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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는 사람들 남겨진 사람들 그들과 만난 난곡주민도서실 본문

희망이야기/풀뿌리 운동 현장을 가다

떠나는 사람들 남겨진 사람들 그들과 만난 난곡주민도서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08. 12. 20. 01:40


이른 봄 햇살에 여유로운 졸음을 만끽하며 도착한 101번 버스 종점. 타고 내리는 사람 없이 줄지어 기다리는 버스의 시동소리만 요란하다. 종점을 돌아서자 좀처럼 보기 힘든 슬라브 지붕의 기름집이 눈에 들어온다. 철재 간이의자에 앉아 장기를 두는 두 노인의 모습까지 영락없이 시골 읍내 풍경이다. 난곡은 그렇게 오랜 세월을 서울이면서도 서울이 아닌 모습으로 보내왔다.
조금 걷다보니 이 곳과는 안 어울릴 듯한 세련된 마트가 보이고 산 꼭지에 자리한 윗동네에서는 크레인과 커다란 건설 장비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아파트 공사가 한창이다. 난곡은 그렇게 서울이 되어 가고 있는 중이다. 남은 사람들을 찾아 가파른 언덕길로 향한다. 높이 올라갈수록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집은 거의 없다. 사람들이 떠난 자리에는 그들이 살았던 모습들만이 흔적으로 남아 있을 뿐.
‘통장 OOO - 염화칼슘 있는 집’. 달동네의 생활을 잘 알지 못하는 이들에겐 생소한 표지판이 눈에 띈다.

염화칼슘은 가파른 산동네에서 눈이 내려 미끄러울 때 꼭 필요한 물건이란다. 그것을 눈 내려 꽁꽁 얼어붙은 길에 얼추 뿌려 놓아야 그나마 발걸음이라도 땔 수 있으니 말이다.

쉼터 같은 도서실

관청에서 부르는 이 곳의 명칭은 ‘신림동’ 이지만 이 곳 사람들은 그저 ‘난곡동’으로 부른다. 산과 계곡이었던 이 곳에 난이 많이 나서 불려지기 시작했다는 난곡동, 60년대 말 경제개발로 인해 서울 외곽의 끝, 산동네까지 밀려난 이들이 터를 잡고 살아 온 난곡동.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라 불리던 난곡이 서서히 모습을 감추고 있는 것이다.
난곡주민도서실을 이용하는 이들은 재개발이 되기 전 달동네 살던 이들이 대부분이다. 15, 6평쯤으로 보이는 도서관에는 책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고, 막 학교를 마치고 온 아이 둘이 그 안에서 열심히 만화책을 읽고 있었다.

“다른 거 재밌는 일 없니? 놀만한 거.”
“그냥 여기 와서 책 보는 게 좋아요.”
“언제부터 이 도서실에 왔니?”
“여기 살 때부터요”
“몇 살 때 여기 왔는데?”
“초등학교 2학년 때요”
“일주일에 몇 번 오니?”
“그냥 생각날 때, 심심할 때요 …….”
책을 읽고 있는 아이한테 갑자기 호구조사 나온 동사무소 직원 같은 질문을 하자 아이가 당황스러워 한다.

“일주일 중에 오늘 같은 월요일에 아이들이 가장 많이 안 와요. 피곤해서 그런지 그냥 월요일은 왠지 잘 오지 않고…… 어쨌든 평균적으로 월요일이 제일 적게 오고 목요일이나 금요일에 많이 오거든요.” 난곡주민도서실 책임을 맡고 있는 신지연 씨의 말이다.
직장인들의 술자리도 부담스러운 월요일을 피하고 목요일이나 금요일에 만들게 되는데, 아이들도 어른들의 생활리듬과 닮아 가는지. 만화책을 보고 있는 아이들 얼굴을 보니 정말 만화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난곡주민도서실을 이용하는 주민들의 수는 어림잡아 하루 5~60명 정도다. 주로 초등학생들과 성인들이다.


공부에 바쁜 중고생은 거의 없다. 초등학생들이 많은 것은 아마도 아이들이 방과 후에 집이든 밖이든 놀 수 있는 일이 별로 없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들은 저녁 7시쯤 되면 다 집으로 돌려보내요. 재개발이 되면서 사람들 발길도 뜸하고 어두워지니까 혹시 몰라서요. 개발이 되기 전에는 늦게까지도 책을 보고 가고 그랬는데……”
학원을 몇 군데씩 다니거나 집안에 돌봐 줄 부모님들이 항상 계시는 것도 아니니 이 곳은 말이 도서실이지 아이들이 쉬고 가는 쉼터 같은 장소가 되었다.


책 속에서 찾는 희망

“주로 어머님들이 많이 빌려 가세요. 소설 좋아 하는 분들이 많고 그 중에서도 연애소설이요. 왜 그런 거 있죠. 문학소녀 같은 느낌을 갖고 싶어 하시는 것 같아요. 현실에선 힘들잖아요. 예전에 꿈꾸던 일들을 다시 느껴 보는 그런 느낌 같은 거요.”


하루하루 살아가는 생활이 녹녹치 않았을 난곡주민들로서는 생계를 꾸리는 것과 아이들 챙기는 일 모두가 그럭저럭 사는 사람들보다 훨씬 더 팍팍하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도 100원의 대여료를 내고 책 한 권을 빌려 일주일을 버틴다면 그야말로 살뜰한 문화생활을 즐기는 셈이다.
“이용자 중에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가게에서 일하시는 아주머니가 있는데, 이 분은 오래 전부터 도서실을 이용하셨거든요. 책 제목이며 내용까지 하다못해 작가의 성향까지 죄다 알고 계시고 오히려 저희한테 정보를 주시기도 해요.” 신지연 씨는 생활의 여유가 더 없어 보이는데 오히려 자신보다 더 책을 많이 읽고 있는 그 아주머니가 부럽단다.


“난곡 지역에 사시는 분들이 누릴 수 있는 문화가 딱히 없어요.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책 한 권의 가격도 사실은 부담스러운 것이거든요.”
4천여 권의 책을 보유한 난곡주민도서실은 월 평균 40여 권의 책을 구입한다. 20여 권은 어린이 책, 나머지는 어른용이다. 도서실 이용자들의 신청을 받아 구입하기도 하고 때로는 신문사들이 각 출판사에서 홍보로 들어온 책을 기증하기도 한다.

고등학교 다닐 때 처음 이 곳 난곡주민도서실을 드나들며 청소년기를 보냈다는 신지연 씨는 난곡주민도서실이 길러낸 인물이다. 친구 소개로 오기 시작해 책 읽는 재미와 그 속에서 만난 이들의 활동하는 모습에 감동했었다는 신씨는 지금 도서실 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 일하는 모습이 마냥 즐거운 것을 보니 아마도 하늘이 점지한 인연인 듯 하다.


1989년 서울지역의 문헌정보학과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지역조사와 더불어 도서실 설립을 위한 조사를 했다. 소위 달동네의 실태를 파악한 결과, 사회·문화적으로 소외된 난곡 지역에 직접 도서실을 만들어 주민들에게 건강한 문화공간을 확보하자는 의견이 나왔고,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지금의 난곡주민도서실이다. 96년 화재로 인해 소중한 책들이 손실되기도 했고, 2000년에는 그나마 무료로 공간을 제공해 주셨던 분에게 사정이 생겨서 위기에 놓이기도 했다.


재정을 뒷받침해주는 곳도 없이 활동회원들의 회비만으로 운영하는 것이 좀처럼 쉽지는 않았다. 매월 정기적으로 새 책을 구입해야 하는 등 기본적인 운영비가 들지만 회원들의 눈물겨운 노력으로 점차 제자리를 찾았다. 지금 있는 자리도 난곡사랑방의 도움으로 장소를 제공 받고 있어 비교적 안정적이긴 하지만 여전히 ‘더부살이’는 면하지 못했다.
지금 있는 자리도 난곡사랑방의 도움으로 장소를 제공 받고 있어 비교적 안정적이긴 하지만 여전히 ‘더부살이’는 면하지 못했다.



난곡에 대한 애정


“그게 뭔지는 잘 모르겠어요. 이 도서실을 만들면서 지역주민들과 함께 하고 젊은 날을 같이 보낸 분들이 서른 살이 되고 마흔 살이 되었는데도 왜 여전히 이 곳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지. 아마도 자신들이 젊은 날에 가졌던 뭔가가 이 곳에 계속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처음 도서실을 만들고 운영에 참여했던 활동회원들도 이제 사회에서 자리를 잡고 자신의 일이나 가정을 돌보는 것만으로도 벅찰 나이가 되었다. 하지만 난곡지역에 대한 활동회원들의 애정은 10년이 넘게 계속되고 있다.
하늘과 가장 가까운 동네였던 달동네 난곡동은 이제 더 이상 난이 자랄 수 없는 계곡이 되어가고 있다. 복덕방은 부동산이 되었고 부식 가게는 마트가 되었다. 재개발에 밀려 떠났지만 서울 하늘 아래 그들을 품어 줄 곳은 많지 않다. 어디론가 떠났다가 결국은 돌아오게 될 그들을 지켜보면서 난곡주민도서실은 언제나 그들을 다시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아파트가 지어졌다고 해서 난곡동을 떠날 생각은 없어요. 아직은 그래도 저 버스 종점 있는 아랫동네보단 방세가 훨씬 싸니까 결국 이리로 다시 들어올 수밖에 없을 거예요.” 신지연 씨가 새로 기증받은 책을 정리하며 말한다.
‘신림동’이 아닌 그들만의 ‘난곡동’에는 책 속에서 희망을 찾는 그들이 있다.

글 · 사진 황석선 stonesok@kdemo.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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