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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칼럼/인터뷰/문화초대석

“괜찮아 잘 될 거야, 나에겐 눈부신 미래가 있어”_가수 이한철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10. 7. 23. 14:41

“괜찮아 잘 될 거야, 나에겐 눈부신 미래가 있어”
_가수 이한철

 

글 김미영 kimmyhani.co.kr

 



이한철(38)은 말 그대로 ‘비타민’ 같은 가수다.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맑은 음색이 그의 밝고 경쾌한 목소리와 어울리면 절로 기분이 좋아진다고나 할까. 그런데 요즘 그의 활동이 조금 달라졌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궂은 날씨를 보였던 5월 18일, 그는 무대가 아닌 한국에 있는 프랑스대사관 앞에 섰다. ‘외규장각도서는 대한민국의 소중한 문화유산입니다’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그러고 보니, 최근 그의 근황을 주로 신문과 시사주간지에서 확인했던 것 같다.
그는 텔레비전과 라디오, 공연장에서뿐 아니라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콜텍 해고노동자, 용산참사, MBC파업,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현장에서도 기타를 들고 노래를 불렀다. 그 이유가 궁금해서 그를 만나 이유를 물었다. 역시나 모범답안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가수들이면 다 그렇듯, 공연하는 게 가장 좋아요. 불러주는 자리가 있으면 언제든지 가려고 하지요. 허허.” 천진난만하게 활짝 웃는 그의 얼굴과 함께 하얀 덧니가 유독 더 환하게 반짝인다.

사회참여 부담스럽지만…음악과 현실 괴리될 수 없어
“나이를 먹어가면서 내가 하는 음악과 현실사회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내 음악과 정치적 이슈, 사회 환경이 무관할 수 있을까? 생각만 하고 실천하지 않으면 결국은 사회가 구성원들이 원치 않는 방향으로 가더군요. 뮤지션으로 다양한 활동을 하는 것이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력을 줄지 모르겠지만, 몸으로 실천하는 게 중요할 것 같았어요.”
인터뷰 첫마디부터 공격적인 질문을 한 건, 정말 그의 생각이 궁금해서였다. 가뜩이나 현실에서 대중가수가 사회참여를 한다는 건, 일종의 자살행위라는 인식이 팽배한 요즘이다. 팬으로서 그의 행보가 갈지(之)자를 걷는 것처럼 위태로워보였다. 그런데 그의 대답이 더 가관이다. “오히려 제 음악을 좋아하는 팬들이 내 음악을 느끼는데 고려사항이 하나 더 늘어날까 그것이 걱정”이란다.
그를 변화시킨 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이다. “소신에 따라 행동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는 동안 노 전 대통령이 돌아가셨다”고 한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노 전 대통령 추모공연 무대에 섰고, 참 힘들게 <불꽃>이라는 추모곡도 만들었다. 창작 스트레스 없이 노래를 만드는 편인데, 이 노래를 만드는데 무려 2개월이 걸렸다. 팝적인 느낌을 넣어 세련되게 만들고 싶었고,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곡을 만들고 싶은 욕심이 컸다고 한다. “다시 시작이다 힘껏 박차고 일어나 그래 내일을 향해 소리쳐. 영원히 꺼지지 않는 꿈이여”(<불꽃> 중에서)

1994년 대학가요제 대상 수상하며 가수 데뷔
이한철. 그의 이름이 대중들에게 각인된 것은 <슈퍼스타>라는 노래가 ‘빵’하고 터진 2007년 즈음이다. 대학진학이 좌절돼 미래가 불투명한 고교 야구 선수에게 “괜찮아, 잘 될 거야”라는 위로의 메시지를 주는 곡인데, 광고에서 윤은혜가 불러 널리 알려졌다. 이 노래는 2007년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올해의 노래’로 선정되기도 했다.
겉에서 보기에 그의 음악인생이 짧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16년 차 가수다. 영남대 재학시절 ‘에코스’라는 밴드에서 활동했던 그는, 1994년 <껍질을 깨고>란 노래로 대학가요제에 출전했다. 운이 좋게도 이 무대에서 덜컥 대상을 수상한 것을 계기로, 그는 ‘취업준비생’에서 졸지에 ‘가수’가 됐다. “당시에는 지방(그는 대구 출신이다) 출신이 서울에서 가수로 데뷔할 수 있는 길이 거의 없었어요. 가요제에서 상을 받는 것뿐이었는데 대학교 4학년 때 출전한 가요제에서 운 좋게 대상을 탄 것이지요.”
첫 단추를 잘 꿰어 내심 기대도 했다. 말 그대로 ‘슈퍼스타’가 되는 일이 탄탄대로일 것 같았다. 그러나 가수로서 그의 인생은 순탄하지 않았다. “여러 음반기획사에서 연락이 왔고, 그중 한 곳과 계약을 했죠. 솔로음반 2장을 냈고, 버라이어티 쇼프로그램에도 많이 출연했지만 잘 안됐어요.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제가 편하게 제 음악을 보여줄 수 있는 조건이 아니었던 것이에요. 제게 맞는 건 공연인데, 방송활동만 했던 거죠. 가수라는 것 자체가 나한테는 과분한, 나한테 주어진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슬럼프를 겪기도 했어요.”

이한철은 이후 다양한 음악적 실험을 한다. 1995년엔 장기영과 ‘밴드 지퍼’를 결성해 포크와 하드록 음반을 내기도 했다. 록밴드 ‘불독맨션’이라는 이름으로는 석 장의 음반을 발표하며 모던록, 펑크, 테크노, 헤비메탈, 라틴음악까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선보이기도 했다. 록듀오 ‘하이스쿨 센세이션’, 싱어송라이터 프로젝트밴드 ‘주식회사’까지.
<주유소 습격사건> <신라의 달밤> <색즉시공2>의 음악감독을 맡기도 했으며, 솔로 정규음반도 석장을 냈다. 이렇듯 그의 음악의 스펙트럼은 넓고 깊다. 그는 10년 전부터 인디레이블 튜브앰프의 대표이기도 하다. ‘소히’가 그의 회사 소속 가수다.
“호기심이 많은 성격이라 다양하게 활동하게 된 것 같아요. 그런 활동들이 지금 솔로활동을 하는데 좋은 경험이 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재밌는 것들이 생기면 프로젝트 활동을 병행할 생각입니다.”

‘그분’이 오시면 작곡도 후다닥…창작의 고통은 “없다”
그는 가수이면서 작곡가다. 싱어송라이터. 아무래도 창작의 고통이 클 수밖에 없다. ‘천재’라 불렸던 서태지도 “뼈를 깎는 창작의 고통”을 호소하며, 은퇴를 선언했었다. 그러나 적어도 이한철에게만은 예외다. 그는 만능재주꾼이다. ‘그분’이 오시는 날엔 하루만에 3~4곡을 만들기도 한다. 어떤 곡은 4분 만에 후딱 완성되기도 한다. 그런데 얄밉게도 그가 흥얼거리는 리듬이 모두 ‘근사한 노래’가 된다. <슈퍼스타>는 목욕탕에서 샤워를 하면서 흥얼거린 리듬이 노래가 된 경우다. 때로는 버릇처럼 녹음 버튼을 눌러놓고 아무 멜로디나 아무 리듬을 눌러보며 노래를 만든다. 그래도 노래가 된다. “제게 그런 재능이 있다는 걸 고등학교 1학년 때 알았어요. 기타도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연주하기 시작했고요.”
그런 그가 지금껏 만든 노래는 1천여 곡이 넘는다. 이 가운데 200곡 남짓 발표했을 뿐이다. ‘이 많은 곡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더 많이 알릴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고 한다. 기타 연주 실력도 수준급이다. 그가 처음으로 만든 곡은 대학 때 만든 ‘아일 네버 렛 유 고(Ill never let you go)’다.
“제가 외아들인데, 작곡은 제 형제나 친구 같아요. 형제와 친구와 대화할 시간이 많지 않은데, 그런 돌파구가 작곡인 셈이죠. 작곡은 이제 제 생활의 일부분이자 재미있는 놀이인걸요. 경제활동을 하는 직업이자, 취미활동을 함께 하는 친구이기도 하구요.”
그래서일까. 그가 발표한 노래들은 대부분 밝고 경쾌하다. 그는 “사람들이 내게 기대하는 곡 스타일도 그렇고, 내가 보기에도 밝은 곡들이 완성도가 더 높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그가 애잔한 발라드 곡을 전혀 만들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소라 7집의 타이틀곡 ‘트랙8’은 그가 만들어준 곡이다. “기회가 되면 이런 분위기의 곡들만 모아 앨범을 내보고 싶은 맘도 있다”고 한다.

‘인디뮤지션’ 이한철의 안식처는 홍대…끝까지 남고파
그의 이름이 대중에게 널리 각인되었지만, 그는 지금도 홍대 앞 무대에 선다. 직접적인 관객과의 소통이 가능한 라이브 공연을 선호하는 그에게 이곳은 든든한 안식처이자 그의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이다. 이곳에서는 언제, 어디를 가나 공연할 수 있는 카페가 있고, 거리에서 뜻하지 않게 만나는 뮤지션도 있다. 그를 새롭게 발돋움하게 하는 곳도 홍대 앞이고, 그의 음악적 재능을 키워주는 곳도 바로 이 곳이다. 그 스스로 ‘인디뮤지션’이라고 말하는 그는,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도 이곳을 떠날 계획이 없다고 귀띔했다.
지난 5월 그는 유독 바빴다. 축제의 계절답게 그를 불러주는 곳이 많았고, 노 전 대통령 추모공연 무대에도 섰다. 그나마 지금 조금 한가한데, 앞으로도 바쁜 나날을 보내게 될 것 같다. 당장 7월과 8월에는 인천에서 열리는 ‘펜타포트락페스티벌’과 ‘부산국제락페스티벌’에서 공연을 한다. 9월에는 일본 후쿠오카에서 열리는 선셋라이브페스티벌(어쿠스틱)에 초청을 받아 그 무대에 선다.
올해 안에는 새 음반도 낼 계획이다. 그는 “어떤 식으로 곡을 엮을지 고민하고 있다”며 “어떤 형태로든 올해 안에는 음반이 나올 것 같다”고 전했다.
지난 16년, 가수 이한철은 참 많이 변했다. 음악적으로도 한층 성숙해지고, 완성도가 높아졌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그런데 변하지 않은 것이 하나 있다. 갓 상경했을 때의 설렘, 그리고 때 묻지 않은 순수함,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은 외모. 그리고 음악을 향한 열정. 그의 얼굴에서는 30대 후반이라는 세월의 흔적을 찾기가 쉽지 않다. “변하지 않은 게 또 있네요. 바로 요 사투리. 음악을 하면서 즐겁게 사는 것이 동안의 비결 아닐까요? 하하.”

 

글 김미영 | 한겨레신문 기자, 사진제공: 튜브앰프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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