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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미디어시대,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미디어의 기본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10. 10. 18. 11:51


소셜미디어시대,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미디어의 기본

글·김태황 zoinnogmail.com



의사소통의 가장 본질적인 이유는 타인의 생각이나 실천에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다. 표현의 이유와 닮은 듯 차이가 있는 것도 변화를 요구하는 화자의 실천행위라는 측면이다.

의사표현은 욕구 또는 욕망을 담아내기 바쁜데 비해 소통은 타자와 교류하는 것을 말한다. 인간은 타인에게 단지 의사를 전달하기 위해 미디어를 끊임없이 연구하고 실천한 것이 아니다. 이해하고 이해받기 위해 미디어가 진화했다. 모든 미디어는 인간의 사용을 근거로 발견했거나 만들어졌다. 또한 이 모든 미디어가 우연이든 필연이든 의사소통을 돕는데 종사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이유로 많은 사람들은 뉴미디어의 탄생을 바라보며 지금까지의 불통을 해소해 줄 것이라는 기대를 한다. 굳이 아니라고 우길 이유는 없지만 생각해 봐야 할 몇 가지가 있다.

인구가 늘고 집단을 형성하고, 그 집단에서 문화를 만들어 가노라면 사용해야 하는 새로운 언어와 미디어가 늘어간다. 새로운 언어와 미디어는 새로운 문화를 형성하고 그로인해 또 새로운 언어와 그 언어를 싣고 나르는 미디어가 탄생한다.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절대시간을 단축하고 효율적인 의사소통을 해야 하는 이유가 생기기에 뉴미디어가 생기고 사라지는 기간은 단축되고 속도가 빨라지는 것은 당연해졌다. 이때 우리가 환기해야 하는 것은 다름 아닌 미디어 자체의 개념이다. 모든 미디어는 인간으로부터 출발해서 인간에게 다가간다. 때로는 인간으로부터 출발하고 있기 때문에 인간이 최고이자 최초의 미디어라고 말해야 한다. 건강한 미디어에는 건강한 인간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버추얼, 사이버, 온라인, 네트워크 이런 단어들도 이제는 트랜드에서 조금 벗어난 듯 느껴진다. 소셜미디어, SNS가 화두다. 마치 소셜네트워크를 모르거나, 사용하지 않으면 사회적으로 도태되는 것 같은 분위기를 느끼곤 한다. 하긴 이 사회의 대부분의 정보가 신문과 TV를 넘어서서 웹으로 움직였고, 웹이 정보를 집적하는 공간에서 분화되는 공간으로 향하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미디어에서 소외되는 걸 두려워하는 인간

역사적으로 정보는 곧 생산력과 비례했다. 아주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자. 사냥하는 방법과 수렵, 이동, 집단생활의 모든 것을 선 경험자의 언어와 행동으로 동 시간에 경험해야 했던 때, 자신이 속한 커뮤니티는 막강한 영향력을 지녔고 윗세대의 정보는 나의 생존과 직결되었다. 그렇게 쌓여온 것이 지식을 넘어선 지혜가 되는 과정이었다. 시간이 흘러 기억과 경험에 의존하던 정보가 기록되기 시작했다. 기록은 읽고 쓰는 능력을 요구했다. 자연스럽게 기록된 정보를 누가 갖는가에 따라 생산력이 달라졌다. 경험과 지혜를 기록하기에는 한계가 있었지만 커뮤니티가 확장되고 보다 복잡한 사회를 구성하면서 효율적인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인간의 모든 감각을 열어두려고 노력하지 않고, 기록된 정보에만 매달렸다. 그것은 시각정보였다.

정보를 갖게 된 사람은 생산력을 얻게 되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많은 인구가 기록된 정보를 얻고 싶어 했다. 놀랍게도 그렇게 쌓여진 정보들은 지식으로 쌓여갔다. 그 지식을 득한 사람들은 또 다른 정보를 가공하기 시작했고, 그것은 또 다른 생산력을 갖게 했다. 전기와 전파는 수신기를 가진 사람들에게 새로운 정보를 나눠주기 시작했다. 사회구성원으로 살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구는 미디어를 통한 정보유통 채널에서 소외되는 것을 두려워했고, 이것 역시 사회 속에서 살아가기 위한 생존과 직결되어 있었다.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미디어의 기본

최근 정보채널이 늘어나거나 접근성이 좋아졌다고 말하면서 사람들이 대안처럼 말하는 미디어들이 쏟아진다. 마치 개인의 접근권이 열려있으니 언제든 접속하여 우리의 통계 안으로 진입하라는 말처럼 들려서 불편해진다. 메일이 이동전화 문자메시지처럼 실시간으로 들어온다. 스마트폰이 실시간으로 우리 사회를 연결하고 중계해 준다. 편리함을 넘어선 처리할 정보의 양이 늘어났다는 것. 속도와 편의성을 무기로 찾아 온 통신의 혁신적 변화를 좋아만 할 것인가 생각해보자. 마치 새로운 정보를 남보다 빨리 얻게 되면 쿨하고 멋진 신세계에서 사는 것 같은 환상이 늘어난 것은 아닐까. 미디어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여 풍요로운 인간사회를 꿈꾸는 것이라면 지금의 미디어가 취하는 태도는 그에 반하는 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마치 SNS가 생산력을 높여 줄 것이라는 마케팅의 언어로 언제 어디서든 네트워크에 접속해서 노동하라는 행동지침으로 치환된다면 경계하자는 말이다. 당신이 원하는 모든 곳에서 온라인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라는 광고카피는 당신이 언제든 일할 수 있게 하겠습니다, 라는 말과 무엇이 다른가. 인간에겐 적절한 휴식이 필요하고 그 시간을 조절할 자율성도 가지고 있다. (또는 가지고 있다고 믿거나 전제하고 싶다) 정보를 가진 자가 승자가 되는 사회에 사는 것이 얼마나 피곤한가. 몰라도 되거나, 몰라야 하는 정보가 나에게 오는 비효율성을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그 스트레스의 정도를 안다. 가족이나 지인과의 대화를 가로막는 가장 큰 적수가 혹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전화벨이나 문자메시지라는 것을 우리는 얼마나 인식하고 있는가. 최근 목격하는 스마트폰 사용자들이 트위터에 접속하고 세상을 구원할 듯 말하고 있지만, 내 앞에 앉아 있는 사람과의 대화가 방해받는다면 의사소통을 위한 매체가 의사소통을 방해하는 꼴이다.

온라인에서 의사소통의 대안으로 포장된 트위터 등 SNS는 교류와 소통이 사라진 정치와 특정인물의 욕망이 드러나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다. SNS에서 "social"이 지향하고 있는 신념과 확신이 빠진 것에 문제의식이 별로 생기지 않거나, 무리한 사회적 요구로 느껴지지 않는 순간이 되면 사람들은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몰려들 것이 분명하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오늘 집에서 나오면서 만나는 동네사람과 인사 나눌 여유는 있었는지? 친구의 현재 고민을 함께 나눌 시간을 내고 있는지? 문자메시지와 실시간 메일을 확인하면서 부모님과의 통화는 늘어나고 있는지? 이런 질문을 스스로 던져보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 글이 SNS를 부정하는 글은 아니다. 필자 역시 SNS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유저이며 새로운 의사소통과 뉴미디어의 놀라운 진화속도에 박수를 보내는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에게 환기가 필요한 시점이기도 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망치와 못은 가구를 만들 때나 고칠 때 사용하는 도구다. 하지만 같은 도구를 쓰면서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 그것이 도구의 본질이다. 미디어가 의사소통을 위한 도구이며 때로는 도구를 넘어선 문화를 만들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지금 현재 모습을 한 걸음 떨어져 살펴보려는 노력도 필요로 한다.

글 김태황 | 다음세대재단 슈퍼바이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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