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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칼럼/인터뷰/문화초대석

행복을 만드는 연금술사 한국마임의 아이콘 유진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09. 8. 6. 15:25
 
 
늦은 저녁. 한파주의보가 내려진 1월의 춘천 명동거리는 어둠을 이겨내지 못했다. 불 밝히지 못한 상가 유리벽에 붙은 ‘임대’라고 적힌 복사용지는 마치 춤을 추는 듯 바람을 탔다. 한국 마임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유진규(57) 선생을 만난 건 백지영의 <총 맞은 것처럼>이 더욱 애절한 춘천 명동길 브라운 5번가의 중앙광장 탁자 위였다. ‘유진규의 빨간방에 오십시오.’라고 적힌 엽서를 지어 들었다. 애써 성장을 했지만 마치 언니 옷을 몰래 입고 나온 듯 어린 티를 가리지 못한 여자아이들이 흘깃 쳐다보더니 저희들끼리 까르르 웃곤 어디론가 종종걸음을 친다. ‘빨간방’이란 글자에 그들은 어떤 상상을 했을까?
유진규는 이제 마임을 하지 않는다. 나이 57의 유진규는 다 버렸다. 새로운 개념의 공연 <빨간방>으로 그는 다시 시작한다.” 엽서 뒷면에 적힌 글귀는 늘 새로움을 찾아 온 마임이스트 유진규 선생이 또 다른 무언가를 찾았음을 짐작하게 했다.
상식을 전복한 <빨간방>
<빨간방>이 공연되는 ‘미공간 봄’은 극장이 아닌 갤러리였다. 공연이 아닌 전시가 열리는 곳이어야 마땅했다. 무대와 객석의 구분을 없애고 싶어서 갤러리를 선택했다는 이야기는 지면으로 읽었던 터지만 낯설다. 게다가 정해진 시간도 없다. ‘3분마다, 1명씩’이 관객들을 제한하는 유일한 조건이었다. 객석에 앉아 지루하게 기다리다가 무대의 막이 올라가고 조명이 켜지면 바라보는 익숙함을 빼앗은 유진규 선생의 의도가 궁금했다. 비좁은 입구에서 ‘나를 찾아 떠나는 지도’라고 적힌 종이를 받아 들었다. 4등분으로 접힌 종이는 정확하게 4분의 3이 하얗게 비어 있었다. 4분의 1 조차도 물음표가 새겨진 5개의 공간 구분 외에는 무엇도 찾을 수 없다. 세 폭의 붉은 커튼을 젖히고 한 걸음 몸을 들이 밀었다. 10센티미터도 안 되는 간격으로 빽빽하게 드리워진 은박테이프가 붉은 조명을 받은 채 아주 느리게 바람을 탈 뿐이었다. 겨우 사물의 형체가 구분될 정도로 흐릿한 붉은 조명과 은박테이프는 완벽하게 나를 감추고 의지 할 수 있는 숲처럼 다가왔다. 한 걸음 더 들어가기 위해 양팔을 벌려 은박테이프를 젖혔다. 소리였을까? 빛이었을까? 아니면 어느 환경에서든 살기 위해 적응하는 몸 탓이었을까? 어찌할 수 없는 황당함이 차라리 공포처럼 온 몸의 신경세포를 하나하나 자극해 일으켜 세운다.
바라보아야 할 무대도 옆에 함께 있어줘야 할 관객도 보이지 않는 공간 속에서 나는 나를 위해 연기하고 나는 나를 위해 연기하는 나를 본다. 비록 흐리지만 온전하게 나만을 비추는 조명 속에서 나는 발가벗겨지고 빽빽이 공간을 채운 은박테이프는 황당해 하는 나를 쪼개고 쪼개 나에게 보여준다. 보이지도 냄새도 없어 느껴지지도 않는 공기의 작은 움직임은 내 체온을 받아 아주 작은 움직임의 에너지를 얻고, 매달린 은박테이프는 가벼움으로 해서 춤으로 화답한다. 춤추는 은박테이프에 비춰진 작고 작은나는 ‘숨기고 싶은 나’이고 ‘내보이고 싶은 나’이며 그 동안 ‘찾아지지 않던 나’의 연속이다.
 
그 영상들은 흩어져 새롭고 더 해져 부끄럽기를 반복하며 끝없이 묻는다. ‘너는 누구냐?’ 무대와 객석의 존재가 사라진 <빨간방>에서 살아가는 나는 관객이고 살아지는 난 배우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보임과 바라봄의 일치 앞에서 상식으로 간직하던 관음의 즐거움은 리얼리티로 살아나 나에게 칼을 겨눈다. 나를 보는 ‘관음’의 충격에서 벗어날 즈음 유진규 선생은 깨진 병 조각이 널브러진 방구석에서 관객을 만난다.
한 길을 걸어 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당당함일까? 찰나에도 변하는 세상을 모두 보기 위해 말하고 말 되어지는 시간까지도 아껴야 하기에 침묵을 배웠고 ‘말하지 않기에 더 느낄 수’ 있는 세상을 알리기 위해 몸짓에 평생을 바쳐 온 배우는 이제 주름 잡히기 시작한 몸을 반쯤 드러내고 추위와 맞서고 있었다. 왜였을까? 분명히 환청이었을 백지영의 <총 맞은 것처럼>이 여느 질 좋은 사운드에서 흘러나오는 것 보다 더 사실적으로 다시 들려오기 시작했다. 노래 사이사이의 호흡으로 멈춰지는 작은 사이사이 누군가 그의 마임을 보고 말했다는 “사는 것도 슬픈데 굳이 너의 몸짓을 보면서 더 슬퍼지지 싫다.”는 말이 백지영이 말하는 “손가락으로 막을 수 없는 가슴의 구멍”을 더 크게 뚫어 놓는다.
세상과 등 돌림으로 세상을 만난 춘천
“본다고 다 보이는 건 아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새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데 갈수록 그 속도 또한 빨라지고 있다. 매일 우리가 대해야 하는 대상들이 늘어나는 건 보통 문제가 아니다. 요컨대 그 대상들 하나하나에 응답할 수 있으려면 그 만큼의 사랑과 열정이 있어야 하는데 한 인간에게 주어진 사랑과 열정은 그 모든 대상에 응답할 만큼 넉넉하지 않기 때문이다.” 라고 말하면서도 “세상이 너무나 빨리 변해 그것들을 쫓아다니다 보면 피곤해 죽겠어”라고 말할 수 있는 유일한 배우 유진규 선생을 춘천으로 이끈 것은 세상이었다.
“대단한 소명의식? 그런 것 없었어.”라고 말하지만 유진규 선생이 지난 1981년 춘천으로 거처를 옮기게 한 것은 세상이었다. “1968년 고등학교 2학년 때 세종문화회관에서 롤프샤레의 마임공연이 열렸어. 그 큰 무대에서 혼자서 말없이 그 많은 관객들을 울리고 웃기는 공연은 충격이었어.” 수의학과에 입학했지만 강의실보다는 연극동아리 방에서 지내는 시간이 더 많았던 그는 태생적으로 남들이 가는 길을 가는 것이 싫었다. 연극은 늘 실험극이었다.
“예술가는 남들이 하는 것 하면 안 돼.” 낮았지만 단호한 유진규 선생의 목소리는 엽서에 ‘57살 유진규는 더 이상 마임을 하지 않는다’고 새긴 이유를 설명한다. 객석과 무대, 그리고 시간의 한계를 벗기 위한 새로운 시도 <빨간방>은 설치미술로 보이기도 하고 퍼포먼스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유진규 선생에게는 아무 말 없이 세상과 만나려는 평생 해온 몸짓의 연장선이다. 그가 “볼 게 너무나 많고 생각해야 할 것도 너무나 많아 그래서 피곤해 죽겠”는 세상을 사랑하는 유일한 수단이다.
 
세상을 향한 질문 “당신은 누구세요”
선생의 춘천행은 마임의 불모지 한국에서 알려지기 시작한 이름을 스스로 거두는 일이었다. “뭐…… 대단한 이유가 있나…… 그냥 세상이 싫었지, 내가 뭐 민주화 투사도 아니고……” 그가 싫어한 세상은 중세의 암흑이 부활한 것 같았던 1980년대. 누구는 싸웠고 누구는 타협했고 누구는 무릎 꿇은 카오스 같은 세상을 청년 유진규는 등졌다. “뭐 그때 마침 결혼도 했고 살아보려고 왔지. 내가 수의학과를 잠깐 다녔잖아. 소를 키웠는데 괜찮았어.” 그러나 망했다. 개방된 소고기 시장 앞에서 그의 소들은 경쟁력을 잃었고 청년 유진규는 다시 세상을 찾았다.세상은, 삶은 더 중요한 그 무엇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그가 마임이스트로 충만한 삶을 살았노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그렇게 세상이 끊었고 세상이 이었다.
 
끊은 세상에 순응하기에 그는 리버럴리스트였고 세상을 이을 수 있을 만큼 식지 않는 사랑과 열정을 간직할 수 있을 정도로 그의 가슴은 넓었다.
축제를 꿈꿨다, 어느 소설가가 말한 비루한 삶을 이어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1년을 버텨낼 에너지를 선사할 하룻밤의 추억을 안기고 싶었다. 세상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열정을 갖고 태어난 원죄 때문이었을지 모른다. 아니면 재미없는 것들은 태생적으로 싫은, 그래서 재미없는 날들은 하루라도 살아낼 수 없는, 그래서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해야 살아낼 수 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시작한 춘천마임축제는 이제 21살 성년이 됐고 세계 3대 마임축제로 손꼽힐 정도로 성장했다. 춘천마임축제 21년은 휩쓸려가지 않으려고 깨어 있으려고 끊임없이 노력하고 방황하며 무언가와 싸워 온 투쟁의 시간들이었다. 유진규 선생은 그렇게 쌓아온 축제를 아직 성공이라 말하지 않는다.
그가 생각하는 성공한 축제는“순간만큼은 일상을 까맣게 잊게 만들어야 한다고. 밤을꼬박 새더라도 온몸에 에너지가 충전되는 짜릿한 느낌이 넘쳐나는 ”그런 공간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이제까지 바쳐 온 시간과 정열보다 더 길고 많은 에너지를 소비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유진규 선생은 그 시간들이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즐거움이란 것을 안다.
 
“본다고 다 보이는 건 아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새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데 갈수록 그속도 또한 빨라지고 있다. 매일 우리가 대해야 하는 대상들이 늘어나는 건 보통 문제가 아니다. 요컨대 그 대상들 하나하나에 응답할 수 있으려면 그 만큼의 사랑과 열정이 있어야 하는데 한 인간에게 주어진 사랑과 열정은 그 모든 대상에 응답할 만큼 넉넉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질 수 있는 그릇이 하나뿐이라면 그 그릇을 비워야 채울 수 있는 법. 어떤 이는 남의 그릇을 빼앗아 채움에 빠지고 어떤 이는 넘치는 줄도 모르고 채우느라 자기의 삶조차도 돌아보지 못하는 그런 삶이 잘 사는 삶으로 인정받는 세상을 향해 마임이스트 유진규는 1998년 <빈손> 이후 11년 만에 <빨간방>을 내놓았다.“ 공연은‘극장’에서‘정해진 시간’에‘관객을 모아놓고’해야만 하는가?”라는 물음으로 시작한 <빨간방>에서 유진규 선생은“자기가 처한 어쩔 수 없는 현실에 그냥 휩쓸려가거나 외면하지 않고 알몸인 채 정면으로 부닥치는 사람”을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말한다.
<빨간방>은 아름다운 사람에게 던지는 축제의 의미를 아는 아름다운 유진규가 던지는 질문이었다.
“당신은 누구세요?”유진규 선생의 질문은 매년 색을 달리 해 <까만방> <하얀방> <노란방> <파란방> 등으로 계속될 예정이다.
 
유 진 규
한국 마임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마임이스트. 지방도시의 작은 축제를 기획하고 세계가 부러워하는 축제로 키워낸 뱃심 두둑한 예술감독. 극단 <유진규네 몸짓> 대표. <밤의 기행>, <동물원 구경 가자>, <아름다운 사람>, <머리카락>, <어둠은 어둠이다>, <빈손> 등의 대표작이 있다.

 

 

 
글·윤승일 | 자유기고가로 활동하며 현재 <한겨레21> 기획위원으로도 참여하고 있다
사진·황석선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홍보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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