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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슬 푸른 안동의 맥을 이어가는 안동 문화 지킴이 본문

희망이야기/풀뿌리 운동 현장을 가다

서슬 푸른 안동의 맥을 이어가는 안동 문화 지킴이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08. 12. 20. 01:49

부드럽게 휘어진 지붕의 선이 곱다. 네모 반듯 하게 딱 떨어지는 서양식 건물들과는 달리 한국의 전통 가옥은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산의 능선과 부드럽게 어우러지는 멋이 있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방문으로 한층 더 유명해진 안동은 가장 한국적인 곳이라는 평답게 우아한 전통 가옥들이 저마다의 정취를 물씬 풍긴다. 화려하진 않아도 산과 물, 하늘을 닮아 자연스럽게 아름다운 우리 문화재들은 그 안에 오랜 세월의 이야기를 품고 있어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온다. 이들이 우리에게 끊이지 않고 이야기를 전달 할 수 있도록 지켜주는 문화재 파수꾼들, ‘안동 문화지킴이’를 만나 보았다.

 

문화재, 나의 재산으로 인식하다
1999년 2월, 풍물이며 극 등 문화 활동을 하던 사람들과 공무원, 학교 선생님 등 안동의 문화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였다. 안동에만 500여 개 가까운 문화재들을 안동 시에서 일일이 관리하기에는 벅차다는 것을 직시하고 문화재 보존이 단지 국가의 책임만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안동은 여러 문화재들 중에서도 특히 전통 가옥이 많이 남아있다. 전통가옥은 직접 체험이 가능할 뿐 아니라 그 자체의 가치 외에도 역사적인 가치를 담고 있어 교육적 효과가 풍부하다. 그러나 오래 된 집이란 주의해서 손질하고 잘 가꾸지 않으면 금세 상하기 때문에 세심한 관리가 요구되지만 하회마을, 봉정사, 도산서원 등 안동의 대표급들을 제외한 나머지 문화재들은 그 존재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이대로 놔두면 이거 다 없어지는 것이 아닌가’하는 위기의식에서 시작한 안동 문화 지킴이(이하 문화 지킴이)는 거창한 사업보다 당장 손에 빗자루부터 들었다. 비단 지정 문화재뿐만 아니라 비지정이지만 충분히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가지고 있는 문화재들이 오랜 무관심 속에 방치되어 훼손되는 것을 방지하고자 매월 마지막 주 토요일이면 안동 인근 지역의 문화재를 답사해 함께 청소하며 가꾸는 일을 거르지 않고 있다.

 


또한 『사람과 문화』라는 월간 소식지의 발간을 통해 안동의 문화재를 소개하고 시민들과 의사소통의 장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들은 문화재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과 의식이 높아지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안동에 ‘임청각’이라고 보물로 지정된 집이 있습니다.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시면서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내셨던 석주 이상룡 님이 태어난 곳이지요. 이 집을 세 차례나 팔아서 군자금으로 썼다고 합니다. 저희는 적어도 안동에서는 이 곳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었지요. 그런데 하루는 저희 지킴이 중 한 분이 시민들에게 질문을 했었습니다. ‘안동에 임청각이 어디 있습니까?’ 라고 물었더니 ‘그런 데 없는데요’하더라는 겁니다. ‘임청각이라고 저는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하고 재차 물었더니 ‘안동에 그런 중국집 없어요’하더랍니다.”

한 가족 한 문화재 지키기
문화 지킴이는 이러한 문제의 원인을 생활 속에서 문화재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부족하기 때문으로 생각한다. 실생활에서 여가시간을 이용해 문화재를 방문하는 일이 영화관 가듯이 자연스럽게 여겨지지 않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그들은 시민들이 문화재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키울 수 있는 ‘한 가족 한 문화재 가꾸기’ 운동을 마련했다.


‘한 가족 한 문화재 가꾸기’란 한 가족이 한 문화재의 명예 소유자가 되어 자율적으로 가꿀 수 있도록 장려하는 운동이다. 2003년부터 시작한 이 운동은 주로 고 건축물을 대상으로 하며 현재 50여 가구가 참여하고 있다. 특별한 자격 요건이 없어 누구나 마음에 드는 문화재를 선택, 신청하여 운동에 동참할 수 있다.


문화 지킴이는 시민들의 신청을 받아 문화재를 연결해주고 청소 등의 관리 매뉴얼을 제공한다. “문화재에 거주자가 있거나 주인이 따로 있는 등, 마음에 든다고 해서 무조건 명예 소유자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최대한 시민들의 기호를 배려하고 있습니다. 저희 사이트에 올라온 문화재를 보고 선택하거나 혹은 매달 있는 지킴이들의 답사에 참여하셔서 직접 해보시고 신청하기도 하십니다.”


문화 지킴이의 답사는 매달 꾸준히 있어왔지만 안동의 모든 곳을 방문하려면 40여 년 이상이 소요될 것이라고 한다. ‘한 가족 한 문화재 가꾸기’는 이러한 지킴이의 한계를 자연스럽게 해결해 주며, 가족들 또한 시간에 제약받지 않고 자율적으로 관리하기 때문에 아이들과 함께 하는 유익한 ‘놀이’와 ‘교육’의 시간이 된다. 물론 이들이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문화재를 오히려 훼손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없지 않다.


이에 대해 김 총무는 “물론 문화재를 가꾼다는 것은 단순히 진공청소기를 사용하는 청소와는 조금 다릅니다. 특히 탑이나 효자비 등은 접근 시 파손의 위험이 있기에 더욱 조심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여름에 비가 많이 오면 상층부에 풀이 자랄 수 있습니다. 뿌리가 깊은데 그냥 뽑아버린다면 문화재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지요. 따라서 이런 경우는 꼭 저희나 시청에 연락을 해서 전문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주의를 줍니다. 문화재 모니터의 역할도 함께 하는 것이지요. 건축물의 경우 약간의 파손이 있더라도 복원이 가능하다는 이점이 있습니다. 마루나 지붕 등은 어차피 세월이 오래 지나면 교체작업을 해야 하거든요. 물론 파손 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우선이겠죠. 때문에 모니터로서의 역할도 강조하고 있는 것이고요.”라고 설명한다.

전국적인 시민운동의 첫 걸음
이제 ‘한 가족 한 문화재 가꾸기’ 운동이 안동을 넘어 전국적인 시민운동으로 펼쳐질 예정이다. 문화재청과 궁궐 지킴이, 신라 문화원 등 굵직굵직한 국내 문화재 관리 단체들이 ‘좋은 건 같이 하자’며 손을 내밀었기 때문이다, 문화 지킴이는 운동이 아직 채 자리 잡히기 전이라 부담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흔쾌하게 받아 들였다. “우리가 이렇게 하니까 잘 되었던 것이 다른 곳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볼 순 없습니다. 그래도 도움을 드릴 수 있다면 해야지요. 또 우리도 그쪽의 좋은 시스템을 받아오는 등, 최대한의 정보 공유가 최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청렴하고 고결한 양반처럼
‘한 가족 한 문화재 가꾸기’ 운동으로 문화재청장 표창을 받은 문화 지킴이는 그닥 상을 반기는 눈치가 아니다. 이번 표창으로 정부 지원을 조금이나마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하지만 이들은 그것조차 떨떠름한 표정이다. 문화 지킴이는 풍족한 시민단체? 물론 아니다.
“사실 상당히 어렵습니다. 봉사하는 단체가 편할 수 없죠. 지원받는다면 거절할 수는 없을 겁니다. 빚도 있고…… 상근 지킴이도 필요하니까요.”
그렇다면 두 팔 벌려 크게 환영할 일을 마지못해 받아들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원을 받게 되면 그때부터 돈에 끌려 다닐까 걱정되는 거죠. 손쉽게 얻으면 가치를 모르게 되니까요. 시민들이 좀 더 보람을 느낄 수 있도록 프로그램도 열심히 고민해서 만들고, 시민들의 참여율을 높이는 방법도 생각하고, 계획적으로 어린이, 청소년, 어른, 가족 등 모든 층이 만족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진행해야하는데, 국가지원을 받기 시작하면, 물론 힘이 될수도 있겠지만, 사람이 변화가 없어지게 됩니다. 책도 내실을 다지는 게 아니라 편하게 하면서 모양 내려고 페이지 수만 늘리고, 누구한테 돈 주고 쓰게 하자, 이렇게 되어버릴 수도 있으니까요. 또 어렵다고 정부 탓만 하고 지원만 바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조금 덜 쓰고 일해야 하지 않을까요.”
현재는 후원지킴이나 소식지 구독 지킴이 등의 후원금과 시민 지킴이, 가족 지킴이에게서 받는 약간의 회비(청소년, 어린이 지킴이는 무료)로 운영되고 있다.


좋은 일 한다고 지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답을 드리는 마음으로 일해야 한다는 문화 지킴이. 내실을 다진 이후에는 정부 도움은 될 수 있는 대로 지양할 것이고 그러고 나면 괜찮은 시민단체가 될 수 있을 거라며 웃음 짓는다.
아무리 양반이라도 청렴하지 않다면 양반으로서 제대로 대접받지 못했다는 안동. 문화 지킴이는 이러한 안동의 서슬 푸른 맥을 이을만한 단체답다는 생각을 해본다. 국가의 재산이자 우리의 재산이며 곧 나의 재산이라는 믿음으로 오늘도 전 국민의 문화재 매니아화를 꿈꾸는 그들. 꿈을 향해 달려가는 그들의 손을 잡고 함께 뛰어보는 것은 어떠할까?

 

 

글 / 서민숙

사진 / 황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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