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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속 시대 읽기/이런책 저런책

[이런책 저런책]<깨어나라! 협동조합> 우리의 문화와 토양에 맞는 협동조합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11. 12. 17:37

우리의 문화와 토양에 맞는 협동조합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깨어나라! 협동조합』, 김기섭 지음, 들녘, 2012

글 박호경 / hokyoungpark@gmail.com




내가 협동조합을 직접 피부로 경험하기 시작한 것은 내 딸 나린이가 어린이집에 다니면서였다. 나린이는 공동육아 협동조합 형태의 어린이집에 다녔다. 공동육아도 또 협동조합도 생소했지만 그저 엄마 아빠들이 서로 힘을 보태 서로 돕고 협동하며 아이들을 키우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또 느낄 수 있었다.

사실 조금만 둘러보면 협동조합은 우리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아내가 일주일간의 먹거리를 주문하는 곳도 두레생협이라는 협동조합이다. 두레생협은 산업화 과정에서 발생한 인간관계와 자연생태의 파괴 그리고 농업의 붕괴와 먹을 거리의 위협으로부터 농업과 농촌, 먹을 거리를 지키기 위해 시작한 운동이다. 그리고 어디 이뿐인가. 얼마 전 내가 사는 동네에서는 그 동안 노력해온 의료생협(의료소비자생활협동조합) 만들기가 그 열매를 맺고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의료생협은 한마디로 출자자와 조합원들이 주인인 우리 동네 병원이다. 순식간에 끝나는 진료나 눈 앞의 병만 고치려 항생제를 마구 처방하는 병원과는 다른 대안적인 의료 체계인 것이다.

사실 밖에서도 협동조합을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FC바르셀로나도 협동조합이다. 가장 뛰어난 축구 클럽 중에 하나인 이곳은 17만 3천 여명의 멤버(출자자)가 주인이다. 이곳은 출자자인 회원이 클럽의 구단주인 회장을 선출하고 이사회를 구성한다. 17만 3천명의 출자자가 모두 주인이다. FC 바르셀로나 선수들이 수익을 가져다주는 광고 대신에 가슴에 국제 자선 단체인 유니세프 로고를 달 수 있는 것도 바로 여기에서 연유한다. 이 밖에도 세계적인 감귤 브랜드인 썬키스트, 포도주스로 유명한 웰치스도 모두 협동조합 소유의 브랜드이다.

그리고 이러한 협동조합에 대한 관심을 반영하기라도 하듯 UN은 2012년을 세계 협동조합의 해로 정했고, 우리나라는 2011년 12월 협동조합기본법을 제정하여 제도적인 기반을 마련했다. 이런 상황에서 『깨어나라! 협동조합』은 협동조합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다. 이 책에는 저자가 1993년 생활협동조합중앙회에 입사한 이후 몸으로 직접 부딪히고 느낀 협동조합에 대한 여러 가지 고민과 직관이 담겨 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시점에서 왜 협동조합일까? 저자는 이 이유가 매우 간단하다고 역설한다. 시장과 국가의 역할이 한계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에만 의존해온 우리의 삶은 더욱 팍팍해져 간다고 말한다. 실제 사람은 온데 간데 없고 이윤 추구가 중심이 되어 버린 자본주의의 병폐에 환멸을 느끼는 많은 사람들이 협동조합에서 그 해답을 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협동조합을 자본과 노동이 화해할 수 있는 장소로 보기도 한다. 이들은 협동조합이 혁명적이지는 않지만 점진적으로 자본주의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보고 있다. 19세기 이탈리아의 협동조합 연구자인 우고 라베노는 “협동조합은 사회주의의 딸이지만 사회주의의 길을 따르지는 않을 것이다. 협동조합은 사회주의에서 고상하고 위대한 것만 취하고 보다 온건하고 덜 모험적인 길을 걸으면서 자기 나름의 프로그램을 성실히 구현할 것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협동조합이 이제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특히 오랫동안 생활협동조합에 몸담았던 저자는 생활협동조합에 초점을 맞춰 그 변화를 역설하고 있다. 생활협동조합의 경우 조합원이 늘어 나고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참여하면서 조합원 가운데 의식있는 조합원과 보통 조합원 사이에 괴리와 갈등이 나타나고 있다고 진단한다. 그리고 이러한 갈등은 민주적 운영이라는 추상적이고 형식적인 협동조합의 원칙으로는 더 이상 해결할 수 없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아울러 이전까지는 생활협동조합에서 필요한 대부분의 노동을 조합원이 담당했는데, 이제는 직원 없이는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게 되었다고 역설한다. 의사 결정에만 조합원이 참여할 뿐 실제로 생활협동조합을 움직이는 것은 직원이고 조합원이 주인이라는 것은 한낱 구호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이를 일종의 진화를 위한 분화로 진단한다. 생활협동조합이 자립적인 조합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아이가 커서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겪는 성장통이라고 얘기한다. 그리고 저자는 이러한 분화를 긍정적인 진화로 발전시키는 것에 생활협동조합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말한다.

협동조합은 자신이 처한 토양 속에서 그에 맞는 모습으로 발전해 나갈 수밖에 없다. 스페인의 몬드라곤 협동조합은 바스크 문화라는 토양 속에서 성장하였다. 그리고 이탈리아 볼로냐 지역의 협동조합은 공산주의와 반파시즘의 영향이 크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협동조합은 어떤 모습으로 발전해 나가야 할까? 저자가 지적했듯이 우리나라는 오래 전부터 향도, 두레, 계와 같은 서로 돕고 협동하는 문화와 토양이 마음속 깊이 자리 잡고 있다.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협동조합을 밖에서만 찾을 것이 아니라 우리 고유의 문화와 토양에 기반해서 그 모델을 만들어 나가야 할 시점이다. 그리고 이를 찾아가는데 있어 『깨어나라! 협동조합』은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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