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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을 그리는 노래들 <내일이면 간다네>, <갈 수 없는 고향>, <부모님께> 본문

문화 속 시대 읽기/노래는 멀리멀리

고향을 그리는 노래들 <내일이면 간다네>, <갈 수 없는 고향>, <부모님께>

기념사업회 2003. 9. 1. 13:13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란, 어느 시대 어느 노래에서나 단골 메뉴이다. 민중가요도 예외는 아니다. 이러한 노래는 추석이나 설날 같은 명절 때 더욱 사무친다. 가난 때문에 고향을 등져 도시로 올라온 노동자들이, 명절 전날 선물 보따리를 들고 고속버스터미널로 향하는 모습, 그나마 고향에 가지 못하고 잔업을 하는 그 모습, 이것이 우리 노동자들의 명절 풍경이다.  
  1980년대 초반 돌 작사․작곡의 <내일이면 간다네>는 추석 휴가 직전의 들뜬 느낌이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다. ‘내일이면 집으로 간다 오늘만 넘기면 집으로 간다’로 시작하는 첫 구절은, 단지 고향에 대한 그리움만 드러내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왜 하필 제목이 ‘오늘만 넘기면’이겠는가. 고향집은, 서울에서의 힘든 노동이 존재하지 않는 곳, 그 고통스러운 삶으로 빠져들기 이전의 낙원과 같은 곳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니 ‘짧기만 한 밤 시간이 오늘 따라 왜 이리 길까’ 같은 구절이 가능한 것이다. 10시간이 넘는 장시간 노동에 지친 몸으로 밤 수면시간은 정말 짧은데, 귀향 전날 밤에는 잠을 못 이루고 있는 것이다. 고향길의 푸른 소나무 같은 기분 좋은 이미지 역시 그런 대목에서 이해할 수 있다. 고향을 눈물나게 절실하게 그린다는 것은, 지금의 고통이 그만큼 크다는 이야기이다. 



고향을 그리는 것은 지금의 고통이 그만큼 크기 때문 
  하지만 그런 고향은 늘 갈 수 있는 곳은 아니다. 어차피 아름다운 고향은 마음속에나 있는 것이다. 실제의 고향은 그 고향은 머릿속 생각처럼 그렇게 편안한 곳이 아니다. 지금은 고향을 그리고 있지만, 정작 고향에서 농사 짓고 산 몇 년 전에는 그 고향이 그토록 떠나고 싶은 곳, 있기 싫은 곳 아니었는가. 밑도 끝도 없는 농사일, 벗을 수 없는 가난의 굴레, 그 속에서 평생을 그렇게 살아가는 늙은 부모, 가난에 찌든 동생들, 이것들이 너무도 징글징글하게 싫었을 것이다. 그래도 서울이, 도시가 낫다고 떠나온 것이 지금의 이런 삶을 살게 된 원인 아니었던가. 그렇기 때문에 그 고향은, 그리워만 할 뿐,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돈을 많이 번 것도 아니고, 뭐가 시원스레 풀리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여전히 지치고 가난한 모습으로 되돌아가 봤자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이대론 못 돌아가지 그리운 고향 마을’이라는 김민기 <공장의 불빛> 가사 그대로이다. <갈 수 없는 고향>도 그런 부류의 노래이다. 주인공은 한강 강둑에 앉아 있다. 어마어마하게 큰 한강은 거대한 서울 그 자체이다. 그 위로는 자신도 기차 위에서 밟고 온 거대한 철교가 놓여 있다. 한강 다리들의 역사를 생각하건대, 아마 이 곳은 한강철교나 양화대교(제2한강교라고 불렸던)가 있는 영등포나 양평동, 당산동 지역일 가능성이 높다. 노을이 지는 한강과 철교는 고향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이렇게 강둑에서 눈물 흘리는 것을 보니, 아마 주인공은 아주 힘든가 보다. 맨 마지막 구절 ‘나는 가고 싶지만 내가 갈 수가 없네’는, ‘나’라는 주어가 두 번씩 반복적으로 쓰이는 이상스러운 말투를 구사하지만 그래서 절실함이 더욱 확연히 드러난다. 
  한돌의 이러한 노래는 노동자들보다는 지식인과 학생들이 더 좋아했다.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초까지, 노동자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을 갖게 된 지식인과 학생들에게 그들의 삶을 구체적으로 그려주는 이러한 노래는 사회과학적 지식에서는 맛볼 수 없는 감동을 느끼게 했다. 노동자 생활의 체험이 없거나 부족한 지식인 작가가 지은 노래들이 자칫 현실성 부족이나 불필요한 과장으로 나타날 수도 있는데, 이들 작품은 그런 오류가 비교적 적은 수작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80년대 초 노동자들, 특히 지식인들이 이런 노래를 가르쳐줄 수 있었던 야학이나 종교단체의 노동자들은, 이런 노래를 그다지 즐기지 않았다. <내일이면 간다네>는 그들이 따라 부르기에 곡이 좀 어렵고, <갈 수 없는 고향>은 지나치게 청승맞아 괜히 속만 상하는 노래이기 때문이다. 지식인들은 노동자들을 연민의 시각으로 보는 것이 바로 그들에 대한 애정의 첫 시작일 수 있지만, 막상 이를 대하는 노동자들에게는 자신이 연민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 그다지 유쾌한 일은 아니었을 수 있다. 



<부모님께>를 노동자들은 감동적으로 받아들여 
  이들 노래가 나온 후 꽤 여러 해가 지난 1987년에 이르러서야 노동자들은 스스로 자신들의 대중조직을 본격적으로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이제부터 노동자들은 자신의 할 말을 자신의 시각과 목소리로 표현하기를 원하게 되었다. 1990년 즈음에 나온 김호철 작사․작곡의 <부모님께>는 이러한 변화된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외적 세계를 작품이 어떻게 구체적으로 포착하여 객관적인 형상으로 만들어내는가 하는 점으로만 본다면 <부모님께>는 덜 매력적이다. 생생한 이미지가 시각적으로 포착되는 것도 아니고, 후반부는 다소 당위적이고 구호적이다 싶은 자기 다짐으로 끝을 맺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은 이 노래를 매우 감동적으로 받아들였다. 왜 그럴까? 그러저러한 고통의 삶이야 다 알고 있는 그들에게 그것을 객관적으로 형상화하는 것은 아마 별 의미가 없는 것일 수 있다. 그것들은 밑으로 다 깔아놓은 채, 당시에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대신 해주고 있다고 느끼고 있는 듯했다. 그들이 하고 싶은 말은, 지금 그들의 삶이 고통스럽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은 지금보다 훨씬 멋진 노동자로 살아가리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몸을 튼튼한 노동자로 기르신 어머님’ 같은 구절은 얼마나 감동적인가. 부모가 자신을 노동자로 길렀다는 것을 원망하지 않고 고맙게 여길 수 있는 마음은, 곧 노동자로서의 자긍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노래의 감동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일은, 단지 교과서적인 예술 지식만으로 가능한 것은 아닌 것 같다.  
 

글_이영미
1961년 서울 출생
한국종합예술학교 한국예술연구소 책임연구원
저서 『민족예술운동의 역사와 이론』, 『노래이야기 주머니』, 『재미있는 연극 길라잡이』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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