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가 자주 낍니다. 6월 중순에 접어들자, 더욱 잦고 짙습니다. 부두에 도착해 보니, 동료 서넛이 서성이고 있습니다. 짙은 안개 때문에 완도와 신지도를 오가는 철부선 운항이 제 시간에 이뤄지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앞서 출항했어야 할 시각에 맞춰 배가 떠나지 못했나 봅니다. 배 뜨길 고대하며 저쪽, 가야할 그 섬을 안타까이 바라보고 있더군요.
안개가 많이 끼어 시계가 극히 짧은 날이면, 해양경찰서에서 나와 운항을 통제하기도 합니다. 월요일 아침, 섬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많은 까닭이어선지 통제는 하지 않더군요. 청산도나 보길도처럼 먼 바닷길이 아닌 까닭이기도 합니다.
일요일인 어제 어둠살이 내려앉는 해름부터 안개가 내려앉았다고 합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일요일 오후 해질녘이 지나 섬으로 들어온 동료들도 짙은 안개 때문에 배가 뜰 수 있을까 꽤 염려했다는군요. 배가 뜨지 않으면 완도읍에서 자야 하기 때문이지요. 월요일, 총총한 새벽별을 보며 출근길을 나서는 부담 때문에 일요일에 조금 늦게 들어오는 동료가 여럿입니다. 막배가 밤 11시까지 있습니다. 어쨌거나 먼 거리를 달려온 까닭에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길입니다. 하루 일찍 들어와 그동안 밀쳐둔 이런저런 일을 메지해내야 하는데 차질이 생기는 건 둘째 치고, 낯선 곳에서 스산함마저 깃들어 마음까지 눅눅해질 수 있는 한뎃잠을 자야 하는 부담으로 어깨마저 축 쳐지게 됩니다.
안개와 출항 오전 8시에 출항하는 배를 탑니다. 좀체 걷히지 않는, 온통 허이연 세상을 일궈놓은 안개로 배는 아주 어렵사리 운항합니다. 경적을 계속 울리며 매우 느린 속도로 나아갑니다. 선장이 갑판원들에게 주위를 잘 살피라며 확성기로 연신 지시합니다. 30분 간격으로 세 척의 배가 들고 나고 합니다. 그런데 앞선 배가 회항 시간을 넘겨 아직 들어오지 않아 한 차례 결항하고 그 다음 배가 출항하게 되자 갑판에 차량이 빽빽하게 주차되어 있습니다.
배 안이 좁습니다. 15분 정도 소요되는 거리의 연안을 오가는 철부선인 까닭에 배 또한 그리 크지 않습니다. 오래 되고 낡은 배라서 항로를 자동으로 안내하는 일종의 자동항법장치인 GPS를 장착하지 않은 탓에 나침반이나 육안으로 항로를 찾아 운항합니다. 그래서 이렇듯 안개가 자욱한 날이면 이 항로를 훤히 꿰뚫고 있는 경험 많은 선장도 매우 힘들어합니다. 섬과 섬 사이가 좁고 작은 선박들이 곧잘 오가는 해협이어서 더욱 위험하다는군요.
아주 드문 일이긴 하지만 배끼리 충돌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대개는 오늘처럼 안개 낀 날에 일어나기 때문에 사람들이 차 안에 가만히 있지 못하고 갑판에 나와 불안한 눈길로 안개가 자욱한 바다 이쪽과 저쪽을 혹은 괜스레 하늘과 바다를 번갈아 둘러봅니다.
저도 차문을 열고 나와 갑판에 섭니다. 뱃머리에서 갑판원이 소리소리 지릅니다. 우측에 동해 5호가 가까이 있다고 선장에게 고래고래 큰 소리로 알립니다. 안개 저쪽에서 경적 소리가 들립니다. 지척인데도 육안으로는 볼 수 없습니다. 배가 멈춥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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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측에 있다는 동해 5호를 찾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자동차와 달리 우현과 좌현의 동선이 매우 크고 전진과 후진이 짧은 시간 안에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충돌사고의 위험으로부터 급박한 대처가 참으로 어렵지요. 애초에 그런 경우의 수를 만들어서는 안됩니다.
배가 멈추었다 다시 서서히 움직입니다. 아주 가까운 50여 미터 저쪽에 다시마 양식장 사이로 뱃머리를 잘못 돌린, 앞서 항구를 떠났던 철부선이 보입니다. 갑판원이 말한 동해 5호입니다. 그 배는 신지도를 출발해 완도 읍에 도착어야 할 회항선이었습니다. 신지도를 바로 코앞에 두고도 접안할 선창을 찾지 못해 갈팡질팡 헤매고 있는 중이더군요. 뱃머리는 완도 읍 쪽을 향해 있습니다. 제가 타고 온 배 뒤를 따라 겨우 항로를 찾아 접안했다 동시에 뭍으로 떠났습니다.
배에서 내려 차창 밖 바다를 잠시 되돌아봅니다. “참말, 오리무중이네…….” 하고 뇌까려봅니다. 오리무중 하다가 퍼뜩 시 한 편 떠올립니다. 서정춘 시인의 시지요. 안개 속을 헤매는 연안의 짧은 항해지만, 일주일 동안 먹을 양식을 싣고 섬으로 들어가는 저의 마음속에 여름의 아침 바다가 참으로 오리무중으로 느껴지는 탓입니다. 안개 짙은 바다에서의 작은 조각배가 애틋한 편린으로 닿습니다.
여기서부터, ─멀다 칸칸마다 밤이 깊은 푸른 기차를 타고 대꽃이 피는 마을까지 백년이 걸린다. 「竹篇?1 -여행」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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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짙은 바다에 작은 조각배 사람 사는 곳 어딘들 크게 다를 무엇이 그리 있겠습니까만, 섬에서 맞는 여름이 자못 기대됩니다. 몇 가지 예약해 둔 계획이 있어 더욱 그렇습니다. 7월 초부터 멸치잡이가 시작되는데, 그 멸치잡이 배를 한번 타기로 했거든요. 밤중에 어두운 바다에서 하는 작업일 뿐 아니라 생업에 지장을 초래할 게 뻔한지라 태워주겠다는 약속을 받아내는데 꽤 공을 들였지요.
또한 장마가 오기 전에 무인도에 가서 고기 잡고, 고기 굽고, 술판 한 번 벌이자는 약속까지 해두었습니다. 이만하면 섬에서의 여름살이가 만만치 않으리라 여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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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은 섬에서 여름을 지내는 게 처음입니다. 교직의 첫 발을 디딘 곳이 바닷가이긴 했었지요. 그때는 뭐가 그리 바쁘고 여유가 없었는지 모릅니다. 바닷가에 나가 거닐 생각은 별로 없었습니다. 학교 울타리 안에서 아이들과 웃고 떠들고 노느라 바빴습니다.
그러다 5.18을 겪은 뒤에 부끄러워 머리를 박박 밀고, 아이들과 어울리면서도 열병을 앓았지요. 어느 날부터 동료들과도 어울리지 않고 때때로 서로 다른 교육적 관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면서 험한 말까지 오가며 힘겹게 다투느라 바닷바람 쐬며 누릴 수 있는 넉넉한 풍요를 만끽할 여유가 별반 없었던 듯합니다. 지난하지 않은 삶이란 없지만 돌이켜 보면 제 경우라서 그런 지 참 힘들었던 날들이 많았습니다.
이제야 서서히 주위가 보이는 건 아직도 멀었다는 반증이긴 할 터이지만, 어쨌거나 이제는 잔잔하고 숙정하면서도 생동감 넘치는 풍경이 조금씩 가슴에 박힙니다. 주위 풍광에 눈길을 돌리며 눈길 돌려 마주치는 그 아련한 풍경 속에 마음을 살포시 얹어놓고, 그네들 형편에 맞춰 숨쉴 수 있는 풋풋함이 조금이나마 생겨서 그런가 봅니다.
풍경 속에 마음을 살포시 얹고 들녘에 나가면 전에는 보이지 않던 여러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아침 산책길에 만난 고라니 새끼의 놀란 뜀박질을 한참 바라보면서 ‘후훗’ 웃습니다. 전과는 달리 살아 펄떡이는 짐승을 보는 즐거움을 느낍니다. 밭에서 일하는 노인에게 곧잘 말을 건넵니다.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처럼 허물없이 몇 마디 나눕니다.
이랑에 낮게 웅크리고 일하는 노인의 구부러진 허리춤에 맞춰 저 또한 쪼그리고 앉습니다. 한 손으론 연신 콩을 심으면서도 노인 역시 낯선 사람에게 스스럼없이 대꾸해 줍니다. 한참 이런저런 이야기를 콩 심는 손길 따라가며 나누다,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 하며 인사를 나눕니다. ‘하이고, 이냥 쉽게 죽으야제.’ 등 뒤로 되돌아오는 노인의 말씀은 그렇습니다만 ‘그래 그래야지, 자식들에게 짐 되지 않게 살다 한 세상 접어야지.’ 하는 속내를 감추지 않습니다.
명사십리 끄트머리 마을인 울몰 가는 길의 오른쪽에 신지도에서는 가장 너른 들이 있습니다. 굳이 붙이자면 신지평야라 부를 수 있는 들판이지요. 모내기를 거의 마친 들녘이 푸릇푸릇 참 싱그럽습니다. 넓은 들녘 귀퉁이 쪽 논에서 이 들판의 마지막 모내기가 이뤄지려나 봅니다. 뭍은 이모작 모내기가 한창이라는데 여긴 이모작 모내기도 끝물입니다. 아내는 트럭 짐칸에서 모판을 내리고 남편은 내린 모판을 이앙기에 옮깁니다. 논일하기에 맞춤인 옷차림을 한 중년의 부부가 말없이 손발을 척척 맞춥니다. 보기에 참 좋습니다. 명사십리 바닷가 뒤쪽의 2차선 도로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죽은 송장 손이라도 빌린다는 농사철도 이제 서서히 막판에 접어들었지만 바다 일은 여전히 분주합니다. 2차선 도로에 접어들어서야 섬에서만 볼 수 있는 여름 풍경을 만나게 됩니다. 인도와 한쪽 차선을 침범하여 다시마와 톳을 말리느라 매우 부산합니다.
아침 일찍 작업을 마쳐야 합니다. 좋은 햇볕에 쨍쨍 말려 해가 함지 쪽으로 기울기 전에 빳빳하게 마른 다시마를 묶어서 공판장에 내야 합니다. 가공공장에도 보내야 합니다. 그래야 돈을 살 수 있습니다. 3월에 첫물 따고 두 번째 따는 6월 톳은 야물게 말려야 합니다.
된장국에 넣거나 갈아서 조미료로 쓰는 까닭에 며칠을 두고 말립니다. 잘 말린 톳을 마대에 담아 시장에 내거나 수집상에게 넘깁니다. 일손 모두 노인네들뿐입니다. 그나마 돈을 사야 손자들에게 용돈이라도 부칠 수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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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래밭 뒤쪽 길을 거쳐 명사장 모래밭으로 돌아 나옵니다. 신지의 가장 넓은 들녘과 다시 마주하게 됩니다. 들녘을 건네 봅니다. 넉넉하고 풍요롭습니다. 또 한번 시 한 편이 퍼뜩 생각납니다. 아주 고운 동시를 쓰다가 이승을 서둘러 뜨신 임길택 시인의 시입니다. 저 들판에서 곧 들릴 소리지요.
어두울 때면 서로의 목소리로 길이 되자 하고 달이 뜨면 서로서로의 목소리로 꿈이 되자 하고 「개구리」 전문
사진 황석선 글 한상준 전북 고창 출생 1994년 「삶, 사회 그리고 문학」 지에 「해리댁의」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작품집으로 <오래된 잉태>가 있음. 현재 교육문예창작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원이며 전남 완도 신지중학교 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