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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쓰는 민주주의
지난 9월 21일 통일운동가 김병권 선생이 타계했다. 3일 후에 거행된 민족통일장에서 이학영 한국YMCA전국연맹 사무총장은 조시를 통해 “이제 당신이 꿈꾸던 통일된 조국을 이룩하는 꿈, 자립된 평화의 나라를 만들려던 꿈, 가난과 소외가 사라지는 해방된 사회의 꿈을 우리가 대신 지고 가겠습니다.”라며 선생의 죽음에 애석함을 표시했다. 김병권 선생이 한평생 이 땅에서 이루려했던 꿈을 편안히 자리에 앉아 인터넷 기사로 읽어내려 가려니 송구스런 마음이 앞선다. 김병권 선생은 1960~70년대 한국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비합법 지하운동 조직의 중심에 있던 인물이었다. 1921년 대구에서 출생한 선생은 4·19혁명 당시 사회당 대구지부와 민족자주통일협의회에서 활동했고 1961년 남북학생회담 추진과 관련해 첫 옥고를..
지난달 2일 2차 송환 대상자였던 장기수 정순택 선생의 시신이 북측 가족들에게 인도되었다. 2000년 9월 2일 비전향 장기수 63명이 북측으로 송환된 후 처음 실시된 송환이었으며 더욱이 유해 송환은 역사상 최초의 일이라 언론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한 사건이었다. 장기수들의 송환 문제는 1993년 전 인민군 종군기자 이인모 선생이 북측 가족들 곁으로 돌아가면서 본격적으로 제기되기 시작했다. 이를 계기로 장기수 문제에 대한 일반 국민들의 관심이 촉발되었고, 다양한 입장에서 ‘장기수’와 ‘전향’에 대한 문제가 논의되었다. 얼마 전에는 장기수들의 수형생활과 송환 과정을 담은 영화들이 제작되어 극장에서 상영되기도 했다. 송환 문제는 아직도 분단 상태에 있는, 다양한 사상적 스펙트럼이 존재하는 우리 사회에서 이야기..
79년 8월 신민당사에서는 YH무역회사의 기업 정상화를 주장하며 생존권을 보장하라는 500여 명가량 되는 YH노조 조합원들의 농성이 한창이었다. 그러나 8월 11일 새벽 1,000여 명의 경찰들이 폭력으로 농성장을 진압한 결과 순식간에 그들은 당사에서 끌려 내려와 경찰서로 연행되거나 고향으로 보내졌다. 그러나 김경숙만이 홀로 신민당 당사 뒷마당에 남겨졌다. 사랑하는 동생과 어머니 그리고 친구들을 남겨두고 숨을 거둔 것이다. 그리고 그 죽음은 유신정권 붕괴와 밀접한 연관성을 갖는다는 의미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있다. 평범하고 여린 소녀였던 그들이 한 나라의 야당 당사에 들어가 자신들의 목숨을 걸고 투쟁하며 권리를 요구할 수 있는 노동자로 서게 된 것은 당시 경찰 발표처럼 누구의 사주에 의해서 하루아..
최영미(43) 씨는 글은 참 예리하고 정확한데 묘하게 깊은 정이 흐른다. 그녀를 만난 것도 그녀의 글을 통해서였다. 그 중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 ‘구직 포기자’에 관한 것이었다. 직업이 구해지지 않아 구직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공식집계로만 11만 명이나 되고, 일하고 싶지만 일자리가 없어서 일주일에 18시간 미만만 일하는 비정규직이 많이 늘어난다는 내용이었다. 그녀의 글을 읽으면서 나는 궁금해졌다. ‘그러면 그 사람들은 어떻게 먹고 살까?’ 연합통신에 의하면 IMF 이후 신 빈곤층이 716만 명이나 된다고 했다. 전체 인구의 15%에 해당하는 셈이다. 8년 동안 현장을 뛰어다니며 빈곤의 문제를 고민해온, 그 해결을 위해 형식적인 복지가 아닌 참다운 복지를 고민해온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졌다. 그녀..
초고속 인터넷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정보를 얻기 위해 가장 먼저 인터넷을 검색한다. 책이나 자료 혹은 전문가를 통한 문의 등 이전의 관행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여주는 모습들이다. 그러나 일상적으로 인터넷 속의 지식이나 정보를 수없이 활용하면서도 전자환경 속에서 지식정보가 어떻게 생성되고 활용되는지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특히 지식정보자원의 근간이 되는 기록물들이 어떠한 과정을 통해 일반에게 제공되는지에 대해서는 복잡성 뿐 아니라, 어떤 방침이 선행되는지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한다. 가치 있는 기록들이 일정 기준에 따라 평가되어 일반에게 인터넷을 통해 제공되기 위해서는 데이터베이스 구축 과정을 거쳐야 한다. 데이터베이스의 방법은 매우 다양한데, 이를테면 텍스트, 테깅, 스캐닝..
농업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이 필요하다. 세계적 시선에서 식량의 흐름을 바라보아야 한다. ‘경쟁의 시선’으로만 농업에 접근하면 앞으로 식량문제는 파멸이다. 시장논리로 농업을 말할 수는 없다. 그런 시선 으로는 180정보 이상을 소유한 미국 기업농과 경쟁하기 위해 6정보의 전업농을 육성한다는 조잡한 농업정책밖에 내올 수 없고, 농산물을 수입하고 핸드폰을 팔자는 단편적인 사고방식밖에 가질 수 없다. 근본부터가 잘못된 시선이다. 미국 내에서도 자유화와 시장경제 일변도의 농업정책이 비판받고 있다. 생산과정과 유통과정, 소비과정 모든 과정을 장악하려 하는 초국적 기업자본의 흐름을 파악해야 한다. 제3세계 농민들의 문제만이 아니라 유럽을 포함한 선진국 내의 가족농의 문제들과도 결합되어 있다. 가족농들이 기업농들에게..
1980년 5?18민중항쟁에 대해서는 모르는 이들이 드물지만, 같은 시기 강원도 사북에서 일어난 광부들의 저항과 투쟁을 기억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그나마 사북에서 발생한 사건을 단지 술 취한 광부들이 일으킨 ‘광부들의 폭동’, ‘공포에 휩싸인 탄광’, ‘유혈 난동’으로만 기억하는 경우가 많다. 이른바 사북사태로 불리우는 이 사건은 당시도 폭동이었고, 25년이 지난 지금도 제대로 진실이 규명되지 않고 있다. 사북사태는 1980년 4월 21일부터 24일까지 4일에 걸쳐 국내 최대의 민영탄광인 강원도 정선군 동원탄좌 사북영업소에서 광부와 그 가족 6,000여 명이 어용노조와 열악한 노동환경에 항거하여 곡괭이와 몽둥이로 무장, 무기고와 화약고를 장악하고 3일 동안 사북을 점거한 사건을 말한다. 사북에서의 사건..
미완의 과제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해방 60년 [윤미향] 해방 60년을 맞은 올해도 어김없이 8월이 찾아왔다. 동양에서 60은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그래서인지 예년과 다르게 많은 행사가 준비되고 있다. 기억해야 하는 여러 사건들 가운데 ‘일본군 위안부’(위안부) 문제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벌써 670여 회를 거듭하고 있는 서울 종로구 일본 대사관 앞에서의 ‘수요시위’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통한의 세월을 상징하고 있다. 위안부에 대한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와 배상을 촉구하며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이 열어온 ‘수요시위’에는 매번 50여 명이 참석하고 있다. 내외국인 참가자가 계속 바뀌는 ‘수요시위’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국내외의 높은 관심을 보여주고 있다. 일본의 위안부 범죄를 국내외에 알..
민족일보와 조용수, 진실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하여 민주화운동 관련 사료는 지나간 민주화운동의 역사들을 말하고 있다. 그 낡은 종이 한 장 한 장, 빛바랜 깃발과 사진 속에서 민주화를 향한 갈망과 외침과 뜨거운 함성들이 아우성치며, 투옥과 수배와 죽음도 마다않던 투쟁과 저항이 거친 숨으로 꿈틀댄다. 그래서인지 때로는 빛바랜 종이 한 장이 천근의 무게로 다가와 민주화와 통일의 뜨거운 염원으로 그날을 얘기하며 오늘을 묻고 있다. 지난 5월 3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기본법’(과거사법)의 국회 통과로 많은 논란이 일어나고 개정 논의가 한창인 무렵, 사업회에 소중한 사료가 수집되었다. 현재 통과된 과거사법 논란의 핵심사안 중 하나인 ‘조용수와 민족일보’ 관련 사료이다. 이 사료는 『조용수와 민족일보』 저자..
개정 국적법과 우리 사회에 대한 성찰 [홍세화] 얼마 전 국적법 개정을 둘러싸고 나라 전체가 어수선했고, 일방적이었지만 논의도 뜨거웠다. 법안을 발의했던 한나라당의 홍준표 의원은 대표적인 보수 정치인으로, 그의 지지층은 한쪽에 쏠려 있었다. 그러나 이 법안 발의를 통해 전국의 모든 지역과 계층으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면서 단연 돋보이는 정치인으로 떠올랐다. 개정 국적법의 핵심은 ‘직계존속이 외국에 영주할 목적으로 출국하지 않은 상태에서 외국에서 출생한 자는 병역 의무를 치렀거나 면제 처분을 받은 때, 제2 국민역에 편입된 때 등에 한해 국적이탈신고를 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즉 원정 출산자의 자녀 뿐 아니라 외교관, 상사 주재원, 유학생 자녀들의 병역 면제를 목적으로 한 국적 포기가 사실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