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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 고단한 아픔을 풀어내는 <나무닭움직임연구소>의 제의연극 본문

희망이야기/풀뿌리 운동 현장을 가다

민중의 고단한 아픔을 풀어내는 <나무닭움직임연구소>의 제의연극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09. 1. 16. 15:17

그 많던 신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우리 조상들이 살던 마을 공동체에는 그들만의 신앙이 있었다. 마을을 지켜주는 서낭신을 모셨던 서낭당이 있고 집안을 지켜주던 집신, 우물물이 마르지 않도록 지켜주던 우물신, 산을 지켜주던 산신, 땅을 지켜주는 지신(地神)……. 이처럼 옛 사람들은 그 많은 신들과 함께 살며, 신들이 마을 공동체를 지켜주고 그 땅에서 귀한 곡식을 거둬들일 수 있게 해준다고 믿었다. 그리하여 농사를 시작하거나 추수가 끝나면 반드시 지성을 들여 감사의 제를 올렸다. 한 마을의 공동체를 이끌어 가는 것은 결국 모든 신들의 조화로움 속에서만 가능하다고 믿고 살았다.
“옛 사람들은 마을 공동체 안에서 여러 신들과 함께 모든 것을 영위하고 그 안에서 어우러져 살았기 때문에 끈끈한 공동체 의식이 있었습니다. 가뭄이 들어도 장마가 져도 혹은 풍년이 되도 서로를 도와가며 해결할 수 있었기 때문에 요즘 느낄 수 없는 연대의식이 있었던 겁니다.

 

  하지만 이런 마을 공동체 의식은 ‘근대화’라는 명분 아래 새마을운동이 시작되면서부터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마을을 지켜주던 산은 신작로가 생기면서 사라졌고 생명의 근원이던 우물은 수도가 생기면서 사라졌고 마을 고유의 신앙이던 다양한 제의식이 ‘미신’으로 치부되며 거세 당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무닭움직임연구소>의 장소익(45) 대표는 이런 공동체 문화의 기본이며 민간 신앙의 중심이었던 제의성 연극의 원형을 회복하겠다며 지난 2002년 <나무닭움직임연구소>를 만들었다. 그들의 작업 공간이 있는 충북 영동군에 있는 장백리 마을은 행정 구역상 충북 영동에 속하지만 실상은 전북 무주군에 더 가깝다.
산골 마을에 폐교된 초등학교를 고쳐 사용하고 있는 <나무닭움직임연구소>에는 금년 5월에 개막하는 <체 게바라> 연습 공연으로 단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연습실인 교실 한쪽에는 손으로 제작한 솟대와 부네탈이 눈에 띈다. 1인극 ‘부네굿’ 공연을 할 때 쓰는 이 부네탈은 하회별신굿놀이에 등장하는 11가지 중 하나이다. 자세히 보니 얼굴은 살색으로 분칠을 했고 연지 곤지를 찍고 입술은 붉은 칠을 하고 머리는 잘 빗겨서 뿔처럼 얹은 머리 모양을 하고 있다.


연극의 기본으로 돌아가자

 

“연극의 제의성을 회복하자고 하는 저희 생각은 오히려 연극의 기본에 충실하고 그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제의연극이란 공동체 문화에서 이어져 왔던 ‘굿’을 회복하자는 말이기도 한데 예를 들어 무당이 굿을 할 때 신을 놓고 신을 즐겁게 경배하면 관객들은 무당이 신이랑 판을 잘 벌이고 있는가를 지켜보는 증인의 역할을 합니다. 연극도 이 굿판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공연을 통해 ‘신’을 되돌려 놓자는 겁니다. 열사를 위한 굿을 하면 죽은 열사 신들과 함께, 전태일 연극을 하면 전태일 영혼과, 위안부 연극을 하면 위안부 영혼하고 놀자는 것입니다.”
이들이 지난 2002년부터 올린 크고 작은 공연의 횟수는 100회를 넘는다. 이주·비정규직·환경미화 노동자 등 우리 사회에서 소외된 계층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굿을 벌였고 평택 미군기지 확장 반대를 위한 촛불집회, 열사를 위한 거리 문화공연, 4·3항쟁 거리굿 등 사회 문제에도 이들의 시선은 멈추지 않았다. 비정규직 노동자로 살다가 생을 마감한 노동현장에도, 평생 농사짓던 땅을 내줄 수 없다며 안간힘을 썼던 평택 대추리에도, 핵폐기장 건설을 반대하던 부안에서도 그들은 그 땅에 살고 있는 이들의 한을 풀어주는 판을 벌였다.
‘부네굿’은 민중들의 차별 문화에 대한 응어리를 풀어내고 해체된 공동체를 통해 삶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제의연극이다.
“공연을 하다보면 할머니들이 제 손을 잡고 막 우세요. 그건 아마도 제가 벌인 굿판을 지켜보던 그 분들이 부네를 통해 자신의 고단한 삶이 느껴졌을 수도 있고 ‘굿판’이라는 삶의 문화에 익숙한 우리 문화 정서에 익숙해져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또한 지난 2003년 한진중공업 김주익 노조위원장의 죽음을 계기로 만들어졌다는 열사굿 <지나가리라>는 해마다 한 달 정도의 기간을 잡고 순례공연을 한다. 열사들이 투신하거나 분신한 장소,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현장에서 굿을 하는데 지난해에는 임진각에서 통일굿을 시작으로 마지막 도착지인 마석 모란공원까지 열사들의 혼을 달래는 굿을 펼치기도 했다.
장소익 대표는 배우와 연출 분야를, 극작가인 임은혜(34) 씨는 연극 대본과 공연 기획을 맡고 있다. 이들은 지난해 9월부터 11월까지 남미 6개국을 돌며 부네굿을 공연을 했다. 한국의 전통 탈과 굿 양식의 제의연극을 소개하며 남미 각 나라의 연극단체와 탈 워크숍을 진행하기도 하고 탈을 통한 창작방법을 소개함으로써 한국과 라틴 아메리카 사이의 공연예술 교류를 확장했다는 평을 받았다.
“어느 나라나 민중들의 삶은 비슷한 것 같아요. 브라질에서도 부네굿을 보고 관객이 울 정도였으니까요. 전혀 다른 이국의 문화를 접한 그들에게는 또 어떤 아픔이 있고 우리가 공연한 부네굿이 그들의 아픔에 어떻게 다가간 것일까, 그들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어루만져 주었을까, 공연을 하면서 늘 그런 생각을 해요.” 임은혜 씨는 남미 순회공연을 하면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산 자와 죽은 자가 함께

 

무당이 굿을 하거나 심마니들이 삼을 캐러갈 때 또는 마을이나 문중에 큰 제사를 치룰 때 모든 제를 올리기 전의 시작은 몸과 마음을 정화하는 일이다. 그래서 장소익 대표는 무대에 오르기 전부터 아니 늘 굿판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배우의 역할을 게을리 하지 않으려고 꾸준히 연습하고 공부하려고 한다. 그래서인가, 그의 눈빛이 예사로워 보이지만은 않은 것 같아 취재 내내 눈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2007년, 올해는 이들에게도 남다른 해이다. 다음달 28일(월)부터 서울을 시작으로 전국 순회공연을 할 예정인 <혁명을 꿈꾸는 사람들의 연극 - 체 게바라>는 체 게바라 사후 40주년을 기념하면서 1987년 6월항쟁과 7·8·9월 노동자 대투쟁에 대한 성찰을 통해 민중운동에 생기를 부여하겠다는 희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축제(祝祭)라고 하죠. 물론 요즘도 그런 축제가 많잖아요. 사과 축제, 인삼 축제, 나비 축제 등. 하여튼 그 많은 축제들의 특징은 살아있는 자들만의 축제라는 거죠. 하지만 축제라는 것은 죽은 자와 산 자가 함께 어우러져야 축제다운 축제입니다. 저희는 죽은 자와 산 자가 어우러진 연극을 하려는 겁니다.”
어릴 적 뒷마을에 살던 친구 집에 가려다 고개 마루에 있던 서낭당이 무서워 몇 번 이고 놀러가기를 포기했던 기억을 떠올린다. 아직도 그 서낭당은 우리가 살던 그 마을을 지켜주고 있긴 한 걸까, 아직도 그 산은 그대로일까? 서울로 올라가는 통영 - 대전간 35번 국도는 왜 그리도 잘 닦여졌는지…….

 

 

글. 사진 황석선 stonesok@kdemo.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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