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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마을 편지 - 그 집에 가면..... 본문

인물/칼럼/인터뷰/문화초대석

섬마을 편지 - 그 집에 가면.....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08. 12. 23. 11:40


“워메! 코빼기도 안 보이드만, 오늘은 먼 일이다냐?”
“비할라 싱숭생숭허게 퍼붓으요, 안.”
“그새 넌 안중에도 없었지야?”
“아따, 누님도 보고 잡어 왔지라우.”
“그라믄 들어슴서 내뱉어야제, 입 뒀다가 숭년에 빌어묵을래.”
“하이고 이삐기럴 허다거나, 입방정이 곱다거나……”
“빌어묵을 늠, 엠~병허네. 뚫린 주딩이라고.”
“엠병들어 죽으먼 우리 집사람 책음질라고 그라요, 시방.”
“잡녀르 자석! 어여 앙거라(앉어라).”
“머시 있소?”
“간제미, 인자 막 왔다.”
“한 접씨 써시요, 이.”
“술언?” “워따, 워따. 간제미에 양주허랴?”
“똥친 막가지 같은 늠이네.”
“더운 밥 묵고, 식은 소리허는디, 그럼.”

 

동료와 술집 주인 아짐 간의 대화 한 토막입니다. 주인 아짐의 말투가 붚달면서도 푼푼합니다. 동료의 응수 역시 만만찮습니다. 이 집에 자주 드나들며 우의만 돈독히 한 게 아니라, 대응의 내공 또한 첩첩 쌓았기 때문이겠지요. 아무려나 감칠맛이 있어 자주 찾게 되는 ‘욕쟁이 할머니’ 음식점은 이 마을, 저 고을에 으레 한 집 이상은 있기 마련이지요. 신지도에도 그런 술집이 하나 있답니다. 젊은 동료들이 ‘누님’이라고 부르는, 이제 막 손자 보았다는, 걸쭉한 입담을 지닌 주인 아짐이 푸짐하게 술상을 봐주는 집이지요.

 

‘욕쟁이 할머니’ 음식점
<챌등장터식당>. 신지면 소재지에 있는 술집으론 유일하게 막걸리도 팝니다. 우린, 그 막걸리를 마시러 가지요.
이 집 상호에 대해 잠깐 언급해야겠습니다. ‘챌등, 장터, 식당’을 따로 나눠 생각해야 하는 간판명인 까닭입니다. ‘챌등’은 신지면 소재지 어느 지점을 이릅니다. 신지면 대곡리에 최소 단위의 마을이 여럿 있는데, 그 중 대평(大坪)마을 들녘에 ‘한들’ 또는 ‘챌동’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제주도로 유배 가던 배가 심한 풍랑으로 지금의 ‘울몰(우는 모래등)’에 밀려 ‘챌동’이라는 곳에 챙(챌-차일)을 치고 안주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한편으로는 현재 상수도 집수탱크가 있는 땅골 위의 뒷산이 지금의 면사무소 뒷동산에 올라서서 보았을 때 마치 챌을 쳐놓은 형상이기에 ‘챌등’이라는 지명이 생겼다는 설도 함께 전해지는데, 이러한 지명을 따서 상호의 첫 머리에 올려놓은 것이지요. ‘챌동’이든 ‘챌등’이든 넉넉하게 끌어안겠다는 심사가 내포되어 있음을 느낍니다. 차일은 더위를 피하기 위해 쳐놓은 그늘막입니다. 땡볕 아래, 차일이 만드는 선선한 그늘! ‘여그, 그늘 아래로 모다 오시요, 이. 참말, 좋아부요.’ 하는 아귀찬 호객의 속내를 엿보게 됩니다.


‘장터’ 역시 주인 아짐의 혼이 담겨 있습니다. 사실 ‘장터’는 아무래도 마땅한 어울림이 아닙니다. 신지면에는 오일장(五日場)이 서질 않습니다. 술집이 들어서 있는 주변 역시 예전의 장터가 아니지요. 1970년 이전에는 관통로 안쪽에 있는 삼마마을에 유일하게 오일장이 열렸지만 지금은 사라지고 완도읍에 있는 장에 다닙니다. 술집을 차린 시기 또한 오일장이 사라지고도 한참 뒤의 일이라 하니 ‘챌등식당’ 하면 될 터인데, 굳이 ‘장터’를 집어넣은 건 좀 생뚱맞잖습니까?


바로 그 지점에서 깊은 의중을 엿볼 수 있습니다. 장터는 사람들 들꾀는 곳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백화점이나 마트 아닌 점방이나 구멍가게를 찾는 축들로, 돔 가운데 두 번째나 가는 참돔도 아니고 이를테면 이곳에서는 그리 입맛 나는 고기로 여기지 않는 보리숭어들이나 드나드는 그런 곳입니다.

 



 

온종일 삶의 저 두터운 질곡의 먼지를 흠뻑 뒤집어 쓴 사람들이여, 이리로 오시오. 푸짐하고 넉넉하게 드시고 몸과 맘까지 편안하고 느긋하게, 거기에다 주머니 또한 압박받지 않도록 박리다매로 얼쑤절쑤 드릴 터이니 뉘라도 오시오. 오시되 일류 말고 이류나 삼류인 보리바둑이나 두는 화상들이면 더욱 좋겠다는 깊은 포용의 속내를 담고 있습니다.

 

그렇듯 쌈직하면서도 푸짐하게 술과 밥 내오는 집임을 느껍도록 감지하게 됩니다.무얼 새로 짓고 무엇이 들어설 예정이라며 연일 뻑적지근하게 청사진이 그려지고 있습니다.

 

제가 근무하는 신지도 역시 개발의 희망에 부풀어 있긴 마찬가지입니다.

쌈직하면서도 푸짐해
가든 이니 무슨 당(堂)이니 하지 않고 ‘식당’이라 한 건 바로 그러한 주인 아짐의 속뜻을 갈무리하는 뒷받침의 반석입니다. ‘챌등장터가든’ 하면 상투 꽂고 양복 입은 모양새로 웃을 수도 없는 엇박자가 아닙니까?
딴은 이 섬 또한 사람 사는 곳인지라 격이 있고 층으로 나눠지기도 해서, 이 집에 드나드는 이들은 막걸리 마시길 좋아하는 저 같은 사람이거나 논두렁 밭두렁에서 혹은 축양장과 공사판에서 한숨 짊어지고 사는 분네들이 태반이지요.


“여그 너푸국 잠 양판에다 퍼오시오, 이.”
“염치 없넌 화상 같으니라고. 막걸리 제우(겨우) 너댓 병 퍼묵음서나, 그 귀한 걸……”
“나무칼로 귀딱지를 베어도 몰르것소, 야.”
“입맛은 있어 갔고넌.”
“오늘싸말고 술맛도 땡기네. 막걸리 더 들이고, 군봇무침도 한 접시 더.”
“워매, 저 동상도 입 달고 다닌댜?”
“먼 소리당가. 저 성님이 그리도 맨날 누님집만 가자고 합디다.”
“그러디야. 하이고, 내 다 내오마.”

 

너푸(이하 다른 해초류 역시 학명도 모르고 표준말도 알 수 없으니 여기서 불려지는 대로 표기함)국도 양재기에 퍼옵니다. 군봇무침 한 접시에다 이제는 여간 맛보기 힘든 굴맹이까지 덤으로 딸려 나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오늘 따라 귀한 안주가 여럿입니다. 입살은 매워도 손이 원체 큰 아짐이라 그동안에도 덥석덥석 담아오고는 했었지요. 봄비 내리고 술맛 돋는데 귀한 안주에다 그런 안주마저 푸짐하게 내오는 날 역시 자주 있는 건 아닙니다. 술판에 생기가 돕니다. 보길도와 청산도가 고향인 동료 둘이 너푸와 군봇, 굴맹이 등속에 대해 자분자분 설명합니다.


“굴맹이넌 인자, 여그나 저그나 거으 없제.”
굴맹이는 해파리처럼 생겼으나 거무튀튀한 색을 지닌 연체동물이랍니다. 입에 막 넣으면 약간 쓴 맛이 나지만, 씹으면 씹을수록 나중엔 단기가 입안에서 맴돌지요.
“군봇도 참말 오랜 만에 보넌 맛이여.”
바위 틈새에 붙어사는데 등이 사포같이 까슬까슬하고 딱딱한 껍질로 되어 있는 고동류입니다. 더운 물에 살짝 데쳐서 속살을 빼내어 회무침으로 먹습니다.


“포래 쥑인다고 염산을 얼매나 뿌려붕게 바다 위건 속이건 다 죽어부요, 안.”
“신지는 안즉 괜찮은 것 같더만.”
“아니어라. 보길도 정도 되는 바다먼 몰르까.”
“그리도 나가보먼 방석고동이고, 도치고동 등속이 이상 보이더라고.”
“너푸 사진 찍으러 갔다가 그냥 왔다고 허잖어요.”
“너푸는 청산으서도 인자 좀체 보기 어렵다대.”


시원하고 감칠맛 나는 너푸국! 거무잡잡한 잎이 길쭉하면서도 굵은 너푸는 잎이 토실토실하고 뾰족한 가시리(가사리라고도 부름), 머리카락처럼 잎이 가느다란 세미 등속을 된장 풀어 끓입니다. 궁합 잘 맞는 굴 넣으면 맛이 한층 더 납니다.

 

여기 남쪽 섬 지방에서만 맛볼 수 있는 진국이지요. 바위 맨 윗등에 붙어사는 해초류입니다. 지천이던 것들이 이젠 자취를 감추고 사라져 갑니다. 오염 때문이지요. 너나없이 여간만 아쉬워합니다. 어디 사라지고 잃어버리는 것들이 이것들뿐이겠습니까마는 이런 맛을 잃는 건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지천이던 것들이 사라져
저를 찾아오는 손님들을 모시고 이 집에 갑니다.
지난해에는 우리 학생들의 잔치 마당인 <명사제> 가운데 한 꼭지인 시화전의 여는 마당으로 고재종 시인을 초청하여 문학 강의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뒤풀이 하면서 2차로 이 술집에 갔지요. 교육문예창작회 회원들 또한 지난 겨울 모임을 신지도에서 하며 이 집에서 술을 마시고 밥도 먹었지요. 전주에 사는 친구 이병천, 소설 쓰는 김저운과 최기우 등은 들르지 못해 아쉬워 했답니다. 실상사 도법 스님과 함께 생명평화탁발순례단이 신지도에 곧 오는데 더불어 걷고 있는, 지리산 문수골에 사는 이원규 시인이 오면 1차든, 2차든 이 집에 가려고 합니다.


바닷물 들고 나는 물때 딱 맞아떨어지는 사리 이후에 가면 더 좋습니다. 귀한 안줏감을 영락없이 마련해뒀다가 누구에겐들 시뜻하지 않은 속내로 푸짐하게 술상 봐줍니다. 손 크고 입담 걸쭉하면서 마음 씀씀이 또한 넉넉한 주인 아짐이 차려주는 술상 받으며 거나히 취할 수 있으니 더욱 좋습니다.


오시지요. 한 상, 받아 놓으렵니다!

 


사진 황석선

글 한상준
전북 고창 출생
1994년 「삶, 사회 그리고 문학」 지에
「해리댁의」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작품집으로 <오래된 잉태>가 있음.
현재 교육문예창작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원이며
전남 완도 신지중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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