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에야 영화 <원스>로 아일랜드 음악이 유명세를 탔고 등장인물들이 하던‘버스킹’(길거리 즉석연주) 같은 것도 널리 알려진 편이지만, 그 때만 해도 켈트 음악이라고도 불리는 아일랜드 민속음악에 대해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아일랜드는 유투, 크랜베리스, 웨스트라이프, 엔야 등 세계적 팝 뮤지션들을 낳은 음악의 고장이다. 영국의 식민 통치,‘ 감자 대기근’으로 세계사에 기록된 이민사 등으로 아일랜드 민속음악은 경쾌함 속에서도 슬픈 음색을 띤다. “아일랜드 음악은 참여적인 음악이에요. 그야말로 죽을려고 해야 죽을 수 없다는 거였어요.‘ 아, 이래서 이 나라 전통음악이 강하구나’느꼈죠. 관객과 호흡하는 음악은 생활 그 자체니까 잊혀 질 수 없다는 걸요. 그런데 원래 음악이 그렇잖아요?”(김현보) 그래서 공연도 거리 공연 위주의‘찾아가는 공연’을 해 왔다. 녹음한 음반들도 정식 기획사에 의뢰해 판매하지 않고 거리공연 때마다 즉석에서‘버스킹 앨범’을 팔았다. 지난 5월에는 대구, 대전 부산, 전주, 목포 등지를 돌며 버스킹 투어를 해 앨범 2천장을 다 팔았을 정도다. 이런 그들이기에, 촛불 시위에 나선 것도 어찌 보면‘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쇠고기 수입이 문제가 되고 나서,‘ 뭐 이런 일이 다 있느냐’싶어 처음 혼자 시위가 있다는 광장에 가 봤죠. 10대들이 굉장히 많더라구요. 그 10대들이 발언하는 걸 들으니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 씨가 멤버들을 전화로 불러냈고, 길거리 즉석 공연에 익숙한 멤버들도 별다른 말없이 나와 그 렇게 첫 공연이 시작됐다.“ 원래부터 시간 맞는 멤버만 3명 정도 모이면 즉석 거리공연을 했어요. 시위 현장이라고 크게 다를 건 없었죠. 저희가 할 줄 아는 게 음악밖에 없었구요.”(박혜리) 하지만 무엇보다 결정적으로 멤버들을 한 달여 동안‘장기 공연’으로 내몬 것은 신촌에서 벌어졌던 경찰의 폭력적 진압이었다.“ 사실 첫 공연은 전화를 받고 엉겁결에 함께 했다.”는 김정환(29)씨.“ 제대로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몰려가고 싶진 않았기 때문에, 그 뒤로 오히려 더 찬찬히 살펴 봤습니다. 제가 본 시위 현장은 전혀 폭력적이지 않았어요. 그런데 시민들을 말 그대로 군홧발로 짓밟는 식의 대처 때문에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돼 버린 거죠.” “음악을 통해 이 집회는 평화 집회라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 일부러 대치 현장에서 연주했다.”는 이들은 사실‘운동’이라곤 해 본 적이 없다. 대부분 실용음악과 출신으로 노래만 해 온 평범한 음악인들이다. 그래서 가끔은 최근 뜨거워진 현장 분위기가 낯설 때도 있다.“ 처음엔 주로 우리 노래들을 연주했고요. 분위기를 보니까 신청곡이 나올 것 같아서, 사실‘애국가’하고‘아침 이슬’까지는 준비를 해 갔어요. 그런데 가끔 낯선 곡들이 튀어나와서…….”‘님을 위한 행진곡’이나‘바위처럼’을 신청 받고 당황했던 경험이 떠오르는지 박혜리 씨가 멋 적게 웃는다. 신청곡은 운동가부터 CCM(Contemporary Christian Music, 대중적 기독교 음악)까지 다양했다. 해바라기의‘사랑으로’를 멋들어지게 연주하고 나니‘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 신청곡으로 들어와 당황했던 기억도 새롭다고 이들은 웃었다. ‘이등병의 편지’를 연주하고 나니 전경들이 박수쳐 준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지난??5월 3일부터 지금까지, 낮에는 음악 학원 등에서 강사를 하며 생계를 잇고 밤에는 새벽 2~3시까지 시위대와 함께 행진하고 음악을 연주하느라 다들 녹초가 됐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기쁜 것은 이제 시위 현장 여기저기에서 음악 소리가 들린다는 일이다. 혼자만 나올 수 없어“가수 하림 씨를 부르고, 하림 씨는 또 이자람 씨를 부르고”하는 식으로 음악인 릴레이가 커져가면서, 이들을 보고 많은 시민들도 악기를 들고 나왔다.“ 나중엔 별별 악기가 다 보이더라구요. 기타, 멜로디언에 꽹과리, 브라스 밴드도 오고…… 여기서 뿌빠뿌빠 하면 저기서 빠라빠라 하는 식으로 정말 공연장 같았어요.” “너무 피곤하다”면서도 이들은 눈을 반짝이며 시위 현장에서 느낀 것들을 이야기했다.“ 사실 문제는 광우병 위험보다는 일을 처리하는 정부의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일을 결정하면서 전혀 국민들의 말을 듣지 않고, 억누르려고만 했어요. 시위 현장을 가도 다들 평범한 시민들이었어요.”“정치적으로 무관심하다고 불렸던 20대까지 광장으로 불러냈다는 점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정말 대단한 일을 한 거 아닐까요?”“무엇보다 대단한 건, 그 근처 편의점 경제를 확실히 살렸다는 거지. 공연하고 목이 말라서 가보면 생수가 없어요.”이들은 끝내 까르르 웃고 만다. 지난달 10일을 계기로 어느 정도 소강상태에 접어든 듯 촛불시위가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까지 지켜보고 싶다는 그들.“ 아마추어리즘일 수도 있겠지만, 특별한 음악보다 생활 속의 음악을 하고 싶다.”는 이들은 오늘밤도 청계천에서 두 번째 달을 노래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