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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형식으로 기억을 들려주는 워싱턴 홀로코스트 기념관 본문

민주화운동기념관/역사기념관_해외

이야기 형식으로 기억을 들려주는 워싱턴 홀로코스트 기념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08. 12. 22. 11:24

이야기 형식으로 기억을 들려주는 워싱턴 홀로코스트 기념관




독일 영화 한 편이 최근 독일뿐 아니라 유럽에서도 주목을 받고 있다. 9월에 개봉하여 개봉 5주 만에 독일에서 341만여 명이 관람한 <몰락(Der Untergang)>이라는 영화는 히틀러의 쉰여섯 번째 생일인 1945년 4월 20일부터 열흘 뒤 베를린의 지하벙커에서 그가 자살하기까지의 마지막 삶을 다룬 영화이다. 이 영화가 화제가 되는 이유는 독재자로서의 히틀러 모습보다 그의 인간적인 측면을 집중적으로 다루었다는 데 있다. 왜소하고 측은한 이 독재자의 모습은 감독이 의도한 바는 아니었을지 모르나 역사적인 과오를 감정적으로 덮어버리려는 위험한 시도로 비춰지고 있다. ‘신나치주의’를 표방하는 극우정당들인 국가민주당(NPD)과 독일국민연합(DVU)이 지방의회에서 약진하며 기세를 올리는 요즘, 이 한 편의 영화는 나치시대에 대한 성찰을 약화시키는 극단적인 현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는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히틀러의 개인 여비서 트라우델 융게의 『기억』(회고록)을 토대로 만든 이 영화는 600만 명을 무차별 학살한 나치원흉도 알고 보면 측은한 한 인간일 뿐이라는 식의 묘사로 일관하고 있다 한다. 수많은 사적인 기억 중에서 어떤 것은 사회적 기억이 되고 이들 중 일부는 역사적 기억으로 남는다. 특히나 이 여비서의 사적인 기억은 어느 한 개인에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구성원 다수가 겪은 경험의 일부분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종류의 ‘기억’은 한 개인에 대한 인간적인 면모를 회고하는 차원이 아니라 유례없는 비극적 사실을 직시하여 이를 널리 알리고 희생자들을 기념하는 사회적 차원으로 계승·발전시켜야 될 것이다.

 

왜소하고 측은한 히틀러?

미국 워싱턴 D.C에 있는 홀로코스트 기념관은 나치 치하에서 희생된 6백만 유대인과 수백만의 다른 희생자들에 대한 박해와 살육의 역사를 보여줌으로써 유례없는 이 비극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고 희생자들을 기념하며 방문객에게 시민으로서의 책임감과 도덕성을 상기시키려고 설립된 곳이다. 홀로코스트 기념관 건립의 경과를 먼저 간략하게 살펴보자.

- 1978년 11월 : 홀로코스트 생존자, 역사학자, 의원들을 포함한 34명이 기념관 건립위원회(위원회)를 구성
- 1979년 12월 27일 : 위원회가 카터 대통령에게 건립계획서 제출(워싱턴 D.C에 건립할 것과 국가적 차원의 홀로코스트 기념협의회 구성을 제안)
- 1980년 10월 7일 : 상하의원으로 구성된 홀로코스트 기념협의회 발족(매년 국가 차원의 기념의 날 제정과 홀로코스트에 대한 교육과 기념을 공식적으로 주관할 국가적 기관 설립 등 추진)
- 1993년 4월 22일 : 기념관 개관

상설전시관은 박물류, 사진, 영화, 목격자의 증언 등을 중심으로 4층에서 2층까지 307평의 공간에 학살을 주제로 한 이야기 형식으로 꾸며져 있다. 이러한 이야기 형식의 역사박물관(Narrative History Museum)은 전시에 이야기 구조를 도입하여 관람객을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인 후 그 구조에 동화되게 하고 감정이입하게 함으로써 지적인 경험을 넘어서 정서, 감정적으로 전시에 참여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많은 사람이 관람을 한다 해도 전시관에 들어가는 입구는 한 곳으로 정하여 안내를 하고 있다. 개실형과 강제적 순환체계를 사용하여 효율 높은 전시전달체계를 기획한 것이다. 또한 2층까지로 상설전시를 한정한 까닭은 관람자들이 홀로코스트의 세계에 곧바로 직면할 때 오는 심리적 충격을 고려한 것이다. 그래서 11세 이하의 어린이들에게는 관람이 금지되어 있다. 대신 어린이들을 위해서는 1층에 ‘어린이를 기억함 : 다니엘의 이야기’라는 주제의 전시가 따로 마련되어 있다.



전시관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당시 유태인들이 지니고 있어야 했던 신분증명카드를 비치해놓고 있다. 남녀성별로 구분된 신분증명카드를 한 장씩 들고 마치 수용소로 들어가는 듯 한 분위기를 자아내게 하는 ‘녹슨 철문’을 컨셉으로 한 엘리베이터를 타면 4층 전시관으로 가게 된다. 전시실은 연대기 순으로 꾸며져 있다. 나치의 등장(1933년)에서부터 2차 세계대전 종전까지 유태인들이 소외당하고 박해받은 것을 비롯하여 학살, 마침내 이를 어떻게 극복했는가를 보여준다.

수용소로 들어가는 듯한 분위기 연출

홀로코스트 기념관 자체는 매우 큰 건물이다. 그러나 전시장은 폭이 대략 4미터를 넘지 않고 조명도 매우 어두우며 배경 또한 검정톤으로 처리해서 전시내용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였다. 전시물들은 연대기적으로 배경 설명과 함께 사진과 동영상, 약간의 문서, 혹은 집단수용소의 생활용품들 즉 죄수복, 밥그릇, 간이침대 등으로 꾸며져 있다.
한편 15분짜리 필름 상영실과 오디오 룸 등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의 증언을 들을 수 있는 방이 마련되어 있는데, 전시장과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전시장 안에 전시물품과 함께 적절하게 배치되어 있으면서도 관람동선을 흐트러트리지 않게 자리 잡고 있었다. 특히 오디오 룸의 경우, 안내문 외에 사방이 유리로 구분된 공간에서 의자에 앉아 증언을 듣도록 되어 있었는데, 시각적인 것에 익숙한 관람자가 증언자들의 목소리만을 접하면서 상상되는 고통과 불안, 절망을 고스란히 체험토록 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이는 홀로코스트 기념관의 증언 자료실에 있는 1,500회의 증언 녹음과 2,000개의 비디오 인터뷰를 종합하여 편집한 산물일 것이다.



연대기순의 전시는 전쟁 막바지로 치닫는 부분에서 절정을 이루며 드디어 아우슈비츠 가스실이 나타난다. 미니어처로 제작된 아우슈비츠 내부로 줄줄이 들어가고 있는 유태인들. 목욕탕처럼 위장된 가스실과 생체실험실 등은 보고만 있어도 공포였다. 유리벽 안에는 노란 머리카락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고 그 뒤의 커다란 자루에도 역시 머리카락들이 담겨 있었다. 나중에 자료를 찾아보니 나치는 죽은 사람들의 시체에서 머리카락을 잘라 침대 매트리스 속, 쿠션 속, 슬리퍼가 폭신하도록 슬리퍼 바닥 속 등으로 사용했다 한다.


홀로코스트 전시실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수많은 기록물들에 욕심을 내어 많은 것을 전시하려 하지 않았다. 또한 많은 설명으로 관람객들을 이해시키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정확히 계산된 동선과 분위기, 적재적소에 전시물 배치로 어두컴컴한 전시실을 지나 밝은 로비 계단을 내려오면, 관람객 자신들은 홀로코스트의 중요 행사인 기억의 날(Days of Remembrance)을 애써 따로 기억하고 기념하지 않아도 될 듯싶다.


홀로코스트 기념관은 홀로코스트 연구기관과 기록 보존실, 사진기록 보존실, 도서관, 상설전시, 특별전시, 학습센터를 가지고 있으며, 학생과 성인을 위한 교육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기념관에서는 직원 400명, 자원봉사자 400명이 일하고 있다. 그 중에는 각각 50명의 연구원과 연구 관련 자원봉사자도 포함되어 있다. 교육을 지원하는 직원도 40명에 이른다. 국가적인 필요에 의해 건립한 기념관이기 때문에 예산은 연방정부에서 70%를 지원하고 나머지는 기부금 등에서 충당하여 운영된다.


현재 25만여 명이 회원으로 등록하여 기념관 1층 ‘기부자의 라운지(Donors Lounge)’에 있는 기념명부에 영구 전시되고 있다. 입장료는 무료이다.


많은 것을 전시하지 않아

홀로코스트 기념관의 주요 활동은 ①상설전시(2층~4층)와 특별전시(1층) 등의 전시활동 ②홀로코스트 관련 각종 연구와 편찬활동 ③홀로코스트와 관련된 예술품과 유물의 수집과 보존 ④기억의 날(Days of Remembrance)로 알려진 홀로코스트 의식 수행 ⑤교육적 자료와 이를 가르칠 수 있는 정보 제공 등을 통한 이용자 프로그램 운영이다. 이와 같은 홀로코스트 주요 활동은 앞으로 우리나라에 건립될 민주화운동 기념관의 활동 방향과 무관하지 않다. 특히 민주화운동 자료를 수집하는 것과 연관 지어 생각해 볼 때, 홀로코스트 기념관의 자료수집 범위, 수집활동, 관리방법 등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홀로코스트 기념관의 사료수집 범위는 홀로코스트, 전범 재판, 홀로코스트에 대한 증언, 그것의 여파, 배상노력에 관한 자료들 그리고 홀로코스트 부정론자들에 대한 동시대의 기록화 등을 포함하며 그 범위를 확대해 가고 있다. 이는 장차 건립될 민주화운동 기념관의 자료수집 범위를 설정하는 데 참조가 될 수 있다. 즉 민주화운동 관련 기록들, 각 국가기관 및 대학에서 생산한 관련 자료들을 포함하여 수집해야 할 범위의 지평을 넓힘과 동시에 기준을 마련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홀로코스트 관련 기록들에 대한 수집은 홀로코스트 연구센터(The Center for Adnance Holocaust Studies)와 기념관 수집국을 통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먼저 국제기록관리수집프로그램의 진행은 홀로코스트 연구센터에서 행하고 있는데, 40여 개 국가를 중심으로 홀로코스트와 관련한 조사, 평가, 수집을 위한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기념관 수집국은 8개의 부서로 이루어져 있는데 아카이브즈 부문, 예술품과 유물 부문, 영상물 부분, 음악 부문, 구술 부문, 사진 부문, 수집관리 부문, 보존 부문이 그것이며, 이러한 부서들이 수집물의 수집, 보존, 목록화, 이용 등에 책임을 지고 있다.

미국 홀로코스트 기념관의 활동을 보면서, 10년 동안 40여 개국을 포함하여 2000만 쪽의 사료를 수집할 수 있었던 동력은 미국이라는 나라가 세계에 미치는 보편적 영향력과 홀로코스트에 관한 자료를 관리할 수 없는 각 나라의 기관들에게 자료를 정리해주고 원본을 고집하지 않고 사본(마이크로필름)을 가져오는 방식으로 사료를 수집하는 것, 미국 국립기록관리청(NARA)에서 나치 전범 기록 등 기밀취급을 해제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나치의 핵심 기록물과 다양한 컬렉션들에 접근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것 등이라고 생각된다.

 

이러한 수집방식은 역시 건립될 민주화운동 기념관에 중요한 시사점을 주는데, 현재 국정원 등에 민주화운동 관련 자료가 있는데도 비공개 조항을 악용하고 있는 한국의 국가기관들로부터 어떤 방식으로 사료를 수집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 구체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방식을 알려주고 있다. 또한 민주화운동 기록물을 소장하고 있는 여러 민주단체와의 네트워크 구축의 한 방안으로서 각 단체에게 기록물의 정리 방법을 제시해 주고 원본을 고집할 필요 없이 자료를 수집하여 자료의 소장 위치와 연관 정보를 충실히 기술한 목록을 공유하는 방안을 앞으로 고려해 볼만 하다.

10년 동안 40개국에서 2000만 쪽의 사료 수집

홀로코스트 기념관은 이야기 형식의 역사박물관을 표방하고 있다. 전시의 흐름 속에서 교육적 효과를 얻도록 의도하였다. 앞으로 건립될 민주화운동 기념관의 경우도 주요 기능으로 교육적 기능을 포함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기록을 통한 교육’과 ‘기록에 대한 교육’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즉, 기록을 통한 특정 역사사실에 대한 교육적 인식의 심화라는 측면과 기록은 나와 어떤 관계이며, 기록을 어떻게 이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접근을 두 축으로 향후 기념관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홀로코스트 기념관의 교육부서는 저녁에 성인들을 위한 홀로코스트 역사·미술 강연과 패널토론 등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한편 교육자료와 교사 보조자료의 보급에도 힘쓰고 있다. 그 한 방편으로 교사가 기록을 이용해 역사적 사실 및 기록의 이용방법을 가르칠 수 있는 교육 교재를 제작하여 배포하고 있다. 이러한 예는 다른 곳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호주 국립기록보존소의 경우에 호주 민주주의와 관련된 4명의 인물을 선정하여 그들의 일대기를 소개하고 그들의 기록을 복제하여 부록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한 것도 있으며, 미국 국립기록관리청(NARA)의 경우에 2차 세계대전에 관한 교사 지침서(Teachers Guide)를 간행하고 있다.
홀로코스트에서 간행한 『A Promise To Remember』의 경우는 구술CD를 책의 목적에 맞게 재편집한 것과 그와 관련된 1차 사료(각종 문서 및 사진)의 복제본을 책의 사이사이에 넣어 입체감과 긴장감을 더해주도록 구성한 것이나, 1차 사료를 주제에 맞게 복제하여 자체로 기록에 대한 접근이나 활용법을 숙지하게끔 하면서도 기념품이 될 수 있도록 한 점은 향후 건립될 민주화운동 기념관에서도 시도해 볼만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전시의 흐름 속에 교육적 효과도 담아내

사회적 기억에 대한 장치 그리고 기념사업은 단순히 과거를 상기하는 것에 그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개인이 어떤 경험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과 사회가 어떤 과거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질적으로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사회적으로 무엇을 기억하게 할 것인가 그리고 기념하도록 할 것인가 하는 것을 공표하는 것은 하나의 선택적인 그리고 엄연히 당파적인 집단의 의사 표현이다. 지금도 이 사회에 분명하게 존재하는 반민주세력에게는 민주화운동이 결코 기억할 것도 기념할 것도 아니다.
지금 민주화운동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것은 과거의 민주적 궤적을 회상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현재 진행되고 있는 민주화를 규정하기 위한 것이다. 또 나아가 미래의 우리 사회의 민주주주 발전을 염원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그러한 민주화 역사를 전 사회적인 기억으로 영속화시키기 위한 것이다.


<이 현 정>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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