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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쓰는 민주주의
안개가 자주 낍니다. 6월 중순에 접어들자, 더욱 잦고 짙습니다. 부두에 도착해 보니, 동료 서넛이 서성이고 있습니다. 짙은 안개 때문에 완도와 신지도를 오가는 철부선 운항이 제 시간에 이뤄지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앞서 출항했어야 할 시각에 맞춰 배가 떠나지 못했나 봅니다. 배 뜨길 고대하며 저쪽, 가야할 그 섬을 안타까이 바라보고 있더군요. 안개가 많이 끼어 시계가 극히 짧은 날이면, 해양경찰서에서 나와 운항을 통제하기도 합니다. 월요일 아침, 섬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많은 까닭이어선지 통제는 하지 않더군요. 청산도나 보길도처럼 먼 바닷길이 아닌 까닭이기도 합니다. 일요일인 어제 어둠살이 내려앉는 해름부터 안개가 내려앉았다고 합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일요일 오후 해질녘이 지나 섬으로 들어온 동료들..
이곳 신지도의 일기예보는 제주도와 같습니다. 구름이 끼고 바람은 먼 바다에까지 잔잔히 불 것이라는 게 아침 예보였습니다. 구름이 조금 끼었지만 좋은 날입니다. 학교도 그렇습니다. 아이들 역시 푸릇한 봄날처럼 유쾌한 하루가 되리라 여깁니다. 우리 아이들은 오늘 분주합니다. 뭘 지지고 볶느라 기름내가 코끝을 건듭니다. 학교 전체에 요리 냄새가 진동합니다. 교실에서 기·가실(기술·가정실)에서 차고지 옆 야외 탁구장에서 아이들 웃음이 시끌벅적합니다. 아이들 뿐 아니라 담임선생님들도 바쁩니다. 점잖게 교무실에 앉아 있는 비담임 선생님 중 어느 분 얼굴에는 ‘크아, 냄새 죽인다.’는 표정이 역력합니다. 코끝을 큼큼거리며, 냄새로 보아 ‘그 요리’인 게 틀림없다고 마치 스무고개 하듯 입방아를 찧기도 합니다. 어느 선..
“워메! 코빼기도 안 보이드만, 오늘은 먼 일이다냐?” “비할라 싱숭생숭허게 퍼붓으요, 안.” “그새 넌 안중에도 없었지야?” “아따, 누님도 보고 잡어 왔지라우.” “그라믄 들어슴서 내뱉어야제, 입 뒀다가 숭년에 빌어묵을래.” “하이고 이삐기럴 허다거나, 입방정이 곱다거나……” “빌어묵을 늠, 엠~병허네. 뚫린 주딩이라고.” “엠병들어 죽으먼 우리 집사람 책음질라고 그라요, 시방.” “잡녀르 자석! 어여 앙거라(앉어라).” “머시 있소?” “간제미, 인자 막 왔다.” “한 접씨 써시요, 이.” “술언?” “워따, 워따. 간제미에 양주허랴?” “똥친 막가지 같은 늠이네.” “더운 밥 묵고, 식은 소리허는디, 그럼.” 동료와 술집 주인 아짐 간의 대화 한 토막입니다. 주인 아짐의 말투가 붚달면서도 푼푼합니..
해신의 여진을 생각합니다! 요즘 수·목요일에는 저녁모임이나 술자리를 거의 갖지 않습니다. 혹 있더라도 좀 더 일찍 종례하고 집으로 돌아들 갑니다. 수·목요일 저녁 신지도에서 벌어지는 풍속도의 한 장면입니다. 애초에 그 요일을 피해 술자리를 만듭니다. 모 방송국의 드라마 시청 때문입니다. 텔레비전 시청률 상승에 한사코 보탬을 주지 못 하는 저이지만, 의 등장 인물들이 빚어내는 삶의 모습을 가슴 졸이며 지켜보곤 합니다. 장보고와 염문, 정화와 채령 아가씨의 임에게로 향한 저 애틋함의 향방이 어찌 전개될 것인지를 저 또한 속앓이 하듯 지켜보고 있습니다. 물론 1,200여 년 전 당시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일이란 죄다 경제의 노역으로부터 벗어나 있지 못함을 새삼 느껍게 감지하며, 21세기 들어 강대국의 지배욕에..
곧 경칩(驚蟄)입니다. 우수(雨水)가 앞선 절기지만 진짜배기 봄의 전령은 경칩이지요. 남녘은 이미 봄기운이 완연한 시기요, 북녘에서는 꽁꽁 언 대동강 물이 녹고 삭풍마저 누그러지는 때입니다. 요즘 들어서는 기상이변이 하 잦아 시(時)도 모르고 절(節)도 가늠하기 어렵긴 합니다. 지난해 3월에는 게릴라성(?) 폭설이 내려 고속도로에서 오도가도 못 한 채 혹한의 밤을 지샌 차량들이 많았습니다. 올해 역시 겨우내 보기 어렵던 눈발이 2월에서야 매우 사납게 흩날렸습니다. 체감 온도 영하 20℃ 이하로 떨어진 추위가 몰려온 것 또한 2월이었습니다. ‘3월 추위가 장독 깬다’는 옛말이 있듯이 올해도 예측하기는 아직 이르긴 합니다. 딴은 기상이변과 달리 3월은 아이들 개학을 앞두고 꽃샘추위가 몰려와 옷깃을 한껏 여미..
새해 어느 날 저녁이었습니다. 저녁식사를 위해 식탁에 둘러앉아 있는데 막내 아이가 노래를 흥얼거립니다. ‘섬집 아기’라는 노래였어요.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 라는 가사로 혼자서 노래를 곧잘 부르기도 하는 아이이긴 하지만, 그래도 대견해서 저도 따라 불렀지요. ‘바다가 불러주는 자장노래에/ 팔 베고 스르르르 잠이 듭니다.’ 적요하면서도 넉넉하게 닿는 노래입니다.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에서 달마다 동요 부르기를 하는데 어느 달엔가 선정된 노래 중 한 곡이었다고 합니다. 좋은 교육활동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즘 아이들에게 동요는 학교 음악 시간에 억지로 배우고 난 뒤 그 시간이 끝나고 나면 머릿속에서 재빨리 지워버리는 노래가 되어버린 듯합니다. 배우고 난 뒤..
겨울은 겨울답게 추워야지요. 한뎃바람은 입안 얼얼하지만 가슴은 활활 타 눈물 쏙 빼놓는 매운 겨자 맛으로 불어 닥쳐야 합니다. 완두콩만한 눈발 또한 드세게 날리어 옷깃 단단히 여미게 해야 참으로 겨울다운 맛이 나게 됩니다. 그해 눈 많아야 이듬해에 풍년 든다 하지 않습니까? 가을걷이 끝낸 거친 논밭에 여직 남아, 다음 해에 심을 알알의 곡식과 민낯 같은 푸성귀 갉아댈 해충도 덮어버려, 탱탱히 얼게 하지요. 그런 겨울에 만나는 겨울 바다는 속살마저 뜨겁게 덥힐 것입니다. 명사십리(鳴沙十里)라 불리는 넓은 모래밭이 완도의 신지도(薪智島)에 있습니다. 어우러짐의 미학, 명사십리 여름철이면 북새통을 이루는 해수욕장이지요. 북녘, 함남 원산시 갈마반도의 남동쪽 바닷가에 특히 해당화 많이 피어 있다는 같은 지명의 ..
사내는 겁에 질려 있었다. 죽음보다 더한 극한의 공포가 이런 모습일까 싶을 정도로 표정이 원형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괴이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분노, 원망, 애원, 체념, 심지어 야릇한 미소까지 뒤범벅된 듯한 묘한 눈매는 차마 눈 뜨고 바라보기 가증스러웠다. 김달출. 학생들이 빼앗은 경찰 신분증에 적힌 사내의 이름 석자였다. 그것은 지금 수 십장이 복사돼 교내 모든 게시판에 붙어 있을 것이다. ‘불법 사찰 짭새 체포!’ 사내의 운명은 이제 경각에 달려 있었다. 무쇠보다 단단한 것처럼 보였던 몸은 이미 물에 빠진 생쥐 모양 초라한 행색으로 변해 있었다. 우람하던 어깨도 바람 빠진 풍선마냥 풀이 죽어 행려병자의 그것처럼 왜소하게 오그라든 모습이었다. 1984년 4월 S대 학생들이 올린 뜻밖의 전과는 그 학..
“야, 너 배정식하고 동기지?” “그런데......요.” 털보 선배가 정식이 얘기를 꺼내는 순간 그는 술맛이 싹 달아나는 기분이었다. 새삼스럽게 물어보지 않아도 뻔히 아는 얘기를 마치 추궁하듯이 묻는 선배의 태도가 못마땅했다. “나아~쁜 노~옴!” 선배는 그의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기다렸다는 듯이 혀 꼬부라진 소리로 버럭 고함을 내질렀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찔했다. 정식에게 하는 욕이었지만 그에게는 단순하게 들리지 않았다. 자리에 없는 사람에 대한 화풀이를 자신에게 하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단지 고등학교 동기라는 이유만으로 같은 부류로 취급하는 것이었다. 술기운 못지않게 부아가 치밀었지만 그는 입을 닫았다. 험악해지는 선배의 말에 더 대꾸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술 취해 흥분한 사람과 입씨..
지금은 구치소나 교도소에 ‘뺑끼통’이 없다. 하지만 과거에는 방안에 배변을 하는 통이 있어서 거기에다 대소변을 봤다. 그 통을 일컬어 ‘뺑끼통’이라고 하고 이 말이 지금까지 이어져 교정시설의 화장실을 ‘뺑끼통’이라 한다. 수형 시설 내에서 언어 순화를 위해 노력을 하고 있다지만 이 말은 쉽게 없어지지 않고 끈질기게 생명력을 이어오고 있다. 한번은 교도소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달에 몇 번씩 소지해서는 안 되는 물건을 조사하기 위해 교도관들이 방 안을 뒤지는 날이 있다. 보안과장이 재소자들을 향해 일장 연설을 했다. “에~ 이제 재소자 여러분들도 달라져야 합니다. 언어 순화는 기본이고 그리고 폭력 금지 특히 여름철 ‘뺑끼통’ 청소를 각별히 당부 합니다.” ‘???’ 아니 언어 순화를 하자면서 ‘뺑끼통’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