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 미시령에는 큰바람이 불고 있었다. 우수를 앞둔 절기에 그만 마음을 놓았던 것이 불찰이라면 불찰이었을 것이겠지만, 어쩌면 미시령은 이미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 바람들만의 길이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길 떠나는 날 이른 아침의 청명한 햇살은 큰 부조가 아닐 수 없었다. 동해 수평선 위에서 일렁거리고 있는 커다란 아침 해를 보았다. 일진은 순조로울 듯했으나 장담할 일은 아니었다.
미시령을 향해 가는 길이었다. 그렇지만 어느 시인이 어둠은 새를 낳고, 돌을 낳고, 꽃을 낳는다고 했던 바로 그 어둠이 낳은 돌, 울산바위를 만나기 위한 내심을 은근슬쩍 숨겨놓은 채 그 방편으로 미시령을 향해 가는 것인지도 몰랐다.
울산바위 울산바위는 천후산(千吼山), 하늘이 우는 산이라는 큰 이름을 가지고 있는 바위이며 외설악을 든든하게 받쳐주고 있는 초석으로, 없었으면 매우 심심하고 허전하였을 외설악의 울타리로써 또한 열두 폭 스란치마를 펼쳐놓은 것 같은 위용으로 장대하기 이를 데 없다.
위압적인 듯하면서도 넓고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오래 늙어 아름다운 고목처럼 사시장철 천변만화의 풍광을 드러내는 데 아낌이 없다. 깊은 잔설 속에서 잠 깨어나는 아침의 바위산은 장엄하면서도 마치 겨울 동안거를 끝내고 만행에 나서는 납자들처럼 명랑하기 그지없다. 빛살 속에 드러나는 바위산의 색감은 관능적이면서도 강건하다. 뼈와 살의 적절한 어우러짐으로 안정한 듯하였으나 바람 속에서 또한 쉼 없이 몸을 바꿔갔다. 그런 골짜기 어느 틈에 스며들어 수수만년 있는 듯 없는 듯 살다가도 좋을 듯했다.
시내버스를 타고 대명리조트에서 내렸다. 산행은 아니었지만 비상식량부터 챙겼다. 미시령을 걷는 일은 처음이었다. 짙은 운무 속에 묻힌 날은 단순히 그 오리무중에 갇히기 위해 승용차로, 도심을 방문하고 돌아오는 날에는 직행버스로, 또 누군가는 백두대간을 종주하는 길에, 또 다른 어떤 이는 살아 두 번 다시 볼 수 없는 친지의 49제를 위해 올랐을 길을 오늘은 빈 몸으로 조금은 가볍게, 조금은 늘쩡하게 도로를 걷기 시작했다. 걸음을 뗀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내 몸은 벌써 자동차들의 가열찬 속도로 인한 가파른 위험을 알아챘다.
미시령 미시령 도로는 이미 길이 아니었다. 사람을 위한 길이었을 것이겠으나 어느 사이 길은 자동차들을 위한 도로로 바뀌고 말았다. 도로는 사람을 구조적으로 배척한다. 자동차가 주인이고, 걷는 사람을 위한 길은 배려되지 않는다. 구절양장 같은 굽이길은 이제 직장 속에서만 곡직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신작로가 일제시대 때 만들어진 것과 궤를 같이 한다.
일본제국주의자들은 경제 침탈의 수단으로 신작로를 건설하였다. 그곳으로 총칼을 앞세운 군대가 들어왔고, 곡창지대의 쌀과 임산자원 등의 물자들이 실려 나갔다. 전쟁이었다. 근래 고속철도의 개통이 지방민들의 서울의 대형 상점 이용을 쉽고 편하게 하였지만, 반대로 지역 상점들의 불황은 가속되고 있다는 보도는 이를 방증한다. 알속은 중앙으로, 지방에는 지스러기만 남는다. 부의 편중이 깊어진 까닭이다.
도로의 확장은 문물과 제도 그리고 멀리 이웃과의 교통으로 이어지는 것이겠으나 아쉽게도 그곳에는 사람이 없다. 무한속도에는 속도만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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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령은 인제군과 속초시를 이어주는 56번 지방도로 표기된다. 그렇더라도 표지판만으로 어떻게 미시령을 다 읽을 수 있겠는가. 꽃대를 밀어 올리는 따뜻한 바람소리며 겨울잠 깊은 반달곰을 깨우던 계곡물 소리며 그리고 무엇보다 길을 따라 오고 갔을 사람과 사람들의 슬프고 기뻤을 삶의 이야기를 이제 들을 수 없게 되었다. 또한 그네들을 맞고 보냈을 어느 주막집 노파의 걸지면서도 넉넉한 마음 씀씀이와 이 모든 것들의 생사존망을 지켜보았을 오래 늙은 나무들과 풀들과 나고 자란 기억조차 까마득히 잊혀졌을 어느 여린 생명의 흔적을 이제 나는 볼 수 없게 되었다. 절멸 위기에 놓인 산양이 어느 바위틈에서 이 모진 겨울을 나고 있는지조차 바람결에라도 소식이 없다.
영마루는 이쪽과 저쪽을 이어주며 또한 나누는 경계의 지점이며 남과 북으로 내려가고 올라가는 능선을 연결하는 혹은 배타적으로 끊으면서 포섭하는 침범할 수 없는 그러면서도 나눌 수 없는 어떤 금이다. 미시령은 오백여 년 전 역사책에 등장한 뒤 좁고 험한 길로 인하여 풀숲에 묻히기도 하고 인적이 끊기기도 했다. ‘도적폭포’ 같은 곱지 못한 전설을 낳기도 했다. 그러나 가만히 톺아보면 도적된 자들은 다름 아닌 ‘상놈’들이었을 것이 틀림없다. 생존의 궁핍을 견디기 어려워 숲 속에 모여들면 도적이었을 것이고, 흩어져 마을로 돌아가면 양인이었을 것이다. 지금의 도로는 1960년대 개통되었다.
애초 길은 가풀막을 피하면서도 휘우듬하게 굽어지고, 깊어지면서도 넓어져 마침내 영마루에 닿았을 것이고, 영을 넘으면 물길을 따라 편안한 길을 찾아 부드럽게 휘돌아가면서 오르고 내린 끝에 사람의 마을로 들어섰을 것이다. 그랬던 옛 산길은 이제 사각형의 자동차를 위하여 바퀴를 거스르는 것은 가차 없이 직각으로 쳐냈고, 이중 삼중의 각진 나선으로 만든 도심의 팍팍한 시멘트 계단처럼 숨 가쁘게 상승하면서 고개를 한껏 젖히고 치어다볼 수밖에 없는 거대한 콘크리트 옹벽으로 간신히 지탱할 수 있는 도로로 변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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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령동서관통도로’ 공사 중 속도는 제 속도를 이길 수 없을 때 비로소 속도이듯이 여전히 구불구불한 56번 지방도에서 속도는 속도일 수 없었을 것이다. 속초시는 2001년 민자, 국비 등 모두 2,768억원을 들여 15.67킬로미터 구간의 ‘미시령동서관통도로’를 착공했다.
도로 착공 이유는 폭설에 통제되고 대형 사고가 끊이질 않는 구불구불한 도로를 개선하여 관광 활성화를 도모한다는 것이다. 애초 올해 7월 개통 예정이었으나 계획을 바꿔 피서철 이전인 5월로 개통을 앞당기기로 했다는 보도다.
전체 15.67킬로미터 구간 가운데 3.7킬로미터가 터널이다. 도로가 개통되면 큰바람이 지나는 미시령을 넘나드는 일은 다시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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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도로는 서울에서 곧장 속초시 노학동까지 달려간다. 차량 소요시간이 두 시간대로 줄어든다. 그러므로 숙박하지 않는 등산객들이 늘어날 것이니 숙박업소의 영업난은 가중될 것이고 이와 같은 이유로 학사평 콩꽃마을에서도 대책을 강구하라고 아우성이다. 통과 차량의 감소를 우려한 때문이다. 편중이 가져오는 폐해일 것일 테지만, 그렇다면 궁극은 무엇을 위한 관통도로의 개설인지 따져 묻지 않을 수 없다.
문명의 발달은 숲의 파괴를 전제하는 것이었다. 시초는 불의 사용에 따른 나무의 이용이었다. 나무로 집을 짓고, 나무로 음식을 만들고, 나무로 무덤을 만들었다. 더 나아가 석탄으로 기차가 움직이고, 공장의 굴뚝이 높아져 갔다. 그와 같은 뒷면에 따른 수력발전소의 범위는 더욱 넓어져갔고, 산속의 갱도는 아래로 아래로 굴착되어갔다. 마침내 산업의 혁명을 가져왔다고 도시는 환호했다. 숲의 푸르름을 잃은 대가였지만 자연을 돌아볼 겨를은 차마 없었다. 그러므로 문명은 숲의 상처 위에 건설된 무엇이다.
산굽이를 한 구비 돌아들면 바람은 때로 숙지기도 했고 또한 살천스레 매섭기도 했지만 그 속엔 이미 겨울눈을 녹아 흐르게 하는 따뜻한 숨결이 있었다. 흙길을 오래 걸으면 마침내 땅과 걸음과 내가 하나로 엮어들며 스미어서 너도 없고 나도 없는 오로지 엷은 숨소리만 공기 속에 흩어지면서 끝내는 그 숨소리마저 없는 무한천공을 경험한다. 그렇지만 아스팔트의 도로는 직선으로 하여 강파라지면서도 저절로 둔탁해진다. 웅숭깊은 맛은 그만두고 정신을 예리하게 벼리는 날카로움도 이미 없다.
미시령 고개 마루는 낮은 걸음으로밖에 걸을 수 없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먼데서 달려온 바람은 거칠 것 없이 동해를 향해 공중제비를 하듯 날아올라 회오리쳤다. 마치 숲이 내지르는 마지막 절규처럼 거칠고 사나웠다. 고개 마루에서는 어느 것도 온전하게 직립할 수 없었다. 입간판들은 기울어졌고, 사람은 허리 숙이지 않으면 걸을 수 없었다.
바람은, 숲은 그렇게라도 묻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당신들이 눈부신 문명이라고 예찬해 마지않는 오늘이 과연 행복한가’라고. 그렇게 건설한 무한 속도에 당신이 얻은 것은 과연 무엇인가 라고.
글 김 담 강원도 고성 출생 1991년 임수경통일문학상 소설부문 우수상 수상 작품집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현재 강원도 고성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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