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쓰는 민주주의
사진은 교양이다. 사진가 박종우 본문
얼마 전 KBS <일요스페셜>은 태국의 쿠데타를 집중취재해 방영했습니다. 방송내용도 좋았지만 누가 재수 좋게 마침 쿠데타가 일어나던 저 때 태국에 있었을까 했습니다. 방송 마지막에 제작진 자막이 오를 때 박종우라는 이름이 보였습니다. 그리고는 “역시나!”했습니다. 2004년 쓰나미가 덮칠 당시에도 현장에 있었던 그는 참 사진가로서는 억세게도 재수가 좋다고 밖에 할 말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한해 250일이 넘게 해외에서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고 있는 그에게 조금 더 많은 기회가 부여됐는지도 모릅니다.
다큐멘터리사진가 박종우는 한국의 많은 사진가들 중에 특별한 존재입니다. 잡지나 전시장에서 보다는 TV에서 더 많이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그의 어깨에는 사진용 카메라와 함께 방송용 HD카메라가 걸려있습니다. 사진과 동영상을 동시에 탁월하게 활용하는 아주 희귀한 존재입니다.
“한 가지만 선택하라면 당연히 사진 카메라를 선택하겠지만, 장기취재에 따른 제작비를 감당할 수 없다. 방송용 프로그램 제작은 나에게 하고 싶은 취재를 하게 하는 최소한의 조건이 되었다.”
국내 한 신문사의 사진기자로 출발한 박 씨는 1986년 만년설로 뒤덮인 히말라야를 취재하고는 과감하게 사표를 던지고 맙니다. 꿈에도 그리던 풍경이 펼쳐진 그곳에서 장기취재를 하고 싶었지만 회사는 “말도 안 되는 소리 말라”며 거절했기 때문입니다. 회사를 나와 자유의 몸이 된 박 씨는 히말라야 언저리를 마음껏 돌아다녔습니다. 하지만 자유를 얻는 대가로 불안전한 프리랜서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그의 다큐멘터리 사진을 사줄 수 있는 국내 매체는 「GEO」 등 그리 많지 않았고 원고료 또한 그가 만족할 만한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원고료의 대부분이 취재비로 쓰기에만도 넉넉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그가 방송국의 다큐멘터리 제작팀과 함께 취재하면서 방송용 카메라에 눈을 뜬 것입니다. 이미 탁월한 영상미로 사진계에 알려진 그가 방송용 카메라를 잡는 순간 뛰어난 동영상을 만들어 낸 것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닌지도 모릅니다. 게다가 강인한 체력과 도전정신은 기존 방송사 카메라맨들의 작업을 압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우리들 기억에 남을 만한 그의 프로그램이 있다면 KBS의 <몽골리안 루트>나 운남성의 소금과 차를 싣고 다니는 <마방> 등이 아닐까 합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영상과 깊이 있는 취재가 돋보인 작품들입니다.
“20년을 돌아다니다 보니 세상이 너무 급변하는데 스스로 놀라고 있다. 내가 기록하는 것이 이 세상에 마지막으로 존재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절박함이 있다. 아프간과 파키스탄 국경에 누리스탄이라는 지역이 있다. 원시시대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다. 지형이 험악해 비포장도로로 5~6일 꼬박 달린 뒤, 2일 정도 산을 올라야 도착하는 곳이다. 처음 갔을 때는 외부 문명이 하나도 들어오지 않은 곳이었다. 몇 년 뒤에 가보니 관광지가 되어버렸고 너무도 많은 것이 사라져버려 좌절한 적이 있다.”
그에게 사진은 무엇일까요? 정지영상이던 동영상이던 다큐멘터리스트 박종우에게는 이야기를 전달하는 가장 효율적인 도구일 뿐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한 이야기를 찾아 현장을 방문하고 가감 없이 그들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이 박 씨의 사명입니다. 그는 사진이 예술인양 젠체하지도 않고 자신의 고생담을 과대 포장하지 않습니다. 마치 카메라를 든 선비 같은 행동이 바로 박종우의 모습입니다.
전시회 등의 방법으로 사진을 발표하지 않았지만 그도 요즘은 참 잘나가는 한국의 다큐멘터리사진가입니다. 지난 여름 세종문화회관 앞마당에서 대규모로 열렸던 <물 오르다>전에 초청받았고, 얼마 전 대구에서 열린 <사진비엔날레>에서도 그의 대규모 작품들을 감상 할 수 있었습니다. 그저 묵묵하게 작업해온 사람들은 결국 빛이 나나 봅니다. 20년 동안 작업해 온 박종우의 히말라야 언저리 삶의 이미지들은 이제 우리 가까이서 숨을 쉬고 있습니다.
글 이상엽 inpho@naver.com
다큐멘터리사진가로 웹진 이미지프레스 http://imagepress.net의 대표. 『실크로드 탐사』(생각의 나무), 『그 곳에 가면 우리가 잊어버린 표정이 있다』(동녘) 등을 썼고 『낡은 카메라를 들고 떠나다』(청어람미디어) 등을 기획하고 펴냈다.
'인물/칼럼/인터뷰 > 문화초대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설악의 숲에서 놀다 (0) | 2008.12.23 |
---|---|
석병산 지구 우리들은 현명한가 (0) | 2008.12.23 |
미시령을 걷다 (0) | 2008.12.23 |
고성 산불, 그 뒤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0) | 2008.12.23 |
사라진 숲을 추억하다 (0) | 2008.12.23 |
혼혈인의 상흔마저 프린트 한다. 사진가 이재갑 (0) | 2008.12.23 |
기록하고, 가르치고, 모은다. 사진가 류은규 (0) | 2008.12.23 |
코소보에서 왕십리로 정규현 (0) | 2008.12.23 |
분교에서 이 시대 아름다움을 찍다 (0) | 2008.12.23 |
촌사진가 노익상, 알고 보니 도회지 사람이네 (0) | 2008.12.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