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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못하는 동물들의 감정선을 따라간 생태 다큐멘터리<어느 날 그 길에서> 본문

인물/칼럼/인터뷰/문화초대석

말 못하는 동물들의 감정선을 따라간 생태 다큐멘터리<어느 날 그 길에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09. 6. 18. 14:03
 
 
극장에서 개봉한 다큐멘터리
 
다큐멘터리를 극장에서 본다고? 지난해 만년 꼴찌 축구팀 인천유나이티드에프시가 플레이오프 결승전까지 오른 과정 을 다룬 <비상>이 4만 명, 일본 훗가이도 조선학교 학생들을 담은 <우리 학교>가 관객 10만 명을 넘기며 다큐멘터리도 흥행할 수 있다는 선례를 만들었다. 이런 상승세를 몰아 지난달 27일(목) 한국에서 처음으로 생태 다큐멘터리 2편이 정식 개봉했다. 황윤 감독의 <어느 날 그 길에서>와 <작별> 이다. 차에 치어 숨진 동물이나 동물원 철창에 갇힌 그들의 슬픔이 어떤 비극적인 영화에 견줘도 처지지 않을 큰 울림 과 반성을 일깨운다.

특히 <어느 날 그 길에서>는 동물의 교통사고‘로드킬’의 실태를 담은 한국의 첫 보고서다. 서울대 환경계획연구소 최태영 연구원과 구례 주민 최천권, 최동기 씨가 지리산 주변 88고속도로, 섬진강변 도로, 국도 19호선 산업도로를 중심으로 벌인 로드킬 연구 과정을 3년 동안 따라간 것이다. 연구자들은 평소에 보고 싶어 했던 멧토끼, 큰소쩍새, 붉은 머리 오목눈이 등을 주검으로 길에서 만났다. 멸종 위기 1급 인 수달이나 산양, 2급인 하늘다람쥐, 삵도 자동차 바퀴에 짓눌려 걸레처럼 도로에 달라붙어 있었다. 특정 구역에서만 동물들이 대거 죽어나갈 테니 그 원인을 찾아 대책을 마련하면 될 것이라는 연구자들의 애초 가설은 여지없이 폐기 당했다. 2년 반 동안 120킬로미터 도로에서 5천 769건, 도로 전체가 동물들의 아우슈비츠였다.

동물들 의 주검이 발견된 장소를 점으로 찍으니 점은 선을 이루고 그 선은 그대로 도로가 됐다. 달리는 자동차가 만든 공기의 역류에 빨려 들어가 새들도 납작하게 쭈그러들었다. 고라니는 배가 터져 덜 자란 뱃속 새끼들을 길 위에 쏟아놓았다. 몸을 데우려고 따뜻한 아스팔트에 몰리고 이동 속도도 느린 두꺼비는 대량 학살의 피해자가 됐다.
 
88고속도로에서 만난 죽음
 
 
그 가운데서도 암컷 삵‘팔팔이’의 삶은 기구하다. 88고속 도로에서 차에 치어 의식을 잃은 이 삵을 연구팀이 구조해가까스로 살려냈다. 그들은 삵이 발견된 장소와‘팔팔하게 살아라’는 뜻을 따라 팔팔이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2주 동안 보살핀 뒤 목에 추적기를 달아 풀어줬다. 팔팔이가 기우 뚱하면서도 잘 달리며 사라지는 걸 보며 연구팀의 얼굴엔 미소가 번졌다.
 
팔팔이는 놀랍게도 한 달 만에 15킬로미터를 달리고 도로 12개를 지나 처음 자신이 발견된 고향 땅으로 되돌아갔다. 그리고 그 88도로에서 다시 차에 치어 숨졌다. 팔팔이의 주검을 묻으며 최천권 씨는 팔팔이에게 글을 바쳤다.“ 너를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다음에는 도로 따위는 없는 초원 에서 태어나렴…….” 인간과 동물의 교감은 뭉클한 감동을 자아낸다. 최천권 씨 는 죽은 동물들을 종별로 조각한다. 삵을 조각한 그는“나한테 이 조각은 팔팔이”라고 말했다. 이들이 마련해준 팔팔이의 묘 곁에서 최태영 연구원은“내 딸과 팔팔이는 나이가 비슷해 함께 자라는 걸 보고 싶었다.”며“무분별한 개발이 생태계에 영향을 덜 미치도록 막아달라며 팔팔이가 호소를 하면서 갔다고 생각한다.”고말했다.

삵의 하루 행동 반경은 4평방킬로미터다. 너구리는 하루에 1평방킬로미터가 필요하다. 최천권 씨는“동물들이 수 만년 동안 다니던 길인데 하루 아침에 습성이 바뀌겠냐”며 “원래 자기들 땅인데 이제 위험을 무릅쓰고 건너 다니게 됐다.”고 말했다. 사람으로 치자면 슈퍼마켓과 학교 사이 거대한 분리 장벽이 생겼고 그걸 지나자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성장, 개발 논리에 따라 여기 저기 뚫고 지나가는 도로는 지리산을 섬으로 만들었다. 최태영 연구원은 로드킬을“가장 비윤리적인 죽음”이라 고 정의한다. “차라리 다른 데서 죽으면 흙으로 돌아가고다시 생태계의 흐름에 포함이 되지만 도로 위에서의 죽음은 아무 이유도 아무 가치도 없이 차 바퀴에 말라서 먼지가 돼사라져 버리는 것이에요.”

황윤 감독은 굳이 자연다큐멘터리라는 낱말을 쓰지 말아 줄 것을 당부했다. “저는 단순히 야생동물 보호를 외치는 영상을 만들고 싶지 않아요. 그들을 야생동물이라고 부르는 것조차도 인간 이외의 것들로 싸잡아 대상화하는 것 같아 피하고 싶었어요. 나와 함께 태어나 살아가는 대지의 거주 자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로 직접 이야기하도록 하려고 했어요. 난 그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선무당을 자처한 거죠.” 그래서 <어느 날 그 길에서>에는 인간 화자의 나레이션이 나오지 않는다. 대신 감독이 동물의 입장에서 상상해 쓴 자막이 지나간다.
 
 
개발의 상징인 도로가 그대로 동물들의 무덤이 되는 상황을 어찌해야 하나? 그렇다고 도로 자체를 모두 걷어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황윤 감독은 한국의 도로들은 지나치게 중복 투자되고 있다고 말한다. 섬진강 주변 길은 오로지 벚꽃 철에만 차가 붐비는데 2차선에서 4차선으로 확장되고 있다. 이미 건설된 고속도로 곁에 비슷한 도로가 다시 만들어진다. 한국도로공사는 이미 10만 킬로미터에 이르는 도로를 2020년까지 그 두 배인 20만킬로미터로 늘릴 계획이다.
 
“네 발 달린 짐승보다 빨리 달려야해.”느리게 행진하는 두꺼비들은 떼죽음을 당했고 차에 친 꽃뱀들은 목숨이 붙은 채 몸을 꼬아댄다.“ 눈에서 불을 뿜는 짐승을 조심해”헤드라이트는 너무 강력한 불빛을 뿜어내는 듯 눈이 마주친 동물들은 잠시 앞이 보이지 않고 바로 자동차의 제물이 된다.
“어떤 장애물이라도 뛰어넘어.”인간에겐 별 것 아닌 도로 턱이 고슴도치에겐 생과 사를 가르는 절벽이다.

황윤 감독 이 차들이 쌩쌩 달리는 도록 위에 철퍼덕 주저앉아 동물의 주검을 찍는 장면도 영상에 넣었다. 그는 역류에 빨려 들어가는 새의 심정으로 공포를 토로했다. 개발의 상징인 도로가 그대로 동물들의 무덤이 되는 상황을 어찌해야 하나? 그렇다고 도로 자체를 모두 걷어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황윤 감독은 한국의 도로들은 지나치게 중복 투자되고 있다고 말한다. 섬진강 주변 길은 오로지 벚꽃 철에만 차가 붐비는데 2차선에서 4차선으로 확장되고 있다. 이미 건설된 고속도로 곁에 비슷한 도로가 다시 만들어진다. 한국도로공사는 이미 10만 킬로미터에 이르는 도로를 2020년까지 그 두 배인 20만 킬로미터로 늘릴 계획이다.<어느 날 그 길에서> 속‘행복을 잇는 도로’라는 캐치프레이즈와 동물들의 주검을 번갈아 편집해 보여준다.
 
장애인, 여성, 소수자 그리고…….
 
사실 <어느 날 그 길에서>의 목표가 로드킬의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해결 방법을 제시하는 데 있는 것은 아니다. 오로지 힘 있는 자의 이익에 따른, 눈먼 성장 논리의 끝이 어디 인지 근본적인 질문을 하고 있다. 굶주리는 사람들에 앞서 동물의 권리에 신경써야할까라고 묻자 황윤 감독은 이렇게 답했다.“장애인, 여성……. 소수자의 권리를 주장할 때 어떤 한 권리가 다른 것보다 우선해야 한다고 말하진 않잖아요. 모두다 함께 가야죠. 저는 동물을 약자라는 이유만으로 죽어가는 소수자로 바라봅니다.” 이 말 못하는 약자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일은 지난했다.

최태영 연구원 등은 차들이 질주하는 도로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가 동물의 주검을 확인, 수거하는 위험한 작업을 반복 했다. 그들은 연구를 시작하기 전에 생명보험부터 들었다. 밤에 도로에서 그를 지켜주는 건 형광 잠바 뿐이었다. 그렇게 완성한 <어느 날 그 길에서>은 황윤 감독의 생태 다큐멘터리 3부작 가운데 하나다. 다른 하나는 함께 개봉하는 <작별>이다. 8년 동안 <침묵의 숲> 등 생태 다큐멘터리를 내리 만들어 온 그에게 동물의 언어를 이해하는 특별한 초능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영화가 좋아 안정적인 직장을 때려치운 그는 먼저 독립다큐멘터리의 매력을 알게 돼 홍상수 감독의 <오! 수정> 제작 과정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리고 어느 날 우연히 들른 동물원이 그의 삶에서 변곡점이 됐다. 햇살이 화창한 날 백곰은 괴상하도록 격렬하게 머리를 흔들어댔다. 이런 이상 행동을 보고 사람들은 재롱이라고 좋아라하며 사진을 찍었다.“ 햇살과 미소 그리고 백곰의 고통이 묶여 마치 한편의 부조리극을 보는 것 같았어요.”
그는 동물원의 동물들을 찍기로 결심했다. 동물과 눈 높이를 맞추는 태도는 첫 작품인 <작별>에서도 또렷하다. 동물원에서 태어나 평생 구경거리가 된 호랑이 선아는 자신의 아기 크레인을 돌보지 않는 이상 행동을 보인다. 사육사들이 우유를 먹여 가며 키우는 크레인은 외로움을 많이 타 사람에게 머리를 비벼댄다. 근친교배 탓에 하얗게 백내장이 낀 두 눈을 빛내며 크레인은 애정을 갈망한다.

사육사들은 크레인에게 야성이 남아있으면 동물원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금방 죽게 된다며 목줄을 묶어 훈련을 시킨다. <작별>에도 화자의 나레이션은 없다. 황윤 감독은 동물들의 감정선을 따라가려고 애썼다고 말했다. 카메라는 철창 뒤에 갇힌 선아의 공허한 눈빛을 대화하듯 오래 잡는다. 그리고 얼마 뒤 선아는 숨진다. 치타, 퓨마, 시멘트 바닥에 익숙해져 버린 동물들은 그렇게 빨리 병들어 죽었다. <작별> 에 등장하는 수의사 김영준은 말한다. “인간은 어떤 위기가 와도 극복해 갈 거예요. 하지만 (모든 동물이 사라진 세상에서) 결국 외로움 때문에 죽고 말 거 예요.” <어느 날 그 길에서> 공동체 상영을 원하는 분은 www. onedayontheroad.com 또는 oneday2008@naver. com으로, 또 이 다큐멘터리의 상영을 응원하고 싶다면 온라인 카 페 `팔팔이의 친구들 ’cafe.naver.com/882friends로 연락 하면 된다.
 
 

글/김소미 김진택 한겨레 기자
자료사진 스튜디오 두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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