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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이야기/풀뿌리 운동 현장을 가다

"연대의 세계화를 상상하라" 경계를 넘어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09. 1. 21. 15:31


세계감성지수가 필요하다

 

경계를 넘어 책임자인 미니(35세)를 만나기 위해 약간 복잡한 북아현동 골목길을 올라갔다. 신라수퍼를 지나고 은혜미용실을 지나자 오래된 골목들과 뒤섞여 있는 컴퓨터 크리닝 세탁소가 나왔다. 그 맞은편이 사무실이었다. 1층에 있는 사무실은 사방이 트인 조용한 공간이었다.
“한국은 명백히 인종주의 사회입니다.” 미니는 제법 강한 톤으로 대화를 시작했다. “우리나라에 흑인 영어교사가 있나요? 대부분 백인뿐입니다. 흑인을 원하지 않는 거죠. 백인은 흑인보다 친절하고 성격도 좋고 영어를 잘 할 거라 생각해요. 골목을 가다가도 백인을 만나면 영어로 말 시킬까봐 피하죠. 독일 사람일 수도 있는데 말이죠. 흑인을 만나면 두려움과 불쾌감을 느낍니다.”
그는 한국사람 무의식 안에 깊게 박혀있는 인종주의를 예민하게 건드린다. “방글라데시 사람이나 인도네시아 사람들을 보면 무조건 무시하죠. 한국보다 못 산다고. 우리가 경제적으로 좀 낫다고 무시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운동이 성장하고 시민들이 민주주의에 대한 의식이 성장했음에도 세계인과 연대 의식은 매우 낮은 모습에 그는 많은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었다. 이번에 광주항쟁 기념식이 있었는데 진정한 기념식이라면 광주보다 더 많은, 수 십 만 명의 사람들이 죽어간 이라크에 대한 전쟁 중지를 요구했어야 한다. 광주 기념행사에 이라크인에게 애도를 표하고 연대를 행한 집단은 없었다. 거기에 대해서도 그는 한마디 한다. “이것은 운동 차원에서 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라고 포함되는 사람과 우리가 아닌 사람들을 구별하는 잘못된 사고방식을요.”
경계를 넘어 홈페이지에 보면 지은이라는 활동가의 글이 있다. 그는 국제운동을 하면서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가, 고민한다.
“FTA에 대해 철저한 손익계산이 필요하다, 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국가의 문턱을 넘어서는 이슈가 등장 할 때마다 경제적 이익에 대한 계산이 앞서는 우리의 모습은 자기 이익의 이해관계 수준을 넘지 못하는 배타적인 것이다. 진보진영조차 국익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철저한 손익계산보다는 전 지구적으로 장악하고 있는 일방적인 힘의 질서를 거부하고 바꾸어 가기 위해 누구와 연대하여 삶을 나눌 것인가,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는 국가 이익의 틀을 벗어나는 세계감성지수를 지닌 새로운 운동방식을 제기한다.
그의 말을 들으면서 이제 우리가 고민해야 할 ‘새로운 영역’에 들어섰음을 느낀다. ‘민족, 국가, 종교, 권력’의 경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감수성을 지닌 인간을 꿈꾸는 것이다. 국가를 위해 죽고 죽이는 일이 없고, 그런 종교도 없는, 소유로 삶을 파괴하여 굶주리는 것도 없는 그런 세계. 자본과 폭력이 만드는 절망의 세계를 연대의 세계화가 만드는 희망의 세계, 그것을 상상하는 것이다.

알자지라 방송국을 꿈꾸다

 

“세계지도를 펴놓고 세계를 들여다봅니다. 쿠바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 수단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 소식을 접하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그 정보라는 것이 주요 언론 매체 수준이고 여행자들 시선의 수준입니다.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국제연대정보운동’을 생각했습니다. 현장의 정보를 생산하고 교류하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진실된 시선’을 더 소중히 여기는 정보연대를 사고한 것입니다.
또 하나는 국제연대운동의 왜곡된 지형에 대한 성찰입니다. 운동이 양적으로 팽창하다 보니 국제연대 활동이 많아졌습니다. 그런데 대부분 국제회의 참석이 주여서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는데 한계가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국제연대가 특정한 국제통에 의해 권력화되는 면까지 있었어요.”

 

수준 높은 국제연대와 수평적인 정보의 생산과 교류를 위해 미니, 수진, 최재훈 씨 등 몇 명이 모여 ‘경계를 넘어’를 만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들의 홈페이지는 웹진의 형태를 띠고 있다. 현장에서 일어나는 국제적인 사건들을 생생하게 보도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정보라는 게 역사가 쌓여야 깊이가 있어진다. 아직은 국제적인 문제에 관심을 갖고 활동하는 사람들의 수가 그렇게 많지 않고 무엇보다 현장 활동가들을 장기간 파견할 수 있는 재정이 넉넉하지 않다. 현장 활동의 지속성이 담보해주는 내용의 깊이와 각국 현지 사람들의 생동적인 삶을 아직은 만족할 만큼 보도하고 있지 못하는 것이다. 지금은 단체, 언론이 만들어 내는 것을 중간에서 전달하는 내용이 많다.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라디오 방송을 통해 사람들이 국제연대와 가까이 할 수 있는 세계 뉴스, 인터뷰, 세계 음악 프로그램을 만들어내고, 컬럼을 통해 다양한 시선들을 만들고, 블로그를 통해 많은 현장의 회원들과 교류하고 있다. “언젠가는 세계 각 나라에 ‘경계를 넘어’ 현장조직을 만들어내고 알자지라 같은 방송국을 만들 수 있기를 바라죠.” 경계를 넘어 방송을 이끌고 있는 미니는 웃으면서 가슴 속에 있는 희망을 밝힌다.

진실된 시선

 

경계를 넘어 활동가 최재훈 씨는 국제인권을 다룬 자신의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들(세계 사람들)의 어제가 우리의 어제와 어떻게 닮아있고 어떤 점이 다르며 오늘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이며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끊임없이 상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는 나이지리아 남부 유전지대인 니제르델타 지역의 포트 하커트항 주변 한국인 대우 건설노동자 5명이 무장단체에 납치된 사건을 다뤘다. 무장단체라 하면 무시무시하지만 대부분 그 지역주민이었던 어부들이었다. ‘석유개발로 삶의 터전은 엉망이 됐지만 흰 코끼리(다국적 석유자본과 정부관료)들은 날로 살찐다.’고 그들은 말한다. 니제르 델타 지역, 하면 이제는 석유로 대표 하는 곳이 되었지만 거기서 사는 사람들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가난하다. 매일 1억 6천 달러어치의 석유가 생산되지만 주민들 70%는 1달러미만으로 생활하고 있다. 석유생산으로 전에 풍요로웠던 고기잡이도 다 파괴되었다. 미국은 이곳에서 중동보다 더 많은 원유를 수입하고 있다. 대우노동자들은 다국적 자본 석유회사에 소속되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어민들에게는 대우건설 노동자들이 자신들을 착취한 사람들과 같은 집단으로 보인 것이다.

 



언젠가는 알자지라 같은 방송국을 만들 수 있기를 바라는 미니

최재훈 씨는 이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한 ‘납치’는 반복될 수밖에 없음을 밝혔다. 그의 글은 경제적 이익과 국제적 연대 사이에 놓여 있는 복잡한 우리들의 감정을 건든다. 한국 노동자를 납치한 것에 분노할 것인가, 아니면 대우건설자본을 철수 시키고 다국적 석유자본에 맞서 항의할 것인가, 경제적 이익이 되니 무의식적으로 회피하고 방관할 것인가. 우리들의 세계감성지수는 얼마인가 물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이런 감성과 국제적인 상상력을 자극시켜주는 것을 지향하는 게 경계 넘어의 글들이다.

새로운 형태의 국제연대

 

미니가 팔레스타인에 갔을 때 그 나라 사람들은 경제적으로 어려우니까 도와달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 대신 그들은 ‘당신이 본대로 한국 사람들에게 우리 이야기를 들려 달라’고 했다. 경제적 지원을 논할 때도 ‘시혜와 동정’을 원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이 노동한 것을 팔아서 마련하기를 원했다. 두레생협에서 민중교역으로 팔레스타인 올리브유와 필리핀산 마스코바도 설탕을 팔고 있는데 경계를 넘어에서도 이것을 받아서 팔고 있다. 지금 필리핀 농민 5~6명이 한국에 와서 전국을 돌아다니고 있다. “물건이 오고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람이 오고가는 것이 좋아요. 자신들의 물건을 직접 도시소비자들에게 설명하면서 자신들의 이야기도 들려줘요.” 평범한 주부들은 물건을 사면서 TV에서 나오는 그들의 이야기와는 다른 세계를 접할 것이다. 이제 쉽게 비난하지 않을 것이며 관심을 가질 것이다.
미니랑 대화를 하고 있는데 선하고 순박한 사람이 들어왔다. 경계를 넘어와 연대를 하고 있는 줌머인 로넬(40세) 씨였다. 경계를 넘어는 이라크, 팔레스타인, 미얀마, 필리핀, 웨스트 파푸아 등 많은 지역사람들과 연대를 맺어 활동을 함께하고 있었다. 줌머인은 방글라데시 치타공 산악지대에 사는 소수민족인데 정부로부터 탄압을 심하게 받고 있다. 그들은 방글라데시 인구의 98%를 차지하고 있는 벵갈인과 언어와 문화, 종교가 매우 다르다.
로넬 씨는 줌머인들이 매우 사랑스런 민족이라고 했다. 줌머인 안에는 챠크마족이 있는데 그들은 남녀가 부정행위를 했을 때 돼지 한 마리를 내서 마을 사람들을 먹여준다. 그러면 어떤 사람들은 ‘남녀가 부정행위를 했는데 왜 돼지가 수고해야 되는가’ 하면서 웃는다. 인간의 자그마한 실수는 자본주의 사회처럼 살벌하게 감옥으로 보내는 대신 마을회의에서 결정해 부정행위한 사람들을 부끄럽게 만들어 다음에는 그런 행위를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동안 그들은 자치권을 누려왔는데 방글라데시 정부에서 벵갈인들을 강제로 이주하여 목축을 하게하고 땅을 빼앗고, 13차례의 대학살을 감행하고, 여성들을 집단강간 했다.
“이제 줌머인들은 더 이상 아름다운 민족으로 남아있지 않아요. 생존을 위해 우리들은 강력한 민족주의를 가지고 방글라데시와 싸우는 민족이 되어버렸어요.” 로넬 씨는 말한다. 줌머인들은 현재 ‘재한 줌머인 연대’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고, 경계를 넘어는 그들과 함께 1인 시위, 스머르렁카르 스님 초청 강의를 듣고, 한국의 설과 같은 4월축제를 함께 하면서 일상으로 결합하는 정서적 연대를 맺고 있다.
미니는 마지막으로 국제연대의 가장 성숙한 형태는 국내연대라는 아주 마음에 다가 오는 말을 한다. 일반 시민들이 이주노동자들과 함께하고, 지하철노조가 청소하는 아주머니들을 끌어안고, 젊은 친구들이 핸드폰이나 연예인 대신 절망에 빠진 농민들을 껴안고, 평범한 주부가 자신의 집값 오르는 것에 만족하는 대신 집을 마련할 수 없는 사람들의 권리를 위해 함께 싸울 때, 그것을 기초로 참다운 형태의 세계연대가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글 김순천 | timeksc@hanmail.net
르포문학, 청계천 사람들 삶의 기록 『마지막 공간』과 세계화 시대
비정규직 사람들의 이야기 『부서진 미래』 의 책임 저자
사진 · 황석선 | stonesok@kdemo.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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