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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렐류드만의 멋진 음악 앞으로도 기대하세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11. 1. 5. 11:47

"프렐류드만의 멋진 음악 앞으로도 기대하세요"

-버클리 음대 출신 4인조 재즈밴드 프렐류드

글 김미영 kimmy@hani.co.kr



재즈. 재즈라는 음악에 호감을 느끼면서도, 정작 재즈라고 하면 어렵고 낯설기 마련이다. 100여 년의 역사를 지녔음에도, 태생이 미국의 흑인음악에서 비롯되었다는 한계 때문일까? 우리의 정서와는 맞지 않는 옷이라는 인식이 남아 있다. 정말 그럴까.

영화 [바그다드 카페]에서 잔잔하게 흐르던 Calling you,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에서 두 주인공이 단풍나무 아래를 걸을 때 나왔던 Autumn in New York 등에서 보듯 알게 모르게 우리는 재즈를 접하고 있다. 재즈가수 윤희정, 웅산, 말로 등이 친숙하게 다가오지 않는가!

버클리 음대 유학생 의기투합, 2003년 프렐류드 결성

여기 고희안(35·피아노, 리더), 최진배(36·베이스), 리처드 로(32·테너 색소폰), 에이브라함 라그리마스 주니어(28·드럼)로 구성된 재즈밴드 프렐류드(Prelude)가 있다. 버클리 음대에서 재즈를 전공하던 이들이 밴드 한 번 만들어보자!며 의기투합한 게 2003년의 일. 그렇게 프렐류드가 탄생했다. 그리고 지난 7년간 5장의 앨범과 1년에 2번씩 정기공연을 통해 팬들과 만나고 있다.

"재즈를 공부한 뒤 뭘 할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한국의 뮤지션들과 함께 공연을 하는 수준에서 못 벗어나겠구나 싶었어요. 재즈의 발전이나 재즈의 대중화 차원에서 임팩트를 주기엔 한계가 있지요. 우리가 함께 밴드를 만들어 보여주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어요."(고희안)

고 씨의 제안에 함께 버클리에서 재즈를 공부하던 친구들도 선뜻 응했고, 지금껏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어릴 적 미국에 이민 온 리처드는 "자신의 삶을 바꿔준 음악활동을 위해", 에이브라함은 "친구들과의 음악 교류와 우정을 위해" 밴드 결성에 동참했다. 제대한 뒤 재즈클럽 야누스 등에서 연주활동을 하다 유학 온 최 씨 역시 고 씨의 제안이 반갑기는 마찬가지였다. "1990~2000년대만 해도 재즈가 많이 알려지지 않았어요. 재즈 장르를 배울만한 곳도 별로 없었습니다. 미국 본토의 재즈를 배우고 느끼고 싶어 유학을 선택한 건데, 귀국 후에도 우리가 꾸준히 활동을 이어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최진배)



프렐류드라는 밴드 이름처럼, "재즈의 서곡을 울려보자"

"프렐류드라는 이름의 뜻이요? 재즈의 서곡을 울려보자는 의미로 프렐류드로 지었죠. 신선한 느낌도 좋았고, 발음의 뉘앙스도 좋았고. 상당히 마음에 들었어요."(리처드)

우리나라에 재즈밴드는 많은데, 그 멤버 그대로 7~8년 이상 명맥을 유지하는 밴드, 한국을 대표하는 재즈 밴드는 거의 없다. 한국과 미국을 오가면서 공연과 음반활동을 해야 하는 악조건,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수입이 보장되지 않는데도 지금껏 꾸준히 활동을 해올 수 있던 원동력은 "한국을 대표하는 밴드가 돼야겠다."는 멤버들의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노래를 잘하는, 연주를 잘하는 가수들은 많지만 멤버 각각이 최강인 팀, 멤버들의 연주가 최고의 하모니를 내는 팀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고 봐야 한다. 하지만 적어도 프렐류드가 있는 한 재즈를 대중들에게 알릴 수 있게 될 것이고, 재즈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과 애정은 높아질 것이 분명하다. 프렐류드의 음악은 리더인 고희안 씨가 그들만의 색깔을 넣어 직접 만든다.

활동에 대한 대가나 성과가 주어지지 않으면 싫증도 낼 법한데, 이들을 묶어둔 힘은 무엇이었을까.

"재즈 음악을 하려면 적어도 돈벌이가 가능한 다른 직업이 있어야 해요. 음반이나 연주만으로 생계를 유지하기가 힘들죠. 멤버들이 한국과 미국으로 뿔뿔이 흩어져 있어서 사실 힘들었는데, 책임감과 우정으로 잘 버텨온 것 같아요. 지금껏 밴드의 롤모델이 없었는데, 우리가 젊은 뮤지션에게 롤모델이 되어주자는 책임감이요. 자기 밥그릇 챙기려고 했으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을 겁니다."(고희안)

"우리의 상황에서 우리가 가진 것을 그때그때 표현해 내는 게 좋았어요. 매년 변화되는 우리의 모습이 담긴 앨범, 공연을 통해서 말이지요. 과거까지는 재즈 세션이라는 말은 있었어도, 재즈밴드라는 개념이 없었던 게 현실이었어요. 그런데 이제는 그런 인식도 생겼잖아요. 서로 고민해서 의견을 내고, 사운드를 만들고, 기록으로 남기는 활동이 저는 참 좋았습니다."(최진배)

한국적 재즈음악 뛰어넘어 프렐류드 장르 음악 선보일 터

어느덧 멤버들 대부분이 서른 살을 훌쩍 넘었다. 멤버 가운데 2명(고희안, 최진배)은 귀국해서 강단에서 후배들을 양성하고 있다. 리처드 역시 2년 전 귀국해 무대에서 연주하며 역시 후학들을 가르치는 일을 한다.

이들은 모두 20대 대부분을 재즈라는 음악에 투자했다. 1~2년에 한 번 꼴로 음반을 냈고, 매번 새로운 시도를 했다. 다양한 실험을 통해 음악성에도 깊이를 더해왔다. 1집 [크로와상(Croissant)](2005)은 미국 본토의 재즈를 많이 차용했다. 그래서인지 재즈를 잘 모르는 사람에게도 멜로디가 쏙쏙 들어올 만큼 쉽다. 반면 2집 [브리징 업(Breezing up)](2007)은 한국적인 색채를 더 많이 담았다. 3집 [프렐류드(Prelude)] (2008)는 대중과 더 가까이에서 호흡을 해볼 요량으로 하울의 움직이는 성, 원스 등의 주제곡을 재즈 풍으로 편곡해서 넣었다. 4집 [보스 사이즈 오브 프렐류드(Both Sides Of Prelude)](2009) 역시 3집에 이어 대중화의 연장선상에서 팝, 영화음악 등 우리에게 친숙한 곡들을 프렐류드만의 색깔로 재해석해 선보인 앨범이다.

이번에 발매한 5집 [5th 무브먼트(Movement)] (2010)는 한 장의 앨범에 연주곡 버전과 보컬곡 버전이 공존하는 형태로 제작됐다. 이번 앨범작업에는 보컬리스트 허소영과 색소폰 연주자 김지석이 객원 멤버 자격으로 참여했는데, 첫 앨범 이후 오랜만에 보컬이 가미된 색다른 앨범을 만든 셈이다.

"4집까지 대중과 친해지는 과정이었다면 5집에서는 반전을 꾀한 셈이지요. 굳이 재즈라고 하기보다는 노라 존스 풍의 음악도 있고, 인디 냄새도 나고, 팝적인 냄새도 납니다. 우리 밴드가 재즈밴드라고 국한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재즈 연주를 하지만 프렐류드만의 음악을 하는 밴드로 남고 싶어요."(고희안)

"재즈 연주를 하다 보니, 동양인이어서 느끼는 한계들이 있어요. 다른 사람들이 국악을 연주하면서 느끼게 되는 한계 같은 것이지요. 한민족의 한을 정서적으로 100% 느낄 수 없는 것처럼, 저 역시 미국 흑인의 감정을 100% 이입할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우리끼리 얘기한 게 재즈를 접목시켜서 우리만의 사운드를 만들어보자는 것이었지요. 우리 음악을 재즈에 국한시키는 게 사실 무의미하고, 재즈에 기반한 프렐류드 장르 음악을 한다고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최진배)

어릴 적부터 음악과 친숙, 재즈의 매력에 푹 빠져

90년대만 해도 음악은 우리에게 친숙한 것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멤버들 모두 재즈, 음악을 업으로 하게끔 만든 힘은 뭘까. 바로 음악과 친숙한 환경이 주효했다. 고희안 씨의 아버지는 클래식기타를, 어머니는 플롯을 연주하시곤 했는데 덕분에 자연스럽게 재즈를 접했다. 음악과 상관없이 대학에 진학했지만 음악에 대한 꿈을 포기하지 못하고 결국 24살 때 대학을 자퇴하고 재즈를 배울 요량으로 유학길에 올랐다.

"한마디로 모범생이었어요. 대학도 소위 일류대에 들어갔고요. 졸업해서 대기업에 취직하는 게 행복한 일일까 의문이 들더군요. 1년 동안 한국에서 재즈 공부하고 연주하러 다니면서 내가 여기에 재능이 있구나 싶어서 부모님을 설득해 유학길에 올랐지요. 부모님은 네 인생을 행복하게 살아하면서 크게 반대하지 않았는데, 오히려 주변에서 미쳤다며 말렸습니다. 하하."(고희안)

최진배 씨 역시 어릴 때부터 피아노와 기타를 배웠다. 그리고 심야 라디오를 들으며 자연스럽게 음악에 빠졌고, 대학시절 밴드 활동을 했다. 군악대를 제대한 뒤에는 재즈카페에서 연주자로도 활약하면서 연주자로 조금씩 성장했다.

"독자였기 때문에 유독 부모님의 반대가 굉장히 심했어요. 제대한 뒤 1년만 해보겠다고 부모님을 설득했는데, 결국은 제가 활동하는 것을 보고 인정을 해주셨어요."(최진배)

재미교포 멤버인 리처드에게 음악은 인생의 전환점을 만들어주었다. 사춘기 시절 나쁜 길로 빠졌던 그를 제자리로 돌려놓은 것이 바로 음악이다. 색소폰이라는 악기를 접하면서 문제아에서 우등생으로 개과천선했다. "성적도 올랐고, 인성도 바뀌었고, 인생도 결국 변한 셈이지요."(리처드)

4살 때부터 드럼을 치기 시작한 에이브라함 역시 10대 때 이미 하와이를 대표하는 뮤지션으로 성장했다. 중학생 때부터 팝, 재즈 등 다양한 연주자들과 공연을 했고, 하와이 토속악기 우크렐라, 비브라폰 연주자이기도 한 음악 천재다.

"워낙 실력이 좋아서 우리가 꾄 셈입니다. 다행히 한국 문화에 적응을 잘하고, 외모도 한국 사람과 비슷하지요. 성격도 좋고, 의리도 있고. 우리가 앨범을 녹음할 때나 공연을 할 때면 어김없이 한국에 들어와 결합합니다. 대단한 친구이지요."(최진배)

이들은 모두 재즈 예찬론자다. 이들이 생각하는 재즈의 매력은 뭘까.

"재즈는 라이브로 들어야 제 맛이지요. 똑같은 곡을 연주하는데 항상 달라요. 즉흥연주, 그게 재즈의 매력이죠. 앨범에 있는 곡을 연주해도 똑같이 할 수 없어요. 똑같은 곡인데 매번 다른 느낌이 나죠. 연주자의 느낌, 감성, 표현 등이 복합적으로 나오는 것. 그게 매력입니다."(고희안)

"학창시절 전영혁의 [2시의 데이트]에서 에릭 돌피 앨범의 오넷 콜맨이라는 곡을 듣고 깜짝 놀랐어요. 세상에 저런 음악도 있구나. 이렇게 자유로운 음악이 재즈이구나 싶었죠. 루이 암스트롱도 좋아했는데, 막연히 재즈에 대한 동경이 있었던 것 같아요. 정형화된 틀 사이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그 매력 때문에 푹 빠진 것 같아요."(최진배)

프렐류드의 2010 크리스마스 콘서트에 놀러오세요

데뷔 7년차. 이제는 이들의 노력과 활동이 조금씩 결실을 맺고 있다. 이들의 음악을 찾는 이들의 저변이 조금씩 넓어지고 있다. 팬층도 두터워졌다. 이들은 5번째 앨범 발표를 기념하며, 12월 12일 저녁 6시 세종문화회관 M시어터에서 크리스마스 콘서트를 통해 관객과 만날 계획이다. (문의 :02-417-0512)

글·김미영 | 한겨례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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