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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클럽의 유일한 퓨전 가야금 연주자, 정민아 본문

인물/칼럼/인터뷰/문화초대석

홍대 클럽의 유일한 퓨전 가야금 연주자, 정민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09. 6. 29. 11:42
홍대앞 라이브 클럽. 어두운 조명 아래, 한바탕 놀아보겠다는 듯 차려입은 클러버들 사이로 퍼지는 음악은……. 가야금 소리? 얼핏 상상이 되지 않는 장면이지만, 정민아(29)는 이미 가야금으로 홍대 인디 신에서 이름난 뮤지션이다. 지난 해 음반 <상사몽>을 발표하며 주목을 한 몸에 받았던 그. 맛깔스럽게 국악을 불러내는 솜씨는 물론, 전화상담원, 피시방 아르바이트생 등으로 생계를 이으며 살았던 독특한 삶의 방식도 화제가 됐다. 그런 부지런한 그녀는 올 초 평소보다도 훨씬 더 바빴다. 홍대 연주장은 물론, 서울광장까지 진출한 탓이다. 그를 불러낸 것은 촛불시위다.
촛불집회에 나타난 가야금 연주자
“일찍부터 참여했었죠. 5월 2일 시위 첫날부터 나갔으니까요.”홍대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날짜까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쇠고기 수입은 이렇게 이뤄져선 안된다고 생각해 처음 나갔어요. 밤 10시, 11시까지 이어졌던 평화시위였지요. 인디밴드 뮤지션들 중에 관심 있는 친구들이랑 함께 6일에도 나갔구요.”
반쯤 호기심으로 참여했던 그를 열혈 참석자로 바꿔놓았던 것은 5월 30일의 사건이다.“ 그날 물대포가 등장했던 걸로 기억해요. 근처 커피숍으로 피했더니, 전경들이 그 안까지 들어가서 사람들 막겠다고 한 줄로 서있는 거예요.”
그는“이게 정말 2008년도가 맞나”하는 생각부터 들었단다.“ 사실 예술가는 중립이 잖아요. 스위스처럼. 그런데 정말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그때부터 그는 시위에 나섰다.
그는 촛불시위에 참여한 후 가장 달라진 점으로 언론 보도를 그대로 믿게 되지 않은 점을 꼽았다.“ 집에서 보는 신문은 안되겠다 해서 다른 신문을 따로 또 구독했어요. 가족들이 정치에 무지할 정도로 관심이 없는 편인데 그런 가족들마저도 이번엔‘보도가 너무 편파적인 것 아니냐’는 말을 했을 정도니까요.”
 
너무 편파적인 것 아니냐’는 말을 했을 정도니까요.”
그는 촛불시위가 시민들의 정치의식을 일깨우는 데 큰 몫을 했다고 믿는다.“ 지금은 시위가 한 풀 수그러들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많은 사람들이 죽은 게아니라는 걸 알았으면 좋겠어요.”
그가 거리로 뛰쳐나올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이었을까. 홍대 라이브 클럽가에 가야금 하나 달랑 들고 연주에 뛰어들었던 용기? 국악에 노랫말을 붙여 참신하게 부르던 도전 정신?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녀의 노래에서 느껴졌던 사람의 슬픔을 위로하는 따뜻한 혼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녀의 노래는 따뜻하면서도 세련되고, 그러면서도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힘이 있다. 생계를 위해 낮에는 전화상담원, 편의점?피시방 아르바이트 등 비정규직의 삶을, 밤에는 공연을 나서는 삶을 살고 있는 그녀이기에 그런 따뜻한 음악이 나오는 것이 아닐까.
 
비정규직 예술가
“전화 상담원을 하는 가야금 연주자, 라고 하니 언론에서 많이들 관심을 가졌어요. 그 경험이 절 많이 성장시킨 것은 사실이에요.”천성적으로 남을 위로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그녀에게는 불만을 들어 주고, 누그러뜨려 주는 전화 상담원 직이 잘 맞았다고 한다.
최근 만든 신곡 <은미 이야기>도 전화상담원을 하다 만난 친구의 사연을 가지고 만든곡이다.
국악고, 한양대 국악과를 졸업한 그는 남들처럼 국립국악원과 국악 관현악단에 들어가려 했지만 수차례 고배를 마셨다.‘ 내 길이 아닌가 보다’좌절감도 들었지만, 그렇게 쉽게 무너지는 타입도 아니었다. 클럽을 찾는 사람들 앞에서 가야금을 연주해보자는 생각이 문득 든 것도 그 때였다. “국악고 다니면서 어떻게 홍대 클럽에서 연주할 생각을 했지 하는 분들이 계신데, 전 사실 고등학교 때부터 홍대 클럽에 자주 드나들었어요. 독특한 노래를 부르기로 유명한 인디밴드‘어어부밴드’를 좋아했거든요. 돼지 멱 따는 소리, 발로 차면서 북을 치는 등 재미있고 웃음을 자아내는 해학적 공연인 게 좋았죠.”그는 피시통신 나우누리에서 어어부 밴드의 초창기 팬클럽을 창단한 주역이기도 하다. 그런 그이기에 실력 있는 뮤지션이라면 누구나 사람들 앞에서 공연을 펼치는 홍대를 터전으로 삼아 연주하고 싶다다는 생각도 자연히 들었던 것.
첫 기회는 아르바이트를 하던 와중에 우연찮게 왔다.“ 집 근처인 안양의 클럽 오렌지 폭스에서 주말 카운터 아르바이트를 뽑는 걸 봤어요. 아르바이트생이 되면 거기 연습실을 사용할 수 있다고 해서 지원했죠. 이런 저런 연습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없었거든요.
그러다가 클럽 운영자이던 록밴드 고스락의 베이시스트 조한동 씨가 제가 연습하는 걸 보더니‘너 한번 무대에 올라가 봐라’하시더라구요.”
아르바이트가 없는 시간엔 실용음악학원을 다니며 학교에서는 배우지 못했던 서양음악의 화성학을 공부하고 창작에 몰두해 왔던 그에겐 더없는 좋은 기회였다. 그는 이후 창작 활동에 박차를 가하며 지난 2005년부터 홍대 클럽 공연을 진행해 가야금을 기반으로 한 크로스오버 음악가로 이름을 날렸다. 한 달에 10여 회 공연을 성공리에 거두며 25현 가야금을 걸머지고 홍대를 종횡무진하는‘홍대의 이단아’로 자리 잡은 것. 2005년엔 EP 음반 <애화(哀花 )>를 발표했으며, 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소니비엠지에서 2006년 12 월 첫 정규앨범 <상사몽(相思夢)>을 발표했다.
 
아무도 모르는 마음을 알아주는 음악
가야금의 음색 속에 애잔함이 묻어나는 타이틀 곡‘상사몽’은 황진이의 시를 노랫말로 삼았다. 이밖에도‘새야 새야’,‘ 뱃노래’등 기존 민요를 새롭게 편곡하거나, 다른 악기와의 화음을 추구한‘바람 부는 창가에서’ 등 다양한 퓨전 국악을 선보였다.

그리워라, 만날 길은 꿈길밖에 없는데
님 찾아 떠났을 때 님은 나를 찾아왔네
바라거니, 멀고 아득한 다른 날 밤 꿈에는 같이 출발해 중도에서 만나기를 바라네
황진이, 상사몽(相思夢)
<상사몽> 음반에 수록된 곡 중‘무엇이 되어’는 특히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곡이다.
‘무엇이 되어’를 부르는 정민아의 목소리에는 깊이가 있다. 아직 덜 익은 듯 푸르면서도, 여름날 세찬 장맛비를 기억한다는 듯 잘 여문 사과처럼. 양희은의 목소리에서나 기대할 법한 설움의 깊이가 이십대의 그녀에게서 느껴진다는 것은 낯설다. 아마도 타인의 상처를 제 것처럼 감싸 안는 그의 품성이 드러나는 것이리라.
 
최근 그는 올가을께 나올 2집 준비와 함께, 평화방송 라디오에서 하는 <북콘서트>를 준비하고 있다. 책과 음악의 만남을 추구하는 프로그램인데, 그가 맡은 작품은 신경숙의 <리진>이다.“ 프랑스로 떠났던 조선 시대 궁녀 리진은 궁중무용인 춘앵무에 능했다고 해요. 실제 춘앵무에 들어가는 음악을 활용했고요, 배를 타고 떠나는 느낌이라던가 프랑스의 서구 문명을 접하는 느낌을 풀어내려고 아코디언, 가야금, 해금, 드럼 등을 편성해 작곡하고 있어요. <영산회상> 타령 앞부분을 주로 모티브로 하고 있고요.”
2집 곡들을 거의 완성했다는 그는“음악의 방향은 계속 바뀌겠지만, 지금은 해학적인 음악을 계속하고 싶다.”고 했다.“ 소수자의 정서 등을 계속 가지고 가면서도, 우울함에 갇히지 않고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싶어요. 힘든 상황일지라도 웃음을 아끼지 말자는 격려랄까. 제 자신부터 위로받는 기분을 좋아해요. 얼마 전 제가 운영하는 인터넷까페 (cafe.daum.net/gayagumer)에‘아무도 모르는 마음을 알아주는 기분이 든다’는 평이 올라왔는데, 무척 기분이 좋았어요. 그런 기분을 주는 음악을 계속 하고 싶어요.”

 

 

글 정유경 | 한겨레신문 기자
사진 황석선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홍보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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