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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쓰는 민주주의
얼마 전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민통련) 20주년 기념행사의 진행을 도운 일이 있다. 아직 30대 초반인 필자에게 민통련은 사실 특별한 감흥을 주기보다는 80년대의 전설 같은 막연한 느낌만을 주는 조직이었다. 기념행사 당일에 준비한 문화프로그램을 직접 보면서 느낀 점도 많았지만 그보다는 그날 자리를 가득 메웠던 분들의 면면이 오히려 더 많은 울림을 주었다. 그날 행사장에 오신 분들의 평균 연령은 대략 40대 중반쯤 되어 보였다. 아마 그 연배도 젊은 축에 속했을 것이고 더 나이 드신 분들도 많았는데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민통련 부문 조직을 소개할 때였다. 민주화운동청년연합의 순서가 되어 당시 회원들이 우루루 등장했는데 세상에! 청년은 아무도 없고, 중년의 아저씨들만이 가득 했다. 세월이 그만큼 흐른 것이다..
“남의 단체에 얹혀살고 있어도 괜찮나요?” 수화기 저편의 목소리는 너무나도 당당하다. “물론입니다.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건강하게 활동하고 있는 단체라면 길거리에서 산들 어떻겠어요?” 수화기를 내려놓으며 내다본 창밖은 흰 목련꽃이 한창이다. 오후에는 다들 취재를 나간다는 말에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야 했다. 오전 열 시 약속을 지키기에는 시간이 빠듯했다. 전철역 계단을 급하게 뛰어 내려가서 막 출발하려는 전동차에 간신히 올라탔다. 대영빌딩 604호. 문에는 ‘민중의소리’ 팻말이 붙어 있다. 살며시 문을 열자 창가 쪽에서 회의를 하던 사람이 ‘여기요’ 라고 외친다. 일곱 명이서 동그란 탁자에 둘러앉아 뉴스 기획회의를 하고 있었다. 그네들과 조금 비껴 앉아서 그네들이 회의하는 모습을 본다. 모두들..
비극의 역사를 향한 장난 같은 질문 "천년의 수인" 만약 백범 김구 선생을 암살했던 안두희와 비전향장기수 그리고 5·18민중항쟁의 진압군이 얼굴을 마주보고 함께 살아야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연출가 오태석의 연극 은 이런 상상에서 출발해서 한국 현대사의 뿌리를 되짚어보는 흥미로운 작품이다. 알려진 것처럼 1949년 6월 26일 백범 김구 선생을 암살했던 안두희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지만 3개월 뒤에 15년 형으로 감형되었고 한국전쟁이 나자 석방되어 포병장교로 복귀한다. 그는 이후 곽태영 백범독서회장, 권중희 민족정기구현회장에게 테러를 당하며 도피 생활을 한다. 하지만 결국 1996년 10월에 인천의 자택에서 시민 박기서 씨에게 피살된 그는 암살 배후에 대한 자백을 하기도 하고 백범 묘소를 강제 참배하..
경기도 북부, 의정부에서도 외곽인 의정부시 고산동 116번지. 뺏벌이란 마을 입구에는 캠프 스탠리 미2사단 포병여단 본부가 있다. 이곳은 예부터 배가 많이 생산되던 지역이라 배나무가 많아 배벌로 불렸고 그러다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며 부르기 쉽게 뺏벌로 불리게 되었다. 현재 의정부 인근 지역에 있는 8개의 캠프 중 가장 많은 병력이 주둔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외지인들이 호기심 반 경계의 마음 반으로 쳐다보는 이 마을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미군부대 기지촌이다. 마을 입구에 있는 단층짜리 관(官) 건물처럼 보이는 허름한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첫눈에도 그곳이 기지촌 여성들을 위한 쉼터 ‘두레방’ 이라는 것을 짐작 할 수 있다. “처음부터 이 건물에서 있었던 건 아니고 클럽들 사이에 있었는데 몇 년 전에..
386세대의 치열한 자기고백 문진오의 첫음반 길 위의 하루 지난 호와 비슷한 질문으로 글을 시작해보자. 70년대 민중가요를 대표하는 작가가 김민기라면 80년대 민중가요를 대표할 수 있는 작가는 누구일까? 민중가요의 전성시대였던 80년대를 한 두 작가로 정리하는 것은 자칫 민중가요를 서열화하는 위험한 발상일 수 있지만, 대중적 파급력만을 놓고 본다면 단연 ‘노래를 찾는 사람들’(노찾사)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노찾사는 팀으로서 여러 장의 음반을 내며 통일된 음악적 색깔을 유지했고, 무엇보다도 당시 활화산처럼 분출했던 민주화 열기를 대변하는 ‘솔아 푸르른 솔아’, ‘광야에서’, ‘사계’ 등의 레퍼토리로 운동과 민중가요의 대중화에 획기적으로 기여했기에 80년대를 대표하는 작가로 꼽기에 부족함이 없다. 결코 ..
몇 해 전, 먼 친구로부터 어느 채식주의자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종교나 다른 사람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며 그런 분야에 관심이 있었던 것도 아닌 그냥 평범한 대학생이었던 그 사람은 어느 날, 반찬으로 먹을 고등어를 손질하던 중 문득 생선의 그 푸른 살이 자신의 살과 다를 바가 없음을 느꼈고 그 살을 익혀서 입으로 넣는 일이 마치 자신의 살을 씹어 먹는 것처럼 느껴지더라는 것이다. 그 후로 어떤 고기도 먹지 않는 채식주의자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별 희한한 사람도 다 있군’, ‘그럼 뭘 먹고 살아?’ 하는 정도의 지극히 짧고 어리석은 말을 했던 기억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 특히 육식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채식주의자들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아니, 이해하고 싶지 않은 것..
아이들을 향한 김민기의 말 걸기 "우리는 친구다" 만약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단 두 명만의 작가를 고르라고 한다면 당신은 누구를 택하겠는가? 누구를 좋아하냐는 질문이 아니라 누가 한국 대중음악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는지를 묻는 질문이라면 말이다. 아마 많은 대중음악인들의 이름이 거론되겠지만 같은 질문을 대중음악평론가들에게 던진다면 십중팔구 김민기와 한대수를 거명할 것이다. 김민기와 한대수, 이제 음악활동 경력 30년을 훌쩍 넘기는 이들은 한국 대중음악의 가장 대표적인 경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어떤 아이콘 같은 이름들이다. 이들은 비록 비슷한 시기에 음악활동을 시작했지만 겉으로 보이는 경향은 다르고도 또 같다. 김민기가 지식인적인 고뇌로 당대를 끌어안고 이에 맞서려고 했다면, 한대수는 보헤미안과도 같은 자유..
겨울은 겨울답게 추워야 한다. 그래야 따뜻한 군고구마, 호떡이며 오뎅 등의 먹을거리가 제 맛을 찾고 구질구질한 겨울비 대신 하얀 눈이 펑펑 쏟아지면서 겨울다워진다. 눈이 소복하게 쌓인 날이면 그 눈부신 순결함이 주는 아름다움에 내딛는 발걸음이 조심스럽다. 아이들은 눈싸움 할 생각에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 스케이트나 스키, 스노보드 등 겨울 스포츠를 손꼽아 기다려 온 사람들은 시기를 놓칠세라 움직임이 바빠진다. 이처럼 겨울이 제 아무리 맹렬하게 달려들지라도 추위가 하나의 필요악처럼 생각된다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 그러나 계절이 주는 아름다움과 즐거움을 뒤로 하고 겨울은 그 날카로운 시림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할퀴어 놓기도 한다. 가난이 더욱 섧게 느껴지는 시기, 겨울이 두려운 사람들. 구세군의 종소리가 해마..
뚝심으로 새긴 역사의 기억 구본주 1주기전 별이되다 모든 기억은 상처를 동반한다. 기억이 발생했던 순간에서 멀어지며 현재에서 과거로 전이되는 순간 기억은 생명력을 얻게 되지만 기억이 기원에서 멀어지는 것은 돌아갈 수 없는 시간에 대한 불가능한 회귀의 꿈으로 스스로를 상처 입히며 자신을 지우고, 변형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우리가 기억이라 믿으며 간직하는 것은 늘 몇 개의 이미지에 가까운 조각들이 아니던가. 그래서 사람들은 사진을 찍고 기록을 남겨, 기억을 온전히 보존하려 안간힘을 쓴다. 그것은 기억을 과거에 묻어두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기억을 복원함으로써 오늘과 대화하려는 끈질긴 노력에 다름 아니다. 2004년 12월 8일부터 28일까지 가나아트갤러리와 덕원 갤러리, 사비나 미술관에서 함께 열린 조각가 구..
부드럽게 휘어진 지붕의 선이 곱다. 네모 반듯 하게 딱 떨어지는 서양식 건물들과는 달리 한국의 전통 가옥은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산의 능선과 부드럽게 어우러지는 멋이 있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방문으로 한층 더 유명해진 안동은 가장 한국적인 곳이라는 평답게 우아한 전통 가옥들이 저마다의 정취를 물씬 풍긴다. 화려하진 않아도 산과 물, 하늘을 닮아 자연스럽게 아름다운 우리 문화재들은 그 안에 오랜 세월의 이야기를 품고 있어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온다. 이들이 우리에게 끊이지 않고 이야기를 전달 할 수 있도록 지켜주는 문화재 파수꾼들, ‘안동 문화지킴이’를 만나 보았다. 문화재, 나의 재산으로 인식하다 1999년 2월, 풍물이며 극 등 문화 활동을 하던 사람들과 공무원, 학교 선생님 등 안동의 문화를 아끼고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