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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쓰는 민주주의
무주구천동, 기이하고 슬픈 강마른 긴 가을가뭄 가운데서도 들판의 벼이삭은 황금빛으로 여물고 있었으나 강바닥은 몹시도 메말라 마른 먼지를 풀썩이면서 힘겹게 흐르고 있었다. 길섶의 가을꽃들 또한 물기 없이 제 빛깔을 잃은 채 까맣게 말라 죽거나 흙빛으로 아등그러지고 있었다. 너른 들의 벼농사는 쨍쨍한 햇볕이 풍년의 징조이겠으나 산비탈의 밭농사는 흉년의 기미와 다름없었다. 콩꼬투리 속의 콩알은 여물지 못하였고, 김장밭의 배추 속은 올차게 앉지 못하고 있었다. 멀리 돌아 길게 가로질러 덕유산 무주구천동에 닿았다. 뉘엿뉘엿 해가 저물고 있는 중추의 다저녁때 당도한 무주구천동 터미널 주차장은 휑뎅그렁했고, 주변은 황막하도록 풀들이 무성했다. 다음날 가고자한 서울행 버스 시간을 묻는 내게 직행버스 기사는 터미널 건물..
어스름새벽 숲길은 나뭇잎 위로 떨어지며 흩어지는 비꽃의 소리로 한층 적요했다. 간밤에 내리던 비가 긋고 구름이 벗개면서 먼데 새벽하늘이 열리고 있었으며, 왜바람 속의 나뭇잎들은 사뭇 거칠게 빗방울을 떨쳐내고 있었다. 한물 피해가 채 아물기도 전인지라 또 다른 태풍의 북상소식은 한걱정이었다. 대관령을 넘어 속리산까지, 차창 밖으로 내다뵈는 한물 피해의 흔적이 아직도 고스란했던 까닭이었으며 또한 한나절 남짓, 즉 7~8시간 정도의 산행을 계획하고 있었던 때문이었다. 속리산 ‘오리숲’은 깊고 먼 숲속처럼 큰 키의 넓은잎나무들로 울울창창하였다. 사하촌 여관에서부터 법주사에 이르는 숲길의 대지와 수풀의 기운을 나 홀로 독점하며 걸을 수 있었다. 태풍 소식과 함께 간밤에 내린 웃비 때문이었을 것이었다. 멧비둘기 울..
희방사를 찾아가는 한 여름 길 어린 풀꽃들이 아등그러지는 한여름 뙤약볕 속이었다. 소백산 희방사매표소 입구까지 찾아가는 길은 멀고 험했다. 시내버스와 직행버스를 무려 여섯 번을 갈아타고서야 간신히 그곳에 닿을 수 있었다. 모든 도로는 서울을 향해 있었고, 변방에서 변방으로 뚫어놓은 도로들 또한 궁극은 중앙으로 나아가기 위한 방편에 지나지 않았으므로 강원도 거진읍에서 경북 풍기읍의 희방사까지 길은 힘에 겨웠다. 때맞춰 여름휴가의 막바지 피서인파와 겹치는 바람에 단양버스터미널에서 요기를 하려던 콩국수를 딱 한 젓가락 입에 넣고서는 부리나케 풍기로 향하는 버스를 향해 뛰어야 했다. 예정시간보다 두 시간 연착이었고, 언제 다음 버스가 올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는 안내에 따른 결과였다. 고속도로가 밀리는 것과..
사라진 탄광들, 주점(酒店)의 이름으로 남다 까아만 저탄더미 아래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상상했던 것일까. 세 번씩 버스를 갈아타고서 도착한 태백버스터미널은 여느 강원도 버스터미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터미널 주변의 노점에서 찰옥수수를 쪄서 팔고 있던 한여름 풍경은 한갓지다 못해 차라리 지루하게까지 여겨졌다. 산으로 들어가기 위한 걸음이었으나 이미 늦은 시간이었고, 하다못해 어디에 들어가 늦은 아침을 먹기에는 또 어중됐다. 지짐거리던 빗줄기가 뜨막한 사이로 한여름 뙤약볕이 쨍쨍 내리쬐였다. 황지연못으로 가는 길을 물었다. 더덕을 까서 팔고 있던 길가 전봇대 옆의 노파는 활짝 웃으면서 저 길로 쭈욱 가면 있을 것이라고 친절하게 일러주었다. 길가에서, 시장에서 푸성귀를 파는 노파들을 만나면 그들 얼굴에서 간..
산목련이 이울고 있었다 할깃할깃 눈치를 보더니만 급기야 냅다 추월하여 다른 차량들을 앞질렀다. 오대산 상원사를 눈앞에 둔 시내버스는 포장하지 않은 도로를 거북이 걸음으로 가는 휴일 차량들을 견디지 못하고, 휘우듬하게 굽고 좁은 도로를 박차고 나아가 기어코 앞머리에 서고야 말았다. 창밖을 내다보며 산기슭에 바짝 눈을 대고 앉았던 자리가 옹색해졌고, 차라리 걸어서 가야 했던 것을 하는 때늦은 후회를 하였다. 길가 산목련의 또 다른 이름 함박꽃나무의 꽃이 한창 감물처럼 이울고 있었던 까닭도 없지 않았다. 강원도 평창의 오대산은 주봉인 비로봉을 비롯하여 두로봉, 상왕봉, 호령봉, 동대산 등 다섯 봉우리가 누대를 이루고 있어 오대산이라고 하며, 이 다섯 봉우리에는 또 각각의 암자들이 둥우리를 틀고 있어 종교를 가..
오색 민박촌 담벼락 화단에서 만난 하늘매발톱꽃은 실하면서도 탐스러웠다. 음료와 새참거리를 사기 위해 들른 구멍가게 노파는 점봉산으로 가는 지름길을 일러주었다. 이른 아침 다래 어린순을 따가지고 온 뒤 아침을 먹는 중이라면서 나물을 하러 가느냐고 물었다. 대답 없이 웃으면서 문을 나섰다. 시골 노인들의 길안내는 가늠키 어려울 뿐만 아니라 잘못 알아듣기 일쑤인지라 산으로 들어가는 입구 역시 내 어림짐작으로 찾아들었다. 민박촌은 산 깊이 들어앉았고, 마지막 집을 벗어나 숲으로 들어서자 어디선가 더덕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골짜기는 깊었고 등성이는 높았다. 더덕냄새의 향방을 쫓을 겨를이 없었다. 어느 생이 또다시 있을라치면 나는 아마도 더덕이나 소나무가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더덕과 소나무를 탐했다. 산에 나..
숲이 수평으로 조화롭다면, 산은 수직으로 강건하다. 바람결은 매서웠고 바다물결은 높았다. 근래 날씨는 한겨울처럼 춥고 시렸다. 길 떠나는 자의 심정이 못자리를 만드는 농부의 우려와 닮았다. 그런 틈 사이로 주춤주춤 다가온 봄빛은 마을 곳곳에 사태가 날 지경으로 봄꽃들을 피웠다. 살구나무가 해뜩발긋한 꽃을 피웠으며, 연푸르면서도 순백으로 피어난 자두꽃으로 마을은 한겨울 폭죽처럼 화려했다. 4월 숲을 찾아 설악산으로 가는 길이었다. 시계가 좋은 날이면 거진항에서건 화진포 호수에서건 중청과 대청의 설악산 봉우리를 바라볼 수 있었지만 그곳은 언제나 아주 먼 곳이었다. 마치 화진포성이나 거진 등대에 오르면 금강산의 구선봉을 포함한 말무리 반도를 볼 수 있는 광경과 다르지 않았다. 비선대에서 대청봉까지의 길은 ‘산..
길은 흔적이다 봄산 가득 따듯한 바람이 일깨운 초록의 세상을 꿈꾸었다. 그렇게 꿈꾼 세상의 한 지점이 하필이면 백두대간의 어느 마루금 삽당령에서 이어지는 석병산이었다. 초행의 석병산 산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번에도 산행지도는 챙기지 않았다. 산은, 숲은 결코 선으로 표기할 수 없다. 또한 지도의 단일하고 일목요연한 통제의 질서가 언짢을 뿐만 아니라, 숲의 많은 것들을 은폐하고 드러내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강릉과 정선을 왕복하는 직행버스는 삽당령 고갯마루에서 멈췄다. 이른 아침인지라 햇살은 고갯마루까지 올라오지 못했다. 고갯마루에 섰으니 갈등이 없을 수 없었다. 북으로도 갈 수 있었고, 남으로도 갈 수 있었다. 선택은 발걸음의 몫이었다. 그렇더라도 마음속에 품고 온 길이 있었으니 걸음은 자연스..
그곳, 미시령에는 큰바람이 불고 있었다. 우수를 앞둔 절기에 그만 마음을 놓았던 것이 불찰이라면 불찰이었을 것이겠지만, 어쩌면 미시령은 이미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 바람들만의 길이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길 떠나는 날 이른 아침의 청명한 햇살은 큰 부조가 아닐 수 없었다. 동해 수평선 위에서 일렁거리고 있는 커다란 아침 해를 보았다. 일진은 순조로울 듯했으나 장담할 일은 아니었다. 미시령을 향해 가는 길이었다. 그렇지만 어느 시인이 어둠은 새를 낳고, 돌을 낳고, 꽃을 낳는다고 했던 바로 그 어둠이 낳은 돌, 울산바위를 만나기 위한 내심을 은근슬쩍 숨겨놓은 채 그 방편으로 미시령을 향해 가는 것인지도 몰랐다. 울산바위 울산바위는 천후산(千吼山), 하늘이 우는 산이라는 큰 이름을 가지고 있는 바위이며 외..
날씨는 흘미죽죽(일을 여무지게 끝내지 못하고 흐리멍덩하게 끝내는 모양) 비라도 한 줄금 쏟아낼 듯하였다. 눈도 아니고 그렇다고 비도 아닌 것이 마치 저녁 굶은 시어미 얼굴처럼 흐렸다. 강원도 고성 삼포를 찾아가는 길은 그리하여 더디기도 하고, 빠르기도 했다. 어느 해 이른 봄 나는 짝짓기를 하는 개구리들 곁에서 어린 잣나무들을 줄 맞춰 심었다. 미친바람이 불어댔고, 이르게 핀 연분홍 진달래꽃은 새파랗게 얼어붙었다. 어느 날은 인정사정없이 불어대는 미친바람 때문에 작업을 중도 포기하고 가까운 바위틈이나 개자리 같은 곳에 찾아들어 도망자처럼 웅크려 고개 숙이고 있어야 했다. 얼굴을 할퀴며 지나치는 바람을 더는 견딜 수 없었던 까닭이었다. 골짜기 응달에는 잔설이 깊어서 발이 허벅지까지 푹푹 빠지기도 했다.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