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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가야 할 우리의 아이들, 새터민 대안학교 '셋넷학교' 본문

희망이야기/풀뿌리 운동 현장을 가다

함께 가야 할 우리의 아이들, 새터민 대안학교 '셋넷학교'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09. 1. 16. 12:18
 

1990년대 초반쯤으로 기억한다. 소설가 황석영 씨가 북한을 다녀와서 쓴 『그 곳에 사람이 살고 있었네』라는 책을 읽고 우리 민족의 반이 살고 있는 북한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며 보낸 적이 있었다. 우리네 교육이 얼마나 강건(?)한 ‘반공’의 기치를 올렸던지 그는 남한 사람들에게 북한에 다녀온(물론 국가보안법에 해당하는 행위였다.) 글을 쓰면서 책 제목을 ‘그 곳에 사람이 살고 있었다’라고 했을까? 당시 그 책이 반가웠던 것은 북한의 모습을 알려줄 만한 자료가 전무한 상황이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국가보안법이 존재하기는 해도 남한 사람들이 북한의 금강산에 여행을 갈 수 있는 시대가 왔다.

문화체험을 통한 소통

 

새터민 청소년 대안학교 <셋넷학교>는 그래서 더 마음이 쓰이고 조심스럽게 취재를 해야 하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선생님, 앙드레 김은 우리나라 사람이에요? 아니면 외국사람이에요? 그 사람 말투가 아무리 들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말하는 투나 억양이 꼭 외국사람 같은데…….” 고등학교 2~3학년은 되었을법한 이 친구, 진지하게 물어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이 정말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그러자 옆자리에 앉은 또 다른 친구가 패션 디자이너 앙드레 김의 말투를 짓궂게 흉내내자 교실 안은 온통 왁자해진다.
<셋넷학교>의 분위기는 남한 또래 학교와 별다르지 않다. 그 또래의 아이들이 멋을 부린 옷차림하며 말투까지 정규 수업이 끝난 후 아이들은 대학로에서 연극을 보기로 한 문화체험 교육 수업에 가기 위해 교장 선생님에게 장소와 시간을 확인하고 있는 중이다.
지난 2004년에 개교한 <셋넷학교>는 현재까지 30여 명이 졸업을 했고 현재는 25명 정도가 재학중이다.

 


 

“남한과 북한의 체제가 얼마나 극단적으로 다릅니까? 문화적 차이 때문에 힘들어하는 아이들에게 남한 사회의 문화를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어차피 이 곳에서 살아야한다면 이 곳의 문화와 체제에 익숙해져야겠지요. 저희는 이런 체제와 문화적 상황에 적응할 수 있도록 아이들이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박상영(45) 교장은 문화기획자로 활동하던 경험과 일반 대안학교를 운영했던 경험들이 이 학교를 운영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고 말한다.
<셋넷학교>에서는 아이들이 낯선 환경에서 좀더 친해지고 가족 같은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함께 모여 밥을 직접 해먹는다.
“북한이 사회주의라 남녀가 평등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남한보다 더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이라는 걸 저도 식사하는 자리에서 알았습니다. 남학생들이 식사를 하고 자기 그릇 하나 챙기지 않으면서 ‘국 퍼 달라’ ‘물 달라’ 여학생들한테 지시를 하면 그 여학생들은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심부름을 합니다.” 박 교장은 식사 자리도 하나의 교육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식사 준비를 하지 않거나 밥상에서 스스로 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아이들에게는 아예 먹지 못하게 했더니 그제서야 스스로 밥을 하고 그릇을 챙기고 하더라는 것이다.


 


물론 완전히 변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적어도 새로운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야하는 것인가를 교과서처럼 읊어대지 않고 아이들이 느낄 수 있게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일 또한 중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잡지 만들기, 영상 작업 함께하기 등을 통해 남한 청소년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게 한다. ‘새터민 대안학교’에만 가둬두고 교육을 하진 않는다.
이밖에도 아이들이 배우는 건 다양하다. ‘적성과 진로 탐색’이란 수업시간에는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초청해 사례 중심으로 학생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기도 하고 영화 보기, 미술과 춤, 음악을 통한 예술치유, 봉산탈춤 배우기 등이 있다. 지난해에는 아이들이 직접 카메라를 메고 자신들이 목숨을 걸고 탈북한 그 길을 다시 찾아가는 여정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기나긴 여정 1, 2>을 만들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목숨을 걸고 내려온 남한 땅에서의 낯선 생활에서 느낀 외로움과 이질감, 눈앞에 고향을 두고 언제 가게 될지 모르는 그리움의 현실 때문인가, 다큐멘터리를 찍고 직접 편집까지 하는 과정을 통해 또 다른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개미 군단의 후원과 봉사자들의 활동

 

마침 교무실 역할을 하는 서너 평 되는 방에는 자원봉사 교사 2명이 시간에 맞춰 수업준비를 하고 있었다. 사진촬영 수업 준비를 위해 자료를 복사하고 있는 봉사자와 선배의 권유로 처음 수학을 가르치러 온 봉사자는 첫 수업에 초조한 듯 상기된 모습이 역력하다.
학교 운영이 개미 군단의 후원과 자원 봉사자들의 역할로 꾸려 나가고 있다고 해도 지나침이 없을 정도로 후원과 봉사활동 운영이 활발하다. 박 교장을 비롯한 2명의 상근 교사 이외에는 65명 되는 봉사자들이 일정에 맞춰 수업을 진행한다.

“검정고시 수업도 일부 병행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때가 되면 졸업을 해야 하고 여기서 배운 것만으로 사회에 나가 적응하고 생활을 할 순 없습니다. 다만 저희는 아이들의 깊은 상처를 건드리지 않고 남한 사회에서 자연스럽게 생활할 수 있게 하는 교육방식을 선택한 것입니다. 아직은 정규학교가 아니기 때문에 검정고시를 봐서 대학에 들어가고 싶은 아이들은 그렇게 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도 저희 몫 일 뿐입니다.” 박 교장은 졸업 이후의 아이들의 모습도 생각하고 배려한 것이다. 그는 또 대안교육의 정신과 본질이기도 한 선택의 문제에서 아이들이 자신에 맞는 교육을 선택할 권리와 기회를 줘야 하기 때문에 남한 사회는 이들에게 그러한 환경을 제공해야할 의무가 있다고 여긴다.
“남한 사회가 새터민들에게 무엇을 줄 것이냐는 물질적인 문제만 고민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이 새로운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과 그들을 바라보는 시각, 스스로 자기 삶의 모습과 내용을 이 낯선 남한 땅에서 찾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이곳 아이들은 그렇지 않아도 자본의 화려한 면에 기가 눌려 있기도 하고 또래의 남한 아이들에게 느끼는 상대적 빈곤감과 사회적 소외감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니까요.”

 


 

내 이웃의 아이들

 

먼 훗날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제는 ‘통일’ 이후에 우리 남한 사회가 준비해야 할 많은 것들이 지금 새터민 아이들을 보며 느낀다는 말은 어쩌면 현실 속에 비춰질 날도 멀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새터민을 바라보는 남한 사람들 내부의 편견과 선입견이 분단을 넘어서 통일과 평화를 이루는 데 걸림돌이 되지 않았으면 한다는 바람”이라는 그의 말이 내게도 해당하는 말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 곳에 우리와 같은 우리의 반쪽 민족이 살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고 이젠 그 곳에 있는 이들이 내 이웃이 되어 살고 있는 2007년 오늘, 우리는 또 다른 우리의 반쪽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는가. 내 이웃이 되어 살아가는 그 아이들에게 어른으로서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늦은 오후, <셋넷학교> 아이들의 목소리가 커져간다. 수업이 끝나고 신나하는 아이들의 사투리 섞인 목소리가 정겹기만 하다.


글, 사진 황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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