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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하고, 가르치고, 모은다. 사진가 류은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08. 12. 23. 11:18

 

크지 않은 키에 단단한 체구, 턱수염은 덥수룩하고 검은 뿔테 안경 너머로는 녹녹치 않은 눈매를 지닌 사진가 류은규(45) 씨. 그가 건넨 명함에는 한자가 빽빽합니다. 남경시각예술학원 사진학과 교수. 교수님 스타일도 아니지만(!) 게다가 중국에서 사진학을 가르치는 선생님이라. 하지만 저나 한국 사진계에서는 중국 동북지역의 조선족을 기록하는 다큐멘터리 사진가로 더 알려져 있습니다. 몇 해 전 김좌진 장군의 딸 등을 찾아내 사진과 구술을 기록, 국내에 알림으로서 잃어버린 역사의 고리를 이어준 사람이기도 합니다.


제가 한국의 많지도 않은 다큐멘터리 사진가 중에서 류 씨를 주목한 것은 좀 남다른 사진가로서의 삶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류 씨는 1993년 중국에서 본격적인 작업 활동을 시작합니다. 그가 처음으로 정착한 곳은 하얼빈으로 우리에게는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암살로 유명한 곳이죠. 그런데 류 씨는 안중근을 놓고도 한·중·일 3국의 평가가 판이하다는 것을 알고는 과연 어떤 역사관점을 가져야 할 것인가를 고민합니다. 그는 우선 항일 독립운동에서 중국적 평가와 중국공산당과의 관계 등을 공부합니다. 현지 학자를 통해 매주 세 번씩 중국공산당사를 공부하면서 “왜 기록이나 학문적으로도 공산주의와 관계된 항일 운동가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가? 그래 작업을 해보자. 이념과 당파에 상관없이 이 동북지역에 산재된 조선족의 기록을 해보자”고 덤벼들었습니다. 항일운동 당시 생존자들의 인터뷰, 자료수집, 사진촬영 등으로 만주벌판을 쏘다니며 4개국의 시각(한·중·일과 북한)으로 조선족을 분석해 갔습니다.


1998년 <잊혀진 흔적> 이라는 이름으로 개최된 그의 사진전은 뜨거운 반향을 얻었습니다. 흔적조차 사라진 진 줄 알았던 김좌진 장군의 가족부터 우리 현대사의 생살들이 그의 작업을 통해 살아난 것입니다. 이태 후에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동명의 사진전은 또 다른 류 씨의 진면목을 보여줬습니다. 그의 사진에 보태 수백 장의 알려지지 않았던 조선족들의 기록사진들이 대거 전시된 까닭입니다. 그는 만주벌판을 돌아다니며 꾸준히 사진 기록물들을 수집해 그만의 방식으로 체계화 시켰습니다. 류 씨가 수집한 1890년대부터 문화혁명 시기까지 기록된 조선족 사진 수집물들은 5만 점이 넘습니다. 아마도 근현대기에 중국 동북지역에서 활동한 조선족의 기록을 망라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그의 독특한 캐리어에 하나를 더 보탠다면 흔치않게 중국에서 사진을 가르치는 선생이라는 점일 듯 합니다. 그는 1995년도부터 중국연변대학교 민족연구소 연구원으로 재직하면서 사진 작업과 자료수집 뿐 아니라 사진학을 중국 땅에 심는데도 열심이었습니다. 2000년에는 그 작업이 결실을 맺어 국내의 몇몇 사진과 교수들과 함께 연변예술대학에 사진과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는 “연변이 자기 역사를 잊고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도 하지만 그 다음세대들이 그 작업을 이어갈 수 있게 해야겠다.”고 결심합니다.


구와바라 시세이라는 일본의 사진작가가 있습니다. 아마도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일본작가가 아닐까 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기록적으로 등한시 하던 1960~70년대 청계천을 비롯한 한국인의 어려운 생활을 밀착 기록했기 때문입니다. 이방인의 시각이 본토인보다는 깊은 감이 떨어질지언정 일상의 것을 새롭게 발견하는 눈이 있습니다. 류 씨의 경우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는 중국인보다 더, 조선족 보다 더 예리한 관찰을 하고 있을 겁니다. 그리고 그 시각은 훗날 동북아를 살고 있는 우리 모두들에게 소중한 기록으로 남으리라 생각합니다.

 

이상엽 inpho@naver.com
다큐멘터리사진가로 웹진 이미지프레스 http://imagepress.net의 대표. 『실크로드 탐사』(생각의 나무), 『그 곳에 가면 우리가 잊어버린 표정이 있다』(동녘) 등을 썼고 『낡은 카메라를 들고 떠나다』(청어람미디어) 등을 기획하고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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