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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이야기/풀뿌리 운동 현장을 가다

그들과 함께, 소수자들을 위한 문화제를 경험하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08. 12. 20. 02:57
 

초가을 비 굿은 날의 연속이라…….
토요일 낮 경기도 의정부 예술의 전당 광장에는 오페라 공연과 브레히트의 연극 공연, 모차르트를 위한 클래식 공연 등의 커다란 대형현수막 속에 요란하지 않은 작은 현수막 하나가 눈에 띈다.


<소수자를 위한 더불어 사는 사회문화제> 우리 사회의 소수자들을 위한, 그것도 의정부라는 지역에서 소수자들을 위한 문화제를 한다고 하니 선뜻 그 내용에 심적 동감이 갔다. 악기를 짊어 메고 가는 장애인의 모습도 보이고 민속의상을 입은 외국인 여성노동자들의 모습도 눈에 띈다. 1년에 한 번, 이제 겨우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 치루는 문화제인데 속절없게도 비가 내린다.

 

스스로 소수자가 되어

“비가 계속 와도 모든 행사는 실내에서 예정대로 진행할 겁니다. 문화제에 참석하는 이분들은 오늘을 위해 1년을 기다린 분들이거든요.” <소수자를 위한 문화제> 행사를 기획한 노은(34) 사무국장은 비 내리는 것에 별 게의치 않는 표정이다.

이 문화제는 경기문화재단, 의정부시사회복지협의회, 의정부예술의전당 이 세 단체의 공동주최 행사이다. 약간의 선입관이 섞인 눈으로, 관에서 주도하는 문화제에 행사를 치루는 데 어려운 부분은 없냐고 물었다. “관에서는 지원만 받는 형태고 모든 내용과 사업 방향은 참여한 단체들로 구성된 추진위원회에서 결정하기 때문에 관 주도의 불필요한 형식적 내용은 없죠.”

원래는 연극이나 뮤지컬, 상업 문화를 기획하고 연출을 했다는 노은 사무국장이 <소수자를 위한 문화제>에 참여한 이유를 물었다.
“사실은 상업적인 행사를 기획하는 것에 익숙하다 이 문화제 기획을 제의받고는 많은 고민을 했어요. 과연 내가 우리 사회의 소수자들에 대해 아는 게 뭐가 있을까, 그들에 대한 이해 없이 문화제를 제대로 치러낼 수 있을까 뭐 그런 다양한 고민들이었죠. 그러다가 아니다, 하던 것만 하는 게 아니라 새로운 것에 대해 알아가는 것도 또 하나의 기회다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기획을 맡게 됐는데 지금은 선택을 잘 했단 생각이 들어요. 만일 제가 이 일을 맡지 않았다면 나 자신이 다수자의 시각으로 주변에 소외된 이들을 바라봤을 겁니다.”


그는 문화제를 준비하며 자신에게 ‘스스로 소수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인지하며 생활했다고 한다. 그러면 결국 문화제는 이주노동자나 장애인, 불우아동, 성적소수자, 혼혈인, 불우아동을 위한 게 아니라 다수자와 소수자가 함께 하는 하나의 축제가 되어야한다는 말이다. ‘소수자 문화복지’에 관한 심포지엄이 곧 열릴 예정이어서 가봐야 한다며 잰걸음을 하려는 그가 한마디 던진다. “우리 사회에서 ‘소수자’라는 소외받는 이들의 집단이 없어져서 이런 문화제를 안 하는 게 가장 좋죠.”

동행하는 사람들

본격적인 행사가 시작되기 전에 인권사진전 <동행>을 둘러봤다. 사진가 최민식 등의 사진이 전시되어 있는 곁을 한 여중생이 서성이고 있다.
“사진 보니까 어떤 느낌이 들어요?”
앳된 여중생의 생활과는 거리가 있을 듯한 장애인과 이주노동자, 노숙자 등의 사진을 번갈아 보며 물었다.
“그냥…….”
뒷말을 흐리는 학생은 한 가족의 사진을 유심히 쳐다본다.
엄마와 아빠 그리고 그 부부의 아이인 듯한 가족사진을 보며 다시 물어봤다.
“이런 가족 봤어요?”
“아뇨”


생소해 보이는 듯한 표정으로 한참 보다가는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양쪽으로 까닥인다.
웃음은 귀여운 혼혈 아기의 눈을 응시한 것일테고 고개를 기울인 건 태국인 쯤 돼 보이는 남자와 한국인 여성의 모습이 생소해 보여 나오는 표정이 아닐까.
말하지 않아도 여중생의 느낌이 와 닿은 건 소수자가 아닌 다수자들의 시각에서 나온 평균 시각일 것이다.
어떻게 알고 왔냐고 했더니 이 문화제에 참석해서 여러 가지 체험을 하면 학교에서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봉사 시간 점수를 받을 수 있다고 해서란다. 동기야 어찌됐든, 인권 사진 한 장을 보든 장애인 체험을 하든 그 느낌은 받을 테니 소수자들을 이해할 수 있는 나름대로의 괜찮은 방법이 아닌가 싶었다.


또 다른 한 쪽에서는 귀에 듣기 좋을 만큼의 부드러운 핸드벨 소리가 들린다.
경기도 양주에서 온 ‘나루터 공동체’ 정신지체 장애인들의 핸드벨 공연이 한창 준비 중이다. 얼굴에 긴장감이 아니라 비장감까지 드러난 허창진 씨(39) 에게 얼마나 연습을 했냐고 물었더니 거의 매일이라고, 함께 온 변혜진(28) 사회복지사에게 몇 번이고 답을 해줬다. 주변이 어수선하고 시끄러운 것도 있었지만 그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질 못했다. 그의 말에 귀 기울이지 못한 것이 아니라 나 자신 조차도 그들에게 귀를 열어 놓지 않아서 그렇게 몇 번이고 되풀이하여 말을 하게 한 것은 아닐까? ‘나 자신이 소수자가 되어야한다’는 노은 사무국장의 말이 퍼뜩 떠오른다.

함께 살아가야 할 우리의 이웃

오후 4시 공연인데 오전인 지금 시간에도 음악을 틀어놓고 태국의 민속춤 ‘문방파이’를 연습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은 태국의 젊은이들이다. 한국에 온 지 1년이 된 이도 있고 바로 몇 달 전에 들어와 아직 일자리를 찾고 있다는 이도 있었다. 한국이 어떠냐고 물었더니 애매한 답을 한다.
“좋은 사람도 있고 나쁜 사람도 있어요.”
이들은 한국에 대한 인상을 자기들이 만난 한국인들의 이미지로 평가를 한다.
다른 행사와는 다르게 조용한 곳이 있어 가보니 소수자들을 제대로 보고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영상물들이 상영되고 있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기획한 단편영화 <여섯 개의 시선>과 우리 사회의 차별의식을 지적하고 차별을 차이와 구별하는 옴니버스 장편 에니메이션 <별별 이야기> 등은 ‘인권’에 관한 감수성을 키울 수 있는 작품들이다.

 

이 외에도 외국인 노동자 아이들의 교육문제에 관한 영상물 <학교에 가고 싶어요>나 강제철거로 삶의 자리를 빼앗긴 상계동 철거민들의 힘겨운 투쟁과정을 그린 김동원 감독의 <상계동 올림픽>도 좋은 영상물이다. 초등학생 딸과 엄마인 듯한 모녀가 앉아 엄마는 장면마다 부연 설명을 해 주고 아이는 낯설은 장면에 대해 끊임없이 물어보며 영상물을 관람하고 있다.
이번 <소수자를 위한 문화제>가 ‘의정부’라는 도시에서 열린 의미는 복합적이라는 느낌이 든다. 만일 이런 문화제가 경기도 분당이나 아니면 서울 강남에서 열렸다면 그 의미는 사뭇 다를 것이다. 경기 북부, 어찌 보면 서울 근저에서 문화적으로 소외당한 공간일 수 있고 ‘미군기지’라는 피할 수 없는 오랜 역사의 현실에서 느껴지는 또 다른 느낌은 아닐런지.


장애인, 이주노동자, 새터민, 혼혈인, 불우아동 등 우리 사회의 소수자들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아니다. 그들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저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이웃일 뿐이다.
봉사점수를 준다는 장애인 체험 현장 프로그램에 학생들이 몰려있다. 조잘대며 몰려있는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사회활동을 할 때 쯤 소외 받는 집단이 없어져서 이런 특정한 문화제를 하지 않게 될 순 없을까.

 

글, 사진 황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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