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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추모가 본문

문화 속 시대 읽기/노래는 멀리멀리

전태일 추모가

기념사업회 2003. 11. 1. 14:40

전태일의 분신은 1970년대가 어떤 시대일 것인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1960년대 박정희 정권의 경제개발드라이브에 휘말려 무작정 상경했던 이농민들은 대도시의 노동자가 되었고, 1970년대는 이제 우리나라도 본격적으로 노동문제가 커다란 사회문제가 될 것이라는 점을 알려주는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1987년 노동자대투쟁이 있기 이전 민중가요의 태반은 대학생층의 것이었다. 노동자들이 노래문화를 가꿀 문화적 역량이 없어서가 아니라, 민주적인 노동조합이 자리 잡지 못한 상태에서 이런 노래를 만들고 부를 만한 공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에 비하면 대학은 어떤 노래를 불러도 크게 위험하지 않은 일종의 해방구였다. 노동현장의 민중가요는, 민주노조의 역량이 갖추어지고 집단력과 투쟁의지가 높은 곳에서부터 만들어지고 불려지기 시작했다. 예컨대 1970년대에는 청계피복노조에서 꽤 여러 편의 노래가 불려졌고, 1970년대 중반 민주노조들이 활발하게 유대를 강화하면서 원풍모방 등으로 번졌으며, 동일방직 노동자들의 투쟁과정에서 또 많은 노래가 새로 만들어졌다.

87년 이전 민중가요는 대학생이 점유

<전태일 추모가>는 1970년대 청계피복노조에서부터 불려진 노래로 알려져 있다. 구체적으로 누가 언제 만들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이 시절 노동현장의 노래들은 거의 그러한데, 그저 노래의 형태를 분석하고 당시를 체험했던 사람들의 증언들을 종합하여 대강 짐작을 할 수 있을 뿐이다. 노래에 대한 전문적 관심을 갖고 있는 나로서는 이 노래의 출처가 꽤나 궁금했다. 왜냐하면 가사는 ‘다시는 없어야 할 쓰라린 비극’ 같은 구절로 마무리해 놓은 것이 좀 소박한 감이 없지 않지만, 악곡을 흐름을 보면 일반 노동자들의 솜씨는 아니기 때문이다. 단순하기는 하지만 일관성이 있고,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헛되이 말라’ 부분에서는 단조에서 장조로 바꾸고 못갖춘마디를 사용하여 변화를 준 것 등, 음악적으로 ‘말이 되게’ 정돈해놓은 흔적이 역력하다. 분명히 노래를 많이 다루어본 사람의 냄새가 나기는 나는데, 당시 청계피복노조에서 누가 그런 역할을 했는지는 짐작할 수 없었던 것이다.
 


   
드라마 주제곡에 가사 붙여

최근 1970년대 후반부터 노동현장에서의 문화활동을 했던 노동자문화교육협회 신재걸의 증언으로 궁금증이 조금은 풀렸다. 그가 해준 이야기는, 1970년대 초에 유행했던 드라마 주제가의 악곡에 가사를 붙여 부른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충분히 개연성이 있는 이야기이다. 할 말은 솟구쳐 오르는데 노래를 작곡할 사람이 부족했던 그때, 민중가요 중에는 이렇게 기존의 악곡에 새로운 가사를 붙이는 형태(나중에 ‘개사곡’ 혹은 ‘노래가사바꿔부르기’라는 용어로 지칭된)가 많았다. 그래도 가끔 비전문적으로나마 노래를 짓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이 있는 대학생층에서도 이런 현상이 흔했는데, 작곡을 엄두도 내기 힘든 노동자층에서는 말할 것도 없었을 것이다. 한국노총의 ‘노총가’였던 <큰 힘 주는 조합>(‘노동자의 핏줄 속에 조합정신 흐를 때 하늘 아래 그 무엇 이보다 더욱 강하랴…’)의 악곡은 1970년대에 <조국찬가>로 불려지기도 했던 ‘글로리 글로리 할렐루야’ 하는 가사의 미국의 노래이며, 동일방직 해고 노동자들이 지어 불렀던 이 노래도 우리에게 애국가 혹은 이별가의 악곡으로 익숙한 <올드랭자인>의 악곡에 가사를 붙인 노래이다.

억눌림서 헤어나려 발버둥쳤다 / 인간답게 살기 위해 투쟁을 하였다 / 오 하느님 주신 권리 어디 있나요 / 세상아 너는 아느냐 억압자의 호소를

기존 악곡에 새로운 가사를 붙이면, 가사와 악곡의 느낌이 부조화한 경우가 많다. <큰 힘 주는 조합>이 못갖춘마디의 악곡 흐름과 우리말의 강세가 맞지 않아 부르기 힘든 노래인 것에 반해, <세상아 너는 아느냐>는 후반부 ‘오 하느님 주신 권리 어디에 있나요’ 부분이 애절한 악곡과 잘 어울려 강한 감동을 준다.

앞서 이야기한 <전태일 추모가>는 악곡의 흐름과 가사의 흐름이 매우 잘 조화를 이루고 있어 거의 노가바라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이다. (원곡인 드라마 주제가를 알지 못해 원곡의 가사를 어느 정도로 빌어왔는지 비교해 보기는 힘들지만) 중간 부분 조가 바뀌어 음악적 흐름이 변화를 보이는 부분이, 가사에서는 전태일 열사의 유언의 내용이다. 현재 시점의 목소리가 단조로 비장하게 흘러나오는 것에 비해, 전태일 열사의 유언 부분만 장조로 도드라져 강조되고 있는 것이다이렇게 잘 정돈된 덕에, 이 노래는 널리 퍼져 1990년대까지 오랫동안 불리는 노래가 되었다.

곡과 가사가 잘 조화된 노가바

전태일 열사와 관련한 또 다른 노래로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로 시작하는 진중가요(陣中歌謠) <전우야 잘 자라>에 가사를 바꿔 ‘전태일 동지의 흘린 피를 헛되이 하지 마라 / 평화시장 노동자는 오늘도 투쟁한다’로 부른 노래가 있었던 기억도 생생하다. 전태일 열사와 관련된 이러한 노래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청계피복노조에서 새로운 노래에 대한 욕구를 많이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인데, 이는 전태일의 죽음이라는 엄청난 사건과 그로부터 시작된 투쟁이라는 새로운 체험의 소산이었음은 분명하다.


글_이영미
1961년 서울 출생
한국종합예술학교 한국예술연구소 책임연구원
저서 『민족예술운동의 역사와 이론』, 『노래이야기 주머니』, 『재미있는 연극 길라잡이』 등

<2003년 11월호 희망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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