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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의 공포와 패배의식을 치유하는 역사학자 [이이화] 본문

민주화운동이야기/내가 만난 70년대

우리 안의 공포와 패배의식을 치유하는 역사학자 [이이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08. 12. 22. 11:29
우리 안의 공포와 패배의식을 치유하는 역사학자 [이이화]

가끔 역사의 ‘간계’와 마주치는 순간이 있다. 기존의 사회적인 문제는 새로 등장하는 사회적 문제에 가려져 이미 낡은 문제나 해결된 문제처럼 치부한다. 동성애, 장애인, 소비자, 외국인 노동자문제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만 또다른 노동자 문제나 농민들의 문제는 자신들을 자극시켜줄 문제가 아니어서 외면하거나 이미 해결된 문제로 착각한다. 망각된 사람들은 현실의 무게를 감당하며 지독히 외로운 삶을 버티고 있다. 한국전쟁 전후 학살당한 민간인들도 망각된 문제 중 하나이다. 그 오래고 낡은 자리에 역사학자 이이화 선생님이 있었다.
어떤 연유로 자신이 죽는지 납득할 만한 합리적인 근거도 없이 죽어간 민간인 100만 명. 그들 중 대부분은 국가권력에 의해 조직적으로 죽임을 당했다. 학살된 당사자나 그것을 지켜본 가족들뿐 아니라 그 소식을 접한 사람들은 지독한 정신적 외상을 입었다. 온전한 정신으로 똑바로 바라볼 수 없는 사회적 체험이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죽임을 당할 수 있다는 생각은 많은 사람들에게 공포심을 심어 주었고 폭력적 권력에 대한 두려움과 패배의식을 갖게 했다.
어느 날, 문득 길을 가다가 알 수 없는 공포심이 등줄기를 타고 일어난다면 거기에는 50여년 동안 사회적으로 해결되지 못하고 ‘광주민주화항쟁’ 등을 통해 반복되어온 학살의 체험이 유전적으로 우리 몸 안에 존재하는 이유일 것이다.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진상 규명 범 국민위원회’(이후 범국민위) 상임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이이화 선생님은 다른 과거사 문제들과 함께 이 문제를 풀지 않는 한 역사적 진전은 없다고 했다. 이 문제가 해결되는 과정이, 학살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이 만들어 지는 과정이 우리 안에 존재하는 원한과 공포를 씻어주고 진정으로 화해와 평화에 이르는 길을 열어줄 것이라 했다. 이것은 정치적인 이해관계를 초월하여 해결해야할 ‘인간의 문제’였다. ‘억울한 일을 당하는 사람이 없는 사회가 좋은 사회이고 진보된 사회이다’며 선생님은 명쾌하게 말했다

사람은 내면의 크기만큼 문제를 견디어낸다
찬 바람을 맞으며 구리시 아차산 산길을 걸어 아치울 마을에서 이이화 선생님을 만났다. 하나 밖에 없는 마을 식당에서 늦은 저녁을 먹으며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었다. 『한국사 이야기』의 저자인 선생님은 ‘범국민위’ 상임대표도 맡았는데 그것은 학살의 진상을 잘 알고 있는 역사학자로서라기 보다는 아직도 고통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개인적인 애정 때문이라 했다. 선생님은 보통 역사학자와는 다르게 느껴졌다. 그에게는 자유로움과 사람들에 대한 개방성이 있었다. 그것은 열 여섯 살 무렵 주역을 가르치는 아버지 집에서 가출하여 수없이 많은 밑바닥 일을 하면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철공장해서 솥도 팔고, 은단, 색전구, 가루약도 팔았고, 빈대약 치러다니는 일, 술집웨이터 노릇까지도 했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포용할 수 있는 힘과 험한 세상을 견디는 힘을 길렀을 것이다.
또 그는 제도권에 편입되지 않은 독특한 학문 경력을 가지고 있었다. 동아일보 임시직 기자로 5년여 동안 일을 했으며 『뿌리 깊은 나무』, 『창작과 비평』 등에 글을 기고했고 규장각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이런 그의 경력이 제도권에서는 얻을 수 없는 자유로운 정신을 그에게 선사했을 것이다. 이를 통해 그는 최근 완간한 『한국사 이야기』 22권 외에도 20여 권의 저서와 거의 100여 권에 달하는 한국사 관련 자료집을 펴낼 수 있었다. 이런 그의 자유로움과 개방성이 적지 않은 나이에도 빛나지 않는 낮은 자리에 그가 필요로 하는 곳이면 기꺼이 몸을 던지는 열정을 키워줬을 것이다. 실제 운영비가 없어 자신의 강연료와 원고료를 갖다 주는 사심 없음과, ‘집단 학살’이라는 인간의 가장 잔혹한 행위로 인한 고통의 자리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단단한 힘이 그에게 있었다.

선생님은 세계2차 대전이 끝난 이후로 우리나라에서 민간인이 가장 많이 죽었다고 했다. 독일은 분단이 되었지만 내란은 일어나지 않았고 베트남은 분단되고 미국이 개입되었지만 중국이나 소련이 개입되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경우 미국, 중국, 소련이 개입된데다가 이데올로기가 첨예화 되면서 짧은 시간임에도 엄청난 학살을 가져왔다. 어떤 합리적인 근거 없이 좌는 우를, 우는 좌를 죽이면 끝나는 것이었다.
특히 우는 친일파를 등에 업고 무고한 사람들을 더 죽였다. 남한의 학살된 민간인의 90% 정도가 남한의 군경, 우익청년, 미군에 의해 저질러졌다. 문경 석달마을에서 무장군인들이 마을에 들이닥쳐 86명을 학살했다. 15세 미만 어린이 중에는 5세미만 11명이 포함되어 있었다. 무덤앞 비석에는 영아들의 이름이 없어 ‘김아가, 박아가’ 라고 쓰여 있다.
보도연맹으로 20~25만 명의 사람들이 조직적으로 학살되었고 형무소는 미결수 포함 3~4만이, 그리고 미군에 의해 피난민들이 학살되었다.
김해에 어떤 사람은 일본 유학하고 돌아와 보니 아버지가 보도연맹이라는 누명을 쓰고 원수진 사람들에게 잡혀서 죽었다. 그 사람들이 시신을 창고에 묻었는데 4·19 유화 국면 때 그가 아버지 시신을 파서 유령제를 지내줬다. 5·16이 나자 군인들이 와 가지고 빨갱이를 다시 묻고 제사 지냈으니 이적 행위를 했다고 잡아갔다. 무덤을 다 파헤치고 뼈다귀까지 바다에 던져버렸다. 선생님은 아무리 적이라도 인간의 시체를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고구려 때도 죽은 당나라 군사들을 별도로 시체를 묻어서 모셔가게 했다. 더 심한 것은 재산을 다 빼앗아 버린 것이다. 자식들이 딸 넷 있는데 고등학교를 졸업한 아이는 하나밖에 없었다. 
선생님이 일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사람들이 하도 피해를 많이 당해서 또 어떤 불이익을 당할까 공포스러워서 입을 열지 않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피해망상과 악몽에 시달리면서 두려워했다. 언론에서 범국민위가 발족됐다고 떠들어도 입을 연 사람들은 천 여명에 불과 했다. 



맺힌 것은 풀어야 치유되고 분열이 없어진다
억울한 죽음을 당한 사람도 문제지만 그 죽음에 덧씌워진 이데올로기 때문에 후손들이 취직도 못하고 유학도 못가고 외국여행 가고 싶어도 허락을 받아야 하는데 쉽게 내주지 않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후손들은 교육받을 기회도 없고 머리를 깨칠 기회도 없어 소위 주류사회에서 다 배제된 사람들이었다. 너무 열악한 상태에 놓여 있다.
선생님은 잘못된 과거를 덮어두면 역사가 반복된다고 했다. 한나라당 일부 사람들이 진상규명하는 것이 나라를 분열시킨다는데 분열은 한을 그대로 놔두는 것이 분열이다. 과거 들추지 말라고 하는데 그것은 안 당한 사람 이야기이고 당한 사람은 뭔가라도 풀어야 한다. 명예를 회복해서 풀던가, 진실을 규명해서 풀던가, 원수를 갚아서 풀던가. 그것은 사회통합을 위해 청산해야할 중요한 과제이다. 억울한 사람이 너무 많다.



여전히 위험한건 극우적인 멘탈리티
이이화 선생님의 극우체감지수는 매우 섬세하다. 잘못된 역사 바로 잡는 것을 과도하게 ‘문화혁명’으로 몰아붙이는 비합리적인 태도도 문제지만 ‘돈’에 있어서 그들은 아주 민감하다고 했다. 16대 국회에서 한나라당이 보상만 들어가면 어찌나 반대를 하든지 무조건 다 빼라해서 아예 보상문제를 빼놓고 협상을 했다. 명예회복이라도, 진상규명이라도 해야되니까. 이번에 한국전쟁 피해자들도 보상을 해줘야 하는데 거의 다 뺐다.

총상입고 직접 피해를 당한 사람으로 최소화시켰고 의료범위도 최소화 시키면서 평생 약을 먹고 살아야 하는데도 약값도 안 되게 보상을 주려고 하고 있다.
지금 박물관 하나 짓는데 몇 천억이 들어가네, 다리 하나 만드는데 몇 백억이 들어가네 그러는데 그 다리 한 두개 값만 가지면 피해자들 다 보상하고 남는다. 6·25때 상이군인들은 연금받고, 자녀들 학비까지 면제해 주는데 이 무고한 피해자들은 그런게 하나도 없다. 형평에도 안 맞고 합리적이지도 않고 아무것도 아니다. 극우적인 멘탈리티에서 보면 민간인 피해자들은 비국민인 것이다. 이런 사고 속에 제노사이드(대량학살)가 알을 까고 새끼를 치는 것이다. 매우 위험하다.

 

결국은 인간의 문제이다
선생님은 승자가 패자에게 형벌을 가하는 뉘른베르크 모델보다 진상규명을 전제로 화해에 초점을 두는 남아공 모델을 지지한다고 했다. 뉘른베르그나 남아공이나 모두 정치권력의 폭력에 희생된 인간의 문제로 다루고 있다.
과거청산법이 통과 되고 나면 ‘진실화해 위원회’를 설치하여 대통령 직속으로 두어야 한다. 이해당사자가 끼여들어 방해하는 것을 막고 국가 기관들의 비협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이다. 국무총리 산하에 뭘 요구하면 거의가 거부한다. 조사에 응하지도 않고 진상조사 하자 그러면 자료도 안 내놓고 법적으로 보장도 안된다. 각 부처가 의무적으로 협조할 수 있도록 시행령을 만들어야 하고 조사위원들이 실질적이고 포괄적인 지위를 가져야한다.
명백한 거짓말이나 사실을 부정할 때 실질적으로 제재할 수 있는 법적인 힘을 뒷받침 해줘야 한다. 이 과정에서 정신과 마음의 상처들을 치유하고 진정으로 평화와 화해에 이르는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김순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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