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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그들이 사는 세상] 어느 미대생의 이야기

기념사업회 2012. 1. 16. 13:12

글| 나동현 arbeitsmann@naver.com 

말 설고 물 설은 곳이라 더 그런 것일까? 혼자 해외를 여행하다보면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친근감을 느끼게 된다. 어지간하면 먼저 말을 걸지 않은 (도도한) 필자 또한, 1달 동안 단 2명의 한국인과만 마주칠 수 있었던 인도의 께랄라와 타밀나두에서는, 동아시아계로만 보였다 싶으면 무조건 달려가 안녕하세요를 먼저 하고는 했다.떤 사연으로 인하여 본의 아니게 다니게 된 인도 여행. 그 6개 월 여의 시간 중 3달을 보냈던 폰디체리 인근의 한 공동체에서 만났던 안인선 씨. 그를 만나보았다.


어렸을적, 전국 어린이 미술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았지만, 크레파스에서 물감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번번이 물의 양을 못 맞추는 바람에 붓을 꺾어야 했던 필자로서는 미술을 하는 사람에 대해 어떤 경외감(?) 같은 것이 항상 있었다.

안인선 씨는 바로 필자가 애잔한 감정을 가지고 바라보는 회회를 전공하는 예비 4학년이다.

“어렸을 때부터 미술을 전공하신 엄마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꿈이 화가였어요. 또 그림을 그렸을 때 어른들이 무심코 해주는 칭찬이 좋아서 계속 그림을 그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화가의 길을 가기 위해 “초등학교 때부터 미술학원과 화실을 다니며 예중, 예고, 미대 입시 준비를 했다”는 안인선 씨. 꿈을 이루기 위한 그의 노력은, 데생하기 지겹다며 투덜대고는 했던 필자를 부끄럽게 만들기 충분했다.

“시험을 보기 한두 달 전부터는 하루에 12시간씩 그림을 그렸어요. 입시를 준비하지 않을 때에도 4일 이상은 꼭 미술학원에 다녔어요.”
 


단지 회화뿐만 아니라 초등학교나 중학교 클럽활동 시간에도 도자공예, 바느질, 종이공예 등 미술관련 활동을 했던 그는 대입 실기를 준비하면서 한 가지 아쉬움을 느꼈다고 한다.

“대학 진학 후에는 거의 느끼지 못했지만, 입시 때 가장 많이 느낀 것은 그림에 답이 있다는 것이었어요. 당연히 형태력과 양감 등 기초적인 것도 그림을 그림에 있어서 중요하기는 하지만, 미술은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라는 것을 생각했을 때, 한국의 입시가 아직도 너무 고전적 인 게 아닌가 싶어요.”

스티븐 잡스가 추앙받지만, 아직도 문학작품에 대한 각자의 느낌마저 제시된 정답을 암기해야만 하는 한국에서 그의 지적이 과거의 유산으로 남을 날은 언제일까?

그렇기에 더욱 그는 끊임 없이 사고방식의 외연을 확장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한다.

“국내에서는 헤비타트나 장애우 행사 도우미, 식목일 행사 도우미등을 했고, 해외에서는 오로빌이란 곳에서 봉사활동을 했어요.”
 


글의 시작에서 말한 것처럼, 안인선 씨와 만났던 곳은 인도 폰디체리 인근에 위치한 한 공동체였다. 그가 첸나이에서 택시를 타도 4시간이 넘게 걸리는 공동체에서 7개월 동안 체류하며 봉사활동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고모가 오로빌리언이신데, 한국에 잠시 오셨을 때 오로빌에 와보지 않겠냐고 제안하셨어요.”

2010년 4월 말부터 2010년 12월 초까지 오로빌에서 지냈던 그는, “Nandanam이라는 유치원 보조교사로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유치원에서) 주로 한 일은 유치원 환경미화와 함께, 아이들의 만들기 수업에 필요한 것들을 준비하는 것, 쉬는 시간에 아이들과 운동장에서 놀기, 그림그리기, 책 읽어주기 등이었어요.”

전 세계에서 온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모여 살아가는 공동체인 만큼, 아이들 또한 다양하였다고 한다.

“유치원 쉬는 시간엔 모두들 운동장에 나와서 놀아요. 그런데 갑자기 3살 아기가 오줌이 마렵다고 저에게 왔길래, 제가 화장실에 데려가려니 너무 급하다는 거 에요. 그러자 다른 선생님께서 그냥 거기서 싸게 하셨어요. 저는 저도 모르게 한국에서 엄마들이 아이에게 볼 일을 보게 도와줄 때처럼 안아주었어요. 그런데 그것을 흥미롭게 본 외국 아기들이 자신들도 오줌이 마렵다며 몰려들었어요.”


그런 에피소드만큼이나, 오로빌에서의 시간은 그에게 소중했다고 한다.

“아무래도 다른 문화에서 지낸다는 것이 저의 작은 틀을 확장시킬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게다가 봉사활동은 저의 존재도 소중하고 가치 있다고 느끼게 될 뿐더러, 저로 인해 누군가 행복해 하는 것을 볼 때 보람을 느낄 수 있구요.”

특히 한 소녀와의 추억은 그에게 큰 보람을 안겨주었다고 한다.

“솔레다라는 이탈리아-인도 소녀와 친해졌는데, 내성적인 성격에 그림그리기를 좋아해서 친구들보다 저와 있는 시간이 길었어요. 나중에는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기도 하고 고민도 털어놓는 친한 친구가 되었어요.”
 


인도 오로빌에서 좋은 기억을 가지고 돌아온 그에게, 졸업을 앞둔 예비 4학년은 어떤 느낌일까?

“미술을 전공하는 학생들은 대부분 대학원에 가거나 취업준비를 하는 이들도 있지만, 학원으로 많이 가는 것이 현실이에요. 작가를 꿈꾸는 사람들이 많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림만으로 먹고 살기는 힘들어요. 게다가 요즘은 유명작가들도 적자를 보며 작품을 판매하고 있다고 하니, 예비 4학년으로서 막막하네요.”

배워두면 어디 가서 아는 척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나쁘지 않지만, 몰라도 굳이 살아가는데 지장이 없는 전공을 2개나 하고 있다는 점에서, 언제나 취업이야기에 말수가 줄어들 수 밖에 없는 필자로서는, 예술을 전공한다고 해서 예술가로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안인선 씨의 말이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예술 쪽은 보통 인문대학의 1.5배의 등록금을 내는 것 같아요. 등록금 비싸기로 유명한 여대들은 1년 등록금만 천 만원이 넘는다고 하니.. 등록금 때문에 휴학하는 친구들도 여럿 보았구요.”

불투명한 진로와 과도한 등록금 이야기에, 경외의 시선으로만 바라보던 미대 학생들에 대한 필자의 시선은 어느새 연민과 동질감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래도 돈과 시선을 떠나 자신이 하고 싶은 걸 하는 것이 성공인 것 같아요. 아직 철이 안 든 걸까요?”

“환경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그림을 통해 사람들에게 환경에 대한 생각을 해보게 하고,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는 중국에 나무를 심고, 야생동물들을 지키는 일에 투신하고 싶다”는 안인선 씨.

“훈데르트 바서와 김도명 작가를 좋아하고, 그들의 삶 자체가 앞으로 예술가들이 가야할 방향이라는 생각이 든다”는 안인선 씨와의 만남을 통해, 인도에서의 꿈과 웃음을 언제부터인가 잃어버렸던 필자는 다시 그것들을 찾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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