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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달, 청계천에 뜨다 그룹 <두번째 달 바드> 본문

인물/칼럼/인터뷰/문화초대석

두 번째 달, 청계천에 뜨다 그룹 <두번째 달 바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09. 6. 26. 11:45
 
 
그룹 <두번째 달 바드>
 

드라마 오에스티로 유명한 프로젝트 그룹

촛불이 켜지면, 청계천에는 두 개의 달이 뜬다. 촛불이 잦아들고 사람들이 하나 둘 지쳐가는 자정 무렵이면 어김 없이 청계천에는 아일랜드 민요가 흐른다.‘ 두 번째 달 바드’의 거리 공연이다. 시위가 거칠어져 몸싸움이 벌어질 때도, 지친 시민들이 둘러앉아 노래를 청할 때도,‘ 두 번 째 달 바드’는 켈트 음악으로 부드럽게 사람들의 귀를 적셨다.
내로라하는 가수들이 촛불시위를 찾기 훨씬 전부터 현장에서 조용히 공연을 해 왔던 이들은 시위현장을 문화축제로 바꿔놓은 장본인이다. 지금까지 벌써 한 달여 넘는 기간 을 꾸준히 촛불집회에서 보냈다. 촛불이 활활 타오르면서이들의 공연 소식은 널리 입소문을 탔고,이를 본 다른 음악인들도 악기를 들고 힘을 보태기시작해 어느 샌가 시위 현장은 여기 저기 음악이 흘러나오는 공연장이 되었다. 이들의 연주 모습은 벌써 여러번 방송을 탔고, 감동한 시민들이 블로그에 옮겨 퍼나르면서 더욱 널리 알려졌다.
혹시라도 유명세를 타려 한다는 오해를 받을까, 나중엔 그룹 이름조차 밝히길 꺼렸던 이들을 어렵게 만난 곳은 결식아동돕기를 위한 <주먹밥 콘서트>가 열리는 청계천변. ‘세계인권선언 60주년’과‘세계 난민의 날’기념을 겸해 지난달 19일(목) 치러진 콘서트에서‘두 번째 달 바드’의 공연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날 만남에서 처음엔 인터뷰를 꺼렸던 김현보(36) 씨는“방송에 점점 많이 (연주 화면이) 나가면 서 사실은 걱정이 됐다.”고 털어놓았다.“ 처음엔 괜찮았는데, 점점 사람들이 많아지니까 카메라들이 많이 와서 찍어 가더라구요. ‘쟤들이 유명해지려고 저런다, 뜰려고 저런다’그런 말 들을까봐서……. 이승환 씨나 김장훈 씨가 공연하면 괜찮은데, 저희는 별로 유명하지 않아서 그런 오해를 사더라구요.”머리를 긁적이는 김 씨 뒤로 아이리시 휘슬과 아코디혼을 연주하는 박혜리(28세) 씨 가불쑥“우리도 유명한데, 그치?”해 놓고는 겸연쩍은지 배시시 웃는다.
처음으로 촛불시위 거리공연에 나섰던‘두 번째 달 바드’는, 사실 알고 보면 이미 유명한 그룹이다. <아일랜드>, <궁>과 같은 인기 드라마 오에스티로 유명해진 월드뮤직 밴드‘두 번째 달’의 멤버들이 결성한 프로젝트 밴드이기 때문.‘ 두 번째 달’은 지난 2006년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신인상, 앨범상, 최우수 재즈-크로스오버 앨범상까지 휩쓸며 3관왕에 올라 화제가 된 바 있다.
‘두 번째 달’의 명성을 잠시 젖혀두고 아일랜드 음악 프로젝트 밴드를 꾸린 것은, 길거리에서 관객과 소통하는 음악에 빠진 때문이었다.‘ 두 번째 달’의 리더이자‘두 번째 달 바드’의 리더이기도 한 김현보 씨는 2006년 아일랜드 음악축제의 경험을 잊지 못한다

 

“2006년에 아일랜드 출신 보컬인 린다 컬린을 따라 아일랜드 음악 축제를 보러 갔었어요. 축제에 참여한 시민 100여명이 즉석에서 제각기 가져온 악기를 꺼내 연주를 벌이는겁니다. 그광경이너무인상깊었어요.”
무엇보다 무대와 객석의 구별이 없는 자유로움이 그의 영혼을 흔들어 놓았다. 아일랜드에서 음악은 생활이었다.
사람들은 도처에서 즉석 연주를 벌였고, 구경하던 사람들이 악기를 꺼내 참여하기도 했다. 아일랜드에서 돌아온 김씨는‘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함께하는 음악’에역시 빠져든 박혜리와 함께 멤버 김정환(28세, 기타 및 보컬)과 김진영(28세, 까홍:아일랜드 민속 리듬악기), 윤종수(25세, 바이올린)를 영입해 지난해 본격적으로 프로젝트 형식의 밴드인‘두 번째 달 바드’를 꾸렸다. 바드(bard)는 ‘음유시인’이라는뜻의켈트어에서유래한단어다.

요즘에야 영화 <원스>로 아일랜드 음악이 유명세를 탔고 등장인물들이 하던‘버스킹’(길거리 즉석연주) 같은 것도 널리 알려진 편이지만, 그 때만 해도 켈트 음악이라고도 불리는 아일랜드 민속음악에 대해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아일랜드는 유투, 크랜베리스, 웨스트라이프, 엔야 등 세계적 팝 뮤지션들을 낳은 음악의 고장이다. 영국의 식민 통치,‘ 감자 대기근’으로 세계사에 기록된 이민사 등으로 아일랜드 민속음악은 경쾌함 속에서도 슬픈 음색을 띤다.
“아일랜드 음악은 참여적인 음악이에요. 그야말로 죽을려고 해야 죽을 수 없다는 거였어요.‘ 아, 이래서 이 나라 전통음악이 강하구나’느꼈죠. 관객과 호흡하는 음악은 생활 그 자체니까 잊혀 질 수 없다는 걸요. 그런데 원래 음악이 그렇잖아요?”(김현보) 그래서 공연도 거리 공연 위주의‘찾아가는 공연’을 해 왔다. 녹음한 음반들도 정식 기획사에 의뢰해 판매하지 않고 거리공연 때마다 즉석에서‘버스킹 앨범’을 팔았다. 지난 5월에는 대구, 대전 부산, 전주, 목포 등지를 돌며 버스킹 투어를 해 앨범 2천장을 다 팔았을 정도다.
이런 그들이기에, 촛불 시위에 나선 것도 어찌 보면‘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쇠고기 수입이 문제가 되고 나서,‘ 뭐 이런 일이 다 있느냐’싶어 처음 혼자 시위가 있다는 광장에 가 봤죠. 10대들이 굉장히 많더라구요. 그 10대들이 발언하는 걸 들으니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 씨가 멤버들을 전화로 불러냈고, 길거리 즉석 공연에 익숙한 멤버들도 별다른 말없이 나와 그 렇게 첫 공연이 시작됐다.“ 원래부터 시간 맞는 멤버만 3명 정도 모이면 즉석 거리공연을 했어요.
시위 현장이라고 크게 다를 건 없었죠. 저희가 할 줄 아는 게 음악밖에 없었구요.”(박혜리) 하지만 무엇보다 결정적으로 멤버들을 한 달여 동안‘장기 공연’으로 내몬 것은 신촌에서 벌어졌던 경찰의 폭력적 진압이었다.“ 사실 첫 공연은 전화를 받고 엉겁결에 함께 했다.”는 김정환(29)씨.“ 제대로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몰려가고 싶진 않았기 때문에, 그 뒤로 오히려 더 찬찬히 살펴 봤습니다. 제가 본 시위 현장은 전혀 폭력적이지 않았어요. 그런데 시민들을 말 그대로 군홧발로 짓밟는 식의 대처 때문에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돼 버린 거죠.”
“음악을 통해 이 집회는 평화 집회라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 일부러 대치 현장에서 연주했다.”는 이들은 사실‘운동’이라곤 해 본 적이 없다. 대부분 실용음악과 출신으로 노래만 해 온 평범한 음악인들이다. 그래서 가끔은 최근 뜨거워진 현장 분위기가 낯설 때도 있다.“ 처음엔 주로 우리 노래들을 연주했고요. 분위기를 보니까 신청곡이 나올 것 같아서, 사실‘애국가’하고‘아침 이슬’까지는 준비를 해 갔어요. 그런데 가끔 낯선 곡들이 튀어나와서…….”‘님을 위한 행진곡’이나‘바위처럼’을 신청 받고 당황했던 경험이 떠오르는지 박혜리 씨가 멋 적게 웃는다.
신청곡은 운동가부터 CCM(Contemporary Christian Music, 대중적 기독교 음악)까지 다양했다. 해바라기의‘사랑으로’를 멋들어지게 연주하고 나니‘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 신청곡으로 들어와 당황했던 기억도 새롭다고 이들은 웃었다. ‘이등병의 편지’를 연주하고 나니 전경들이 박수쳐 준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지난??5월 3일부터 지금까지, 낮에는 음악 학원 등에서 강사를 하며 생계를 잇고 밤에는 새벽 2~3시까지 시위대와 함께 행진하고 음악을 연주하느라 다들 녹초가 됐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기쁜 것은 이제 시위 현장 여기저기에서 음악 소리가 들린다는 일이다. 혼자만 나올 수 없어“가수 하림 씨를 부르고, 하림 씨는 또 이자람 씨를 부르고”하는 식으로 음악인 릴레이가 커져가면서, 이들을 보고 많은 시민들도 악기를 들고 나왔다.“ 나중엔 별별 악기가 다 보이더라구요. 기타, 멜로디언에 꽹과리, 브라스 밴드도 오고…… 여기서 뿌빠뿌빠 하면 저기서 빠라빠라 하는 식으로 정말 공연장 같았어요.”
“너무 피곤하다”면서도 이들은 눈을 반짝이며 시위 현장에서 느낀 것들을 이야기했다.“ 사실 문제는 광우병 위험보다는 일을 처리하는 정부의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일을 결정하면서 전혀 국민들의 말을 듣지 않고, 억누르려고만 했어요. 시위 현장을 가도 다들 평범한 시민들이었어요.”“정치적으로 무관심하다고 불렸던 20대까지 광장으로 불러냈다는 점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정말 대단한 일을 한 거 아닐까요?”“무엇보다 대단한 건, 그 근처 편의점 경제를 확실히 살렸다는 거지. 공연하고 목이 말라서 가보면 생수가 없어요.”이들은 끝내 까르르 웃고 만다.
지난달 10일을 계기로 어느 정도 소강상태에 접어든 듯 촛불시위가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까지 지켜보고 싶다는 그들.“ 아마추어리즘일 수도 있겠지만, 특별한 음악보다 생활 속의 음악을 하고 싶다.”는 이들은 오늘밤도 청계천에서 두 번째 달을 노래할 것이다.
 

글.정유경 | 한겨레신문 기자
자료사진 6fingers.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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