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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칼럼/인터뷰/문화초대석

섬마을 편지 - 노는게 달라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08. 12. 23. 11:40


이곳 신지도의 일기예보는 제주도와 같습니다. 구름이 끼고 바람은 먼 바다에까지 잔잔히 불 것이라는 게 아침 예보였습니다. 구름이 조금 끼었지만 좋은 날입니다. 학교도 그렇습니다. 아이들 역시 푸릇한 봄날처럼 유쾌한 하루가 되리라 여깁니다. 우리 아이들은 오늘 분주합니다. 뭘 지지고 볶느라 기름내가 코끝을 건듭니다. 학교 전체에 요리 냄새가 진동합니다. 교실에서 기·가실(기술·가정실)에서 차고지 옆 야외 탁구장에서 아이들 웃음이 시끌벅적합니다.


아이들 뿐 아니라 담임선생님들도 바쁩니다. 점잖게 교무실에 앉아 있는 비담임 선생님 중 어느 분 얼굴에는 ‘크아, 냄새 죽인다.’는 표정이 역력합니다. 코끝을 큼큼거리며, 냄새로 보아 ‘그 요리’인 게 틀림없다고 마치 스무고개 하듯 입방아를 찧기도 합니다. 어느 선생님은 3학년 교실에 다녀와서 벌써부터 입맛을 다시고 있습니다.


그도 그럴만 합니다. 아이들 가운데엔 이곳 섬의 음식문화가 그대로 드러나는 요리를 들고 나왔는데, 그게 사실은 술안주에 다름 아닌 요리이기 때문입니다. 아주 색다른 요리를 선보이겠다고 야심만만히 준비해 온 아이들도 있습니다. 대부분 평범한 요리를 출품작으로 내놓고 있습니다.


1학년 가운데 새롬, 규원, 슬아, 상훈, 선영, 권영이 한 조를 이룬 모둠에서는 면피자를 선보인다고 합니다. 3학년의 어느 모둠은 이름부터 알 수 없는 요리입니다. 꼴로레아 깐따비아 레뚜르 뽀드락이라는 요상하고 맹랑한 퓨전 요리를 한다고 합니다.

흥미롭습니다. 짐작하셨겠지만, 각 반에서 요리왕 모둠을 뽑기 위한 요리경연대회가 열리는 것입니다. 밀가루 반죽을 얼굴에 잔뜩 묻힌 아이들의 웃는 모습이 보기에 참 예쁩니다.


학생 모두가 참여하고 있습니다. 학급의 모둠별로 참가 신청을 받아 요리경연대회를 여는 까닭입니다. 우리 학교에서 달마다 열리는 작은 축제 가운데 이달에 열리는 활동인데 올 들어 세 번째 하는 아이들 행사지요.

 

이름하여 ‘월별학생문화발표회’라는 것이지요. 3월에는 모둠별 학급환경꾸미기를 했습니다. 4월엔 노래가사 바꿔 부르기(노가바)를 했지요.


 


아이들이 공부하며 노는 법
아이들이 놀고 있는 그 지점에다 멍석을 깔아주면 더 잘 놀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출발했습니다. 놀이문화를 좀 더 재밌고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서 즉 ‘자기들끼리 맘대로 놀아라. 멍석은 깔아주되 우리들(선생님)은 죽이 돼든 밥이 돼든 느긋한 맘으로 지켜보자.’는 의도로 시작하였답니다. 아직 정착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그나마 흥미는 유발시켜 놓은 단계라고 여겨집니다. 요즘 아이들은 노는 게 영 다르지 않습니까?


우리 어른들, 기성세대의 눈으로 보면 ‘어디 저게 싹수 있는 놀이인가?’ 하고 우선 먼저 종주먹으로 나무람부터 들이대게끔 되기 일쑤잖아요. 하지만 녀석들 나름으로는 얼마나 진지하고 재미나게 노는지 모릅니다. 나쁜 줄 알면서도 욕마저 놀이로 즐기는 듯 합니다. 이처럼 엄정한 시각 차이를 조금이나마 줄이면서 아이들이 놀고 떠들고 일어났다가 쓰러지고 다시 일어서면서 학교생활을 할 수 있도록 판을 한번 벌여보자는 취지에서 마련한 자리입니다.


지난달에 했던 노가바는 그런 점에서 이 교육 활동을 정착시킬 수 있는 서막의 단계였습니다. 총 7개 팀 45명이 참가했지요. 일본의 독도 망언으로 국민 감정이 복받쳐 있는 시기여서 대부분 독도와 관련한 내용의 노가바였습니다. 1, 2, 3학년 모두 합해 4학급의 남학생 47명 가운데 14명이, 여학생 54명 가운데 31명이 참여하였지요. 사진에 나오는 노가바의 내용 또한 괜찮지 않은가요?
지난달에 있었던 행사 중 무엇보다 상품이 참 재밌었습니다. 으뜸상 한 모둠에게 치킨너겟 3개, 피자 1판, 콜라 1.8ℓ가 주어졌습니다. 버금상 두 모둠은 각 피자 1판과 콜라 1.8ℓ 그리고 딸림상은 세 모둠이 받았는데 양념치킨에 콜라를 곁들여 상품으로 주었답니다.(물론 급식 때는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으로 여러 종류의 친환경농산물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시상 후 당연히 난리가 났습니다. 참가 모둠만 먹는 게 아니잖아요. 전체 학생 수의 반 정도가 참여했으니 나눠 먹는 게 자연스럽잖아요. 그러니 나눠 먹으면서도 누구는 좀 더 많이 먹으려고 혹은 입맛이라도 보려는 다툼이 곁들여졌지요. 그게 어디 싸움입니까. 이 또한 놀이였습니다.

 

나눔의 놀이가 물론 생존의 치열함을 던져준 것이라면 지나친 의도였다 하겠으나, 한편으로는 삶의 엄혹함을 느낄 수 있도록 한 기제 역시 반면 교사로서 가능한 모습이라 여깁니다.


어쨌거나 그동안 아이들에게 주는 상품이라는 게 대부분 문화상품권이나 도서상품권이었습니다.

지난달에 노가바의 입상자들에게 준 상품도 위에서처럼 아이들에게 익숙한 혹은 늘 먹고 싶은 패스트푸드였지요.이런 상품을 주자고 제안한 선생님은 이 교육 행사를 주관한 2학년 국어 선생님이었습니다. 40대 중반인 선생님인데 아이들 속에서,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아이들을 만나는 선생님입니다. 사실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주는 상품을 이처럼 바꾼다는 게 쉽지 않습니다. 특히 지역적인 정서상 학교가 갖는 위상과 지역민들의 인식이 아직 그걸 이해할 수 있을까 하고 염려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워매, 워매, 핵교가 무슨 먹자판으로 돌아버렸능게비다.’ 하면서 ‘먼 남새시란 일이디야, 참말로.’ 그렇듯 혀 끌끌 차기 십상이지요. 그렇지만 기발한 생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이들을 이 활동에 유인하는 좋은 구실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지요. 바로 아이들 눈높이에서의 만남 아니겠습니까?

 

변하는 아이들을 따라가지 못하는 학교
그렇지요. 바로 그 눈높이, 그 지점에서 아이들과 교감하고 상통해야 됩니다. 때때로 아이들의 흥미로움과 결합하지 않으면 ‘그래, 느그들끼리 놀아.’ 하는 속내로 등을 돌리고 맙니다. 이래서는 아이들을 놀이 속으로 끌어들일 수 없습니다. 놀이의 풍요로움 속으로 몰입시킬 수 없습니다. 놀이의 문화를 진정으로 체득할 수 없게 되는 것이지요. 아이들의 눈높이, 녀석들의 짜고 매운 혹은 싱겁고 시디신 간에 맞춰 아이들과 만나야만 합니다. 오늘의 우리 아이들이 얼마나 변해 있는 지를 학교 울타리 밖에 계시는 부모님들께서는 제대로 인식하고 있지 못하는 부분이 참 많습니다.


실로 문명사적 대변환의 중심에 아이들이 있습니다. 학교는 아무리 강조하고 강조해도 사실 재미있는 곳은 아닙니다. 학교의 전통적 기능인 지식 전수, 지식 계승, 지식 발전의 의미로써의 학교는 이미 그 기능을 상당 부분 상실당한 지 오랩니다. 지식의 창고로서의 그 기능이 최대에 달하고 있는 21세기의 컴퓨터는 거대한 학교 건물을 무색하게 만들어버렸습니다. 아울러 학교는 재미를 느끼기로 말하면 지금 아이들이 지니고 다니는 휴대폰보다 훨씬 충족시켜 주지 못합니다. 휴대폰에는 음악, 미술, 게임, 인터넷, 영화 등속의 모든 게 다 들어 있습니다. 손안에 쏘옥 들어오는 그 작은 기계는 학교가 주는 흥미를 훨씬 능가하는 재미를 줍니다. 재미와 지식을 얻기 위한 기능적 측면에서 본다면 아이들은 굳이 학교에 나오지 않아도 됩니다.


오늘날 아이들이 학교에 나오는 건 여전히 그 위세가 약화되지 않은 계층상승의 통과의례로써의 그 위험한 기능성을 외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전인적 사고와 사회적 자아를 습득하는 곳이라는 그 위상이 아직은 엄존해 있기 때문이지요.


성장 과정에서 마땅히 통과해야 할 학교가 왜 재미를 주지 못하는 것일까요? 아이들이 변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학교와 학교를 구성하는 여러 존재들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을 하거나 오히려 뒷걸음질치고 있는 탓입니다.

 

아이들은 ‘몸(감성)으로 말해요.’ 하는데 학교는 여전히 ‘이성적 체계로 무장한’ 교과서에다가 ‘이성적으로만 아이들을 대하려는’ 선생님이 ‘이성적 판단’ 만이 오늘날에도 인류에게 가장 유효하고 보편적인 삶의 방식이라고 고집스레 교육하고 있습니다. 당연하고 마땅하게도 선생님들과 아이들 사이에서 문명적, 문명사적 충돌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먼저 학교가 변해야
적절할지 모르겠으나 아이들의 변화와 그 조짐이 이제 아름답게 혹은 시나브로 제대로 가고 있구나 하는 예를 하나 들고자 합니다. 얼마 전에 아이들이 제게 보낸 독촉장이 있습니다. 우리 학교 도서관 운영진들이 도서 대출과 관련하여 반납을 독려하기 위해 만들어서 저에게 제일 먼저 보냈다고 합니다. 반납 기간인 6일을 넘겼나 봅니다. 보시다시피 내용이 참 사납습니다. 그래서 얼른 돌려주었지요, 후후. 저는 흐뭇함을 느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이제 제대로 인식하는 시각의 선에 닿아 있구나 하는 느낌을 갖게 된 저의 생각이 지나친 것일까요?
장을 펼쳐놓고 지켜보면 아이들 노는 게 이렇듯 다릅니다. ‘자기들끼리 싸우고 웃고 떠들고 넘어지면서도’ 나중에는 일어나 제대로 된 길로 가더군요. 그렇습니다. 이런 아이들을 올곧게 만나기 위해서는 학교가 먼저 변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삽니다.



사진 황석선

글 한상준
전북 고창 출생
1994년 「삶, 사회 그리고 문학」 지에
「해리댁의」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작품집으로 <오래된 잉태>가 있음.
현재 교육문예창작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원이며
전남 완도 신지중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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