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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이 즐거운 곳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11. 1. 5. 12:23

배움이 즐거운 곳
-대안대학 풀뿌리사회지기학교

 

글·양지연 yangji@kdemo.or.kr/ 사진·염동해 dhyeom@kdemo.or.kr

 

"그대들에게는 넘치는 활력이 있다. 밀림을 만나면 밀림을 개척하고 광야를 만나면 광야를 개간하고 사막을 만나면 사막에 우물을 파라. 이미 가시덤불로 막혀 있는 낡은 길을 찾아 무엇 할 것이며 너절한 스승을 찾아 무엇 할 것인가!" (루쉰, 청년과 스승 중)

요즘 우리 사회의 대학을 보면 루쉰의 일갈이 주는 울림이 더욱 사무친다. 취업 준비 학교로 전락해 버린, 황금 간판의 덕을 보기 위한 곳으로 변질되어 버린 대학에 대한 씁쓸함과 진정한 배움의 장에 대한 갈증으로 대학문을 박차고 제발로 걸어나오는 이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느끼게 되는 요즘, 그래서 대학에 대한 다른 꿈을, 이상을 품어 보게 된다.

추위가 조금 누그러든 햇살 좋은 오후, 길을 가득 메운 플라타너스 잎을 밟으며 이대후문에서 금화터널 쪽으로 이어진 길을 걸어 올라갔다. 언덕길을 올라 한 숨 돌릴 무렵 체화당이라 쓰인 조그마한 간판이 바람에 반갑게 흔들거렸다.

지역 사회에 뿌리를 둔 학교

풀뿌리사회지기학교. 학위를 따는 공부가 아니라 대학 수준의 공부를 하고 싶다는 청년들이 모인 곳이다. 체화당은 이 학교의 교실이 되기도 하고 마을 공동체의 소통의 장이 되기도 하는 카페다.

"처음은 신촌 민회가 중심이었어요. 신촌지역의 논단, 신촌 공동체 사람들과 어울려 신촌이 어떻게 발전해나가면 좋을까 고민을 시작한 거죠. 지금은 은퇴하신 연세대 이신행 교수님 수업을 듣던 친구들이 많이 참여했죠. 그러다보니 사람들이 모이고 소통할 장소가 필요하고 그래서 나온 게 카페 체화당이었어요. 체화당에서 이뤄지던 끊임없는 토론과 강좌들이 모이면서 이제 학교를 생각하게 된 거죠 "

체화당에서 만난 정동화 교감선생님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는 학교에 대한 열정과 애정이 물씬 묻어났다. 풀뿌리사회지기학교는 신촌의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한 학교를 지향한다고 했다. 개별화되고 개인화된 도시 속에서 얼마나 긴밀한 관계를 구축하고 유지할 수 있을 지 궁금했다.



"지역사회와의 관계는 신촌 민회가 주축이 되요. 논단을 개최하고 미술 강좌, 음악회, 장터 등 다양한 문화 활동이 열리고 같이 모여서 활동하는 장이 체화당을 중심으로 마련됩니다. 근처의 대신교회와 봉은사에서 민회 활동을 지원해주고 있고요. 수업에서도 관계형성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수업이든 과제든 혼자 하는 게 아니라 내가 하는 작업을 도와줄 사람들을 모아 나가고 관계를 꾸려나가는 과정이죠. 여기서 맺어진 관계가 곧 학위인 셈이에요."

토론식 수업, 성적표 대신 평가서

관계가 곧 학위라는 말이 인상적이다. 대안 대학을 표방하고 있는 풀뿌리사회지기 학교는 수업 과목도 학기제도 일반 대학과는 많이 다르다. 여기선 학생들을 배울이, 선생님을 가르칠이라고 부른다. 2년 반 과정인 풀뿌리사회지기학교는 1년 4학기제로 운영이 된다. 1년의 1/3 가까이가 방학인 일반 대학들과는 다른 점이다. 지금 현재 학부에 7명의 학생이, 대학원에 5명의 학생이 다니고 있다. 학부 교과과정은 터닦기-길찾기-사회지기 로 이루어졌다. 세상을 바꾸는 글쓰기, 성찰적 삶, 개인과 사회, 사회적 기업과 물울길 프로젝트, 자연, 사람, 삶의 여행 개설 과목명부터 참 색달랐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자아를 들여다보고 그걸 바탕으로 사회를 조직해 나갈 수 있는 과정을 훈련하고 경험하는 과목으로 짜여 져요. 물론 공부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원하는 수업을 개설해서 듣는 것도 가능하고요. 토론식 수업을 좋아하고 배울이 주도를 지향해요. 혼자 스스로 하는 방법을 터득하는 거죠."(정동화)

특히 글쓰기는 필수 과목이다. 함께 책을 읽고 토론하고 글을 쓰는 과정을 모든 과정의 기본으로 삼았다.

"수업시간에 서로 토론하면서 얘기를 많이 해요. 배울이들끼리는 가족같은 분위기죠. 수업이 재미있고요. 대학에서 강사하시는 분이 왔을 때는 주입식으로 흐르기도 하는데 그런 것도 신선했어요. 전문가가 지식을 전달해 주는 것도 배우는 게 많은 것 같고요. 앞으로는 토론식과 주입식이 섞여 있었음 해요."

주입식 수업이 신선했다는 배울이 하수용 씨의 대답에 살짝 웃음이 나왔다. 학기가 끝나면 배울이들에게는 성적표가 아닌 평가서가 주어진다. 배울이 한 명 평가서 작성하는 데 하루가 걸린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평가서에는 한 학기 수업 동안 가르칠이가 느꼈던 배울이에 대한 모든 이야기가 담긴다. A학점, B학점, 단순한 글자가 말해줄 수 없는 사람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가 여기에 담기게 된다.

배울이들의 꿈과 고민

이곳의 배울이들은 어떤 생각, 어떤 꿈들을 품고 있을까. 88만원 세대들의 공통된 고민인 취업걱정이 이들에게는 어떻게 다가올까?



"취업이나 미래에 대한 고민이 없다면 말이 안 되죠. 하지만 그게 가장 중요한 고민은 아니에요. 지금 체화당에서 일하고 있는데 이 카페를 어떻게 운영해 볼까가 제겐 가장 큰 고민이에요. 꿈이 요리사인데요, 어떻게 취업하나 그런 걸 걱정하기보다는 찾아 나가는 과정이 더 중요하겠죠"(배울이 김태균)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은 게 고민이에요. 그 우선 순위를 정하는 게 고민이고요. 풀뿌리 학교를 계속 키워나가고 싶은 생각도 있고, 마을을 만들어 보고 싶기도 하고, 생태건축도 계속 생각해 보고 있어요. 일반 대학생들은 돈을 얼마나 버는냐가 중요한데 그런 것보다는 내가 했을 때 좋은 게 뭔가가 중요해요. 취업 문제는 고민해 본 적이 없네요."(배울이 하수용)

"제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고 싶은 데 주변에서 주는 압박감이 심해요. 하고 싶은 걸 하며 살고 싶은데 주변에서 요구하는 걸 안 하면 안 될 것 같아 고민이에요."(배울이 이가연)


그들의 고민 속엔 삶의 대한 희망과 풋풋함이 묻어났다. 지식뿐만 아니라 자신이 속한 사회 속에서 혼자 서는 법을 배우고 관계 맺기를 배워가는 이들의 모습이 참 든든하고 따스해 보였다.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땅 위의 길과 같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루쉰)

풀뿌리 학교는 아직 졸업생도 없고 커리큘럼도 틀을 갖추어 가는 과정에 있다. 학생수도 적다. 풀뿌리 사회지기학교는 느리지만 천천히 걸어가는 중이다. 좀 더 많은 배울이들이 이 걸음에 함께하기를 그래서 진정한 배움의 길이 생겨나기를 바라본다.(www.pulschool.net)

글·양지연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기획홍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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