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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이야기/풀뿌리 운동 현장을 가다

버마에 민주화를, 버마행동 한국(Burma Action Korea)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09. 1. 16. 14:26

매주 화요일 정오, 서울 종로 제일은행 건물 앞에서 ‘프리 버마 캠페인(Free Burma Champaign(Korea))’이 펼쳐진다. 현수막에는 ‘버마에 자유를, 버마에 민주주의를, 버마에 평화를’이라는 글씨가 적혀있다. 이 캠페인은 군부독재 하에서 고통 받고 있는 버마의 실상을 한국 사회에 알리고 버마의 조속한 민주화와 한국 정부의 정책적 결단을 촉구하기 위한 것이다. 여기에는 버마의 민주화를 위해 활동하는 버마민족민주동맹(NLD) 한국지부, 버마행동 등 버마인 단체와 한국의 시민사회단체가 함께 참여하고 있다.
영국과 일본의 식민 통치를 겪었고, 독립 후 군사쿠데타로 군부정권이 수립된 나라. 1988년 8월 8일 대규모 반정부 민주화 시위가 발생했으나 군부의 무력진압으로 약 1만여 명의 국민이 살해당한 나라.
언뜻 살펴보더라도 우리와 비슷한 역사적 경험을 가지고 있는 나라, 버마다. 우리는 버마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아웅산묘소폭파암살사건과 가택 연금 중인 아웅산 수지 정도? 조금 더 관심을 기울였다면 김대중 전 대통령이 아웅산 수지 여사의 연금 해제 촉구와 ‘미얀마 민주화 캠페인’에 동참하기 위해 주한 미얀마대사관에 방문비자를 신청했으나 거부당했다는 것과 대우인터내셔널이 포탄 생산설비와 기술을 불법으로 수출한 혐의로 검찰에 적발됐다는 사실 정도일 것이다.

버마인들은 왜 먼 이국땅에서 조국의 민주화를 위해 청춘을 바치고 있는가. 그리고 그들에게 민주화를 먼저 성취한 한국은 어떻게 인식되고 있는가.

버마? 미얀마?

 

현재 버마의 정식 국명은 미얀마연방이다. 하지만 버마의 민주화를 위해 싸우고 있는 사람들은 이를 부정하고 버마라는 국명을 고수하고 있다. 미얀마라는 국명은 1988년 8월 8일에 발생했던 이른바 8888민중항쟁을 유혈 진압한 군부가 인권탄압국이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일방적으로 바꾼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조국 버마의 군부독재를 끝장내고 민주국가의 건설을 통해 고통 받고 있는 버마 민중들의 진정한 인권을 쟁취하기 위하여 노동하며 투쟁하는 버마 이주노동자들로 구성된 단체’인 버마행동 한국(Burma Action Korea)의 우 뚜라(U THURA, 35) 대표를 만났다.

 
“2003년 한국 정부가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을 추방하겠다는 방침에 공동체 활동을 하던 단체들이 농성에 돌입했고, 제가 농성장 대표를 맡았어요. 그때 함께 농성하던 친구들과 이주노동자, 버마의 민주화 문제에 대해 고민을 나누면서 좀 더 적극적인 민주화 단체를 만들자, 해서 만든 것이 버마행동 한국입니다.”
웬만한 한국 사람보다 한국말을 더 잘하는 뚜라 씨는 1994년 산업연수생으로 한국에 와서 아직 돌아가지 못했다. 그는 현재 비자가 없으며, 난민 신청을 해 놓은 상태다.
“학생운동을 하다 졸업 후 아버지 회사에서 일을 했어요. 당시 버마 정부와 아웅산 수지 여사 사이에 대화가 오가면서 1~2년 후면 정치적 해결이 될 것 같다는 희망이 보였죠. 그사이 좀 더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한국의 산업연수생 제도를 알게 됐습니다. 기술도 배우고 돈도 벌고 좋을 것 같았어요. 그런데 버마의 상황이 악화되면서 못 돌아갔어요. 버마가 민주화되면 돌아가려 했는데 아직도 돌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버마 민주화를 위한 움직임

 

버마행동 한국은 버마의 상황을 국제사회에 알리는 일, 한국 내 버마인들을 조직해서 함께 할 수 있는 일 만들기, 버마 내 활동가들을 양성하고 지원하는 일 등을 하고 있다. 민주화운동, 인권, 타국의 민주화운동, 주민운동, 조직운동 등에 대해 스스로 공부해서 인식을 높여야 한다는 생각에 한국에 있는 버마인을 위한 교육과 세미나 등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달 미얀마 정부에 모든 정치범의 석방과 민주개혁, 소수민족 탄압 중단 등을 요구하는 미국 측 유엔 결의안이 유엔 안보리에서 중국과 러시아, 남아공의 반대로 통과되지 못했다. 이런 국제사회의 노력에 대해 물어봤다.
“유엔 등 해외세력은 중심이 아니고 단지 버마 내 활동가가 덜 피해보게 하는 것일 뿐입니다. 버마 국내 활동가의 생각과 활동이 중요해요.
지금 버마에서는 ‘국민들의 목소리’ 운동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하고 싶은 말, 가슴 속에 있는 이야기를 편지로 써서 언론과 정부에 알리는, 즉 자기의 목소리와 의견을 표현하는 거죠.
이런 움직임이 후에 이들을 거리에 나설 수 있게 할 겁니다. 지금은 힘을 모으는 단계입니다.”

버마 내 활동가들과의 연락은 전화나 혹은 중간 매개를 거쳐서 이루어진다고 한다. 다른 사람이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는 알려지지 않는데, 한 사람이 잡히면 애써 쌓은 네트워크가 무너지기 때문에 내가 하는 일은 본인만 안단다. 예전 우리가 민주화 투쟁을 하던 때와 똑같다. 한국과 유사한 역사적 경험을 겪고 있기에 더더욱 한국 정부에 거는 기대가 남다를 것 같았다.


아시아의 민주주의를 위한 한국의 역할

 

“예전엔 한국 정부에 대해 기대가 컸으나 지금은 없어요. 오랫동안 기대해 왔는데 안 도와주니까. 한국은 아시아의 인권과 민주화를 위해 많은 일을 해야 합니다. 버마에 한국을 비롯한 다국적 기업들이 있는데, 이익을 위한 자본 활동도 좋지만 버마 국민을 피땀 흘리게 하면서까지 한국의 이익을 얻어야 하는지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버마 민주화 활동가들은 한국에 대해 과대평가하고 있고 한국의 민주화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일본이 더 선진국이지만, 일본보다는 한국이 우리와 같은 처지의 나라이고, 우리를 좀 더 이해하고 동지애를 느낄 것 같다는 생각에 함께 하고 동지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는 거죠.
한국에 민주화와 인권을 위한 활동이 많지만, 멋으로만 보이는 일이 아니라 실제 민주화 활동에 필요한 일을 찾아서 같이 했으면 좋겠어요. 버마 민주화를 위해서는 버마 국민들이 일어날 수 있도록 계획을 세우고 행동을 하고 뜻을 같이할 사람과 돈이 필요합니다.
한국은 미국을 욕하면서 미국이 하는 짓을 똑같이 따라 해요. 대우 문제도 그렇고.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 거는 기대도 큽니다. 기념사업회가 민주화운동을 기념하는 사업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지켜나가는 일, 민주주의를 새로 만드는 일에 힘을 썼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부끄러운 우리의 모습

 

버마는 44년째 군부독재정권의 비민주적 통치체제와 극심한 인권탄압으로 고통 받고 있다. 인권단체에 따르면 군부정권에 반대하거나 민주화운동으로 투옥된 정치범의 숫자가 1,300여 명을 넘는다고 한다.
그들보다 먼저 군부독재정권에 대항해 민주주의를 쟁취한 우리가, 그들을 총칼로 탄압하는 군부정권에 불법으로 무기를 수출해 반민주적인 독재정권을 도와준 셈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지난해 9월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에 참석한 노무현 대통령은 미얀마 인권문제에 간여할 의사가 없음을 밝혔다.

 

우리는 투철하고 치열했던 민주화운동을 통해 세계에 유례가 없는 민주주의 발전을 이룩한 국가라고 자부한다. 그리고 이제는 우리를 넘어 아시아와 세계의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가 독재정권에 탄압받았을 때 해외의 많은 국가와 단체, 사람들이 한국의 민주화운동을 지지하며 함께 했고, 우리는 이를 기억하고 감사해한다.
이제 더 늦기 전에 우리가 말과 생각뿐이 아닌 행동과 실천으로 아시아 국가들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부끄럽지 않은 세계시민으로서의 역할에 나서야 할 때이다.

 

 

글 이수원 사진 황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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