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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체험이 배어 있는 <독립군 추모가>와 <열사의 그 뜻대로> 본문

문화 속 시대 읽기/노래는 멀리멀리

죽음의 체험이 배어 있는 <독립군 추모가>와 <열사의 그 뜻대로>

기념사업회 2003. 12. 1. 17:20

노동자들의 연이은 분신을 바라보는 마음은 착잡하기 이를 데 없다. 사회적 약자가 단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던져야만 겨우 사회에서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주는 세상이라는 점을 너무도 명확하게 알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1970,80년대에는 폭압적 정치체제가 그 목소리를 막고 있어서 그랬다고 치자. 지금은 뭔가. 그들의 절규를 외면하도록 만든 것은 과연 무엇인가.
죽음이란 사회나 역사 같은 사회과학적 용어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느낌을 담은 단어이다. 내 존재가 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다. 나는 이 세상을 볼 수도 만질 수도 기억할 수도 없고, 세상 사람들과 말하고 웃지 못한다. 내가 사라진 후의 세상에서 사건이 일어나고 역사가 진전한들 그게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아니, 내 존재가 사라진 이후에도 ‘의미’라는 게 있을 수 있는 것인가. 죽음 앞에 선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 리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근대사에서 사람들은 역사의 대의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던졌고, 이러한 죽음의 체험들은 노래 속에 생생히 배어 있다.
일제강점기 주권을 잃고 망명지에서 무장투쟁을 벌였던 사람들에게 죽음은 늘 함께 있는 것이었다. 목숨을 내건다는 것은, 단지 수사가 아니라 언제고 다가오는 일상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해외의 무장투쟁 속에서 불려졌던 노래들을 보면 절절한 죽음의 체험이 담겨 있다. 그 중 <독립군 추도가>는 생생한 형상화가 매우 빛난다.

1. 가슴 쥐고 나무 밑에 쓰러진다 독립군
  가슴에서 쏟는 피는 푸른 풀 위 질벅해
2. 산에 나는 까마귀야 시체 보고 우지 마라
  몸은 비록 죽었으나 독립정신 살아 있다
3. 만리창천 외로운 몸 부모형제 다 버리고
  홀로 섰는 나무 밑에 힘도 없이 쓰러졌네
4. 나의 사랑 대한독립 피를 많이 먹으려나
  피를 많이 먹겠거든 나의 피도 먹어다오

가사가 섬뜩할 정도로 구체적이다. 가슴 쥐고 쓰러지는 독립군은, 바로 내 곁에서 죽어가는 ‘나’의 동지일 수도 있고, 미래의 ‘나’의 모습일 수도 있다. 독립군이란 이러한 최후를 맞을 각오로 일하는 것이니까. ‘가슴 쥐고’ 쓰러지는 모습, 그 가슴에서 터져 나온 피가 푸른 풀 위에 질벅한 모습, 시체를 먹기 위해 기다리는 까마귀가 어우러진 풍경의 감각적 충격이 대단하다. 죽음에 대해 이토록 충격적이고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은, 죽음의 체험이 흔하다는 의미일 수도 있지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그만큼 크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아무리 죽음의 체험이 일상적이고 죽음을 각오하고 싸우는 일을 하고 있지만, 그래도 목숨 하나를 가지고 사는 인간인 이상 죽음의 두려움 역시 완전히 없어질 수는 없는 것이다.


죽음에 대해 충격적으로 묘사
3절에서 그 두려움은, 가족에 대한 회한으로 이어진다. 고향에서 가족의 품에 안겨 죽는다 해도 죽음이란 건 두려운 법인데, 이렇게 험한 죽음을 맞아야 하는 신세도 기막히고, 그것을 전해 듣고 애통해 할 부모형제의 얼굴을 떠올리는 것도 기막히다. 그러나 주인공은 4절에서 그러한 두려움을 어쨌든 넘어설 수밖에 없다. 나의 의지로 독립군을 선택한 바에야 어쩔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의 사랑 대한독립 피를 많이 먹으려나’나 ‘나의 피도 먹어다오’의 구절은, 이렇게 1․2․3절의 구체적인 가사 덕분에 결코 관념적 과격성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그 비장함이 가슴 아프고 애틋하기까지 하다.
1980년대 말 노동운동의 과정에서 수많은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었고, 장례 때마다 노래가 불려졌다. 가장 널리 불려진 <끝내 살리라>나 어떤 열사의 추모곡인지 잘 생각도 나지 않는 <열사의 그 뜻대로>나 이석규 열사 추모곡인 <천만 노동자의 가슴에 너를 묻는다> 등 여러 곡이 떠오른다. 그 중 가사의 형상화가 가장 구체적이고 탁월했던 작품은 <열사의 그 뜻대로>라고 보인다. 동료가 쓴 시에, 당시 ‘노동가요 자판기’라는 별명까지 붙은 김호철의 작곡이다.
전문 창작자가 열사 추모가를 지을 때에는 그 죽음의 충격을 가사로 잘 소화해내기 힘든데, 이 작품은 그 ‘열사’를 따뜻한 체온과 열기로 기억하는 동료였기 때문에 이런 가사를 쓸 수 있었을 것이다. ‘침묵을 딛고 어둠을 차고’, ‘불꽃으로 일어섰다’ 같은 첫 구절은 추모곡들에서 흔히 쓸 수 있는 구절들이지만, ‘뒤뜰 어디선가 규찰을 서던 그 목소리 들릴 듯한데 / 떠나보낼 수 없는 동지여 비수처럼 살아오는 동지여’의 부분은 전율이 느껴질 정도로 생생하다.

열사에 대한 묘사가 생생해
바로 엊그제까지 투쟁의 현장에서 함께 숨쉬던 사람이 차가운 시체가 되어 땅 속에 묻혀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얼마나 힘이 드는가. 열사에 대한 묘사가 이토록 생생한 작품을 일찍이 보지 못했다. 바로 이렇게 생생한 형상 덕분에 후반부의 ‘불타는 적개심으로’도 충분히 납득되고 수용될 수 있다. 노동운동이 단지 적개심과 분노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이런 상황에서 적개심에 불타는 것은 인간적으로 너무도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말이다.
더 이상 추모가를 짓지 않아도 되는 세상은 언제나 올 것인가. 그들의 죽음이 우리의 무관심을 아프게 때리고 있다.

 글_이영미
1961년 서울 출생
한국종합예술학교 한국예술연구소 책임연구원
저서 『민족예술운동의 역사와 이론』, 『노래이야기 주머니』, 『재미있는 연극 길라잡이』 등

<2003년 12월 희망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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