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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한번 먹자 - 가수 채환의 해피싱어 프로젝트 본문

인물/칼럼/인터뷰/문화초대석

밥 한번 먹자 - 가수 채환의 해피싱어 프로젝트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11. 3. 15. 14:28





아침에 눈을 떠보니 너무나 피곤해서
모든 걸 던져버리고 잠이나 자봤으면
저녁에 집에 오는 길 술 한잔 하고 나니
며칠만 놀고 싶지만 또다시 지하철 안
매일매일 반복되는 지루한 하루
백수생활 그립지만 주먹 꽉 쥐고
Fighting! Fighting!
My life is beautiful life
Fighting! Fighting!/ 아름다운 나의 인생
매일 똑같은 뉴스와 재미도 없는 신문
비슷한 얼굴들로만 가득 찬 텔레비전
거리에 많은 사람들 어색한 시선들만
미소도 없는 하루와 노을도 없는 하늘
인생살이 뭐가 그리 복잡한가요
가슴 펴고 소리 높여 함께 웃어요
Fighting! Fighting!
My life is beautiful life
Fighting! Fighting!
아름다운 나의 인생
일어나 내 손을 잡아봐
우리 함께 가는 거야
내 손을 잡아봐 그리고 뛰어봐
우리 함께 가는 거야
Fighting! Fighting!
My life is beautiful life
Fighting! Fighting!
아름다운 나의 인생
My life is beautiful life
- 채환 Fighting!

 

경북 청도가 고향이다. 알다시피 청도는반시의 고장이고소싸움의 고장이다. 아버지는 평범한 농사꾼이다. 소도 키우고 감도 따고 밭농사도 지으며 한평생을 보냈다. 어느덧 칠순의 나이지만 아직도 노구를 이끌고 일을 한다. 마치 한 마리의 소처럼 평생을 그렇게 우직하게만 살아왔다. 2005년 봄 자식처럼 키우던 20여 마리의 소가 브루셀라에 걸리는 바람에 모두 산 채로 땅속에 묻어야 했다. 그때 갓태어난 송아지 한 마리가 용케도 목숨을 부지했다. 놈은 태어나면서 부터 유독 덩치가 컸다. 외로워서였을까. 놈은 자라면서 자기보다 덩치가 더 큰 놈들에게 마구 대가리를 들이밀곤 했다. 영락없는 싸움소 였다. 그나마 놈이 모든 것을 잃어버린 촌부에게 유일한 희망이었다.

"자작곡 Fighting!을 발표하고 고향에 돌아와 보니 그런 지경이 돼있었어요. 그 송아지의 처지가 꼭 나를 닮은 양 애틋했지요. 그래서 놈에게 파이팅 거미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어요. 어려서부터 객지를 떠돌아야 했던 저였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여동생의 손을 잡고 대구로 올라왔어요. 비록 시골 농투성이지만 아들놈 하나쯤은 제대로 공부시키고 싶었던 아버지의 뜻에 따라서였지요. 여동생은 너무 어려 얼마지 않아 다시 집으로 돌려보내졌고 홀로 남은 저는 외풍 센월세방을 전전하며 중학교를 다녔습니다. 주인집에서 친구들을 달고 오는 것을 싫어하는 눈치여서 주로 혼자 생활을 했어요. 그나마 음악 을 듣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는데 큰맘 먹고 어렵게 모은 돈으로 기타하나를 장만했지요. 그것이 한 아이의 진정한 삶의 시작이었습니다." 고등학교 땐 패거리들을 모아 가을여행이라는 록 밴드를 결성했고 음악학원을 다닐 돈이 없어 교습소 청소를 해가며 악기를 배웠다. 3학년 때는 학교 축제에 공연을 하면서 겁도 없이 서울에서 제법 알려진 가수까지 불러 내렸다. 공연이 열리던 날, 아들놈이 대구 가서
공부 잘하고 있는 줄만 알았던 부모는 영문도 모른 채 시골에서 올라와 처음으로 아들놈의 노래를 들었다. 공연이 끝난 후 아버지는 어떻게 마련했는지 당시로서는 생각하기도 어려웠던 거금 50만 원이 든 봉투를 말없이 내밀고 가셨다. 그렇지 않아도 가수를 부르기는 했지만 사례조차 할 수 없었던 그는 그 돈으로 초청가수에 대한 최소한의 사례에다 뒤풀이까지 할 수 있었다.

"오로지 대학가요제에 나가기 위해 대학이랍시고 진학했지만 채마치기도 전에 기어이 가수가 되겠다고 기획사를 찾아갔어요. 그런데 데뷔곡을 낸 지 3개월도 안되어 입영통지서가 날아들었고 군에 갔다 오니 모든 게 달라져 있었지요. 오라는 기획사도 없고 설 수 있는 무대도 없었어요. 그래서 다시 대구로 내려갔지만 거기서도 마음 놓고 설 수 있는 무대는 없었습니다. 돈 몇 푼에 잠깐 업소에 나가는 것을 빼놓고는 주로 거리에서 기타를 들고 노래를 불렀지요. 백화점 앞에 서도 불렀고 방송국 앞에서도 불렀습니다. 그래도 말이라도 동성동의 해피싱어, 그나마 거리 가수로 알려지면서 어지간한 식당에서는 공짜밥을 얻어먹을 수 있었어요. 이렇게 노래를 할 수 있고,이렇게 기타를 칠 수 있는데…. 이대로라면 서울에서도 통하지 말라는 법이 없지 않은가. 그래서 대구 거리를 접고 청운의 꿈을 안은 채 2004년 겨울 아예 상경을 감행했습니다”

그러나 상경 후의 생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거리의 가수였고 무명이었다. 2005년 말, 채환(본명 이헌승·34)은 새 앨범 빛,희망, 행복 그리고 채환을 발표하면서 Fighting!을 타이틀곡으로 내걸었다. Fighting!은 오랫동안 거리 공연을 하면서 음악에 대한 꿈을 접지 못하던 그가 어느 날 문득 거리에서 건져 올린 곡이었다. 거리 공연이야 서울로 올라오기 전 대구에서 몸에 배일대로 배여 있는 터였지만, 누구 하나 제대로 들어주는 이 없는 공연은 언제나처럼 고달프기는 매 마찬가지였다. 그날 지하철 막차를 기다리면서 그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다. 춥고 배고프고 외로웠다. 거리에서 노래를 하며 불우한 이웃을 돕기 위한 성금을 모으고 있었지만 정작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자신이었다. 그는 막차를 기다리면서 힘없이 기타를 꺼내들고 줄을 튕겼다. 거리에서 지나친 무수한 사람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지하철역 한 귀퉁이에서 웅크리고 있던 노숙자들의 모습도 떠올랐다. 그때 문득 그의 머릿속에는 어떤 노래가 그려지고 있었다. 그래, 힘내자. 그래도 나에 겐 꿈이라도 있지 않은가. Fighting! 다시 한 번 Fighting!

"Fighting!앨범을 내는 데 제 팬클럽 채환 플러스의 도움이 컸습니다. 채환 플러스는 거리에서 인터넷 공간에서 우연찮게 만나 저의 삶과 노래를 들어준 사람들의 자발적 모임입니다. 그들 말고도 앨범을 내면서 생각지도 않은 도움을 얻기도 했지요. 최소의 경비로 앨범을 내면서 이왕 내친 김에 한발 더 욕심을 낸 것이 뮤직 비디오를 제작하기로 하는 데까지 나아가버렸어요. 하지만 비디오를 제작해줄 곳도 출연해줄 사람도 없었습니다. 6㎜ 카메라를 들고 남대문시장으로 서울역으로 돌아다녔지요. 그곳엔 낯익은 얼굴들이 있었습니다. 야채장수 아주머니와 붕어빵 아저씨, 그리고 무엇보다 나중에 뮤직 비디오의 최다 출연자가 되어준 노숙자들이지요. 참 어지간히 싸웠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신촌역에서 서울역에서 영등포역에서 거리 공연을 할 때 모금통을 빼앗아 달아나기 일쑤였고 심지어 통 안에 휴지나 담배꽁초를 버리고 가기도 했던 그들이었습니다. 멱살잡이도 하고 소주값을 쥐어주며 달래기도 많이 했지요. 그나마 그런 그들이 저를 알아보고 카메라를 피하지 않은 덕에 무사히 뮤직 비디오까지 만든 가수가 될 수 있었어요."

채환은 이제껏Fighting!을 주 레퍼토리로 달고 다닌다. 해마다 입시철이 되면 딱 한 번 그 곡은 다른 곡들을 제치고 방송 순위 상위에 오르기도 한다. 전 국민의 80% 이상이 알 때까지 그 노래를 부르겠다고 말하고 다니지만 아직까지는 달리 내놓을 만한 뚜렷한 곡이 없기 때문이 기도 하다. 그는 이제 겨우 몇 개의 방송 프로에 출연하고 몇 집의 앨범을 낸, 여전히 무명에 가까운 가수지만 그에 구애받지 않는다. 어디서든 부르면 개런티를 불문하고 달려간다. 그조차 이 힘든 세상에서 갈수록 드물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두렵진 않다. 더 이상 떨어질 바닥도 없기 때문이다. 그동안파이팅 거미는 무럭무럭 자라 어느덧 싸움소로서 절정기를 맞고 있다. 워낙 출중한 싸움소들이 많은 청도인지라 항상 이기기는 어렵지만 간간 자기보다 더 월등한 소를 이기기도 하고 쟁쟁한 챔피언 소들에게도 쉬 물러서지 않는다. 작년청도소싸움축제때 채환은 대선배 남진과 함께 축하공연 무대에 올랐고 그날 거미는 승리의 기쁨을 아버지께 안겨드렸다. 하지만 고향의 아픔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구제역이 전국을 휩쓸면서 숱한 생명들이 생매장되고 있다. 거미 때와 같은기적조차 없이 난생 처음 흙을 밟아보던날, 아니 흙을 채 밟아보기도 전에 흙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리고 농심에는 원망보다 더 깊은 설움이 쌓이고 있다. 그러나 어쩌랴. 그 죽음을 딛고 그 죽음 위에서 한 송이 꽃이라도 피워내야 하는 것을. 비록 이길 수 없다 하더라도 결코 싸움을 멈출 수 없음을. Fighting! 가수 채환도, 파이팅 거미도, 아버 지도….


새해 들어 채환은 본격적으로해피싱어 프로젝트를 펼쳐나갈 작정이다. 그동안 거리에서 무대에서 받아온 도움과 사랑을 보다 많은 사람 들과 나누려는 것이다. 3월이면 신곡 밥 한번 먹자를 내놓는다. 개그맨 출신 가수 류찬이 같이 노래를 부르고, 역시 개그맨 김준호, 김대희가 나레이션으로 참여한다. 음원 수익은 100% 걸식 아동과 노인들을 위해 기부할 생각이다. "살아보니 비우니까 오히려 채워지더라고요. 어차피 노래야 제 삶의 전부이고 노래를 통해 돈과 명예를 얻기보다는 의미 있는 삶을 이루고
싶어요. 평생 희망과 행복을 주는 음악을 하고 싶어요. 그 희망과 행복은 바로밥심과밥정에서 비롯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요. 아무리 어렵더라도, 아니 어려울수록 따슨 밥한 끼 꼭 같이하자고요."


언제나 말뿐인 세상,
인사치레 건네는 말들
연예인들 하는 거짓말
"사랑해요 여러분"보다
더 뻔한 말들
밥 한번 먹자
맛있는 밥 한번 먹자
밥 한번 먹자
김치찌개라도 좋아
된장찌개라도 좋아
밥, 밥, 밥 한번 먹자
아무리 바쁘고 바빠도
삼겹살에 소주 한잔 어때
머리 아픈 일들은 잠시만 잊어봐
함께하는 시간이 좋아
친구야 밥 한번 먹자

채환밥 한번 먹자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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