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쓰는 민주주의
상처입은 자들의 기도처 태백산 본문
사라진 탄광들, 주점(酒店)의 이름으로 남다
까아만 저탄더미 아래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상상했던 것일까. 세 번씩 버스를 갈아타고서 도착한 태백버스터미널은 여느 강원도 버스터미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터미널 주변의 노점에서 찰옥수수를 쪄서 팔고 있던 한여름 풍경은 한갓지다 못해 차라리 지루하게까지 여겨졌다. 산으로 들어가기 위한 걸음이었으나 이미 늦은 시간이었고, 하다못해 어디에 들어가 늦은 아침을 먹기에는 또 어중됐다. 지짐거리던 빗줄기가 뜨막한 사이로 한여름 뙤약볕이 쨍쨍 내리쬐였다.
황지연못으로 가는 길을 물었다. 더덕을 까서 팔고 있던 길가 전봇대 옆의 노파는 활짝 웃으면서 저 길로 쭈욱 가면 있을 것이라고 친절하게 일러주었다. 길가에서, 시장에서 푸성귀를 파는 노파들을 만나면 그들 얼굴에서 간혹 내 어미의 얼굴을 만나는 까닭으로 노파의 오지랖 앞에 놓인 푸성귀 다발을 몽땅 떨어서 사고 싶은 값싼 연민에 휩싸이기도 한다. 허리 깊숙이 숙여 인사하고 손가락이 가리킨 길을 따라 걸었다. 어느 해 한여름 잠시 들렀던 황지연못은 서울 종묘 앞 공원처럼 노인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한참 동안 연못 속의 내 그림자를 들여다보았다. 낙동강 칠백 리 물길의 처음, 시원(始原)이 그곳에서 비롯되고 있었다. 그렇더라도 황지연못은 이미 신성의 공간을 벗어난 채 갈 곳 없는 노인들의 세속적 욕망으로 들끓고 있었다. 어떤 의미의 혼탁은 또 다른 정화의 얼굴일 뿐만 아니라 장자못 전설의 기원을 떠올리기에도 충분하였다. 늙은 여인들에게 치근덕거리는 술에 얼근한 늙은 남정의 얼굴은 사뭇 비루하였으며 한편 알 수 없는 안타까움이었다.
연못을 돌아서 나오던 길에 문득 눈길을 잡아채는 간판이 있었다. ‘(酒)함태광업소’였다. 심장에 살얼음 어는 소리가 들렸다. 눈을 비비면서 다시 올려다보았다. 천길 아래 낭비알로 떨어지는 듯 알 수 없는 암담함으로 가슴이 먹먹하였다.
어느 해 도계 탄광촌 거리의 술집에서 만난 막장의 사람들이 먹던 돼지비계처럼 뭉클하니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때 안내하던 석탄공사의 직원을 따라 채탄 갱내까지 들어가지 못한 것을 끝내 후회하였다. 숲에서 저 홀로 숨져간 짐승의 사체를 맞닥뜨릴 때와 같은 아릿한 슬픔으로 한동안 우두망찰하였다. 이제는 주차장 관리소로 바뀐 낡은 목조 건물의 연탄 보급소 건물이 또한 그러하였다. |
석탄산업은 1980년대 말 유류값의 하락으로 인하여 사양길로 접어들기 시작하였고, 정부의 석탄산업 합리화 조치로 334개의 광산이 폐광 조치되어 지상에서 사라졌다. 광산이 벌이터였던 사람들 또한 남는 자 남고, 떠나는 자 남부여대하여 지역을 떠났을 것이었다. 막다른 곳, ‘막장인생’이라고 불렸던 그들은 어떤 낯선 곳에 짐을 내리고, 또 무엇으로 생계를 꾸리며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석탄박물관 석탄박물관의 전시실에는 진폐 환자의 실물 폐가 용기에 담겨 전시되고 있었다. 식물의 탄화작용으로 생성된 탄을 캐던 사람들이 이제는 그 먼지로 인하여 자신의 폐가 굳어져 다시 살 수 없는 아픔으로 마지막 생을 살다 갔던 증거일 것이겠으나, 살아생전의 참담한 고통까지 전해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광산 노동자의 숨 찬 고통으로 우리는 한겨울 따듯한 아랫목을 만날 수 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할머니는 안방 아랫목 연탄불의 열기로 눌어붙은 비닐 장판 위에 밥 가득 담긴 주발에 복주깨를 덮어 이불 속에 파묻어놓곤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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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탄가스에 중독되어 초등학교의 어느 날은 등교를 하지 못하였고, 신 김치 국물의 기억은 검질기도록 길래 남았다. 그렇더라도 교실 안 연탄난로와 옛집의 연탄보일러로 비롯한 따뜻함의 추억은 잊히지 않는 무엇이었다. 겨울철이 닥치면 신문, 방송에는 연탄가스 예방법과 사후 조치 등이 심심찮게 실렸다. 그렇게 광고하였어도 겨울이면 흔하게 연탄가스에 노출되었고 사망자가 발생하기도 하였다.
석탄은 앞으로도 2백 20년은 더 캘 수 있는 양이 매장되어 있다고는 하나 채굴 뒤의 환경 문제 또한 관심을 기울여야 할 대목이다. 폐수와 폐석더미에 함유되어 있는 중금속으로 인한 하천과 토양의 오염뿐만 아니라 지하탄갱으로 인한 땅 표면의 내려앉음 또한 쉽게 지나칠 수 없는 경우이다.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관계를 역설하는 것만으로는 아무런 것도 해결할 수 없다. 문제는 그 실천의 시작에 있을 것이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혼자서 내려갔던 ‘체험갱도’는 아찔한 멀미였다. 전광판에 마이너스로 표기되는 지하의 깊이는 숨 막히는 어지러움이었다. 탄을 캐는 어둑한 갱내를 걸어가는 동안 느닷없는 외침이 들렸다. “갱이 무너진다!” 효과음에 얼이 빠져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가상의 체험 뒤에 불쾌한 짜증이 진득하게 들러붙었다.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었던 광산 노동자들의 삶을 몇 초의 가상체험으로 어떻게 헤아릴 수 있을 것이며, 그것이 대체 지금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엉너리에 값싼 동정은 아닐까.
태백 시내 길가에는 ‘오락가락하는 산재정책 진폐 환자 다 죽인다’고 하는 아우성이 펼침막으로 내걸렸다. 탄광과 분진작업장에서 일했던 광산 노동자들 중 3,500여 명의 진폐환자들이 전국 30여 개 병원에서 입원 치료 중에 있으며 이들 중 30~40%에 가까운 환자들이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고, 이로 인한 자살율도 심각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완치의 가망 없음이 이들을 절망의 구렁텅이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상처 입은 자들의 기도처
어둑새벽 숲으로 들어섰다. 먹장구름이 몰려오고 있었다. 숲의 입구로 들어서자 귀살쩍은 기운에 눌려 몸을 돌리고 보니 석장승 발치에 파란 눈을 빛내며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나를 향해 허리를 곧추 세우며 서 있었다. 마치 헛것이라도 본 듯하여 눈을 감았다 뜨는 동안에도 고양이는 긴장을 풀지 않았다. 불길했다. 민박집 주인은 산에서 당하는 사고를 일러 “산이 내친다”고 하였다. 다시 말하자면 산신께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의미라고 했다. 여느 곳보다 도드라진 산신에 대한 경외의 말이었다.
낯선 곳으로 향하는, 숫눈을 밟는 듯한 첫 발자국의 어떤 설렘은 이미 간 곳 없었다. 계류의 물살은 우당탕탕 정신이 사납도록 거칠게 내달렸다. 숲속의 모든 소리를 간단히 제압하면서 어떤 것도 돌아보지 않으면서 앞으로만 달려갔다. 얼김에 들뜨려는 걸음을 눌러 물박달나무, 들메나무들을 살피면서 걸었다. 그러는 동안 걸음은 몸 밖으로 나를 이끌고 갔다. 깜깜했던 먹장구름은 드디어 빗방울을 뿌리기 시작하였으며, 신작로처럼 넓은 길에서도 좁은 심장을 가진 내 숨소리는 자못 거칠어졌다.
하늘 아래 무수한 신들과 교통할 수 있는 장소 혹은 성소로써 한편 제 몸을 죽여 새끼를 키우는 염낭거미를 떠올렸다. 어디에도 기댈 곳 없는 자들의 안식처가 되어주는 일,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은 아닐 것이었다. 철야기도를 하고 내려가는 사람들의 무리를 만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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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경사 용정(龍井) 앞에 이르기에 앞서 산은 한치 앞도 분간키 어려울 만큼 적막하고 막막하였으나 그로 인하여 나를 잊을 수 있었으며 또한 다른 나를 가만히 응시할 수 있었다. 장맛비 속에서도 꽃들은 이울고 새롭게 피고 있었다. 천제단으로 오르는 계단은 마치 피안의 어느 곳을 향하여 가는 것만큼 아득하게 멀었다. 농밀한 안개 속 천제단 앞에 좌정하고 기도하는 자들 틈에서 늙은 산고양이가 불쑥 모습을 드러냈다. 누구의 현신이었을까.
낯선 숲길에서 마주친 한 남자는 빗물로 가득한 세상에서 물을 찾았다. 남자에게 용정에서 얻은 물병 하나를 건네주었다. 그런 다음 문실문실 수수 백년을 살아온 주목을 만날 수 있었다. 빗속에서 나무의 붉은 빛깔은 영검처럼 빛났다. 걸음을 멈추고 서서 가장 낮은 자세로 붉은 나무들에 공손히 절하였다. 홀로 걷는 숲길에서 만난 좋은 길동무였다. 노란 물레나물과 기린초, 붉은 노루오줌이과 둥근이질풀, 백색의 산꿩의다리가 만개한 숲의 언저리로 나오자 무겁던 하늘이 드높아졌다. 여우볕이었다.
글 김 담
강원도 고성 출생
1991년 임수경통일문학상 소설부문 우수상 수상 작품집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현재 강원도 고성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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