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쓰는 민주주의
중생 세계가 부처다. 지선 스님 2 본문
중생 세계가 부처다. 지선 스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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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에 다니면서 공부를 꼭 해야 되나? 가난한 농촌에서 대학은 꿈도 못 꾸고 기껏 고등학교나 갈 텐데, 일찍 나가서 돈 버는 게 낫지 않을까? 16살, 중학교 2학년 까까머리는 학교는 다녀서 뭐하냐고 동무들을 꼬드겼다. 어차피 잘 먹고 잘 살려는 거 아니냐? 그럴 바에야 굳이 학교 다닐 필요 없이 지금부터 돈 버는 게 낫잖아? 1961년 5월 1일 밀밭에서 동무들과 머리를 맞댄 까까머리는 이튿날 교복 대신 형님의 옷을 훔쳐 입고 집을 나갔다.
초등학교 도덕책에 실렸던 석가모니의 전생담을 오래 기억하고 있던 까까머리는 그날, 동무들을 뒤로하고 백양사에 몸을 맡겼다. |
분노가 시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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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묵히 서 있던 지선은 느닷없는 검사의 호통에, 아, 이놈이 사람 기를 죽이려는구나, 직감하고 곧바로 되받아 쳤다. “야이, 검사영감새끼야, 이 상놈의 자식아! 낫살도 새파란 놈이, 넌, 애미 애비도 없냐? 니 부모가 불쌍하다, 자갈논 팔아서 기껏 검사 만들려고 했더냐? 노태우 똥구멍이나 핥으라고 공부 가르쳤더냐? 검사란 놈이 스님한테 욕이나 하고 말이야. 학생들하고 노동자들이 의문사를 당하는 이 죽임의 시대에 총칼잽이가 나와서 춤추는 시대에 중이 염불이나 외우고 있어야 되겠냐? 니가 검사야? 호로 새끼야, 네깟 놈이 무슨 얼어죽을 검사야!” 지선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입이 딱 벌어진 검사는 낯이 새파래졌다.
“이런 개자식한테 조사 안 받아!” 그 길로 지선은 검사 방을 박차고 나가버렸다. 서류더미에 머리가 지끈댔던 지선은 속이 다 후련했다. 여태껏 살면서 주워들은 욕이란 욕은 다 퍼부은 뒤였다. 검사와 기싸움을 했던 그 재판에서 지선은 6개월 만에 집행유예로 석방되었다.
1988년 대우조선 노동자 이석규의 죽음이 알려졌을 무렵 지선은 수배 중이었다. 노동현장과 대학의 집회장에서 살다시피 하는 바람에 팔다리가 붓고 온몸이 엉망이었다. 경찰을 피하느라, 창원대에서처럼 쓰레기를 담은 트럭에 묻혀 학교를 빠져나오기가 예사였다. 그때쯤부터 정부는 지선을 빨갱이로 몰아갔다. 6월항쟁 때도 마찬가지였다. 수사관이 “당신이 중이야 뭐야? 나라를 혼란에 빠뜨리고 그래? 내란이 일어났는데, 중인 당신이 설쳐서 그렇잖아. 이 나라를 망쳐먹으려구 작정한 거야 뭐야?”라고 퍼부으면, 지선은 “이 중이 여기까지 온 까닭을 차분히 따져보라.”고 답했다. “당신 빨갱이지?”, “아니다. 나는 무슨 주의자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민주주의, 자본주의, 공산주의도 안 해봤다. 나는 모른다.”, “그럼 당신은 무슨 주의자야?”, “나는 민족민중이 이익이 되기를 바라는 주의자다! |
국민이 원하는 세상, 국민의 뜻을 받드는 지도자, 국민이 원하는 대로 돼야 좋은 세상이다.”, “자생적 빨갱이군! 스님이 이럴 수 있나. 자비로운 게 종교인데 투쟁할 수 있나 말이야?”, “호국불교다.”
지선을 욕하기는 경찰뿐만 아니라 신도들도 마찬가지였다. 가는 곳마다 “승복만 입은 죽은 자의 몸속에 사는 벌레다, 불교를 망치려는 가짜 승려.”라고 손가락질했다. 종단의 큰스님들도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고 혀를 찼다. 사회의 민주화와 불교개혁을 위해 몸을 아끼지 않던 지선은 하루아침에 천하의 죽일 놈이 되었다. 그럴수록 지선은 신도들이나 스님들이나 종단을 떠나서 오로지 부처님 말씀만 떠올렸다. ‘호법신장’이 되어야겠다, 나라를 구하고 인권을 신장하고 사회를 민주화하고 민족통일에 앞장서자고 다짐했다. |
한뎃잠으로 몸마저 망가져 가던 지선은 갖은 수모를 어떻게 견뎌냈을까. 그 무렵 지선은 한국 불교는 왜 불의에 맞서지 못 하나? 하는 의문에 사로잡혔다. 여러 기관에서 오는 협박 전화에 시달리던 참이었다. 그럴수록 지선은 ‘목숨을 내놓고 하자!’고 결심했다. ‘발에 돌을 묶어서 물에 처넣어 죽이겠다.’ 라든지, 이따금 한밤중에 도둑이 들었고, 생명의 위협을 숱하게 느꼈다. 그래서 지선은 언제 죽을지 모르기 때문에 늘 신변을 깨끗이 했다. 상좌들한테도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정리를 잘 해두라고 일러두었다.
일과 놀이 수행이 하나다 |
그에게 깨달음은 무엇일까. 1989년 이철규 열사 사인 진상규명 건으로 구속되었을 때, 지선은 0.75평 독방에서 참선을 하였다. 사람이 누우면 그대로 꽉 차는 방이었다. 지선은 부처님이 절호의 기회를 주었다고 생각했다. 마음을 굳게 먹었다. ‘다른 사람이 몇 십 년 산에서 참선한 것을 여기서 하자!’고 독하게 맘먹고 ‘참선하다 여기서 죽자!’, ‘깨닫고 나가자!’고 다짐했다. 밤이나 낮이나 참선 자세로 그대로 있으니까, 교도관들이 힐끔힐끔 구경했다. “그때가 요즘 6년 선방에서 지낸 것보다 훨씬 더 좋았어요. 절박해서 그런지 참선이 잘 되었지요.” 지선은 무념무상 삼매경에 빠져들었다. 두 세 시간이 담배 한 대참처럼 금세 흘러갔다. 0.75평은 양쪽 벽이 닿는 느낌이 들었고, 변소만 빼면 눕기도 힘들었다. 지선은 숟가락으로 벽에 만(卍)을 파놓고 앉아서 정진했다. 참선이 갈수록 잘 되었다. 앉아 있는 것인지, 서 있는 것인지도 모르고, 엄청난 기쁨이 몰아쳤다. 생명의 에너지가 온몸에 충만했다. 만물을 창조하는 생명의 본질을 맛보았다. 불생불명의 에너지에 흠뻑 젖었다. 그 좁은 벽이 탁 트이고 널따란 운동장에 있는 기분이었다. 천지기운과 하나가 된 느낌이었다. 처음 독방에 갇혔을 때는 관에 들어앉은 듯, 미라가 된 기분이었고, 갑갑해서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3일이 지나자 엄청난 충만한 에너지가 몰아쳤고, 기쁨에 사로잡혔다. 수행승 지선은 감옥 안에서 오랜 숙제를 풀었다. 첫째, 수행승이 현실에 참여해야 하는가? 둘째, 개인의 구원과 사회구원을 동시에 할 수 있나? 셋째, 종교적 교리가 사회운동에 적합하나? 그는 세 가지 의문이 다 가능하다고 보았다. 다만 그것을 이루자면 지도자가 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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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이 안 되면 모든 게 반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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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방으로 가다
1999년에 위암 수술을 한 지선은 몸과 마음으로 할 일을 다 했음을 알고 있다. 수행승인 그는 요양 중이다. 그에게 인류의 역사는 종교(제사장)와 권력(왕권)이라는 두 축이 맞물린 수레바퀴이다. 종교와 정치는 일란성 쌍둥이이고 정치가 못 하는 것을 종교는 해낸다. 자본의 꽃을 종교로 보는 지선은 우리 사회에서 불교 빼고는 지배세력에 속한다고 본다. 자본이 물질과 정신세계를 지배하는데, 영혼까지 지배하는 게 종교다. 꼭짓점이 셋(종교, 권력=정치, 민중)인 세계역사를 보라. 권력은 종교를 움켜쥐고 민중을 다스린다.
“우리 사회의 권력은 오래 전부터 불교를 가만 내버려두지 않았지요. 하지만 불교는 희망적이지요. 밑에서부터 혁명을 완수할 수 있는 종교입니다. 불교는 영구혁명론의 종교지요. 영원한 진보입니다.”
요즘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웰빙(참살이) 바람을 그는 어떻게 볼까. 돈 없는 사람은 하고 싶어도 못 하는 웰빙은 뜬구름 잡기요, 거짓일 따름이다. 그것보다는 내가 행복해지려면 너도 행복해져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기를 지선은 바란다. 시멘트로 건설한 도시에서 살아가는 인간은 약육강식의 포로가 되었고 짐승으로 변해간다. 욕망에 눈멀기보다는 눈이 소복소복 내리는 겨울밤을 그려 보라. 아침에 안개에 잠긴 초가집을 지나 고샅길을 걸어 보라. 그리고 보리밭, 밀밭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를 들어 보라. 그것은 인간이 인간의 본질을 찾아가는 시간이다. 자연의 품에서 인간은 비로소 인간으로 돌아갈 수 있음이다.
“ …… 시간은 흘러 저녁이 되고 하던 잡담도 바닥나고 침묵 속에서 밤도 깊어갑니다. 검게 그을린 석유등잔에 불꽃도 가물가물, 밖에서 내리는 함박눈과 함께 나풀거립니다. 지르륵쿵, 지르륵쿵, 장단 맞추듯 보두질 바늘대질 소리는 두 사람의 마음을 환상의 세계로 이끌어 가는 음악소리입니다. 처음에는 이 가마니를 장날에 내다 팔면 돌아올 때 지게에다 홍어속(홍어의 내장) 한 마리 분을 매달고 와서 맛있게 비빔밥을 먹어야지 하고 생각하다가는, 언제 가마니 짜는 일 좀 그만하고 부자가 되어 편하게 사나 하는 생각을 하지요. 시간은 흘러가 밤중을 넘기고. 그때야 일손을 놓고 소외양간처럼 검불이 가득 찬 죽석방(대껍질로 짜서 만든 자리) 위에 쓰러져 잠이 들지요. 그리고 다음날, 또 그렇게 지내고 ……”
지선스님 연보
1946년 전남 장성군 삼계면 상도리에서 출생
1961년 백양사에서 김석산(金石山 尙玄) 스님을 은사로 득도
1972년 영광 불갑사 주지
1976년 조계종 제 23교구본사 관음사 주지
1984년 '무등'지 발간 시작
1985년 광주 무등민족문화회 의장, 민중불교연합회 지도위원
1986년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부의장
1987년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 상임공동대표(10인)
1987년 6.10항쟁 주도로 투옥
1989년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중아우이원, 조국통일위원
1990년 불교정토구현 전국승가회 의장
1991년 고 강경대 열사 폭력살인 공안통치종식을 위한 범국민대책회의 공동의장
1991년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공동의장
1992년 국가보안법철폐범국민투쟁본부 상임의장
1993년 전국불교운동연합 상임의장
1994년 전국구속수배 해고노동자 원상회복을 위한 지원대책위원회 공동대표
1994년 조계종 제 18교구본사 백양사 주지
1995년 실천불교 전국승가회 공동의장
1997년 민족화합 불교추진위원회 상임추진위원장
2000년 현 고불총림 백양사 운문선원 정진 중
2004년 (사)실천불교 전국승가회 이사장
글 / 윤 동 수 1960년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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