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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칼럼/인터뷰/희망을 말하다

우리는 지금 식량전쟁 한가운데 있다 전국농민연대 정재돈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08. 12. 22. 13:26


 


농업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이 필요하다. 세계적 시선에서 식량의 흐름을 바라보아야 한다. ‘경쟁의 시선’으로만 농업에 접근하면 앞으로 식량문제는 파멸이다. 시장논리로 농업을 말할 수는 없다. 그런 시선 으로는 180정보 이상을 소유한 미국 기업농과 경쟁하기 위해 6정보의 전업농을 육성한다는 조잡한 농업정책밖에 내올 수 없고, 농산물을 수입하고 핸드폰을 팔자는 단편적인 사고방식밖에 가질 수 없다. 근본부터가 잘못된 시선이다.


미국 내에서도 자유화와 시장경제 일변도의 농업정책이 비판받고 있다. 생산과정과 유통과정, 소비과정 모든 과정을 장악하려 하는 초국적 기업자본의 흐름을 파악해야 한다. 제3세계 농민들의 문제만이 아니라 유럽을 포함한 선진국 내의 가족농의 문제들과도 결합되어 있다. 가족농들이 기업농들에게 파괴되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조세보베’ 같은 사람도 나온 것이다. 초국적 기업의 기업농법과 우리 농업은 근본부터가 다르다. 1헥타르 규모의 가족농과 영세농이 전체 농민의 70%나 된다.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다양하고 풍부한 먹거리를 제공해 왔고 그것에 기초하여 다양한 형태의 문화를 형성해 왔다. 그런데 몇몇 초국적 자본에 의해 농업 전반이 지배되면서 단작화, 상품화 되고 있다. 이대로 간다면 한국 농업은 앞으로 10년 동안 더 빠르고 강도 높게 해체되어 갈 것이다.

종자 제국주의
‘종자는 농업의 시작이요, 끝이다.’ 공동재산으로 관리해 오던 종자가 어느 사이 사유화되고 있다. 특히 토착 종자를 초국적 자본들이 가져가서 유전자 조작을 통해 다시 되팔면서 우리에게는 소유권이 없어지는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예전에는 거의 무료나 싼 가격에 얻었던 씨앗들을 비싼 가격으로 사고 있을 뿐 아니라 농민들이 그것을 사고파는 것 자체가 초국적 기업이 내놓은 특허권에 의해 불법이 돼버린다. 종자를 저장하거나 다시 심는 것 혹은 다른 사람에게 판매하는 것도 전면적으로 금지되는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 씨앗에다 특수 코팅처리를 해서 그 해에만 수확이 가능하고 다음 해에는 싹이 트지 않도록 유전자 조작을 하는 터미네이터종자(불임종자)을 만들어내고 있으며, 심지어는 자사의 특정 농약을 뒤집어써야만 싹이 트고 성장하는 트레이터라는 유전자 조작 기술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니까 씨앗을 사면 농약도 사야하고 그것을 재배하기 위한 시설도 사야하고 기술도 사야하는 것이다. 종자, 비료, 농약, 연료, 사료, 포장지까지 모든 농사과정이 초국적 자본에 의지한다면 그것은 한국 농업의 끝이다. 고추, 배추를 비롯한 우리나라 채소종자시장의 70~80% 이상이 이미 초국적 기업에 넘어간 상태이다.
유전자 조작 작물도 대량으로 수입되고 있다. 팔뚝만한 옥수수가 사료용으로 가장 많이 수입되었고 밀, 콩이 2천만 톤씩 들어오고 있다. 우리 밀은 고작 0.2%밖에 안 된다. 유전자 조작 작물이 위험한 것은 그것을 먹은 실험쥐의 수명이 단축되고 학습장애가 나타났으며 내장의 발달이 다 다르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어느 쥐는 간이 비대해져 있고, 어느 쥐는 대장이 비대해져 있었다. 곡물 자체로만 먹는 것이 아니라 케이크나 아이스크림, 소시지, 어묵, 맥주, 과자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유전자 조작 식품을 먹고 있어서 국민들의 건강도 심각한 상황에 놓여 있다. 우리 농작물이 아닌 수입에 의존하는 농작물은 그 위험성을 파악하기가 매우 힘들어진다.
우리 농사의 7할을 차지하고 있고 농업소득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쌀이 개방되면 농업 그 자체의 붕괴는 물론이고 그 위험성도 늘어날 것이다. 게다가 쌀을 비롯한 농작물은 단순한 작물이 아니고 그것을 생산하고 나누면서 만들어진 우리 민족의 역사이고, 문화이고, 혼이다. 논은 자연의 불순물을 걸러주는 늪지대 같은 역할도 하는데 그 모든 것이 사라진다는 것은 생태학적으로도 매우 위험한 일이기도 하다.

 

 


농업이 없는 한국 언론
식량문제는 굉장히 중요하고 모든 국민이 진지하게 고민하고 해결해야 할 심각한 문제임에도 농민들만의 문제로 치부하고, 진부하고 고루한 문제로 이미지 메이킹을 한다. 농민들의 여의도 상경투쟁도 사라지는 자들의 마지막 몸부림으로 묘사하지, 농업문제가 일반 시민들의 삶과도 얼마나 밀접하게 관계가 있는지 전혀 부각을 시키지 않는다. 정말 잘못된 것이다.
한국 언론에는 ‘시장경제논리’밖에 없다. ‘개방이 대세다’, 그리고는 끝이다. 선진국치고 농업을 탄탄한 기반 위에 세우지 않은 나라가 없다. 최소한 우리나라처럼 무방비하지는 않다는 말이다. 미국도 기업농에게 남들이 잘 알지 못하는 복잡한 장치를 통해 농업에 대한 각종 보조금을 주고 있다.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지원을 해 준다. 그 위에 선 것이다, 미국기업들이 타국을 지배할 힘을 갖는 것은.
수입농산물이 싼 이유가 생산비가 낮아서 그렇다는 말은 절반만 맞는 말이다. 그


나라 농민의 소득이 보장되게 온갖 지원을 해준 덕분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농업에 대해 ‘시장경제논리’밖에 없다. 다른 목소리는 모두 사장된다.


 

세계농민들의 투쟁, 비아깜페시나
개인적으로는 국제가톨릭농민운동 연대조직인 ‘피막’(Fimarc)과 관계가 깊지만 비아깜페시나도 중요하다. 비아깜페시나는 이탈리아어로 ‘농민의 길’이라는 뜻이다. 초국적 자본의 기업농에 반대하는 가족농, 소농, 빈농 중심의 조직체이다.
칠레 농민들과 브라질 농민들이 ‘우리들은 더 이상 견딜 수 없다.’고 말했는데 그것이 세계농민들의 마음일 것이다. 인도 농민들은 몬산토유전자 조작 면 농장에 불을 지르기도 했고, 캐나다에서는 유전자 조작 밀 도입을 거부하는 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프랑스 농민 조세보베는 맥도날드 타격투쟁을 했다. 그가 이끄는 사람들도 프랑스 소농들이다.


세계 10대 기업이 농산물 시장의 90%를 지배하고 농업과 식량 전반을 사실상 통제하고 있다. 많은 농민들이 토지와 생계수단을 빼앗기고 빚더미에 올라앉아 있는데 가만히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비아깜페시나 대표가 작년에 한국에 와서 ‘투쟁을 세계화하고 희망을 세계화 하자.’고 했다. 그 희망이란 ‘식량 주권’을 지켜내는 것이다. 누구나 식량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 안전한 식량을 보장받을 권리, 품종을 선택할 권리, 한 나라가 자주적으로 식량을 가질 권리이다. 식량주권은 하늘이 준 거다.


다양한 작물을 재배하는 가족농과 소농
기계화와 대량 생산이 특징인 미국 농업도 비효율과 부작용에 눈을 뜨고 있다. 갈수록 시설비가 늘어나고 농약과 유전자 조작으로 환경에도 심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각종 보조금도 더 늘어나고 있다. 미국 농업통계에는 ‘농민’이라는 계층이 없다. 미국 농촌의 뿌리인 가족농들이 거의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만큼 다양한 작물들이 사라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지금은 크기에 바탕을 둔 ‘규모의 경제’보다 다양성에 바탕을 둔 ‘범위의 경제’가 각광을 받고 있다. 다양한 소농으로 이루어진, 그들이 생산하는 풍부하고 다양한 농산물을 지키는 것이 필요하다. ‘식물의 다양성은 우리에게 음식과 약과 쉼터를 준다.’(비아깜페시나 선언문 중에서) 또 그것은 그것을 생산하는 생산체계나 조직, 문화, 인간과 경제와의 관계, 정부 조직에도
다양성과 풍요로움을 부여해 준다.

 

다품종 소량생산을 특징으로 하는 중소농, 가족농 생산을 중심으로 가공, 저장, 포장, 수송, 수출, 문화, 휴양 등으로 농업의 범위를 넓혀가고 도시와 농촌 간의 생태적인 공간을 중심으로 생산과 소비의 유기적인 결합체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시민들이 안전하게 식품을 소비할 수 있게 하고 학생들에게 학교 급식도 질 좋은 것으로 해 줄 수 있다. 전업농 중심의 농정 기조를 확 바꿔 식량 자급 계획을 세우고 ‘식량 자급 목표치를 법제화’하면 좋을 것이다. 품목별로 구체화하면 농지가 얼마나 필요하고 농가 소득 보전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가 구체적으로 나올 것이다.
우리 농산물 지원법을 개정해야 하는데, 정부가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직접지불제방식을 도입하면 좋다. 이것은 WTO도 인정하는 보조금이다. 환경보존을 위해서 비료, 농약을 사용하지 않으면 ‘환경보존 직접 지불제’로 보조금을 주는 방식이다. 그것도 아직 정부에서 받아들이고 있지 않다.


북한의 생태마을과 통일농업
북한을 여러 번 갔다 왔다. 평양 근처에 있는 어떤 마을에 갔는데 살구나무가 가로수였다. 그곳에 근래에 지어진 단지가 하나 있었는데 ‘문화주택’이라 불렀다. 인분이나 가축분에서 나오는 메탄가스로 불도 때고 밥도 짓는 생태마을이었다. 태양열을 이용하는 곳도 있고 여러 유기농법을 이용하여 작물을 재배하고 있었다. 남한에서는 구하기 힘들지만, 북한에서는 오랫동안 사용해온 종자도 얻었다. 북한은 농가가 35%이고 대부분 유기농법으로 농사를 짓고 있다. 옛날에 선조들이 지었던 지혜로운 농사비법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그것을 나누면 좋은 농사 교류가 될 것이다. 남한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농업 기술과 영농자재를 나눠주고 있다. 북한 대표에게 쌀을 지원해 주겠다고 했더니 ‘쌀보다 양이 많은 옥수수가 좋다.’고 말해서 마음이 울컥한 적이 있다. 금강산 아래 삼일포 협동농장에서 시범농사를 짓고 있으니, 남북의 좋은 만남이 이루어질 것이다.

<김순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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