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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운동이야기/내가 만난 70년대

개정 국적법과 우리 사회에 대한 성찰 [홍세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08. 12. 22. 13:14
개정 국적법과 우리 사회에 대한 성찰 [홍세화]

 

얼마 전 국적법 개정을 둘러싸고 나라 전체가 어수선했고, 일방적이었지만 논의도 뜨거웠다. 법안을 발의했던 한나라당의 홍준표 의원은 대표적인 보수 정치인으로, 그의 지지층은 한쪽에 쏠려 있었다. 그러나 이 법안 발의를 통해 전국의 모든 지역과 계층으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면서 단연 돋보이는 정치인으로 떠올랐다.
개정 국적법의 핵심은 ‘직계존속이 외국에 영주할 목적으로 출국하지 않은 상태에서 외국에서 출생한 자는 병역 의무를 치렀거나 면제 처분을 받은 때, 제2 국민역에 편입된 때 등에 한해 국적이탈신고를 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즉 원정 출산자의 자녀 뿐 아니라 외교관, 상사 주재원, 유학생 자녀들의 병역 면제를 목적으로 한 국적 포기가 사실상 불가능해진 것이다.
이 법의 출현은 병역 문제가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뜨거운 감자임을 반증해 주고 있다. 자식의 병역 기피 때문에 ‘쓰라린 경험’을 하는 고위층 인사들을 최근 몇 년 사이에 왕왕 보기도 했다. 이는 너무나 당연한 결과이다.
하지만 국적법 개정을 둘러싼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보면서 뭔가 빠진 듯한, 너무 한쪽으로만 쏠려 정작 중요한 것을 진지하게 모색하는 계기로 삼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우리 사회에 ‘똘레랑스’를 널리 퍼뜨리려고 애를 쓰는 홍세화(58) 씨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라는 자전적 고백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그는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 궁금했다.

 

“우리 사회는 색깔로 표현하면 회색입니다. 배경에 따라서 색의 느낌이 달라지지요. 검정색이 바탕이 되면 하얗게 보이고 흰색과 같이 있으면 검정색으로 보이는 회색 말입니다.”
병역 기피를 목적으로 하는 국적 포기의 부당함은 명확하지만, 동시에 이에 대한 반응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폐쇄적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했다.
“조직이나 사회에서 흰색 존재를 용납하지 않습니다. ‘너만 잘났냐?’는 식으로 죽이려 들지요. 주위에서 흰색이 나타나면 자기가 검정임이 드러나니까 흰색 가치관을 집단적으로 죽이려고 합니다.”
그의 진단은 매섭게 이어졌다. “다른 한편으로는 검정을 색출해서 여론 몰이를 하지요. 부패 문제, 이번 국적법 개정 등에서 보이듯이 시커멓다고 드러나게 해서 자신이 흰색인 양 합니다. 이중성이 있다고 봅니다.”
우리 사회에 너무나 깊숙하게 스며 있는 이중성이 빚어낸, 검정이 드러나면 마치 흰색인 양 하는 회색인들의 사회가 빚어낸 현상이라고 따끔하게 일침을 가했다.그 예로 개정 국적법이 거론되면서 갑자기 애국자가 많아졌지만, 정작 개인들에게 질문을 하면 군대에 가고 싶지 않다고 또는 가지 않을 수 있다면 안 가겠다고 하는 안타까운 현실을 들었다.
물론 국적을 포기하고 싶어도 할 능력이나 사회적 배경이나 권력 등이 없는 일반 사람들의 이중성을 그런 일을 스스럼없이 당당하게 하는 일부 사람들의 그것과 동일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참으로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왜 군대를 인간화하려는 노력은 안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힘을 합하면 다 동의할 수 있는 일인데……. 육군본부 정훈감을 지냈던 표명렬 예비역 준장의 ‘한국의 군대에는 민족도 없고 인격도 없다.’ 말에 진실이 담겨 있습니다. 민족도 없는 군대가 애국심의 잣대가 되고 인격도 없는 군대가 가치관의 잣대가 되는 것은 모순 아닙니까?”

회색인들의 사회가 빚어낸 현상
국적을 둘러싸고 우리 사회가 ‘병역 기피’에만 주목하면서 놓치고 있는 중요한 부분으로 이주 노동자와 그 자녀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배타적 태도와 차별을 꼽았다. 단일혈통과 공통의 언어를 민족 또는 국민 정체성의 핵심으로 삼아온 우리 사회에 피부색과 언어 그리고 문화가 다른 사람들과의 접촉은 많은 문제들을 노정시키고 있다. 이에 대한 해법을 위해 혈통적 배타성이 강한 우리 사회에서 국민 개념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가 자연스럽게 먼저 거론되었다.
“한국인의 피를 갖고 태어난 사람을 국민으로 보는 혈통적 국민 개념에 사회 개념을 접목시켜야 한다고 봅니다. 어디서 태어났든지 어떤 피든지 자기 소속감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혈통 보다는 사회화 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거지요. 즉 어디서 태어났건 교육과정이 절대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고 특히 중요하며, 노동 과정도 부차적으로 결합시켜야 한다고 봅니다.”

원정 출산 등처럼 사회 개념과는 무관한, 단순히 병역을 기피하고자 하는 행위들이 도덕적으로 커다란 문제를 안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외국에서 태어나고 거기에서 사회화 과정을 거친 사람과 그가 속해 있는 집단에 대해서는 열린 자세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 두 가지 경우는 구분되어야 합니다. 국적이라는 국민 개념을 소속 사회와 일치시키는 기회를 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인권차원에서도 필요합니다.”

국적이라는 국민 개념을 소속 사회와 일치시켜야
우리나라에서 교육과정을 거친 이주 노동자들의 자녀들이 원한다면 그들에게 한국 국적을 줘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냐고 그는 반문했다. 한국에서 노동하고 사회화 과정을 거치고 있는 그들 부모에게도 개방적이어야 한다고 했다.
“국적 문제는 경제 논리가 아니라 사회 논리로 봐야 합니다. 그래야 문화적 다양성의 토대가 보입니다. 70년대에 중동과 독일로 간 우리의 선배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이주 노동자들에게도 고향이 있고 문화가 있습니다. 그들의 문화가 우리 사회에서 공존해 문화적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는 축복으로 삼았으면 합니다.”
저출산 고령화 사회로 진입한 우리 사회의 활로를 모색하기 위한 단순 경제 논리로 이주 노동자들을 바라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사회 제도의 개혁과 아울러 의식 전환이 절실한데 무엇보다 중요한 우리의 교육 과정이 너무 왜곡되어 있어 답답하다고 그는 말을 이었다.
“공교육이 입시에 매달려 있어, 교육이 억압 과정입니다. 자신이 억압 당한 만큼 남을 억압해도 무감각합니다. 어린 시절의 감수성이 저당 잡혀 있습니다.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오늘의 행복을 저당 잡힌 상황에서 과연 올바른 시민사회 구성원이 배출될 수 있을지 회의적입니다.”
이는 사회 불의에는 무감각하지만 자신의 불이익에는 분노하는 상황을 만들고 있고, 회색 가치관과도 연결되어 있다고 했다.
“물신주의 가치관에 포섭되어 있고 너무 오염되어 있습니다. ‘부자 되세요’, ‘당신의 능력을 보여 주세요’ 등 이런 화두에 분노하지 않는다는 거지요. 자아실현 개념이 없습니다. 인문사회과학 책을 읽을 필요가 없는 거지요. 그러니 인간성의 항체가 사라질 수 밖예요.”

인간성의 항체가 사라지고 있어
우리 사회가 주목해야 할 부분으로 그는 무엇을 꼽고 있을까? “그려놓고 가기 보다는 오늘 이 사회의 불평등한 모순과 그에 따른 고통을 어떻게 줄여 나갈 것인가에 천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소속감을 느끼는 사회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을 느끼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칸트적 의미로 구성원들이 내적 가치를 지닌 존엄한 존재라는 의미에서 목적 자체로 인정받는 것이라고 했다.
인간이 이성적이고 자유로운 존재로서 그 존엄성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이들이 속해 있는 사회가 그런 존엄성을 유지하는데 합당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구성원들이 관리나 통제의 대상인 인적자원이 되지 않기 위해서 군대도 인격화 되고 사회도 민주화 되어야 합니다. 무한경쟁에 매몰되어 인간성이 실추되는 사회가 아니라 더불어 사는 것을 잃어버리는 것에 대한 반성적 성찰이 중요하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똘레랑스는 타자를 우월한 위치에서 바라보고 이를 받아들이는 관용이 아니라 용인, 즉 차이를 차이로서 긍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그는 왜 20년 동안 조국에 돌아올 수 없었을까?
1979년 3월에 해외지사 근무로 유럽에 있었던 그는 남민전 사건에 연루되어 귀국하지 못하고 빠리에 정착하게 되었다. ‘갈 수 있는 모든 나라, 갈 수 없는 나라 꼬레’를 수없이 뇌고 또 되뇌면서 정처 없이 걸었다는 그가 가장 힘들었던 때는 언제였을까?
학생운동을 했던 그는 중앙정보부(현재 국정원), 보안사, 대공분실 등을 다니면서 고문을 경험했지만 그보다 더 힘든 것은 80년대 초의 상황이었다고 한다.
“몸은 자유로우나 고립된 상황에서 전두환 독재정권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었던 그때가 제일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83,4년이 되어 변화의 조짐이 보이면서 허물어지는 저를 다시 세울 수 있었지요.”
그토록 그리웠던 고국에 돌아와서 실망이 크지는 않을까! “제 생각 보다 물신주의의 뿌리가 훨씬 깊습니다. 인간성의 항체를 심을 때라고 생각합니다.

진보는 느리고 불편한 것이지요. 우리가 가는 길이 어려운 게 아니라, 어렵기 때문에 가는 것입니다.”
어렵고 힘든 외국생활을 견뎌와서인지 우리 사회에 대한 진단이 결코 희망적이 않음에도 그는 그가 할 수 있는 일을 아니 그가 하고자 하는 일을 결코 포기하지는 않을 것 같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의식과 가치관 형성을 위해 필요한 글을 쓰고 싶다.”는 그의 응답은 짧았지만 그것이 함축하고 있는 의미는 크게 다가왔다.

 



똘레랑스는 관용이 아니라 용인
최근 국적법 개정과 관련된 상황은 자신이 속한 사회에 대한 책임은 방기하고 온갖 혜택만 누리려 하는 일군의 부도덕하고 몰염치한 집단에 대한 대다수 사회 구성원들의 분노와 질타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특히 국적 포기자들의 부모 중 상당수가 지도층 인사라는 점에서 우리 사회의 기득권층의 이중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준 사건이기도 하다. 국민들의 분노가 왜 그렇게 광범위 했는지를 이해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분노의 발산에 멈추어서는 안 된다. 현대사회는 점점 더 종교 문화 언어 세계관적으로 다원화 되어가고 있고 이런 흐름에서 우리 사회도 벗어나 있지 않다. 이제 국민국가의 정체성을 인종 문화 언어적 동질성에서 찾을 수만은 없다.
차이와 이질성에 대한 예민한 감수성을 가진 성숙한 민주시민으로 거듭나기 위해 이제 혈통에 기초한 민족적 동질성과 국가 구성원의 일치라는 관점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 사회를 역사나 문화, 종교와 피부색 그리고 정체성이 서로 다른 집단들의 평화로운 공존이 가능한 사회로 가꾸어 나가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국적법 파동이 단순한 분노의 표출로 끝나지 않고 관련 문제들에 대한 진지한 성찰의 기회가 되기를 희망해본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황정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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