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쓰는 민주주의
나무와 절이 있는 숲, 오대산 본문
산목련이 이울고 있었다
할깃할깃 눈치를 보더니만 급기야 냅다 추월하여 다른 차량들을 앞질렀다. 오대산 상원사를 눈앞에 둔 시내버스는 포장하지 않은 도로를 거북이 걸음으로 가는 휴일 차량들을 견디지 못하고, 휘우듬하게 굽고 좁은 도로를 박차고 나아가 기어코 앞머리에 서고야 말았다. 창밖을 내다보며 산기슭에 바짝 눈을 대고 앉았던 자리가 옹색해졌고, 차라리 걸어서 가야 했던 것을 하는 때늦은 후회를 하였다. 길가 산목련의 또 다른 이름 함박꽃나무의 꽃이 한창 감물처럼 이울고 있었던 까닭도 없지 않았다.
또한 숲을 찾는 이들에겐 월정사 일주문에서 시작한 전나무 숲길부터 예사롭지 않은 즐거움으로 발걸음이 가볍다. 오대산 들어가는 매표소가 일주문에 턱 바치지 않고 저만큼 물러서 있어 성속의 경계가 어느 만큼 적절한 것도 흔치 않아 미쁘다. |
연 이틀을 호되게 앓은 뒤끝의 회복기였던지라 월정사부터 시작하여 상원사, 적멸보궁, 비로봉, 상왕봉을 휘돌아서 돌아 나올 엄두가 나질 않았다. 그리하여 하루 여섯 차례 왕복하는 진부 ↔ 상원사 행 시내버스를 탔던 것이 그리 휘몰아쳐 비포장 도로를 달려갈 줄은 알지 못하였다. 월정사 경내를 둘러보는 일은 일찌감치 포기하였다. 어느 날 석조보살좌상을 만나러 들렀다가 깜짝 놀란 기억이 선연하였기 때문이었다. 팔각9층석탑 앞에 얌전하고 부드러운 미소로 공양을 올리고 있어야 할 석조보살좌상이 그만 월정사 경내 성보박물관으로 이전하고 텅 빈 자리로 남았던 탓은 물론, 경내 박물관에서 다시 입장료를 내야 하는 것도 언짢았기 때문이었다.
이미 국립공원 오대산 매표소에서 공원 입장료 1,600원, 문화재 관람료 1,800원, 합하여 3,400원을 지불하였기 때문이었다. 이날 나는 월정사, 상원사 어느 곳도 들르지 않았지만 문화재 관람료를 지불하였다. 이렇게 한데 뭉뚱그려 문화재를 관람하지 않아도 관람료를 강제 징수하는 일은 그만둬야 한다. 그렇게 강제 징수한 문화재 관람료가 있었는데도 월정사 경내에 또 다시 국보, 보물 등의 문화재를 따로 전시해놓고 관람료를 징수하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다. 또한 ‘신도증’을 가진 이들에게는 공원입장료도, 문화재관람료도 징수하지 않는 것을 보았다.
시절은 가고 오는 것인가
상원사 주차장 옆, 관대걸이 어름에서 주춤 멈춰 섰다. 시내버스에서 내려 올라다 본 6월의 하늘은 풋사과 한 입 가득 깨물어 머금은 것처럼 상쾌하고 맑았다. 상원사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눈앞에 전나무와 아름드리 신갈나무를 두고서도 곡두처럼 이울고 있는 함박꽃나무의 잔영이 어른거렸다. 포장된 도로를 비껴서 상원사 찻집에서 중대 사자암으로 향하는 길로 찾아들어 올라섰다. 가풀막이었지만 어느 해 봄 중대 사자암과 상원사 사이의 뒷길에서 함박꽃나무의 활짝 피고 있던 꽃망울들을 만난 까닭이었다. 얼마 오르지 않아 멀미가 느껴졌고 토해내는 숨길은 배리착지근했으며 등허리는 혼곤한 잠처럼 축축이 젖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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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도 꽃들은 보이지 않았고, 몸은 이미 늙어 휘리릭 휘릭 지나쳐 가는 사람들을 물끄러미, 먼 길 꿈속처럼 바라보고 섰다. 걸음을 옮기는 사이 청신하면서도 세미한 바람결이 폐부 깊숙이 뚫고 들어와 온몸을 관통하여 갔고, 새소리는 여울처럼 길게 귓바퀴를 흔들며 머물렀다. 애연한 연둣빛과 이제 막 절정을 건너간 초록빛은 투명한 햇살과 유쾌한 희롱으로 꿈길처럼 어룽어룽하다.
아니면 민심을 얻기 위한 흔한 왕정의 통치술이었을 뿐일까. 또 그도 아니면? 금시발복의 환희 뒤에 숨은 어떤 허망함을 미리 보아버린 까닭이었을까. 일자무식이었으면서도 근세의 선승으로 이름이 높은 수월스님이며 6·25전쟁 당시 목숨을 내놓고 도량을 지킨 방한암스님의 이야기를 가만히 톺아보면서 걸음을 옮긴다. 중대 사자암은 어느 해의 조촐한 암자 대신 경사면을 따라 층층으로 버선코처럼 날렵한 다섯 개의 추녀 끝이 나비처럼 날아올랐으나 아직도 공사 중으로 오가는 등산객들, 신도들은 건물에 대한 저마다의 의견으로 떠들썩하다. 이미 불교는 하나의 종교이면서 우리 일상 깊숙이 스며든 어찌할 수 없는 문화인 까닭이다.
세월의 이끼가 낀 낡은 단청에 익숙한 탓도 없지는 않을 것이나 알록달록 방금 칠한 새틋한 오색단청을 바라보는 일이 크게 유쾌하지 않은 것은 무엇 때문일까. 낡은 것이 주는 친밀감도 친밀감이려니와 가깝게는 새것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어떤 서걱임, 저항감은 아니었을까. 옛것을 익혀 새것으로 나가는 일은 그리하여 녹록하지 않다. 낡은 것의 처음도 새것이었다는 것을 곧잘 잊고 만다. 종교의 성소이므로 신발 벗고 들어가 ‘불전함’에 떡값 넣고 삼배를 드린다.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은 보궁이면서 또한 텅 빈 공허로 가득하여 몸 돌려 멀리 첩첩하게 흘러가는 능선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발끝부터 조밀조밀 충만감으로 기껍다. 이승의 자매와 영영 이별하고 돌아온 그때에도 적멸보궁 앞의 보살이 건네주는 커피 한 잔에 통곡 없이 마음 기댈 수 있었다. 커피를 주고받는 그 손길 사이, 고통의 기운은 이미 소멸한 뒤였다. 신발 끈을 고쳐 매고 내려서서 인절미 두어 개와 맹물을 공양 받는다. 산의 마루는 찔레꽃머리의 시작으로 미백의 불두화가 푸른 하늘 아래 숭얼숭얼 꽃 피었다. |
나무들의 이름을 묻다
금마타리 몽우리는 맑은 햇살에 더욱 샛노랗다. 검은꽃 요강나물은 피었다 지고, 한창 피고 있었다. 비로봉 산마루로 향할수록 나무들은 오래 늙어왔으며 낯선 꽃들로 하여 저절로 걸음이 멈춰졌다. 연보라빛 수수꽃다리를 깊은 산 숲에서 만나기는 처음이었다. 누구는 라일락으로 누구는 개회나무로 또 누구는 정향나무로 알고 있다는 수수꽃다리는 개량된 라일락꽃보다 그 향이 연하면서도 은은하여 오래도록 들여다보고 있어도 멀미나지 않는다.
난티나무, 느릅나무, 전나무, 신갈나무는 오히려 흔하지만 금강송은 만나기 어려웠다. 마을 산기슭에서 만났던 귀룽나무를 비로봉 근처에서 만나는 기분은 이채로웠다. 쥐오줌풀꽃 또한 마찬가지였다. 아랫녘, 윗녘 어디에도 경계 따위는 없는 듯하였다. 붉은병꽃나무, 눈개승마는 어느 달 밝은 밤처럼 환히 오솔길을 비추었다. ‘훼손지 모니터링’을 하고 있는 길 옆, 노오란 감자난초가 섬광처럼 눈길을 잡아챘다. 금줄 밖에서 사진을 찍다 저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이미 누군가 사진을 찍기 위해 그 주변을 마구 짓밟고 지난 까닭이었다.
작약처럼 붉은 인가목을, 또다시 단정하여 곱고 맑은 함박꽃나무 꽃을, 큰 헛꽃을 가진 미백의 산수국을, 박새의 너른 잎과 긴 줄기에 다닥냉이처럼 피어난 텁텁한 꽃들을, 풀솜대의 흰꽃을, 덜꿩나무를, 진주만한 송이의 들쭉꽃을 만난 것은 또 행운이었다.
돌배나무의 낙화 그리고 이름을 미처 알지 못하는 꽃들을 만나고 헤어지는 사이 주목 나무 군락지를 만났다. ‘살아 천 년, 죽어 천 년’의 문장은 인간의 욕망이 불러일으킨 영생불멸에 대한 신화이겠으나 당장 눈앞에 현현한 주목을 보고 있노라면 티끌 같은 인간사에 대한 겸허와 함께 늙어 아름다운 것에 대한 경외감에 젖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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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등성이 능선을 따라 걷는 길은 밝고 훤하였으며 걸림이 없었다. 가는 동안 먼지잼 비를 만나기는 하였으나 눈 깜짝할 사이였다. 처음 만난 나무의 사진을 한 장 찍어두고선 이리저리 무슨 이름일까 헤아려보아도 알 길이 없었다.
산 아래처럼 이름표를 달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면서 걷는 사이, 어느 만큼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아는 체를 하면서 불러 세웠다. 꽃 사진을 찍는 것을 보았는데, 오는 길에 아무 아무 나무를 보았느냐고 물어왔다. 이름을 알지 못하여서 사진을 찍어둔 나무였노라고 답하였다. 그렇게 나무이름, 꽃 이름을 묻고 답하는 찰나 우리들은 어느 사이 산행동무가 되어서 산 아래 마을까지 함께 걸었다.
글 김 담
강원도 고성 출생
1991년 임수경통일문학상 소설부문 우수상 수상 작품집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현재 강원도 고성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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