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인물/칼럼/인터뷰/희망을 말하다 (30)
함께쓰는 민주주의
세계인으로 산다는 것 “「베트남 신부 절대 도망가지 않습니다」 고발당한 현수막” 어느 일간 신문의 1면 머리기사 가운데 하나다. 요즘 도시를 벗어난 한적한 도로나 시골길 등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펼침막 광고내용. 선전 문구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나라는 언제부턴가 아주 자연스럽게 외국에서 신부를 수입하는 나라가 되었다. 그런데 그것이 문제가 있었나 보다. 수입된 신부들은 자주 도망을 갔고 그로인해 그들을 데려온 한국 신랑들이 손해를 본 모양이다. 그러니 이번에는 그런 위험이 없는 믿을만한 나라의 신부를 대대적으로 소개하는 것이리라. 이 정도면 글로벌 시대의 세계시민이 가져본 퍽 인간적인 뜻풀이일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때 이른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6월 14일, 나는 『희망세상』의 취재를..
그때 그 거리 한복판에 나타난 넥타이 부대 - 남을우 야만의 시간 이십 년 전 오늘은 대학생 박종철이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가 물고문에 의해 살해된 사건으로 국민의 분노가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광주학살, 고문치사 등 살인도 서슴지 않는 야만적인 정권에 대한 분노가 국민들의 가슴속에 끝없이 들끓었다. 무자비한 탄압에 움츠러들었던 민주화 열기가 다시 고조되었고, 이번에는 너나없이 모두 하나가 되어 거리에 뛰쳐나왔다. 인도와 차도를 메운 시위대가 거대한 물결처럼 움직였다. 땅 위에서는 최루탄과 방패와 곤봉이 함성과 엉켰고, 공중에선 박수와 꽃가루와 염원이 하늘을 뒤덮었다. 호헌철폐! 독재타도! 진압경찰과 체포조 백골단이 피에 굶주린 이리떼처럼 학생들을 뒤쫓았다. 그러나 시민들은 쫓기는 학생들을..
‘오디세우스’의 귀환 1993년 5월, 윤한봉이 귀국했을 때 공항에 몰려든 기자들은 일제히 그를 향해 카메라 플래시를 터트렸다. 5·18민중항쟁의 마지막 수배자, 35일 동안의 밀항, 한국인 정치 망명객 1호, 재미동포를 대상으로 한 ‘민족학교’와 ‘재미한국청년연합’ 활동…….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그의 인생역정은 실로 같은 데서나 소개될 법한 것이었고, 거기에 그의 망명과 미국 생활에 얽힌 전설 같은 일화들이 보태지면서 사람들의 눈과 귀는 12년 만에 귀환한 이 ‘오디세우스’에게 쏠렸다. 다른 많은 운동권 인사들처럼, 이후 그의 행보가 5·18민중항쟁기념 행사장의 상석을 차지하고, 정치권을 기웃거리며 악수 퍼레이드를 벌이고, 대화와 타협과 상생의 21세기를 강조하는 강연으로 이어졌다면 어쩌면 그를 ..
지금 어디 포기한 사람이 있어요? ‘희망’을 묻기 어려운 세상이다. 집, 일자리, 노후, 자녀교육……. 뭐 하나 녹록한 것이 없다. 600년 만에 찾아온 황금돼지해는 밝았으되, 올해도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살림살이를 면치 못할 듯싶다. 이러니 자식들 앞에서 ‘미래’며 ‘희망’을 말하기가 영 궁색스럽다. 신이 난 것은 정치인들과 황금돼지 저금통 장사꾼들이다. 텔레비전에서는 대선을 앞둔 정치인들의 이합과 집산이 한창이다. 그래, 텔레비전 밖 무지렁이들에게 ‘희망’이라니, 가당키나 한 소린가. “그래도 희망은 있어요.” 나이 든 소녀 하나가 조용히 눈을 빛낸다. 수줍으나 단호한 음성이다. 늘씬한 키에 단정하고 검소한 매무새가 학 같다. “억압을 받거나 차별을 받거나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포기하지..
민족의 길, 예술의 길 언젠가 시인 김지하는 예술이란 ‘기록이라는 이름의 기억행위’라고 말했다. 우리가 삶을 돌아볼 때 제일 큰 게 ‘모르는 것’이 아니고 ‘잊음’이며, 또 예술에 있어서는 긴장이 흐트러질 때가 잊음이라고 했다. 우리는 오늘 왜 살고 있는 것인가. 때때로 우리는 삶의 이상, 삶의 뜻을 망각하고 살지 않는가. 삶 속에서 지혜를 잊고 예술에서 긴장과 창조적 상상력을 잃는다면 세상이 얼마나 어둡고 메마르겠는가. 설을 앞둔 지난달 15일(목), 『희망세상』 취재진은 국립현대미술관을 찾았다. 오랜 세월 제도권 밖에서 독재에 저항하며 민주화운동과 문화운동 그리고 후학을 가르쳐온 김윤수 선생이 이제 일흔을 넘긴 노구를 이끌고 그곳에서 한국 현대미술의 작품과 자료를 수집·보존과 전시, 조사·연구와 국제..
1980년 10월 27일 새벽 4시, 12·12쿠데타 군부는 전국 주요 사찰에 계엄군을 투입해 스님과 재가 신도들을 강제로 연행했다. 군부는 그날 이후 며칠에 걸쳐 전국 3천여 곳의 사찰에 진입했는데, 그때 낙산사 원철 스님이 사망하고 송월주 스님(전 조계종 총무원장) 이하 승려와 관련 민간인 55명을 연행, 98명의 참고인을 불러 모두 153명을 조사하여 그 가운데 승려 10명, 민간인 8명을 구속하고 32명은 불교정화중흥회의에 회부시켜 승적박탈, 또는 종직사퇴토록 위임했다. 이른바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가 그들의 권력장악에 호의를 보내지 않던 불교계를 향해 ‘범법자 색출과 불교정화’라는 우스꽝스런 명분을 앞세워 무자비하게 군홧발로 짓밟은 1980년 10·27법난이다. 당시 계엄군에 끌려간 스님들..
우리 민족은 근·현대를 거치면서 크게 두 번 역사의 실패를 경험했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강대국의 지배를 받았고 그도 모자라 민족이 분단되었다. 20세기 내내 억압과 갈등구조가 재생산되었던 우리 사회가 이제 분단 60년을 지나 21세기의 문턱을 넘은지 여러 해.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분단을 극복하지 못했고 정치·경제·문화의 완전한 민주주의를 확보하지 못했다. 미군기지 이전문제로 촉발된 평택 대추리 농민들의 아픔과, 민의의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끝내 사회적 약자 계층의 피눈물을 강요하는 한미자유무역협정(FTA) 그리고 신자유주의의 독주 그늘에서 희망을 잃어가는 절대 다수 경제적 빈곤층의 신음이 계속되는 오늘. 우리 민족은 다름없이 그 미망(迷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희망세상』은 2007년 새..
“비정규직 보호입법은 비정규직의 남용과 차별을 막기 위한 것이지만 너무 지나치게 보호를 하다보면 오히려 사용자들이 비정규직 채용을 꺼리게 될 수 있다.”(이상수 노동부장관) “노동계의 주장대로 사유제한을 하게 되면 중소기업이 감내할 수 없다. 그럴 경우 중소기업에 큰 부담이 되어 오히려 대규모 실업사태가 올 수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사유제한을 받아들일 수 없다.”(우원식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장) “이미 민주노동당은 기간제 사유제한 도입 시 중소기업들이 받을 충격을 감안해서 사유제한의 폭을 넓힐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중소기업이 받을 충격을 걱정해 기간제 사유제한을 수용할 수 없다는 정부여당의 입장은 ‘어렵고 힘든 사람끼리 윗돌 뽑아서 아래 돌 채우자는 것’이다.”(단병호 민주노동당 의원..
지난달 3일, 미군기지 이전 예정지인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 대추초등학교 운동장에 트랙터를 앞세우고 팽성읍 주민들과 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 범국민대책위원회(평택대책위)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트랙터에는 ‘식량주권 사수’ ‘평택 미군기지 확장 반대’라고 적힌 깃발이 펄럭였다. 이들은 ‘토지 강제수용 절대 반대’와 ‘미군기지 확장 결사 반대’를 위해 11박 12일의 전국 순례를 떠나는 이었다. 농사짓는 일밖에 모르던 농민들이 농기계인 트랙터를 몰고 논두렁이 아닌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길을 나선 것이다. 평택에서는 땅을 지키려는 사람들의 힘든 싸움이 계속되고 있다. 미국의 ‘해외주둔 미군 재배치 계획(Global Posture Review, GPR)’에 따라 한강 이북의 서울 용산 주한미군 사령부와 의정부 일대의 ..
유엔 회원국으로서 전후 이라크의 신속한 평화정착과 재건을 지원하는 국제적 연대(連帶)에 동참함으로써 세계평화에 기여함은 물론, 이라크 정부의 요청, 다국적군과의 관계, 한·미 동맹관계 및 파병효과 제고 등을 고려하여 이라크에 파견된 국군 평화·재건지원부대의 파견기간을 1년 연장하려는 것임. (‘국군부대의 이라크 파견연장 동의안’ 제안이유, 2005.11.23.) 2003년 3월 20일, 미국과 동맹국인 영국, 오스트레 일리아 등 3개국으로 구성된 연합국은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WMA) 보유와 알케에다와의 연관성 등의 명분을 내세워 이라크를 침공했다. 다음날인 3월 21일, 노무현 대통령은 예정에 없던 임시국무회의를 소집하여 ‘국군부대의 이라크 전쟁 파견 동의안’을 가결해 국회에 회부했다. 국회 국방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