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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쓰는 민주주의
우리의 기념관, 민주화운동기념관 돌이켜 보면 지난 20세기 우리의 100년은 세계 역사상 그 예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짧은 시기에 온갖 격변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쳤던 혼란 속에서 굳건히도 우리 것의, 우리 정체성을 모색하는 시기였다. 조선의 멸망과 식민통치 36년, 해방과 분단,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한국전쟁, 혁명과 쿠데타, 독재와 항쟁……. 특히 분단구조에서 단기간에 이루어낸 압축성장으로 인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의 변화는 가히 혁명적 변화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그 폭과 깊이가 넓고도 큰 것이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변화를 추동한 핵심이었던 민(民)이 역사와 사회의 대상에서 진정한 주체로 우뚝 서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1960년 4·19혁명과 1970년 전태일의 분신, ..
밤송이처럼 솟아오른 짧은 머리와 아직도 노란기가 가시지 않은 핼쑥한 얼굴 그리고 푸른 핏줄이 투명하게 드러나는 마른 손이 2004년 12월에 국보법 폐지를 위해 단식농성한 분들을 필자가 만났을 때 처음으로 마주친 것들이었다. 한순간 그들에게 일어났던 일들이 생생하게 전해지면서 가슴 한켠에서 울컥하는 묘한 떨림이 일었다. 내가 그 분들을 만나기 전에는 미처 예상하지 못한 감정이었다. 당연히 폐지되어야 할, 이미 없어졌어야 할 법에 목숨을 건 투쟁을 해야 된다는 것에 다들 어처구니 없어 했다. 참여민주정부가 들어섰다는 한국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수수께끼 같은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사람들은 어이없어 했다. 일천한 정치적 상황이지만 그들은 최선을 다해서 국보법 폐지 투쟁에 함께했다. 그들은 같은 공..
충청북도 청주시 청주도시산업선교회가 2004년 10월 11일 32년간의 활동 내용에 대한 사료들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 기증하였다. 이는 1972년 산업선교회가 창립되면서부터 생산하고 수집한 농민·학생·청년·노동·도시 빈민 운동 등에 관한 1만여 건의 민주화운동 관련 사료이다. 정진동 목사는 32년간 모아온 사료를 사업회에 기증하고, 1박 2일의 가을 여행을 다녀오면서 이렇게 소회를 피력하였다. 그간 32년의 청주 도시산업 선교의 민중들의 인권 사료를 정리하여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료관으로 전달하고 피곤한 중에 1박 2일의 여행을 다녀왔다. (중략) 장성군의 필암 서원을 들려 옛 선비들의 유적을 관람하고, 특히 탐관오리들의 재산을 털어 가난한 백성들에게 나누어준 홍길동 생가를 들러서 명종 때 청백리로 이..
우리는 지금까지 세계 여러 나라의 기념시설들에 대한 연재를 통해 그 나라 사람들이 역사를 정리하고 기억하는 방법을 살펴보았다. 역사적 경험과 문화 그리고 현재의 여러 조건의 차이에 따라 과거의 사실을 평가하고 기억하는 방법에는 많은 차이가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기억이라는 것이 과거의 사건과 경험을 회상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다양한 기억들을 가진 주체들이나 집단들의 끊임없는 기억투쟁을 통해 선별되고 재구성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히로시마 평화기념자료관과 워싱턴 홀로코스트박물관 히로시마와 워싱턴에는 평화기념자료관과 홀로코스트 기념관이라고 하는 과거의 극단적인 폭력의 기록을 전시하는 박물관이 있다. 박물관을 운영하는 측이나 관람객들도 정치선전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실제로도 정치선전은 없는 것처..
우리 안의 공포와 패배의식을 치유하는 역사학자 [이이화] 가끔 역사의 ‘간계’와 마주치는 순간이 있다. 기존의 사회적인 문제는 새로 등장하는 사회적 문제에 가려져 이미 낡은 문제나 해결된 문제처럼 치부한다. 동성애, 장애인, 소비자, 외국인 노동자문제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만 또다른 노동자 문제나 농민들의 문제는 자신들을 자극시켜줄 문제가 아니어서 외면하거나 이미 해결된 문제로 착각한다. 망각된 사람들은 현실의 무게를 감당하며 지독히 외로운 삶을 버티고 있다. 한국전쟁 전후 학살당한 민간인들도 망각된 문제 중 하나이다. 그 오래고 낡은 자리에 역사학자 이이화 선생님이 있었다. 어떤 연유로 자신이 죽는지 납득할 만한 합리적인 근거도 없이 죽어간 민간인 100만 명. 그들 중 대부분은 국가권력에 의해 조직적..
YWCA 위장 결혼식 사건 통대선출저지 국민대회 며칠 전 필자는 점심시간에 동료들과 담소를 즐기고 있었다. 필자와 동료들의 나이가 나이인지라 담소의 주제는 ‘결혼’이었다. 담소를 나누던 중 위장결혼이라도 해서 부모님의 성화로부터 벗어나자는 농담이 나왔는데, 그 농담을 들은 한 동료가 예전에 집회할 때 결혼식을 가짜로 꾸며서 한 적도 있었다는 얘기를 해주었다. 자연스레 화제는 그 집회 이야기로 옮겨졌 다. 그 집회는 소위 ‘YWCA 위장 결혼식 사건’으로 알려진 ‘통대선출저지 국민대회’였다. 필자는 ‘통대선출저지 국민대회’에 대해서 좀 더 알아보고 싶은 마음에 인터넷을 검색하게 되었고, 사료관에 관련된 기록물이 있는지 찾아보게 되었다. 우선 기록물을 소개하기에 앞서 ‘통대선출저지 국민대회’에 대해서 짤막하..
이야기 형식으로 기억을 들려주는 워싱턴 홀로코스트 기념관 독일 영화 한 편이 최근 독일뿐 아니라 유럽에서도 주목을 받고 있다. 9월에 개봉하여 개봉 5주 만에 독일에서 341만여 명이 관람한 이라는 영화는 히틀러의 쉰여섯 번째 생일인 1945년 4월 20일부터 열흘 뒤 베를린의 지하벙커에서 그가 자살하기까지의 마지막 삶을 다룬 영화이다. 이 영화가 화제가 되는 이유는 독재자로서의 히틀러 모습보다 그의 인간적인 측면을 집중적으로 다루었다는 데 있다. 왜소하고 측은한 이 독재자의 모습은 감독이 의도한 바는 아니었을지 모르나 역사적인 과오를 감정적으로 덮어버리려는 위험한 시도로 비춰지고 있다. ‘신나치주의’를 표방하는 극우정당들인 국가민주당(NPD)과 독일국민연합(DVU)이 지방의회에서 약진하며 기세를 올리는..
동해의 영롱한 일출도 분단의 상처와 함께 담는 사진작가 [이시우] 지난 4년 동안 국제사회에서 커다란 우려와 반발을 불러왔던 미국의 일방주의적 대외정책이 부시의 재집권으로 한층 강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또한 미국 내에서 소위‘네오콘’으로 불리는 강경 보수세력들의 영향력이 더 확고해지면서 대북강경론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있다. 한반도에서 우리가 원치 않는 전쟁의 가능성이 완전히 배제되지 않고 있는 현 상황에서 우리의 일상이 되어버린 분단의 상흔을 담은 『민통선 평화기행』이라는 책이 눈길을 끈다. 이 책은 정부가 지원하는 ‘한국의 책 100’에 선정되어 2005년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에 독일어로 번역되어 소개될 예정이고 일본 리츠메이칸대학에서도 일어로 번역하겠다는 책이다. ‘동해의 영롱한 일출마저 철..
사진으로 남긴 투쟁의 기록, 박용수 선생의 필름 사료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박용수 선생의 8,90년대 민주화운동 사진필름 8만 7천여 점이 지난해 연말 사업회에 기탁되었다. 민주화운동의 역사 기록에서 박용수 선생의 사진이 가지는 엄청난 중요성과 소중함에 대해서는 어떤 설명도, 어떤 수식어도 필요가 없을 것이다. 박용수 선생이 80년대 민주화운동 투쟁현장을 뛰어다니며 찍은 사진들에는 민주화운동의 뜨거운 열기와 함성, 용솟음치는 기억들이 생생하게 살아 있다. 뜨거운 민주화의 열기만큼이나 집회와 투쟁이 많았던 80년대에 2,30대의 젊은 나이에도 일일이 참여하기 힘들만큼 수많은 집회와 시위마다 박용수 선생은 50대의 나이에 사진기를 둘러메고 어김없이 그 현장에 나타나곤 했다. 80년대 민주화운동 투쟁현장에는 늘..
파리 죠루즈 퐁피두센터 프랭크 맥코트 가족은, “자유의 여신상에 헬로’라고 인사하는 대신에, ‘굿바이’ 하고 손을 흔들며” 뉴욕 항을 떠나는 배에 몸을 싣고 있었다. 부루클린에서 태어난 프랭크는 이제 겨우 네 살, 그의 부모는 아이리쉬 이민세대였다. 대공황이 휩쓸던 1930년대, 뉴욕 슬럼가 생활을 청산하고 고향 아일랜드로 되돌아가는 길이었다. 세월이 흐른다. 갖은 고초 끝에 청년으로 성장한 프랭크는 풍운의 꿈을 안고 다시 뉴욕 행 증기선 호의 갑판 위에 서 있다. 드디어 희망의 횃불을 높이 쳐든 자유의 여신상이 점점 가까워온다. 이 이야기는 가난한 아이리쉬 가톨릭이었던 작가 프랭크 맥코트(Frank McCourt)의 자전적 성장 소설로, 1997년 퓰리처 문학상을 수상한 ‘안젤라의 재(Angela’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