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상상해 볼까요. 어느 날 여느 때와 다름없이 양치질을 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나의 행동과 생각을 설명해주는 목소리가 들린다고. 어디에서 들리는지 모르지만 오직 나의 귀에서만,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고 내 귀에만 들리는 소리로 말입니다. 마치 소설의 한 인물처럼 나의 이름이 그 소설의 한 인물의 이름으로만 불려 지면서 말입니다. 그 목소리는 하루 종일 나를 쫓아오기도 하고 한 동안은 불안할 만큼의 침묵으로 일관하기도 하더니 결국 어느 날, 어느 날 말입니다, 쌓인 눈을 못 이겨 툭 부러지고 마는 나뭇가지의 소리처럼 불쑥 나타나서는 결국 내가, 당신이, 우리가 곧 죽을 것이라고 한다면 말입니다. |
어디선가 들려오는 자신의 일상 12년째 국세청 직원으로 일하고 있는 해롤드에게 어느 날 이런 일이 벌어집니다. 어느 여인의 목소리가 해롤드의 귀에 들리기 시작합니다. 그의 생각과 행동에 대한 정확하고도 올바른 설명과 해설도 그렇거니와 그가 평소에 느끼지 못했던 일상의 작은 일들에 대한 새로운 느낌과 감각을 설명해주는 일을 그는 무방비상태로 듣기 시작합니다. 아니 그런 날이 아무 예고도 없이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해롤드는 정확한 시간에 일어나고 정확한 시간에 잠이 듭니다. 양치질하는 횟수를 정확히 지키고, 횡단보도의 흰색 블럭을 정확히 세어가며 정확한 시간에 버스를 타고, 정확히 퇴근하여 혼자 저녁을 먹은 후 설거지 기계를 돌리고, 정확한 시간에 잠이 드는 과묵하고 자신의 감정을 잘 통제하는 사람입니다. 여인의 목소리도 이를 증명해줍니다. 그러던 그가 파스칼이라는 빵집 주인을 만나게 되고 첫눈에 사랑에 빠집니다. 해롤드와는 전혀 다른 인생의 ‘컨셉’을 갖고 있는 아름다운 여인이에요. 이제 자나 깨나 이 빵집 주인 파스칼 생각뿐인데 해설의 목소리는 파스칼과 해롤드의 미래에 대해 아무 얘기를 해주지 않아 해롤드는 답답하고 미칠 지경입니다. 너무 다른 사람 둘이 만났으니 연애가 잘 되어 갈 리도 없겠죠. 이런 해롤드에게 충고를 해 줄 사람이 있긴 있습니다. 해롤드가 듣는 이 정체모를 여인의 목소리의 정체에 대해 나름의 성실한 자세로 해롤드를 도와주려 애쓰는 인물입니다. 지금 같은 대혼란의 상황에서 그나마 핼버트 교수가 그의 옆에 있는 것이 다행이기도 합니다. 목소리에 따르면 이제 곧 죽어야하는 해롤드에게 핼버트 교수는 제안을 하나 합니다. 지금껏 그가 해보지 못했던 그러나 하고 싶었던 일들을 지금부터 시작해보라고 말입니다.
사랑을 시작한 해롤드 해롤드는 한동안 잡아보지 않았던 기타를 다시 치기 시작하고 대낮에 옛날 영화를 보고 실컷 웃다 나오기도 하고 이제 더는 저녁을 혼자 먹지도, 양치질 횟수와 횡단보도의 블록의 수를 세지도 않습니다. 요란한 펑키 음악을 듣기도 하고 그 가사를 음미하기도 합니다. 왠지 더 많이 즐거워지고 더 많이 충만된 해롤드 그만의 삶을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한 가지만 빼고 말입니다. 파스칼, 그녀 빼고는요. 어느 날 밤 해롤드가 용기를 냅니다. 취침시간을 지키지 않는 것 정도는 이제 일도 아니겠죠. 파스칼을 위해 여러 가지 종류의 밀가루를 삽니다. 각각 다른 밀가루의 이름을 말하듯 봉투에는 각기 다른 색의 테이프로 밀봉이 되어 있군요. 정성스러워 보이고 예쁜 선물이 됐습니다. 파스칼은 해롤드의 변한 모습이 낯설지만 그것이 싫지만은 않습니다. 파스칼 그녀에게 그녀를 원한다고, 당신을 원한다는 말을 하기 위해 달려왔다는 해롤드를 파스칼은 어찌해야 할까요. 파스칼은 지난날의 헤롤드를 상기하며 그의 진심을 의심한다기보다는 그저 그럼 잠시 걷자고, 잠시 같이 걸어가겠냐며 그와 함께 그녀의 집으로 발을 옮깁니다. 시간은 충분할 것이겠죠. 이 남자의 진심을 알아보는 시간도,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밀가루 봉투를 한 아름 들고 나타난 한 남자의 걸음걸이를 함께 느껴보는 시간도, 그리고 해롤드에게 가졌던 그녀 자신의 감정 또한 정확히 어떤 것이었는지, 자신의 집으로 그를 맞이할 것인지, 자신이 고백할 용기를 내어야 할 것인지 아닌지를 고민할 시간은 충분할 것이니까요. 그렇게 두 사람은 그날 밤 서로에게 마음을 열고 사랑을 확인합니다. 그러나 ‘행복한’ 해롤드는 곧 죽어야 합니다. 목소리가 그렇게 말했으니까요.
가상과 현실 사이에서 소설의 주인공이 된 해롤드 목소리의 주인공은 카렌 아이플이라는 소설가였습니다. 그녀가 지금 쓰고 있는 소설의 주인공이 해롤드였구요. 소설을 써 내려가는 그녀의 목소리가 해롤드의 귀에서만 사는 목소리였습니다. 이것이 실제로 가능하고 안하고는 마크 포스터 감독에게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전작에서도 현실과 가상의 세계를 슬그머니 의뭉스럽고도 세련되게 그려내는 대단한 솜씨가 이곳에서도 ‘작렬’합니다. ‘가상현실’ 하면 영화 매트릭스의 장면과 매트릭스가 보여준 세계부터 떠올리게 되는 상상력의 풍경과 메커니즘은 그다지 반가운 일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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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현실 자체를 좁게 해석하게 만드는 일이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철학적 논의는 더욱 확장되고 깊이 논의되어야 하겠지만 문화적 활동 혹은 예술적 활동은 이미 가상현실이 일정한 방식으로 운용되는 순간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상상하고 창조한다는 행위 그 자체가 존재와 사물의 잠재적 생성의 힘을 어떤 형식으로든 그려내고 드러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
가상 현실을 말하는 ‘virtual reality’에서 ‘virtual’은 ‘가상’이라는 뜻도 있지만 우리 인간은 이미 오래전부터 이 단어를 ‘잠재적’이라는 뜻으로 철학적인 차원에서든 일상적인 차원에서는 쓰고 있었습니다. 사물과 존재가 현실화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생성의 웅숭한 가능성을 보는 일이 이 virtual이라는 단어에 담겨 있습니다. 이미 소설 창작 과정이 가상 현실의 새로운 운용 차원에서 설명될 수 있다는 논리적 전제 위에 포스터 감독은 재기발랄한 영화적 상상력을 포개어 놓았던 거죠. 카렌의 소설 속 주인공 해롤드를 실제 현실에 존재하는 해롤드로 잡아 세워 소설가의 목소리를 듣게 만들고 카렌과 해롤드를 현실에서 만나게 하는 그의 영화적 장치와 상상력은 가상현실을 언제나 테크놀로지차원에서만 접근하는 우리의 사유와 인식의 메커니즘을 통쾌히 가로지릅니다. 이상한 목소리와 씨름하다가 그것을 받아들이며 자신의 삶의 과정으로 포섭하는가 하면, 다시 굳은 손을 움직여 기타를 잡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백을 하기 위해 밀가루 봉투 한 아름을 들고 뛰어가기도 합니다. 마침내 자신이 주인공인 카렌의 소설을 모두 읽고 나서는 자신이 죽어야만, 죽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소설가에게 전하는 일은 인식과 사유의 가쁜 숨이 쉬어져야만이 호흡과 보조를 맞출 수 있는 경이로운 실존의 현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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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보다 낯설은 여행, 영화 생각해보면 해롤드가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기로 하는 결단을 내리는 인물로 이끌어지는 과정에도 억지는 없습니다. 해롤드의 정확한 생활 양식의 실천 강도는 실로 비범한 일입니다. 자신의 고독과 삶의 단순함마저도 의연히 받아들이는 해롤드의 삶의 실천 속에는 대범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해롤드의 삶이 비록 단조롭고 무채색을 띄고 있지만 그렇다고 그의 삶 자체를 무의미하다거나 불행한 삶이라고 얘기할 수 는 없는 일입니다. 포스터 감독 또한 그 점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갑자기 사람이 변하는 일을 우리가 종종 보지만, 그것은 무조건적인 우연을 통해 하루 아침에 어떤 한 사람이 어떤 개연성이나 현실적 배경 없이는 일어나기 어려운 일입니다. 그 사람의 삶의 여정과 궤적이 현실의 촘촘한 그물망 속에서 성실히 움직이다가 어떤 우연적인 사건을 만나 생화학적, 물리적 반응을 일으키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반응 re-action’, (되새김질 되는 행동, 되받아져지는 행동, 응답하는 행동)이라고 하지 않나요. 삶은 세계와의 반응 그 자체니까요. 이제 소설가 카렌이 이러한 해롤드에게 ‘반응’해야 할 차례인 것 같습니다. 예술가들은 세계를 창조하고 파괴하고 다시 구축하고 해체하는 사람들이죠. 현실과 환상도 지나 가상 현실도 지나 그러기에 그러한 어마어마한 일을 할 수 있는 자신의 전지전능한 힘에 대해 (그래서 해롤드가 카렌에게 그러는 거겠죠. ‘전지적 작가 시점 아니시냐고’) 막중한 책임감과 진정성에 대한 고민과 고뇌를 뗄 수 없는 그림자처럼 끌고 가는 사람들이겠죠. 카렌에게 공은 넘어왔습니다. 기꺼이 죽겠다는 주인공 앞에서 지금까지 자신의 주인공들을 모두 죽였던, 아름다운 비극을 쓴다는 소설가 카렌에게 선택의 순간이 남았습니다. 가상현실과 현실을 거짓말처럼 건너다닌 이들이 만들어 내야할 선택은 과연 어떤 모습일지요. 정말 소설보다 낯설은 여행입니다. 저예산 독립영화에 해당하는 영화임에도 더스틴 호프만이 핼버트 교수로 분했고 작가로서의 고단한 얼굴과 눈빛을 보여준 카렌 아이플은 엠마 톰슨이 소화해주었습니다. 영화가 눈부셔서 왜 그런가 했더니 그 배우들이 뿜어내는 힘이었나 싶습니다.
글·자료사진 김진택 | 철학과 미학, 영화미학을 공부했다. 현재 동덕여대, 연세대, 인하대 등에서 미학, 철학, 영화를 가르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