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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속 시대 읽기/노래는 멀리멀리

동지

기념사업회 2003. 7. 1. 16:07
대중가요권에서도 히트를 예측하기 쉽지 않은 것처럼, 민중가요권에서도 전혀 예측할 수 없는 히트곡이 나온다. 1987년 7․8․9노동자대투쟁 때 갑자기 부상한 인기곡 <동지>도 그러하다. 지난 달 6월시민항쟁에서도 이야기했듯이, 갑작스럽게 벌어진 새로운 상황은 새로운 노래를 필요로 했지만, 창작자들이 그렇게 빠르게 새로운 경향의 노래를 창작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노동자대투쟁이라는 경험이 노래화되어 신작(新作)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1988년 가을 <파업가>와 <노동조합가>부터였으니, 결국 1987년 여름부터 무려 1년 동안이나 노래의 수요공급이 불균형 상태를 이루었던 셈이다. 수요는 있는데 공급이 이루어지지 않는 그 상황에서, 그 이전의 노래 몇 곡이 새롭게 조명되어 인기곡으로 급부상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임을 위한 행진곡>, <늙은 군인의 노래>를 <늙은 노동자의 노래>로 개사한 것과 <동지>였다.

87년 노동자 대투쟁 때 인기곡 
이미 1980년대 민중가요의 대표곡으로 자리 잡고 있었던 <임을 위한 행진곡>이 노동자에게까지 인기를 얻은 것은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는 것이었고, 김민기가 짓고 양희은이 불러 합법음반으로까지 나온 <늙은 군인의 노래>도 합법적으로 유통되면서 확보된 대중성이 있었으므로 인기를 얻을 법했다. 가장 예측하기 힘들었던 노래가 바로 <동지>였다. 1987년 초에 노래모임 새벽에서 노래테이프 11집을 내놓을 때 이 곡을 제창으로 불러 실었으나 그때만 해도 이 노래가 몇 달 뒤 그렇게 높은 인기를 구가할 줄은 전혀 몰랐다. 도대체 이 노래는 어떤 이유에서 인기 급부상의 영광을 얻었을까?
‘행진곡이 필요했으니까’ 혹은 ‘행진곡이면서도 비장미가 있으니까’라는 설명은 이유로는 지나치게 소박하다. 왜냐하면 1980년대 초중반 민중가요에는 종류의 수많은 행진곡이 있었고, 그 중 태반은 단조의 비장한 분위기를 띠고 있다. 예컨대 <전진가>, <선봉에 서서>, <전진하는 새벽>, <선봉에서>, <민족해방가>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다. 그런데 왜 이런 인기곡들을 제치고 하필 1986년 말 1987년 초 즈음에 유행하기 시작한 <동지>가 선택되었단 말인가?
 


몇 가지 추론이 가능하다. 첫째, 노동자대투쟁은 일부의 선진적 노동자가 아닌 그야말로 노동자 대중들이 투쟁의 주체로 서게 된 사건이다. 이로써 노동자들은 자기 주변의 사람들을 노동운동의 동지로 새롭게 바라보게 되었다. ‘친구’가 아닌 ‘동지’란 새로운 말은 자신의 달라진 삶과 인간관계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이었다.

이름만으로도 가슴 저린 ‘동지’      
둘째, 이 노래는 동지애를 노래한 당시 몇 안 되는 작품으로 매우 대중적인 호소력을 지니고 있었다. 아직 운동이념이나 조직의 진로 등에 대한 고민이 그다지 심각하지 않았던 그 즈음에, 이들을 묶어주는 가장 중요한 생각은 바로 동지애였고, 또한 격렬한 시위와 경찰․구사대 등과의 무력적 충돌이 늘 벌어지는 때에 이들을 버틸 수 있게 해준 것이 바로 동지애였다. 학생운동 경험이 있는 한 사람의 말에 의하면, 이 노래가 가장 빛을 발할 때에는 가두투쟁에서 전경이 막 진격을 해 올 때라는 것이다. 착착 발소리를 내며 진압을 시작하는 전경을 볼 때 순간 겁이 더럭 나고 도망갈까 말까 망설임이 생길 때 이 노래는 시위대에게 비장한 단결의 결의를 하게 만들면서 자신보다 옆의 ‘동지’를 배려하는 마음을 불러일으켰다고 술회했다.
셋째, 이 시기의 다른 행진곡들이 1980년대 초중반 학생운동의 감수성에 근거하고 있었던 것에 비해, 이 노래는 조금 다른 느낌의 노래였다는 점이다. 대학생들은 자신이 선봉 혹은 전위에 서 있는 선각자라는 태도로 운동에 접근하게 되고 그래서 역사를 위해 자신이 희생하고 봉사한다는 생각을 갖는 경우가 많다. <선봉에 서서>, <전진하는 새벽>, <선봉에서> 같은 노래는 이러한 태도를 잘 보여준다. 그러나 1987년 이후에는 운동이 대중화되었고, 싸움을 선봉에 선 소수가 하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대중 모두가 하는 것이 되었다. 

대중투쟁의 중심에 선 노래
<동지>는 이러한 대중투쟁의 감수성을 지니고 있는 작품이었던 것이다.(흥미롭게도 1980년대 초중반 노래 중 선진활동가 감수성이 아니라 대중투쟁의 감수성을 지닌 노래들은 광주․전남지역에서 나온 작품이 많다. 광주는 일찌감치 1980년에 대중투쟁을 경험했기 때문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그리고 바로 이 노래 ‘동지’도 광주․전남지역에서부터 유포된 노래로 알려져 있다. 1987년 이후 이 노래는 계층과 시대를 뛰어넘어 광범위하게 불리는 민중가요의 대표곡이 되었다. 이렇게 노래에 역사가 쌓이자, 1990년대 초반, 노래패 꽃다지에서는 그간 이 노래 속에 쌓인 감회를 포함시켜 규모가 큰 합창곡으로 편곡․변주하여 큰 박수를 받았다.


글_이영미
1961년 서울 출생
한국종합예술학교 한국예술연구소 책임연구원
저서 『민족예술운동의 역사와 이론』, 『노래이야기 주머니』, 『재미있는 연극 길라잡이』 등

<2003년 07월 희망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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