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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쓰는 민주주의
김근태 고문사건 김근태 고문사건은 1985년 12월 19일 민청련사건 첫 재판에서 김근태가 모두진술을 통해 고문의 진상을 폭로함으로써 세상에 알려졌다. 김근태의 모두진술은 충격적이었다. 본인은 9월 한 달 동안 9월 4일부터 9월 20일까지 (매일) 전기고문과 물고문을 각 5시간 정도 당했습니다. 전기고문을 주로 하고 물고문은 전기고문으로 발생하는 쇼크를 완화하기 위해 가했습니다. 고문을 하는 동안 비명이 바깥으로 새어나가지 않게 하기 위해 라디오를 크게 틀었습니다. 그리고 비명 때문에 목이 부어서 말을 못하게 되면 즉각 약을 투여하여 목을 트이게 하였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9월 4일 각 5시간씩 두차례 물고문을 당했고 9월5일, 9월6일 각 한차례씩의 전기고문과 물고문을 골고루 당했습니다. 8일에는 ..
중생 세계가 부처다. 지선 스님 2 중학교에 다니면서 공부를 꼭 해야 되나? 가난한 농촌에서 대학은 꿈도 못 꾸고 기껏 고등학교나 갈 텐데, 일찍 나가서 돈 버는 게 낫지 않을까? 16살, 중학교 2학년 까까머리는 학교는 다녀서 뭐하냐고 동무들을 꼬드겼다. 어차피 잘 먹고 잘 살려는 거 아니냐? 그럴 바에야 굳이 학교 다닐 필요 없이 지금부터 돈 버는 게 낫잖아? 1961년 5월 1일 밀밭에서 동무들과 머리를 맞댄 까까머리는 이튿날 교복 대신 형님의 옷을 훔쳐 입고 집을 나갔다. 장성 역에서 어디로 갈까 고민을 하던 중 백양사 가는 버스가 오기에 무작정 올라탔다. 먼저 절 구경이나 하자는 한가한 속셈이었다. 동무들과 어울려 신나게 절집 구경을 하는데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마음이 착 가라앉고 편안했다..
중생 세계가 부처다. 지선 스님 1 눈이 내리는 겨울밤이다. 소쿠리며 덕석, 멍석을 만드느라 새끼를 꼬는 동네 노인들로 사랑방이 그득하다. 호롱불 밑에서는 까까머리 소년이 각설이 떼 타령조로 노래하듯이 옛날 이야기책을 읽는다. 소죽을 끓이느라 방구들이 쩔쩔 끓는지라 엉덩이를 들썩인다. 소년은 어른들이 시킨 대로 유충열전, 전우치전, 춘향전을 입으로 중얼대지만 몹시 졸린다. 하지만 뎅그렁 뎅그렁 방울 소리를 내면서 소죽을 맛나게 먹는 소가 그렇게 예쁠 수가 없다. 편편한 이로 짚을 갈아먹는 싸그륵싸그락 소리는 무를 땅에서 뽑을 때 나는 소리처럼 정겹다. "아버지가 장에서 사온 이야기책에 홍길동, 사명대사, 암행어사, 임금님, 장군들이 주인공으로 나와요. 하나같이 영웅호걸들이야. 도술 부리는 환상적인 얘기에..
통일의 거목, 늦봄 문익환 1 북한 핵실험이 몰고 온 파장에 세계가 들끓고 있다. 미국과 일본이 당장에 핵폭탄이라도 맞은 듯이 분기충천 앞 다퉈 한반도로 달려와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 결의안 이행을 위해 우리에게 노골적인 압박을 가하고,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PSI) 동참과 남북 경협사업의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민족의 안정과 평화와는 거리가 먼 위험한 선택을 그들은 서슴없이 강요한다. 1천 번의 핵실험을 한 나라와 호시탐탐 군사대국 핵무장의 기회를 노리는 세계 제일의 경제국이 합작해내는 위력이 놀라울 따름이다. 어디 그뿐인가. 나라 안이 온통 싸움판 형국이어서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정치적 이해와 냉전의 찌꺼기들이 되살아나 서로 부딪치고 있다. 금강산 관광사업과 개성공단사업을 퍼주기로 몰아 그간의 남북..
겨레의 큰 스승, 이오덕 2 미군기지 이전을 두고 우리는 지금 평택들에서 아픔을 겪고 있다. 대대로 물려받은 땅을 다른 나라의 군사기지로 내주어야 하는 농민들과 그들의 편에 서서 함께 지켜내려는 이들의 처절한 저항이 정부의 냉정한 공권력과 맞붙어 하늘이 온통 핏빛이다. 또 한쪽에서는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 문제로 여론이 갈려 소란하다. 그러나 대세는 개발과 경제논리를 앞세운 권력자들에게로 기울어가는 것이 분명하다. 저항은 저항으로 끝나는 것인가.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다. 다니엘 벤사이드의 말처럼 저항은 본질적이며 급진적이고 때 맞지 않는다. 시대의 분위기와 조화를 이루며 평화 속에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거꾸로 반시대적으로 나타난다. 때 맞지 않는다는 것, 그건 거스르는 방식으로 시대를 취하기이며..
1970년대 중반, 교육대학을 졸업하고 초등학교 교사로 부임한 이주영(51, 송파초등 교사)은 심한 혼란을 겪는다. 눈을 씻고 봐도 학교 안에서 교육현장다운 풍토를 찾을 수 없었다. 박정희 정권의 유신독재는 사회뿐 아니라 학교의 교육현장까지 깊게 파고들어 아이들은 병들고 교사는 노예가 되어 있었다. 젊은 이주영은 분노했고 학교의 비민주적인 독재현실에 절망했다. 희망의 싹은 어디에도 없었다.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그때 그는 이오덕의 교육수필집 『이 아이들을 어찌할 것인가』를 만난다. 이오덕은 책머리에, 2차대전 때 집단학살수용소로 끌려가는 기숙사의 아이들을 보고 “아이들을 일분간도 방치할 수 없다.”면서 자기를 구조해주려는 손길도 뿌리치고 아이들을 끌어안은 채 함께 끌려가 학살당한 폴란드의 한 교육학..
변호사 홍남순은 『함성』지 사건을 각별하게 기억한다. 그것은 박석무와 김남주를 비롯한 전남대 학생들이 박정희 유신독재정권을 비난하며 유인물을 뿌린 사건이었다. 학생들을 변호한 홍남순은 무죄판결을 끌어낸다. 하지만 변호사인 그로서는 처음이자 마지막 승리였다. 홍남순은 그 뒤로 시국사건에서 단 한 건도 무죄판결을 받아내지 못한다. “1970년대 공안부 검사들은 기소만 해놓으면 끝난다는 식이었다. 검사가 유죄를 입증하기보다는 변호인이 무죄를 입증하지 못하면 그대로 유죄판결이 떨어지고 마는 엉터리 재판이 대부분이었다. 형량 역시 턱없이 인플레 현상을 보인, 양형 감각마저 희미해져버린 모습이었다. 그래서 나는 피고인의 양형에 매달리기보다 오히려 정부의 법률 운용에 대한 불법성을 지적하려고 애썼다.” 홍남순은 집에..
5·18민중항쟁 26주년을 맞이하는 광주시내에 선거구호가 요란하다. 충장로 우체국 앞에서는 야당대표가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던 광주시민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광주전남지역 대학생들은 ‘광주학살의 후예는 광주를 모욕 말라’라는 펼침막을 들고 그에 맞선다. 여당대표는 금남로에서 목청을 높인다. 지방선거 유세가 불붙은, 정치 1번지로 둔갑한 광주에 ‘5·18은 민중혁명이다! 5월 19일 3백여 명의 택시 기사들이 무등 경기장에 모여 시위에 가담했는데, 그게 결정적이었어. 넝마주이들이 총을 들고 싸웠고. 황금동, 대인동에 있는 술집 아가씨들이 시민군들에게 밥과 술을 줬어. 참, 민중의 힘이 대단했어.’ 라고 외치는 늙은 목소리가 있다. 항쟁기간 시민군들이 죽어나갔던, 총탄자국이 선명했던 옛 YWCA건물이 사라졌..
역사의 피조물 ‘민청학련사건’이니 ‘3·1민주구국선언’ 같은 대형 시국 사건들은 이우정이란 이름 석 자를 재야인사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수사기관에 불려 다니고 기관원들의 감시와 협박에 시달리는 일은 어느덧 그의 일상이 되었다. 그에게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은 점점 더 많아졌다. 여성 노동자들, 철거민들, 동아·조선투위, 원폭 피해자들, 재일동포들, 양심수 가족들…….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이 고난 속에서 그를 향해 손을 내밀고 있었다. 그는 담담히 그들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는 아직 손을 내밀지 않는 사람들을 향해 계속해서 ‘나를 이용하세요.’라고 외쳤다. 1970~80년대의 크고 작은 시국사건에 연루되고, 잡혀갔다 풀려나오는 과정을 거듭하면서 형성된 그의 이미지는 과격하고 격렬한 ‘민주 투사’ 그것..
301호실의 기억 왜 자꾸만 기도가 하늘에서 쏟아질까 이 작은 방에 쓰리고 아픈 눈물에 젖은 기도들이 뼈 마디 마디 울리는 기도들이 하늘로 되돌려주는 기도들이 늦봄 문익환이 1975년 한국기독교장로회여신도회전국연합회 회보에 기고한 이 시의 제목은 「삼백일 호실」. 긴급조치란 망령이 멀쩡한 이들의 손발을 묶던 시절, ‘눈물에 젖은 기도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지던 서울 종로 5가 기독교회관 301호 여신도회 사무실이 바로 그곳이다. 단 한 번도 역사의 조명을 받아본 적 없는 이 작은 방은 훗날 KNCC(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인권위원회 사무실을 개방하여 자신의 소임을 물려받기까지 쓰리고 아픈 기도들을 하늘에 되돌려주는 종전의 일과를 되풀이했다. 남산부활절연합예배사건, 민청학련사건, 3·1민주구국선언사건 등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