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인물/칼럼/인터뷰 (230)
함께쓰는 민주주의
‘재즈’ 하면 떠오르는 것은? 넉넉한 웃음에 풍채 좋은 가수. 그리고 이 가수의 목소리를 타고 흐르는 허스키한 중저음의 탁한 선율일 테다. 그래서 재즈는 듣는 이에게 지나간 ‘옛사랑’의 추억을 끄집어내고, 눈가에 촉촉한 이슬이 맺히게 하는 힘을 가졌다고 한다. 재즈가수 나윤선(38). 그는 이런 상식에서 한 발짝 비켜서 있다. 체구가 왜소하며 목소리가 가늘고 톤이 높다. 도통 재즈와 어울리지 않는 목소리다. 그 역시 “재즈가 우연히 찾아왔고, 그래서 언젠가 우연히 떠나도 잡을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다. 이렇게 겸손할 수가! 그는 프랑스 언론으로부터 “환희가 사라진 음악세계에 나타난 너무나 매력적인 목소리”라는 극찬을 받은 재즈 뮤지션 아닌가. 그래서 그에겐 한국보다 유럽에서 더 유명한 재즈보컬이라는 ..
IMF 10년이 남긴 것 지난 11월 21일은 김영삼 정권이 IMF에 긴급 구제금융을 신청한 지 10년이 되는 날이었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신한국당 후예인 한나라당이 창당된 날이기도 했다. 대선을 앞두고 ‘잃어버린 10년’ 타령에만 골몰하는 저들의 모습에선 ‘갱제’ 살리기는 고사하고 쪽박마저 깨버린 지난날에 대한 겸허한 반성도, 자기성찰도 찾아볼 수가 없다. 여권의 반격도 꼴사납긴 마찬가지다. 지난 10년은 독재와 부패의 고리를 끊어낸 ‘되찾은 10년’이었다는 그들의 주장 속에는, 민주화의 과실을 맛볼 겨를도 없이 IMF라는 철퇴를 맞아 신자유주의의 거센 풍랑에 휩쓸린 국민들에 대한 관심도 애정도 보이지 않는다. 사단법인 한국투명성기구 김거성(49세) 회장은 10년 전 우리 사회를 위기로 몰아넣었던 국가..
세종31년(1449) 사간원의 상소 중에 “부인은 바깥에서 할 일이 없는데, 지금 경외의 양반 부녀들은 향도 혹은 신사라고 칭하면서 각기 술과 고기를 준비하여 공연히 모여 마음대로 즐기니 풍교에 누가 됩니다.”라며 음사의 금지를 요청한 일이 있다. 이것은 미신의 배제라는 의미도 있지만 사실상 부녀자들이 문밖을 출입하여 바깥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금지하기 위함이었다. 결국 이 상소는 채택되어 경국대전에 ‘사족의 부녀로서 산간이나 물가에서 놀이나 잔치를 하고 야제나 산천성황의 사묘제를 직접 지낸 자’에 관한 처벌 규정(장 1백 대)이 오르게 되었다. 여기가 어딘데 감히 치마를 펄럭이냐 “일단 가부장적인 유교문화를 상징하는 공간이 필요했어요. 종묘는 앞에 공원이 있어서 축제공간으로도 적격이었어요. 제례가 열..
포크가수 손병휘(40). 많은 이들에겐 그의 이름이 생소할 법하다. 이른바 그는 무대보다는 거리에서 주로 노래해 온 ‘운동권 가수’다. 라디오나 텔레비전에서 그의 노래를 틀어주거나 섭외하는 일은 거의 없다. 방송에 출연하는 일도 거의 없다. 그는 지금까지 무대보다는 거리에서 다양한 계층의 시민들을 만나왔다. 하지만 요즘은 그것도 예전만큼 녹록치 않다. 제도적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그를 찾는 이들도, 거리에서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기회도 줄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기타와 노래로 세상과 소통하며 꾸준히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만들어왔다. ‘조국과 청춘’과 ‘노래마을’ 활동에 이어 1999년 솔로로 전향해 지금까지 1집 , 2집 , 3집 에 이어 올해 낸 4집 까지 모두 넉 장의 앨범을 냈다. 그는 “은..
2007년 늦가을 저녁 2007년 남북정상회담이 대통령의 말대로 가져간 보따리가 부족할 만큼 여러 부문에 걸쳐 성과를 냈다. 한반도 정전체제 종식과 평화체제 전환을 위해 남북한과 미국 등 3~4개국 정상들이 한반도에 모여서 종전선언을 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추진한다는 내용과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설치,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과 공동번영을 위한 경협확대 등의 10개항으로 구성된 10·4 남북정상 ‘남북관계 발전·평화번영 공동선언’은 예상을 뛰어넘는 합의 내용을 담았다. 이는 6·15 공동선언의 정신을 재확인하고 남북공동평화번영의 실질적 협력과 실천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요즘은 어느 때보다 민족과 나라를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 대선을 코앞에 두고 누구를 미래의 지도자로 ..
1993년 봄이 시작되던 무렵이었다. 당시 필자가 미술잡지사 기자로 일을 할 때, 시인 천상병 선생의 부인 목순옥 여사가 운영하던 카페 귀천에 들렀다. 달랑 테이블 하나에 의자 네 개가 전부였다. 두 평도 채 되지 않는 공간을 통해 고단했던 그의 삶의 여정을 느낄 수 있었다. 목 여사를 통해 지면으로만 대해오던 시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내친 김에 어려운 원고 청탁을 했다. 그리고 마감 날, 동료 기자가 들고 온 원고지에는 천 시인의 오줌이 지려있었다. 누렇게 얼룩이 졌던 그 원고는 천 시인이 이생에 남긴 마지막 원고였다. 필자에게 동백림 사건의 이미지는 그렇게 천 시인의 오줌 지린 원고지를 통해 들어왔다. 시인 천상병 - 술 한 잔 값으로 얻은 죄 “북괴대남간첩사건발표. 교수 학생 194명 관련..
드라마 의 김완 장군에서부터 영화 에서의 택시기사 인봉. 굵직한 역사 드라마에서부터 5·18민주항쟁을 다룬 근엄한 영화까지, 맛깔 나는 웃음을 선사했던 배우 박철민(40). 1988년 연극으로 데뷔한 뒤 50여 편의 연극·드라마·영화 등에 출연했지만, 지금껏 ‘박철민’의 이름을 기억하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그의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건 지난 2003년 영화 에서 ‘가오리’ 역을 맡으면서부터다. 어느덧 불혹. 이제야 ‘주목받는 배우’ ‘명품 조연’으로 인정받기 시작한 그는 분명 늦깎이 배우다. 20년 가까웠던 무명 배우의 설움도 벗어던지고 있다. 그를 찾는 감독도 많아졌다. 에선 웃음을, 9·11을 다룬 특집드라마 에서 울음을 선사했던 그는 영화 와 개봉을 앞두고 있다. 에 출연했고, 대하 사극 출연 ..
민족의 화해와 공존 가뭄은 지구촌의 가난한 나라들을 헐벗게 하고 지진과 홍수는 때를 가리지 않고 대륙의 곳곳을 파괴하고 있다. 북극의 만년설이 하루에 백만 톤씩 녹아내려 바닷물 수위가 높아지고 그로인해 만년 만에 깨어난 땅속의 박테리아가 살아나 내뿜는 프레온 가스는 지구의 기온을 급격히 상승시키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현상은 자연재해를 반복시켜 끝내는 지구의 위기를 가져올 것이라고 학자들은 경고한다. 얼마 전 비교적 소형 태풍인 ‘나리’가 제주와 전남 고흥 등을 빠져나가면서 우리는 많은 피해를 입었다. 연간 강수량의 삼분의 일이 단 며칠 사이에 내려 그 피해 규모도 엄청나 사망·실종자가 수십 명이며 재산 피해만도 150억원이 넘었다. 그러나 그 뒤의 수해복구 상황을 지켜보면 우리는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
인생의 노을을 뜻 있게 지난주 많은 국민의 애도 속에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善終)하셨습니다. 추기경보다 한 살 위인 제 선배 한 분은 장례미사 전날 명동 대성당에 마련된 빈소에 다녀 온후 “이 나이에 나는 인생을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반성하며 무척 부끄러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부끄럽게 생각한 사람이 어찌 이 선배 한 분만이겠습니까. 추기경이라는 가톨릭 성직 최고의 자리에 계셨던 분답게 그는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남기고 가셨습니다. 종교지도자로서의 그의 몸가짐을 보통 사람이 다 따라 할 수는 없겠지만, 평소 제가 지극히 감동한 것은 그의 한없이 겸허하고 소탈한 인품이었습니다. 위엄을 유지한다는 것이 겸손이나 소탈하다는 것과 이율배반(二律背反)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추기경님은 당신의 공사생활(公私生活)에서 ..
우리말 우리글은 어디로 가고... 역사가 오래된 주간지 표지를 살펴봅니다. 표지 윗부분에 ‘since 1964’로 표시하고 제호는 'Magazine’을 크게 적은 것과 한글이름을 달았습니다. 표지를 넘겨 목차면을 보면 ‘Contents: Cover story, Special, Arts...’라고 영어로 적은 제목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어느 사회복지사업 관련 법인에서 매월 발간하는 책자를 봅니다. 표지에는 ‘Vol. 207 February 2009’라고 발행월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다음 장 목차로 가면 'CONTENTS'라고 적은 후 세부 차례들은 한글과 영어로 제목을 달고 있습니다. 정부 예산으로 운영하는 재단에서 정기 발행하는 책자를 보면 표지에는 한글과 영어로 제호를 달았고, 목차로 가면 여기에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