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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칼럼/인터뷰/문화초대석

5.18의 전국화를 위해 <화려한 휴가>김지훈 감독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09. 1. 22. 11:07

 

5·18민중항쟁을 소재로 한 영화 <화려한 휴가>가 제작된다고 했을 때 영화계 안팎에서는 이래저래 걱정이 많았다.
금남로 세트 제작에만 30억 원이 투입되고, 마케팅비를 제외한 순제작비만 100억 원에 이른다는 소식은
영화계 관계자들의 걱정 수위를 높이기에 충분했다. 일단 의문은 두 가지였다.
첫째 상처가 채 아물지 않은 역사적 사건을 대중영화로 만들어도 되는 것일까
둘째 과연 5·18을 소재로 돈을 벌 수 있을까
영화 개봉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공세가 한창인 7월로 정해지자 입방아는 더욱 거세졌다.
가뜩이나 손님이 줄어든 한국 영화계에서 100억 원대 대작이 할리우드 영화에 밀린다면,
한국 영화산업은 큰 위기를 맞을 수 있었다. 아울러 대선을 앞두고 영화가 정치적 목적에 이용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다.
그러나 영화는 개봉 3주 만에 5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최종 스코어를 짐작하기는 힘드나,
일단 상업적인 측면에선 성공을 거둔 셈이다. 그래도 첫 번째 질문에 대해선 여전히 논쟁이 진행 중이다.
영화를 연출한 김지훈 감독(36)에게 세간의 우려와 비판, 제작 과정 등에 대해 들어봤다.

 

 

상어지느러미 요리보다는 자장면을

 

관객 반응이 좋네요.
“입소문을 통해 흥행 여부가 결정될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초반에 이렇게 잘될지는 몰랐어요. 27년 전 얘기지만 아직도 많은 분들이 그 속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 것 같아요. 영화를 본 젊은이들이 ‘실제 있었던 일이냐’고 물어본다고 해요. 관람 후 인터넷이나 서적을 통해 관련 자료를 찾아보는 이도 있다고 하고요. 이 영화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왜곡이다’, ‘대선용이다’라고 평가한다지만, 저는 정치적 이슈보다는 당시 살았던 사람들, 우리가 잊고 지낸 사람들을 얘기하고 싶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민주주의는 자연스럽게 이뤄진 건 아니잖습니까.”

 

왜 ‘80년 광주’를 다루셨나요?
“대구에서 자란 뒤 서울에 와서 처음으로 5·18을 알았어요(그는 한양대 연극영화과 93학번이다). 10살 때 광주항쟁이 일어났는데 당시엔 ‘폭동’으로 알았어요. 어린 마음에 ‘나라 망하는 것 아니냐’는 걱정도 꽤 했죠. 훗날 비디오, 책, 자료 등을 통해 진상을 알고는 굉장히 부끄러웠어요. 몰랐다는 것뿐 아니라 아예 진실을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는 것 자체도 부끄러웠지요. 훗날 내공이 쌓이면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죠. 2004년 무렵 나현 작가와 함께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영화의 목표는 무엇이었습니까.

“당시 생존자들을 인터뷰 했습니다. 1차적 목적은 그분들께 누가 되면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더불어 그분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씀이 ‘많은 사람이 보게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5·18민중항쟁은 지금까지도 광주만의 역사처럼 평가받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5·18의 전국화’를 모토로 삼았죠. 대중영화 감독은 역시 많은 사람이 보게 하는 게 우선순위입니다. 곰발바닥, 제비집, 상어지느러미 같은 특별한 요리가 아니라 ‘맛있는 자장면’을 만들겠다고 생각했습니다.”  


5·18은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사건

 

5·18을 다룬 영화는 <화려한 휴가>가 처음은 아니다. 독립영화 <오! 꿈의 나라>를 비롯해 <부활의 노래>, <꽃잎> 등이 5·18민중항쟁을 다뤘다. 그러나 <화려한 휴가>에는 이전 영화에 나타났던 ‘지식인’이 없다. 택시기사, 간호사, 제비족 등이 영화를 이끌어 나간다. 그래서일까. 영화에 역사를 보는 거시적 안목이 없다, 광주의 비극을 초래한 원인에 대한 고찰이 부족하다, 감독의 미학적 터치가 부족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영화에 대한 아쉬움의 목소리도 없지 않습니다.
“왜 감독의 생각이나 정치적 색깔이 없냐, 당시 상황의 재구성에서 멈췄냐 하는 비판도 많이 들었습니다. 일견 동의하지만 역사적 특수성이 보편화되는 과정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쪽에서 심오한 토론이 이뤄지면, 다른 한쪽에선 관객과 만나서 이야기해야 합니다. 지난 27년 동안 5·18에 대해 고민했던 분들이 그렇게 많았다면, 역으로 지금까지 그분들은 뭘 하셨는지 묻고 싶습니다. 5·18은 지식인이 소유한 역사가 아닙니다.
이건 존재의 역사입니다. 혹자는 감동을 주기 위해 눈물을 넣은 ‘신파’라고도 합니다. 하지만 5·18은 정말 눈물 없인 볼 수 없는 사건입니다. 대중영화는 대중과의 접점을 찾아야 합니다. 그것이야말로 ‘참여의 역사’가 이뤄지는 방법입니다.”

 

애초엔 윤상원 열사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했다고 들었는데요.
“윤상원 열사는 민주항쟁의 대표성을 띤 인물입니다. 그런데 작품을 다듬다 보니 사람 냄새가 안나요. 받아들이는 측면에서 너무 어려운 얘기가 된 것 같더라고요. 지식인이 주인공이라서 그렇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5·18은 소시민이 중심이 된 항쟁입니다. 제 영화에 ‘지식인’이 없다고 하지만 ‘지성인’은 있습니다. 아무리 못 배운 사람이라 해도 진실을 실천하면 지성인입니다. 지금은 지식인보다 지성인이 중요한 사회입니다.”
영화를 제작한 기획시대 유인택 대표는 “먹물을 빼라”고 수차례 주문했고, 김지훈 감독은 “지식인 대신 지성인을 넣겠다.”고 응답했다. 비슷한 맥락이지만 다른 의미를 지닌다.
일부에선 영화의 코미디, 멜로 코드가 과했다는 지적도 있다. 특히 박철민, 박원상 콤비가 주도한 유머에 대해 아쉬움을 표한다. 영화를 가급적 많은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까.

 

아무리 그래도 영화가 너무 감상적인 것 아닌가 싶기도 한데요.


 
“영화 준비하면서 느낀건데, 당시 금남로에 있었던 사람들이 전부 정치 이데올로기 때문에 나온 건 아니에요. 내 이웃, 내 가족이 희생돼 나섰어요. 마지막까지 도청에 남았던 분들도 지식인보다는 평범한 사람들이 많아요. ‘해방 광주’ 기간 동안 강도 한 건이 없었다고 해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일이라더군요. 광주항쟁에는 흥, 가락, 농이 있었어요. 나의 슬픔을 타인에게 전이시키지 않겠다는 의지라고 할까요. 공포가 엄습했을 때 농담하는 사람들 있잖아요. 5·18이 신파로 만들어졌다고 해서 그 의의가 훼손되는 건 아닙니다. 역사성은 우리 손에 있어요.”

 

극의 전개가 지나치게 기계적이라는 비판도 있습니다.
“영화를 관객에게 쉽게 다가가게 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셰익스피어까지, 발단·전개·위기·절정 결말은 정해진 구조 아닙니까. 여기 충실히 못했다고 비판받을 수는 있지만, <화려한 휴가>가 내러티브 구조를 정형화했다고 비판하는 건 이해 못하겠어요.”

 

5·18민중항쟁을 대중영화로 풀어내기에는 조금 시기가 이른 게 아닐까요?
“왜 ‘역사적 사건’을 대중적 형식으로 풀어냈느냐는 문제로 돌아가네요. 5·18의 아픔은 다름 아니라 망각, 왜곡입니다. 그래서 치유가 안 됩니다. 5·18은 공식적으로 민주항쟁이라고 평가받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관심이 없습니다. 행사 하는 날만 잠깐 관심을 갖습니다. 일부에선 여전히 폭동이라고 믿는 사람들도 있어요.
<화려한 휴가>에 부정적인 측면도 있겠지만 더 큰 대의와 미덕을 생각해주셨으면 합니다. 잘못 인식하거나 모르는 분들에게 올바른 관점을 제공했다는 거죠. 전 광주를 영화로 풀어내는 시기가 오히려 너무 늦었다고 생각합니다. ‘몰랐던 역사를 알아서 행복하다’는 젊은 관객의 편지를 받고 너무나 기뻤습니다.”

 

3대가 함께 보는 영화를 만들어 기뻐

 

현재 영화의 주된 관객층은 10대 후반부터 20대입니다.
이들에게 5·18민중항쟁을 다룬 영화를 보여준다는 건 상업적 측면에서 모험이지 않았나요?
“상영관을 다니면 3대가 손을 잡고 오는 모습을 봅니다. 무대 인사만 40~50군데를 돌았는데, 연령층이 정말 다양해요. 80대 이상 되는 분도 오세요. 이미 <화려한 휴가>는 보편성을 찾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를 통해서 가족회의가 이뤄진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제 의도를 넘어서서 관객이 반응하고 있어요.”


마지막 ‘상상의 사진’ 장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신애(이요원 분)는 침울한 표정으로 관객을 응시합니다. 원래 배우가 카메라를 쳐다보면 ‘9시 뉴스’가 되지만, 이 장면에서 만큼은 주관적으로 응시합니다. 전 여기서 관객들에게 묻고 싶었습니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한때 나침반이 고장 나서 힘들었지만, 지금은 나침반이 작동하는 데도 방향성을 잃었습니다. 신애가 방향성을 잃은 우리에게 간곡한 울림을 전하도록 하고 싶었습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흘렀던 <임을 위한 행진곡>이 너무 상투적이라는 분도 계시지만 10대, 20대의 60~70%가 이 노래를 모릅니다. 어떤 분은 새로 작곡한 영화 음악인줄 알더군요. 노래의 의미를 알고 있는 사람에겐 더 큰 감상을, 모르는 사람에겐 당시의 정서를 전해주고 싶었습니다.”
이런저런 논쟁 속에 <화려한 휴가>는 일단 상업적 성공을 거뒀다. 지난해 개봉한 한국영화 중 손익분기점을 넘긴 영화가 10% 남짓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무거운 소재로 상업성을 획득한 <화려한 휴가>는 일단 외견상 성공적이라 평가할만하다. 김지훈 감독은 자신을 ‘대중영화 감독’이라고 수차례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그가 생각하는 대중영화 감독상에 대해 물어봤다.


대중영화 감독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감독은 ‘아름다운 거짓말’을 잘하는 사람입니다.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를 보면 죽어가는 소녀를 위해 화가가 벽에 가짜 잎을 그리잖아요. 그건 거짓말이지만 결국 죽어가는 소녀에게 삶의 의지를 줬습니다.”


글 백승찬 | 경향신문 문화2부 기자, 사진제공 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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