 넘는다는 결과도 한완수 소장의 말을 구체적으로 입증하는 예일 것이다.
장마철에 자주 범람해 수해를 입고 있는 동두천 신천변에 살고 있는 아이들을 그 신천에서 사진을
찍겠다고 데리고 나왔다. 물고기가 과연 살고 있을까, 할 정도로 지저분한 물인데도 몇몇의 낚시꾼들은 무료하게 낚시를 하고 있다. 인위적으로 심어놓은 백일홍 꽃무덤 사이로 아이들이 마냥 초등학생에 머물러 있을 것 같은 얼굴로 해맑게 웃고 있다.

 

글 · 사진 황석선 stonesok@kdemo.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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