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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라는 희망의 페달을 밟아요 전국실업극복단체연대 최영미 본문

인물/칼럼/인터뷰/희망을 말하다

복지라는 희망의 페달을 밟아요 전국실업극복단체연대 최영미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08. 12. 22. 13:32


 


최영미(43) 씨는 글은 참 예리하고 정확한데 묘하게 깊은 정이 흐른다. 그녀를 만난 것도 그녀의 글을 통해서였다. 그 중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 ‘구직 포기자’에 관한 것이었다. 직업이 구해지지 않아 구직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공식집계로만 11만 명이나 되고, 일하고 싶지만 일자리가 없어서 일주일에 18시간 미만만 일하는 비정규직이 많이 늘어난다는 내용이었다.
그녀의 글을 읽으면서 나는 궁금해졌다. ‘그러면 그 사람들은 어떻게 먹고 살까?’ 연합통신에 의하면 IMF 이후 신 빈곤층이 716만 명이나 된다고 했다. 전체 인구의 15%에 해당하는 셈이다.


8년 동안 현장을 뛰어다니며 빈곤의 문제를 고민해온, 그 해결을 위해 형식적인 복지가 아닌 참다운 복지를 고민해온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졌다. 그녀라면 위에서 머리만 굴리는 복지가 아닌 진정으로 복지가 필요한 사람들을 위한 팔딱팔딱한 정책을 많이 내올 수 있을 것 같았다. 여기서는 복지정책 중에서 일반인을 상대로 한 사회보험인 건강보험이나 연금제 중심이 아닌 빈곤층을 대상으로 한 공공부조인 기초생활보장법, 사회복지서비스 등을 중심으로 대화를 나눴다.

노동운동까지 포함하여 20여 년의 긴 세월을 어떻게 그렇게 현장에서 일할 수 있냐는 질문에 그녀는 “일상생활인 것 같아요. 반성할 수 있는 힘을 잃지 말자, 그 정도 생각이에요.”라고 대답했다. 반성할 수 있는 힘을 간직하면서 살기가 얼마나 힘든 세상인지 알기에 그녀는 경쾌하게 말했지만, 나는 가슴에 묵직하게 박힌 빛나는 언어 하나를 가지고 돌아왔다.

복지에 대한 장치가 정말 미비했어요
IMF 때 사람들이 막 쏟아져 나왔어요. 갑자기 닥치니까 먹을 것도 없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직장 잃고 사업하다가 부도나서 빚지고 집 나간 남자들이 너무 많아서 여성들이 혼자서 가정을 이끌어 가야 했어요. 그래서 제일 먼저 급하게 한 일이 ‘여성 실업대책사업’ 이었어요. 1년여 동안 지역에 있는 모자가정의 절반은 만났을 거예요.
유럽에서는 80년대부터 실업률이 15% 이상이 될 정도로 고실업이어서 사회 안전망이 만들어지기 시작했거든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그런 것이 전혀 없었어요. 그때 만들어진 것이 ‘고용보험’이에요. 또 3,40대가 직장에서 막 떨궈져 나오는데 우리나라 생활보호법이라는 것은 18세 미만이라든가 65세 이상 이렇게만 지원을 받게 되어 있었어요. 중간에 있는 사람들은 장애가 있건, 질병이 있건 하나도 못 받았어요.
이제는 빈곤이나 실업은 젊어서도 닥칠 수 있는 거다, 그러면서 시민단체에서 만든 것이 전 국민 대상으로 사회보장을 넓힌 ‘생활보호법’ 개정운동이었지요. 그래서 처음으로 ‘기초생활보호법’이 아닌 ‘기초생활보장법’이 만들어진 거예요. 2000년 10월에 공포되었는데 ‘나이에 상관없이 어떤 사람이 빈곤에 처해 있을 때는 생계비, 의료비, 일자리를 지원한다.’는 내용이었어요. 이것은 복지제도에서 굉장히 중요한 사건이에요. ‘아유’ 불쌍해하는 시혜적 차원이 아니라 국민은 국가에게 자신의 보장을 요청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당당히 선언한 것이죠.

복지는 법제도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에요. 복지는 사람의 삶이고 일자리는 사람의 삶을 뒷받침해주고 사회적 자존심을 지탱해 주며 먹고 사는 것을 기본적으로 보장하는 문제예요. 실업 빈곤층의 문제에는 알다시피 여러 가지가 중첩되어 얽혀 있어요.
실지로 만나보면 대부분이 가난해요. 가난해서 교육을 못 받았다거나 더욱 중요한 것은 부모님한테 사랑도 못 받은 결손가정 출신들이 많아요. 그러다보니 나에 대한 자신감도 없어요. 사회에 나가서도 작은 공장에 나가거나, 농사짓거나 그래요. 이런 것들이 개인들에게는 실패의 경험들이에요.
그리고 주위에 도와 줄 사람이 없어요. 일반 사람들은 친정이 있고 시가집도 있잖아요. 그 사람들은 친구라도 하나 있어봤자 똑같이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야. 친정? 빚이나 없으면 다행이에요.
질 높은 복지가 되려면 안정적인 일자리를 마련해 주는 거예요. 그리고 사실 실업자라고 하더라도 아예 일을 전혀 하지 않은 사람은 드물어요. 오히려 문제는 가난한 사람 절반이 직업이 있다는 거예요. 일은 하는데 가난해요. 비정규직이 엄청 늘어나서 하루에 12시간 이상 일해도 한 달 수입이 7,80만 원밖에 되지 않아요. 100만 원도 채 되지 않은 사람이 많아요.

 

사람 중심의 원스톱 서비스가 중요하다
지금 우리 제도는 일자리 따로, 생계 지원 따로 되어 있는데 이것을 묶어 가지고 그 사람에게 실질적인 서비스까지 돼야 한다는 것을 많이 느껴요. 이것을 원스톱 서비스라고 해요. 사람들이 직장을 잃고 생활이 어려우면 제일 먼저 동사무소를 찾아가요. 동사무소에서는 정해진 기준에 따라 엄격하게 구분해서 모부자 가정으로, 기초생활 수급자로, 장애인으로 등록하여 도와줘요.

그런데 일자리 지원은 못하는 거예요. 운 좋으면 일을 구하러 노동부나 민간을 찾아가요. 노동부에서는 생활 지원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일자리만 상담해 주지요. 그러다보니 그나마 있는 좋은 제도나 자원도 사람들이 잘 몰라서 이용을 못하는 경우가 생겨요.
가끔 신문에 나는 잘 살면서도 정부 지원을 받아먹는다는 사람은 아주 극소수의 약삭빠른 사람들일뿐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히려 정보를 몰라서 이용을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노동부, 동사무소, 민간 지원 서비스를 안내해 줄 곳이 필요해요. 이게 원스톱서비스예요. 한군데 가면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다 알 수 있도록 해야 해요. 지역마다 1566이나, 뭐든지 복지 콜을 하나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여기로 전화하면 언제든지 복지에 대한 전반적인 것은 도움을 받을 수 있게요.



복지제도 강화에서 현실적 장애물은 돈이지요
참여정부는 시민단체와 정부와 기업이 같이 부담해야 한다고 하는데 이것은 치사해요. 정부가 기본적으로 예산을 투입해야 되거든요. 결국 정부의 정책 중심이 문제가 되는 거예요. 유럽은 실업과 빈곤이 화두예요. 이것을 중심으로 사회정책 기조가 바뀌고 있어요. 사회통합을 최우선으로 삼는 거예요. 빈곤과 실업을 방치하면 분열로 인해 사회 발전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거죠.
우리나라를 예로 들면 시민단체에서는 국방 예산을 감축하고 복지 예산을 늘리자고 주장하는데, 사실 그렇게 하려면 북한에 대한 마인드가 바뀌어야 하지요. 그리고 산업지원 쪽으로 돈이 나가는 것을, 즉 부실기업 쪽으로 나가는 돈을 복지로 돌리는 것이 필요해요. 부실기업 지원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고 그렇게 한다고 일자리가 생기는 것도 아니에요.
누수 예산을 막기 위해 조세는 투명해져야 하고 미국에게 몇 천 억짜리 미사일 구입하는 것을 제고해 본다거나 건강보험의 상한선을 없애서 부유한 사람은 많이, 가난한 사람은 적게 내게 하면 그것만으로도 2,30%의 재원은 늘어나요.
기업들이 복지 예산에 공헌을 많이 해야 해요. 공적자금으로 5조원씩 국민들의 세금이 들어가고 사람들이 왕창 짤리면서 희생해 기업을 살려놓았는데, 어디 실업기금이라도 낸 적이 있는지 물어볼 일이에요. 기업은 생색내기식 개별 지원보다 ‘사회공헌 기금’으로 당연히 내야 할 의무로 내야 합니다.

 

All or nothing과 개별급여
복지 도움의 폭은 넓어졌는데, 법적으로 인정을 받으면 생계비, 의료비 전부 받고 법적으로 인정을 받지 못하면 전혀 아무런 도움도 못 받는 경우가 생겼어요. 이게 All or nothing예요. 최저생계비를 받는 사람들도 열심히 일해서 간신히 백만 원이 넘으면 아무것도 못 받는 거예요. 예를 들어 내년도 최저생계비가 3인 가족은 96만 원가량으로 고지되었어요.
엄마는 음식점에서 일해 120만 원 받고, 아빠는 아파 누워있고, 자녀가 고등학생이어도 최저생계비 이상이어서 아무런 지원도 받을 수 없어요. 불합리하죠. 소득이 백만 원인 사람들도 아이들이 클 때는 학비가 너무 들어요. 그러면 학비 지원을 해주고, 어떤 사람은 의료비
때문에 망하기나 죽기 일보직전이야 그러면 의료비 지원을 해주는 개별급여제도가 만들어졌으면 좋겠어요.

새로운 사회적 서비스 하면, 정부는 시장밖에 본적이 없으니까 시장처럼 경쟁하라고 해요. 사회적 일자리는 새로운 시선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그런 마인드와 고민이 없는 거예요. 유럽에서는 사회적 일자리가 발전되어 있어요.
예를 들어 영국에서는 사회복지 서비스 가운데 노인·장애인 식사 지원 서비스가 있어요. 카트 같은데다가 죽을 날라다가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데 일하는 사람이 대부분이 그 동네 아주머니들이에요. 개인 기업의 이익구조가 아닌 협동조합형태를 띠고 있어요. 지역사회가 참여하여 공동경영 형태를 만든 거죠. 주민들이 자기 지역사회의 문제점에 공감하고 협동조합 식의 비영리단체를 만들어 이런 일을 하면서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지요.
유럽은 전 국민경제의 7,8%가 이런 형태를 띠고 있어요. 굉장히 높은 수치예요. 우리나라의 농업 비중인 5% 보다 높아요. 그런데 우리나라의 현재 정부는 사회적 일자리를 말하면서 시민단체한테 고용주로서 퇴직금도 줘라, 너희가 기업도 꼬셔서 돈을 가져오라 요구를 하거든요. 참여하는 기업들은 지역 마인드가 없어요.
예를 들어 ‘그 지역의 문제를 그 지역사회 주민들이 풀어 나가고 그 과정에서 공동·공익을 원리로 하는 일자리를 만든다.’는 생각이 없지요. 장기적인 발전 계획을 세울 수가 없지요. 우리는 돈은 없고 사람만 있잖아요. 그러니까 그걸 고스란히 받아 안을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시장 중심으로 흐르기가 쉬워요.

실업운동 왕따 시키지 않았으면 좋겠다
노동운동, 환경운동은 다 아는데 운동 중에서 제일 관심을 못 끄는 게 실업운동이에요. 시민단체들도 실업자와 실업운동에는 무관심해요. 노동운동도 실업전략 같은 게 없어요. 실업자가 사회에서 왕따를 당하듯 실업운동도 왕따를 당하고 있어요.
그리고 실업문제도 다양한 실업이 있는데 청년실업만 부각되면서 다른 실업문제들은 다 죽어버려요. 청년 실업 중에서도 사실 고졸 실업이 더 심각하거든요. 그런데 고졸 실업에 대한 이야기는 없어요. 4년제 대졸자들은 많이 거론하는데 그것은 정치적 타격이 되기 때문이에요. 고졸실업은 아무리 떠들어도 안 들어주잖아요. 직장생활을 해도 끌어주는 사람이 없어요.
실업은 빈곤의 문제 중에서도 사회의 최저층의 문제이니 관심을 많이 가져 주었으면 좋겠어요.

<글 / 김순천> <사진 / 김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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